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7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8.0







 거의 10년에 걸쳐 읽은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는 이 17권으로 일단은 완결이 났다. 작가 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연재하는 동안 정말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써버려서 후기에 쓸 내용이 없다며 구태의연한 말 없이 깔끔하게 끝냈다. 후기에조차 쓸 말이 없다는 말에 이렇게 공감이 될 줄은 몰랐다. 보통은 말은 그렇게 해도 할 말이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겠지만 이 시리즈만큼은 정말로 공감했다. 누누이 말했지만 이 시리즈는 늦어도 12권 정도에서 완결이 났어야 했다. 마지막 '태양의 금화' 에피소드를 잘 뽑아서 망정이지, 사실 이번 17권에 수록된 에필로그와 단편들도 내가 봤을 땐 사족이라서 정말로 쓸 얘기가 없다는 작가의 말이 과장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김새게 한 것은 최근에 시리즈의 재연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시리즈 연재 10주년을 기념으로 호로와 로렌스가 온천을 운영하는 후일담이 재연재됐다고 하며 심지어 그 둘의 딸과 콜을 주인공으로 세운 '늑대와 양피지' 시리즈까지 새로 발간됐다지 뭔가. 더 이상 쓸 얘기가 없다면서... 믿었는데;; 생각해보니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도 완결이 난 주제에 새롭게 재연재를 하고 있으니 이건 어떻게 보면 일본 시리즈물의 안 좋은 일면인지 모르겠다. 물론 재연재를 원하는 목소리가 있으니까 계속 시리즈가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박수 칠 때 떠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뭐, 시리즈는 끝났어도 작가들은 계속 먹고 살아야 하니까 계속 이어나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바로 조앤 K. 롤링이지 않을까. '신비한 동물사전'... 생각하니까 또 욕이 나오려고 한다.


 위에서 하는 말도 결국엔 그 작품들을 읽지 않아서 할 수 있을 뿐인지 모르겠지만, 미안한 얘기겠으나 그 재연재물까지 볼 생각은 지금 시점에선 조금도 없다. 그럴 여력도 없고 시간도 없다. 지난 16권에 실린 작가의 후기에서 '행복한 이야기란 언제까지나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정말로 끝까지 따라가면서 확인할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내게 호로와 로렌스의 여정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쓰다 보니까 사실상 시리즈의 마지막 포스팅임에도 너무 안 좋은 얘기만 해댄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듯 내가 재연재 에피소드를 읽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 에피소드의 완성도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왕 잘 마무리한 시리즈를 굳이 더 이어나가는 것인 만큼 안일하게 집필해서 괜히 시리즈 자체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등 긁어부스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얘기 들어보니까 기우에 불과한 듯해 그건 그것대로 참 다행인 일이다. 완결인 줄 안 시리즈가 사실은 완결이 아니었다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명작 라이트 노벨을 읽었다는 뿌듯함은 확실히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 시리즈의 1권을 읽던 내 옛날 모습이 떠올라 실로 감개무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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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6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0






 사실상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라 봐도 무방한 이야기. 그답게 두 권으로 분권됐고 간만에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였다. 작중의 시장 경제 돌아가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 화폐를 둘러싼 상인들의 전쟁, 이른바 '상전'이란 것이 실감나게 묘사돼 정확하게 파악은 안 가도 확실히 읽는 맛이 있었다. 이 책은 다음 권 17권을 마지막으로 '일단은' 완결이 난다. 왜 일단이라고 하는지는 다음 포스팅 때 얘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시리즈는 늦어도 12권 정도에서 완결이 났어야 했다. 단편집을 줄이고 누가 봐도 우회하는 전개의 장편도 내가 봤을 땐 덜어냈어야 했다. 그래도 끝에 가서 체면치레는 해서 망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추억에 X칠을 할 뻔했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두고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왔다는데, 시리즈의 두 주인공인 호로와 로렌스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멸자와 필멸자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만 살아남고 다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별은 최대한 늦추는 것말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래서 미리 헤어지든가, 그렇지 않든가 하는 방황이 지난 2~3권 동안 호로와 로렌스 사이에서 많이 오갔는데 둘은 감정을 확실히 정한 듯 이번 권에서는 거의 대놓고 깨를 쏟아낸다. 1, 2권에서부터 이어졌던 선을 넘지 않아도 꽁냥꽁냥했던 분위기가 정말 어렴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덕분에 클라이맥스 부분도 꽤나 극적으로 다가왔는데 이 순간이 오래도 걸린 만큼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최대 매력은 바로 검과 마법이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란 점이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고 가끔 그들의 능력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가상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상인들의 모습에 더 집중했다. 당연히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종교의 힘도 막강한데 이 모든 세계관의 실세와도 이질적인 존재인 과거의 신들은 이제 더 이상 현시대의 인간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니, 영향력을 발휘하긴커녕 정말로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그토록 초월적이고 삽시간에 용병단을 가루로 만들 힘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의 문명이란 더 이상 무력의 크기만으로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므로 그들이 인간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려는 건 참 짠했다. 작중에서 불멸자의 불멸의 원리에 대해 명확히 다루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생을 살 수밖에 없고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관찰한 신들이 각자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다니... 이처럼 인간의 문명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대단하고 복잡한 것이구나 싶었다.

 가상의 세계긴 하나 실제 우리네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작품 속에 잘 담아냈기에 그것만으로도 작품을 읽는 가치가 쏠쏠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용 책으로도 준수한 편이고 라이트 노벨의 정체성도 잃지 않았다. 라이트 노벨을 쓰기 위해서 라이트 노벨만 읽겠단 생각은 버리라고 말한 작가답게 실제로 작품을 쓸 때 읽은 책들이 성경, 경제, 중세와 관련된 책들이란다. 서사적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포맷을 유지하고 있어 갈수록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단 느낌이고 실제로 이젠 거의 시들해졌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에피소드는 흥미로웠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단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간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가 벌인 문제들을 잘 수습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에게 욕심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오히려 욕심이 있었기에 잃는 만큼 발전도 가능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단념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언제일까?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과 끝맺음이 돋보이는 결말을 이 작품이 선보였다고 본다. 이 에피소드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의 구성을 생각했을 때 하는 말이다. 왠지 뻔했지만 안정적이었던 결말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서 굳이 후일담이 17권으로 따로 나와야 했을까 싶었는데...

지킬 게 있으면 비극에 휘말리기 쉽다고. - 15권 225p




현명한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는 것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야. 태만해서지. - 16권 147p




호로와 로렌스의 대화를 쓰면서 늘 염두에 둔 것은, 계속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능한가 아닌가였습니다. -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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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주오일여행자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6.9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이 허무한 여행의 끝을 살펴보는 여행 에세이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는 나름 부지런하게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있어 제목만으로 흥미를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 역시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2주를 여행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국하기 전엔 그렇게 한국이 그립고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도 막상 돌아오면 그게 하루를 가질 않는다. 책에서 저자가 '영원히 끝나지 않은 여행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일'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난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게 여행은 힘들고 지루한 일상 속의 나 스스로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보상만 받다 보면 마음이 점점 편치 못하게 되는 법. 그럼에도 귀국하는 날은 역시 허무하고 귀국하고 나면 더 허무한 건 부정할 수 없기에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궁금했다.

 여행 에세이인데 여행의 끝을 얘기한다니,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펼쳐들었든데 생각보다 감흥이 없는 내용이라 놀랐다. 책의 첫 번째 챕터인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한 거 있죠'라는 문장과 밑에 '밑줄긋기'에다 따로 옮겨 적은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너무 감상적이고 했던 말 또 하는 식인 터라 읽히기는 빨리 읽히되 머리에 크게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나는 이런 책을 두고 '볼 수는 있어도 읽히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에 딱 맞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저자가 여행 때 찍은 사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어디의 풍경을 찍은 것인지 몰라도 - 솔직히 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사진은 잘 찍더라.


 여행 이야기, 그것도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걸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을 다른 사랑을 잊으려 한다는 말처럼 결국 여행을 다른 여행으로 잊으려 한다는 건데, 이런 태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걸 책의 마무리가 아닌 책의 중간에 넣었다는 것이다. 엄연히 '여행의 끝'에 대해 말하겠다고 공언했으면서 결국 다른 여행 에세이처럼 여행을 가는 이야기를 쓴다는 게 개인적으로 불만이었다. 결국 무슨 내용이든 잘 쓰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난 이렇게 컨셉을 확실히 지키지 않는다는 게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전에 작가가 여행의 끝에 대해 한다는 얘기가 내 성에 차질 않았기에 드는 불만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면 여행의 끝을 얘기하는 여행 에세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는지 저자는 여행이 끝나서 다시 여행을 추억하는 식으로 글을 전개했다. 나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블로그에 최소한의 기록은 해두니 사람 생각은 다 똑같구나 싶었지만 난 저자가 그 이상을 얘기해주길 바랐다. 대충 짐작하기로 저자는 무슨 돈과 여유와 배짱이 있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2년 가까이 해외를 여행했는데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집에서 눈치가 보이고 한국 사회에 적응이 좀 힘들고 어째 친구들에게서 뒤쳐진 것 같은 느낌 - 어째 그런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뒤쳐졌다. - 이 들었다 하는 얘길 더 했어야 했다. 그걸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고 나서 여행의 후유증을 다른 여행으로 잊는다는 말이 나왔으면 뭔가 울리는 바가 있었을 텐데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전체적으로 가볍고 지극히 개인적인 어투로 적혀있어서 에세이보단 일기를 읽은 느낌밖에 안 들었다.


 에세이 아무나 쓰는 거라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난 그런 말 진짜 싫어한다. 어쨌든 내가 글을 전공했기 때문도 있고 에세이 자체가 아무나 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물론, 그런 말을 하게 만드는 에세이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 싫어한다. 그래서 난 다른 말을 하겠다. 이 책은 그래도 나름 흥미로웠지만, 내 여행을 돌아보는 게 좀 더 낫겠다 싶었다고. 결국 책을 읽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기억이 나는 건 제목인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와 각 챕터의 문장들이라니 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느 날 문득, 아주 먼 자리까지 떠나고 싶을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며 사는 게 우리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별자리를 만들어 보자.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결국 별자리를 완성하기 위한 작은 흔적일 뿐이다. 자리를 옮겨야 비로소 완성되는 별자리처럼, 우리 인생도 점처럼 찍힌 여행의 좌표들을 이어 붙여야 마침내 완성될지도 모르니까.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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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규조 옮김 / 꿈이있는집 / 1991년 10월
평점 :
절판


7.6







 일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보다는 솔직히 이름으로 더 익숙한 작가였다.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작품이라는데 제목도 처음 들어봤다.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집에 엄마가 사놓은 옛날 판본이 있길래 한 번 도전해봤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처음엔 번역이 이상한 걸까 싶었지만 원래 오에 겐자부로의 책이 일본인들도 누구나 한 권씩 집에 놓고는 있지만 정작 완독해본 적은 없다고 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번역본을 읽으면 느낌이 또 다를 순 있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한 번 읽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문장이 잘 안 들어오던 것에 비해 내용은 쉽게 파악이 가능했다. 작가가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는게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프랑스 문학 특유의 남 눈치보지 않는 솔직함이 기분 나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장애아를 마주한 젊은 아빠 '버드'가 - 주인공 이름부터 당혹스러웠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차라리 양반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 현실을 도피하고자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방황하다 결정을 내리는 이야기다. 장애아를 키울 것인지 어차피 가망이 없으니까 안락사를 할 것인지, 최대한 티가 안 나게끔 의사에게 물어보는 도입부부터 이 버드라는 인물의 됨됨이에 구역질이 나 짧은 소설임에도 쉽게 넘어가지 못했다. 난해한 문장은 덤이고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찾아보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 오에 히카리 씨가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라는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니까 작품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발표하기까지 버드에 준하는 방황을 겪었을 게 눈에 선했다. 작가의 <회복하는 가족>이란 책이 아마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물론 <개인적 체험>하곤 결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개인적 체험>은 버드의 마지막 결단을 빼면 대체로 구역질이 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결말이 더 돋보였다. 글쎄, 작품이 통상적인 형태의 인간애를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결말에 상당한 의문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지만 나는 버드의 아들이 장애아로 태어난 게 순전히 버드의 방탕한 삶의 대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버드가 그런 식으로 자책 아닌 자책을 하는 게 작중에 간혹 암시되기도 했다. 물론 아이한텐 죄가 없으므로 저런 해석은 무척이나 가혹하고 무책임한 넘겨짚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노벨문학상이 선호하는 이야기란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알게 모르게 옳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버드의 모습이 비단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 문화권에도 울리는 바가 컸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어쨌든 버드의 내면을 작가가 꽤나 솔직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최대한 나쁜 사람으로 보여지긴 싫고 그렇지만 자신의 본능은 따르고 싶다는 게 심정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냥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장애아를 키우는 건 그 이상의 숭고함이 필요하단 걸 생각하면 버드에게 무조건적인 부성애, 인간애를 바라는 게 더 이기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작품의 결말이 예상 가능했으면서 예측불허였던 것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을 택하든 그건 버드의 자유지만 그 모든 책임과 도덕적 잣대 역시 버드가 감당할 일이다. 버드가 방황하는 과정이 하도 어지러워서 무슨 결말이건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끝내 인간애의 손을 들어주는 게 석연찮으면서도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 오에 히카리 씨가 음악인으로 거듭난 걸 생각하면 더욱 뜻깊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소설로 처음 접해봤다. 국내에 소개된 책이 생각보다 적긴 해도 그래도 주기적으로 개정이 되는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건재한 듯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의 다른 책도 더 읽어봐야겠다. 다른 책들도 <개인적 체험>과 같다면 읽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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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 -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다
김민주 지음 / 영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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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나는 '다크 투어'가,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못된 짓을 한 일본인이 묻힌 신사라든가 아니면 강제 징용당한 시설을 탐방하는 아주 마니악한 종류의 여행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상당히 강렬한 제목이면서 얇지 않은 두께의 이 책을 처음 보고서 '도대체 다크 투어란 게 얼마나 다양하기에' 싶었다. 이 책에서 김민주 저자는 다크 투어의 범위를 모든 역사적 비극이 일어난 장소에 방문하는 것으로 잡았는데 이는 내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거창했다. 흔히 역사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에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말이 그닥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주 다양한 나라의, 또 다양한 종류의 다크 투어를 소개해준다. 우리나라의 다크 투어가 책의 전체 비중에서 1/3 이상을 차지해 더욱 다양한 구성을 원했던 나로선 약간 아쉽긴 했지만, 굳이 외국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충분히 역사적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많다는 걸 깨달아 그것대로 꽤나 흥미로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작가가 정의한 다크 투어라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여행관과 꽤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읽는 내내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그래봤자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하지만, 어쨌든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마다 관련 책들이나 방송을 통해 공부하는데 그게 꼭 역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의 여행관이랑 일맥상통한 데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다크 투어라고 하면 일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간혹 히로시마 원폭 공원이나 야스쿠니 신사처럼 언뜻 봤을 때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장소는 무작정 거르고 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런 곳에서도 배울 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야스쿠니의 경우엔 전범한테 참배만 안 한다면, 히로시마 원폭 공원은 핵폭탄의 위력이 우리 시대에 울리는 경종에 주목한다면 충분히 뜻깊지 않은가 싶어서 말이다. 이는 분명 통상적인 목적의 여행과는, 이를테면 휴양과 힐링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과는 차이가 있지만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움직이는 책이다.' 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저자가 소개하는 다크 투어라는 것도 값진 여행이라 불려도 마땅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역사적 사건과 그와 관련된 명소들 중 원래 관심을 갖고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었고 아예 처음 접하는 것도 있었는데 저자가 종류별로 잘 정리해준 덕분에 앞으로의 여행 버킷 리스트를 보다 명확하게 세울 수 있어 고마웠다. 저자가 분류한 다크 투어의 키워드는 대학살, 암살, 전쟁, 감옥, 묘지, 슬럼, 유배, 표류 등이 있고 이후엔 일본과 러시아, 베트남 등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다크 투어를 소개해 여러모로 유익했다. 내가 국내사에 관심이 덜한 편이라 서울의 다크 투어와 한국의 다크 투어는 그렇게 흥미가 동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꽤나 참고가 될 듯하다. 명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저자가 간결하게 핵심을 잘 짚어내서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읽은 <스칸디나비아 예술사>가 양만 많지 다루고 있는 내용이 잘 전달이 되지 않은 반면 이 책은 정반대였다. 정확히 말하면 양과 질이 모두 알찼다.

 여담이지만 저자 이름만 보면 내 또래의 여성인 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까 적어도 5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편견이면 편견일 수 있지만 연령대가 좀 되는 남성 작가의 글은 되도록 경계를 하며 읽는 편인데 이 책에선 그럴 필요가 딱히 없었다고 본다. 이 정도면 아주 오픈 마인드인 사람이라... 특히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인상을 적는 부분에서마저 공감이 가기도 해 내가 참 편견이 심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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