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6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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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사실상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라 봐도 무방한 이야기. 그답게 두 권으로 분권됐고 간만에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였다. 작중의 시장 경제 돌아가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 화폐를 둘러싼 상인들의 전쟁, 이른바 '상전'이란 것이 실감나게 묘사돼 정확하게 파악은 안 가도 확실히 읽는 맛이 있었다. 이 책은 다음 권 17권을 마지막으로 '일단은' 완결이 난다. 왜 일단이라고 하는지는 다음 포스팅 때 얘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시리즈는 늦어도 12권 정도에서 완결이 났어야 했다. 단편집을 줄이고 누가 봐도 우회하는 전개의 장편도 내가 봤을 땐 덜어냈어야 했다. 그래도 끝에 가서 체면치레는 해서 망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추억에 X칠을 할 뻔했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두고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왔다는데, 시리즈의 두 주인공인 호로와 로렌스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멸자와 필멸자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만 살아남고 다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별은 최대한 늦추는 것말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래서 미리 헤어지든가, 그렇지 않든가 하는 방황이 지난 2~3권 동안 호로와 로렌스 사이에서 많이 오갔는데 둘은 감정을 확실히 정한 듯 이번 권에서는 거의 대놓고 깨를 쏟아낸다. 1, 2권에서부터 이어졌던 선을 넘지 않아도 꽁냥꽁냥했던 분위기가 정말 어렴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덕분에 클라이맥스 부분도 꽤나 극적으로 다가왔는데 이 순간이 오래도 걸린 만큼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최대 매력은 바로 검과 마법이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란 점이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고 가끔 그들의 능력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가상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상인들의 모습에 더 집중했다. 당연히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종교의 힘도 막강한데 이 모든 세계관의 실세와도 이질적인 존재인 과거의 신들은 이제 더 이상 현시대의 인간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니, 영향력을 발휘하긴커녕 정말로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그토록 초월적이고 삽시간에 용병단을 가루로 만들 힘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의 문명이란 더 이상 무력의 크기만으로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므로 그들이 인간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려는 건 참 짠했다. 작중에서 불멸자의 불멸의 원리에 대해 명확히 다루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생을 살 수밖에 없고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관찰한 신들이 각자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다니... 이처럼 인간의 문명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대단하고 복잡한 것이구나 싶었다.

 가상의 세계긴 하나 실제 우리네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작품 속에 잘 담아냈기에 그것만으로도 작품을 읽는 가치가 쏠쏠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용 책으로도 준수한 편이고 라이트 노벨의 정체성도 잃지 않았다. 라이트 노벨을 쓰기 위해서 라이트 노벨만 읽겠단 생각은 버리라고 말한 작가답게 실제로 작품을 쓸 때 읽은 책들이 성경, 경제, 중세와 관련된 책들이란다. 서사적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포맷을 유지하고 있어 갈수록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단 느낌이고 실제로 이젠 거의 시들해졌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에피소드는 흥미로웠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단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간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가 벌인 문제들을 잘 수습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에게 욕심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오히려 욕심이 있었기에 잃는 만큼 발전도 가능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단념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언제일까?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과 끝맺음이 돋보이는 결말을 이 작품이 선보였다고 본다. 이 에피소드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의 구성을 생각했을 때 하는 말이다. 왠지 뻔했지만 안정적이었던 결말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서 굳이 후일담이 17권으로 따로 나와야 했을까 싶었는데...

지킬 게 있으면 비극에 휘말리기 쉽다고. - 15권 225p




현명한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는 것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야. 태만해서지. - 16권 147p




호로와 로렌스의 대화를 쓰면서 늘 염두에 둔 것은, 계속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능한가 아닌가였습니다. -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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