태풍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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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현암사에서 펴낸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가급적 출간 순서대로 읽으려고 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도련님> 다음에 <풀베개>라는 사상 최강의 난관에 부딪쳐서... 내가 나중에라도 그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 작품에 가미된 소세키의 숭고하다 못해 고고한 취향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다음에 출간된 <태풍>에 손을 댔다. 아, 이 작품은 그나마 낫다. <풀베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어쨌든 서사가 있는 편이라서 술술 읽혔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지식인이구나 싶었던 게 내가 요번 작품을 읽으면서 나온 감상이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차라리 약과였고, 이 작품에 등장한 시라이 도야라는 문학자는 천생 지식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인이라 부를 테고 어떤 사람은 선비라고 낮잡아 볼 것 같다. 현실 감각 결여된 채 실속 없이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인물이란 게 시라이 도야란 인물을 향한 통속적인 시선일 테니까.


 서사적 짜임새는 소세키의 초기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에 못 미치는 작품이다. 일단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개입돼 소설보다 계몽 도서를 읽는 기분이고 두 가지 시점을 번갈아 교차하는 서술 구조도 그렇게 효과적이라는 느낌까진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식인이 나오고 그 지식인을 바라보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시라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 뭣 모르고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자라고 나서 그 행동을 후회하는 제자와 시라이에 공감은 하면서도 정작 그를 따라 실천에 옮기기는 꺼리는 부잣집의 사내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선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꼿꼿하게 지켜야 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속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말해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작품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시라이 도야의 주장이나 인물들의 내적 갈등, 번민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 읽은지 2주 가까이 된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대신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작품에서 계속 강조되는 홀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외로운 삶에 대한 정의는 어렸을 때부터 내 나름대로 많이 내려왔기에 이제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무려 이게 100년도 더 된 작품이란 점은 눈여겨볼 만했다. 한 세기 전 작품치곤 너무 공감이 갔거든.


 단언컨대 작품 말미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작품을 여기서 더 저평가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KBS <대화의 희열2>에서 김영하 작가가 나와 '독자들은 작가가 자기처럼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그가 쓴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들을 땐 아리송했으나 가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닌 듯하다. <도련님>에서도 그랬지만 - 아직 소세키의 작품을 많이 못 읽어서 비교할 작품이... - 이 작가는 과장된 해피엔딩을 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한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결국 시라이 도야도 그의 인물됨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소수의 사람 정도만이 열광할 뿐 밥값도 벌지 못하는 선비 이미지가 특별히 전복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만나 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중요하다.

 이 작품도 나중에 다시 읽을 텐데,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라고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 다만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린 인간의 한계가 이전보다 더 와 닿을 것인가. 나는 시라이 도야의 말에 공감할 것인가, 반발할 것인가. 지금은 그의 말이 공감이 되면서도 내심 말만 번지르르한 것 같아 질리기도 했는데 다음엔 또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은근히 사람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 100p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중략)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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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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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7







 이 작가의 책은 <소문>으로 시작해 <내일의 기억>, <네 번째 빙하기>와 이번 단편집까지 총 4권 접해봤다. 그전까지 장편이었는데 이렇게 단편으로도 접하니 느낌이 또 색다르다. 이 책과 더불어 앞에 언급한 책을 모두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소화하는 장르가 정말 다양하단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은 연쇄 살인범을 잡는 스릴러,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자를 둘러싼 가족 드라마, <네 번째 빙하기>는 개성 강한 성장 소설이다. <벽장 속의 치요>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특징이 적절하게 혼합된 단편집이다. 어떤 작품은 서늘하고 어떤 작품은 웃기고 어떤 작품은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내일의 기억> 때도 그랬지만 별로 내 취향이 아니다. 서늘하거나 웃긴 이야기의 경우엔 수명은 짧지만 - 표현이 좀 이상한데 내 머릿속에서 그리 오래 남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그런대로 만족감은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단, 표제작은 꽤 괜찮았다. 그런 주제의식과 설정은 언제나 환영이다.



 '벽장 속의 치요'


 주인공 남자가 새로 구한 집에 알고 보니 유령이 살고 있다는 서사는 지겹고 뻔해서 신물이 날 지경이고 이 작품이라고 그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뒤로 갈수록 읽을 만했다. 유령인 치요는 매력적이고 치요가 죽은 원인과 그 죽은 원인에 얽힌 일본 근대사의 온갖 그늘진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가 다분해 가볍게 넘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제의식이 워낙 강렬해서 단편이 아닌 장편이었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승전결이 괜찮은 단편이지만 이 작가라면 왠지 장편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예기치 못한 방문자'


 비슷한 포맷의 이야기는 많이 접한 것 같은데 이것도 재밌게 읽혔다. 나름 절박하게 발버둥치는 남자의 심리 묘사가 몰입도 있었다. 살인을 은폐하려는 남자가 위험하고 멍청한 짓을 하는데 그런 만큼 스릴 넘쳤다. 결말의 반전이 내 그럴 줄 알았다 싶긴 하지만.



 '살인 레시피'


 비슷한 제목의 스릴러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은근히 레시피란 단어는 여러 곳에서 쓰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정말로 레시피의 본뜻에 맞게 활용된다. 음식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계략을 열거하는 부분은 좀 감탄스러웠다. 까다롭지만 실용적으로도 보이는 이 살인 레시피를 보노라면 작가가 얼마나 연구했는지 보였다. 특히 재밌던 건 결말이다. 이야길 끝맺는 문장이 아주 기막혔다.



 'Call'


 서술 트릭이 가미됐다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한 작품인데 생각보다 시시해서 김샜다. 서술 트릭이 맞긴 한데 아주 충격적이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겠지?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이 작품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후보에 올랐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다. 결말에서 드러난 어떤 반전이 오싹하긴 했는데 그 상에 후보로 들 만한 작품인 건가 싶었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상 이름과 달리 일반적으로 추리소설 같지 않은 소설도 수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나 추리소설 같은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수상작들이 다 재밌다는 건데... 이 작품은 상을 못 받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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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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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현재 쓰고 있는 미국 여행기에서 쓸 내용이긴 하지만, 나는 이번 미국 여행 때 뜬금없게도 뭉크가 더욱 좋아졌다. 노르웨이 여행 때도 그의 작품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지만 미국에서 여러 명화를 접하다 보니까 새삼 내가 대단한 분을 몰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다른 유명 화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뭉크라는 인물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귀국하고 바로 이 책을 읽어봤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읽는 것이 내게 있어 무척 생경한 일이라 이 책의 모든 것이 신선했고 만족스러웠다. 뭉크의 삶을 통해 그의 작품도 살펴보는 이 책은 자연스럽게 뭉크의 고향인 노르웨이의 풍경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데 내가 직접 다녀왔을 정도로 좋아해 마지않는 나라이기에 읽는 내내 아주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뭉크가 노르웨이에서 국민 화가 대접을 받는 걸 넘어 '회화하면 뭉크'라는 공식까지 - 비슷한 공식으로 '노르웨이에서 문학은 입센, 음악은 그리그, 조각은 비겔란'이 있다. - 있다는 걸 떠올리면 노르웨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나라에 아예 뭉크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뭉크 미술관이 있고 가장 가치가 높은 1,000크로네 지폐에 뭉크의 사진과 그의 대표작 <태양>이 그려진 것까지 보면 정말 말 다했다.


 특이했던 건 이 책에선 뭉크의 삶을 연대순이 아닌 키워드별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뭉크와 관련된 책은 참 많았지만 단언컨데 다른 책에선 이 책처럼 독특한 느낌을 받긴 쉽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은 저자 입장에서도 헷갈리고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텐데 뭉크의 작품을 들여다볼 때 무시할 수 없을 키워드인 가족과의 불화, 실연, 죽음, <생의 프리즈>, 그리고 대표작 <절규> 등에 대해 한 파트에 집중적으로 다뤄 나중엔 오히려 효율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성에 있어서 저자가 고심한 것이 빛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게 몇 가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노르웨이에서 뭉크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고 미국에서 그렇지 못했던 현상을 순전히 노르웨이가 뭉크의 진가를 일찍이 잘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사수한 결과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뭉크 역시 처음엔 그 독보적인 화풍 때문에 인정을 많이 못 받았는데 다행히 소수의 안목 있는 자들의 지원 덕분에 파리나 베를린 등 해외에 가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오히려 노르웨이에선 그러한 해외에서의 유명세가 있어 뒤늦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뭉크는 - 표현주의란 쉽게 말해 눈으로 보는 풍경에 자신의 심리를 대입해서 변형 및 왜곡시키는 스타일로 생각하면 편하다. -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파격적인 작품 때문에 당대엔 외면을 많이 받은 편인데 자국인 노르웨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았다는 게 내심 실망이라면 실망이었다. 노르웨이는 어딘지 깨어있는 그런 이미지가 있기에...


 그랬던 그의 작품이 대다수 노르웨이 미술관에 있을 수 있는 데엔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나치가 창궐해 자신의 그림이 무기력하게 불탈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나라에 기증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늘 생각하지만 시대의 그늘, 또 인생의 그늘은 늘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나치 덕분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나치의 위협이 있었기에 뭉크의 작품은 거의 다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게 된 점, 뭉크가 날 때부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등 여러 아픔이 있었기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여러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진짜 아이러니한 건 자신은 항상 죽음과 같이 살았다고 말했던 뭉크는 정작 그 자신은 80이 넘어서까지 산, 이른바 장수한 인물이란 것이다.

 뭉크의 장수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있어서 지독한 농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뭉크 자신은 고독을 좋아해 말년을 조용히 지내다 영면에 들었지만 뭉크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 후반부는 초라한 감이 없잖아 있다. 내가 봤을 때 뭉크의 고독엔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가 원해서 홀로 작품 세계에 몰두한 것이겠지만 그러한 계기가 가족과 연인 등과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이별의 탓이 컸으니... 그렇기에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꽤나 장수했고 인생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조용해서 일견 행복한 편이었다고 여겨지는 뭉크의 삶도 참 착잡하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이 페이지 수에 비례하지 않게 방대해서 후기가 다소 두서 없는 감이 있는데 여하간 책에선 뭉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겠다. 뭉크의 팬은 당연하겠고 그의 작품을 <절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줄 듯하다. 특히 두 번이나 절도를 당한 <절규>에 관한 에피소드, 내년인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인 뭉크 미술관 2관에 대한 얘기는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고 뭉크 미술관 등에서 인터쉽으로 참가한 경력이 있는 저자이기에 제법 디테일하게 서술돼서 끝까지 만족스러웠던 책이다.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 <뭉크> 같은 퀄리티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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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뉴욕 미술관 -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 떠나는 예술 여행
최상운 지음 / 나무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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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8








 뉴욕은 도시의 규모나 인지도에 걸맞는 이름 있는 미술관이 참 많다. 모마, 메트로폴리탄, 휘트니, 구겐하임, 노이에... 이 미술관들이 안겨주는 로망은 정말 대단해서 아예 뉴욕 여행의 테마를 미술관으로 잡고 떠나려는 사람이 있을 정돈데 이 책은 그런 미술관들의 이모저모를 길라잡이로서 잘 안내해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분량은 짧지만 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들의 핵심을 잘 짚어줘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간에 '이 미술관에 가보고 싶게끔' 만드는 데엔 나름 쏠쏠한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에 내가 블로그에 올릴 여행 포스팅에서 다룰 내용들이지만, 미국 미술관이라고 하면 미국 작가의 그림보단 타국의 명화가 더 많이 걸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작년에 갔던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이 자국의 명화를 중심으로 전시했던 걸 떠올리면 무척 대조적인 풍경이다. 물론 화가들이 자신의 국적보다 그림을 팔아 얻는 수익을 우선하는 건 당연한데 미국 미술관의 무수한 명화들을 보노라면 돈의 위대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노르웨이가 대단한 거고... 세상에,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이 이렇게 많으면 정작 스페인과 네덜란드 미술관엔 뭐 걸릴 만한 게 있는 걸까?


 기대했던 바가 살짝 어긋났기 때문일까, 직접 경험했던 노르웨이 미술관이나 최근에 읽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미국적'이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금방 언급한 책에선 저자가 북유럽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온전히 그 나라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느라 자연스럽게 북유럽 국가들의 모습이나 시대상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선 뉴욕 미술관에 있는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의 작품을 돌아보느라 정작 미국이나 뉴욕에 대해선 알게 된 사실이 은근히 적다. 그나마 미국 근, 현대 작가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휘트니 미술관에선 호퍼나 오키프의 작품이 있으니까 제법 미국적인 얘길 접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좀... 부족했던 게 아쉽다.

  2주 동안 미국 동부를 여행하면서 미술관 10곳을 가면서 느낀 점 전부를 이 책 한 권을 포스팅하면서 녹여낼 순 없을 듯하다. 아무튼 짧고 핵심적인 길라잡이로선 괜찮았지만 미국이나 뉴욕을 이해하기엔 기대했던 것과 양상이 달라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다. 다른 뉴욕 미술관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472033414

 이건 위에서 언급했던 책에 대한 포스팅. 다시 말하지만 난 이런 책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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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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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추리소설의 제목이 <이유>라니, 대체로 소설의 제목이 단순하면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경우가 달랐다. 포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제목의 단순함은 곧 작품의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화려함 없이 단순하게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는 이 작품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분량의 탓은 아니리라 본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내 입장에선 이 작품은 차라리 분량이 짧은 편에 속하는데, 70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 분권이 된 여러 작품에 비해서도 <이유>는 유독 가독성이 떨어졌다. 사건의 양상은 물론이고 철저하게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 눈길을 잡아끌지 못했고 등장인물은 너무 많아서 집중이 흐트러지기 십상이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력이나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능력,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결말까지 써내려간 필력은 인정하지만 때론 그런 장점만으론 수긍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유>의 경우가 딱 그에 해당하고 심지어 르포르타주 형식부터가 기획 단계서부터 이어진 악수惡手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9년 전 고등학생 때로, 그때는 상상 이상으로 방대한 세계관과 디테일이 감탄스러워 꽤나 좋은 인상이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작품이 전체적으로 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이야기하는 바는 매우 간단한데 이는 작품의 제목이 주는 단순명쾌함에 주목하면 더욱 자명해진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의 작품답게 <이유>는 말 그대로 작중의 모든 사단이 벌어진 이유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의 원점이겠고 다르게 보면 새삼스럽고 유난스런 주제의식이라 볼 수 있겠는데 이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자의 필력이 작품의 평범함을 어떻게 상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위에서 말했듯 아무래도 난 이 작품이 정말로 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일단 확실히 해두고 싶은 부분은 이 작품은 결코 미시적인 성격의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무를 보느냐, 숲을 보느냐 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미야베 미유키가 숲에 있는 모든 나무를 힘 닿는 대로 보는 작가라고 생각할 테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너무 많은 나무를 살펴보느라 각각의 나무의 모습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오히려 숲의 윤곽만 기억에 남는 아이러니함, 혹은 역효과를 낳고 있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각의 캐릭터에 디테일한 설정을 부여하는 게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인데 <이유>에선 그런 면모가 쉬지 않고 인터뷰 형식으로 반복되고 설명될 뿐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소설 같지 않은 나머지 사건의 윤곽이 흐릿하게 다가왔다.


 처음 읽었을 땐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의 일본인들의 일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자못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은데 9년이 지나 다시 읽기까지 비슷한 배경과 주제의식의 작품을 접해봤기 때문인지 이번엔 큼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전개도 이건 좀 안일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르포르타주 형식 일색이라 식상했고 가장 별로였던 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야시로 유지라는 캐릭터를 미스터리한 걸 넘어 너무 두루뭉술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600페이지가 넘게 본작에서 보였던 서술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하거니와 결국 사건이 폭발한 경위를 상상에 맡기거나 주변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추만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결말이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매우 점진적이긴도 사건의 내막에 다가갈수록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결말에서 갑자기 증발해버리니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과거에 좋게 기억에 남은 작품이라 다시 읽은 건데 이번 2회차 독서 때는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어렵사리 완독했다. 다 읽고 나니 다시금 미야베 미유키가 싫어졌는데 <모방범>을 다시 읽을 예정이었던 터라 그 작품도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시 읽으면 더 감탄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미야베 미유키는... 옛날에 읽었던 작품이든, 새로 접하는 작품이든 간에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

저런 곳에 살면 사람들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거 같아요. - 4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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