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규조 옮김 / 꿈이있는집 / 1991년 10월
평점 :
절판


7.6







 일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보다는 솔직히 이름으로 더 익숙한 작가였다.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작품이라는데 제목도 처음 들어봤다.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집에 엄마가 사놓은 옛날 판본이 있길래 한 번 도전해봤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처음엔 번역이 이상한 걸까 싶었지만 원래 오에 겐자부로의 책이 일본인들도 누구나 한 권씩 집에 놓고는 있지만 정작 완독해본 적은 없다고 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번역본을 읽으면 느낌이 또 다를 순 있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한 번 읽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문장이 잘 안 들어오던 것에 비해 내용은 쉽게 파악이 가능했다. 작가가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는게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프랑스 문학 특유의 남 눈치보지 않는 솔직함이 기분 나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장애아를 마주한 젊은 아빠 '버드'가 - 주인공 이름부터 당혹스러웠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차라리 양반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 현실을 도피하고자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방황하다 결정을 내리는 이야기다. 장애아를 키울 것인지 어차피 가망이 없으니까 안락사를 할 것인지, 최대한 티가 안 나게끔 의사에게 물어보는 도입부부터 이 버드라는 인물의 됨됨이에 구역질이 나 짧은 소설임에도 쉽게 넘어가지 못했다. 난해한 문장은 덤이고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찾아보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 오에 히카리 씨가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라는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니까 작품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발표하기까지 버드에 준하는 방황을 겪었을 게 눈에 선했다. 작가의 <회복하는 가족>이란 책이 아마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물론 <개인적 체험>하곤 결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개인적 체험>은 버드의 마지막 결단을 빼면 대체로 구역질이 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결말이 더 돋보였다. 글쎄, 작품이 통상적인 형태의 인간애를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결말에 상당한 의문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지만 나는 버드의 아들이 장애아로 태어난 게 순전히 버드의 방탕한 삶의 대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버드가 그런 식으로 자책 아닌 자책을 하는 게 작중에 간혹 암시되기도 했다. 물론 아이한텐 죄가 없으므로 저런 해석은 무척이나 가혹하고 무책임한 넘겨짚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노벨문학상이 선호하는 이야기란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알게 모르게 옳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버드의 모습이 비단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 문화권에도 울리는 바가 컸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어쨌든 버드의 내면을 작가가 꽤나 솔직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최대한 나쁜 사람으로 보여지긴 싫고 그렇지만 자신의 본능은 따르고 싶다는 게 심정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냥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장애아를 키우는 건 그 이상의 숭고함이 필요하단 걸 생각하면 버드에게 무조건적인 부성애, 인간애를 바라는 게 더 이기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작품의 결말이 예상 가능했으면서 예측불허였던 것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을 택하든 그건 버드의 자유지만 그 모든 책임과 도덕적 잣대 역시 버드가 감당할 일이다. 버드가 방황하는 과정이 하도 어지러워서 무슨 결말이건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끝내 인간애의 손을 들어주는 게 석연찮으면서도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 오에 히카리 씨가 음악인으로 거듭난 걸 생각하면 더욱 뜻깊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소설로 처음 접해봤다. 국내에 소개된 책이 생각보다 적긴 해도 그래도 주기적으로 개정이 되는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건재한 듯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의 다른 책도 더 읽어봐야겠다. 다른 책들도 <개인적 체험>과 같다면 읽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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