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에서 일주일을 - 시속 20킬로미터의 창조도시
박현아 지음 / 가쎄(GASSE)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8.4







 가나자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간 가보고 싶은 일본 소도시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간 개성이 뚜렷한 일본에서도 '창조도시'라고 불리는 가나자와는 흔히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등 제법 전통을 잘 보존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실체가 궁금해 직접 가나자와를 답사하게 된다. 작지만 강하다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한 이 도시가 이런 평가를 듣는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던 걸까?

  고작 일주일간의 시간만으론 가나자와가 이룩한 가치를 살펴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실제로 저자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섭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인상을 받았다. 공예 도시, 예술 도시라는 키워드에 대해선 역시 전공을 한 사람답게 전문적으로 사유할 줄 알고 또 틈을 주지 않고 이어나가는 인용들도 흥미로웠지만 책의 발간 시기가 2014년이라 그런지 내용들이 썩 신선하진 않았다. 뭐, <진격의 거인>을 언급한 건 괜찮았고 또 DDP가 막 건설될 즈음에 집필돼서 아직 그 디자인의 의의를 추측하는 부분에서의 통찰력은 인정할 만했지만. 하긴, 2014년에 나온 책을 그 당시에 읽었더라면 이런 불평은 생길 수조차 없었을 테니 작가로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읽어서 나도 한 번 가나자와에 다녀오기라도 할 걸 그랬다.


 내가 일본 여행을 10번을 넘게 다녀왔기 때문일까, 작가의 사유가 수준급이긴 해도 솔직히 가나자와는 아니더라도 일본 소도시를 몇 군데 돌아다녀본 나도 한번쯤 생각해본 것들이라 유달리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생각은 그래봤자 추측의 영역이고 저자는 그보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크나큰 차이가 있지만...

 가나자와가 고베, 나고야와 함께 창조도시로 선정됐다는데 다른 두 도시에 비해 가나자와는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아무래도 체급이 떨어지는 도시다. 이 책은 가나자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데 내 기준에선 가나자와가 일본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가졌다는 게 그다지 어필되지 않았다. 저자가 나고야와 고베까지 가본 다음에 이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몰라도 이 책을 쓸 당시엔 일본의 도시를 도쿄와 삿포로, 교토 같은 대도시였다니 가나자와 같은 소도시를 방문한 게 퍽 신선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저자가 가나자와에서 주목했던 전통이란 키워드가 굳이 아니더라도 나가사키라든지 하코다테나 마츠야마처럼 개성적으로 관광 요소를 어필하는 중소도시를 가봤던 내게 있어선 가나자와가 창조도시로 선정돼야 했던 이유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가나자와는 가보고 싶은 도시지만... 저자 역시 일주일간의 기간만으로 가나자와에 대해 말하기엔 역부족임을 자각하고 있고 독자인 나도 어느 정도는 저자의 상상을 근거로 뭉뚱그려 글을 채워나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예술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저자의 통찰은 지금 봐도 나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DDP가 이 대목에서 인용됐는데 2020년 현재 DDP가 동대문을 넘어 한국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뛰어난 선견지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전통을 지키는 것에 주력하는 게 아니라 현대의 기술과 개성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것들과 호흡해나간다는 맥락은 시간이 더 흘러도 유용할 얘기리라. 내가 가나자와를 방문해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 있는 21세기 미술관이 궁금하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옛것에 함몰돼 혁신을 두려워하는 도시는 장기적으로 큰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거지만 언제 다시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외국을 배경으로 한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앞에서 식상하다느니 어떻다느니 실컷 얘기했지만, 요즘 '외국에선 배울 게 없고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극단적 인식이 호응을 얻는 게 내심 불안하던 중에 이렇게 외국에서 배움을 얻는 내용의 책은 참 반갑게 읽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세계가 단절됐지만, 세계는 연결된 유연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지리적 국경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 국경까지 세우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읽은 건데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 참,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이런 세상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손쉽고 편리한 단절과 구분의 유혹을 뿌리치고 세계를 연결된 유연한 것으로 보는 일은 도전정신을 요한다. - 22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 외 지음 / 돌베개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5







 정작 SF 소설은 많이 읽지 않으면서 이렇게 SF를 소개하는 책은 많이 읽는 것 같다. 아직도 SF가 내게 낯설기 때문일까? 이 책에는 제목대로 SF계의 거장과 그들이 쓴 걸작을 소개했던 신문 사설들이 수록됐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부터 류츠신의 <삼체>까지 살펴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거나 혹은 시대에 영향을 끼친 SF 작품들을 다뤘는데 워낙에 저자들이 간결하면서 맛깔나게 소개해 기회가 닿는다면 언급된 책 전부를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막상 읽으면 내 취향 아닐 작품도 꽤 될 텐데. 어쩌면 SF 소개하는 책을 이래서 읽는 게 아닌가 싶었다.

 메리 셀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이란 캐릭터가 2차 창작을 거치면서 그 존재 의의가 어떻게 오인됐는지에 대해서 얘기한 첫 번째 장부터 몰입도가 높았다. 종이 질감이라든지 첨부된 사진의 퀄리티라든지 저자들 일러스트 등 전반적으로 책의 만듦새가 좋고 SF 전문가인 저자들의 글솜씨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3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박상준 씨는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SF에 관한 강의를 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분의 SF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는 SF의 매력을 어필하는 솜씨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이 정도로 애정을 담아 설명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접한 건지, 또 얼마나 많이 사유를 했을지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 한 분야에 미칠 수 있을까 싶어 일종의 자괴감도 든다. 나도 이렇게 박학다식하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나 소개된 작가들이나 다 좋아서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겠지.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처음엔 SF 소설가만 소개하는가 했더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나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스탠 리 등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SF 소설가로 분류되지 않는 조지 오웰 같은 작가도 <1984> 같은 작품을 들며 SF적 맥락 안에서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SF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동떨어진 장르가 아님을 이해시켜준다.

 이름과 작품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오래 전 작품이라 손길이 안 가는 독자들의 심리를 저자들도 아는지 왜 이 작품이 걸작이고 그를 쓴 저자가 거장인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했다. 원체 'SF 입문용' 책을 많이 읽어서 이번에도 같은 표현을 쓰기 좀 그렇지만;; 이 책이야말로 SF에 입문할 때 이정표로 삼을 만한 책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슷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젠 진짜로 그 작품들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므로 인상 깊던 부분을 꼽자면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으니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기억나는 것만 간략히 적어보겠다.


 이질적인 존재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작가가 썼고 너무 시대를 앞섰기에 저평가당했다는 게 해석이 갔다. 후대에 와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외형에만 주목해 괴물 이야기로만 소비했지, 그 캐릭터의 본질은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인데 저자인 메리 셀리가 여성이란 이유로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최초의 SF로 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개인적으로 로봇이 나오는 SF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에 소개된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도 흥미로웠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리메이크한 <플루토>로 짧게나마 접한 <아톰>의 세계관이 그렇게 방대하고 심오한지는 알지 못했다. 아울러 일본이 그 작품에 받은 영향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나라가 로봇을 만들 때 외형을 귀엽게 만드는 이유는 인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봇이 인간에게 파괴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란 게 충격이었다. 로봇의 권리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인 듯한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은 반드시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거렛 애트우드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페미니즘 요소 짙게 녹아든 작품도 궁금했다. <시녀 이야기>는 대개의 걸작 SF 작품들이 그렇듯 지금도 시의성이 있는 작품이고 최근에 30년만에 후속작도 나왔다는데 작품을 쓸 때 '역사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쓰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끌려 작품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거친 남자 스터일의 문체와 작풍을 구사하는데 저자가 실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문단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체체파리의 비법>이란 소설의 내용을 보니까 대단한 블랙 유머와 극한의 설정으로 당대 현실의 부조리를 제대로 꼬집어서 읽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작가가 남자 이름으로 활동한 것부터가 참 씁쓸한 부분이 아닌가...


 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김보영 작가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뿐만이 아닌 모든 SF 작품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SF는 황당무계하단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경시되곤 하는 장르다. 하지만 SF는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황당무계함을 통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보더 덜 황당무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장르가 아니냐는 게 내가 이 책을 읽고서 품은 생각이다. 사고의 경계를 허물게 만든다는 점에서 SF만큼 의미있는 장르도 없는 것 같다.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책에서 저자들 소개한 작품을 진정으로 읽고 싶어졌다. 만약 그 책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 저자들이 써놓은 감상과 내 감상을 비교해볼지 모르겠군. 그것도 재밌겠다.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면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우선 우리가 "윤리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 81p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 27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ㅣ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9.6








 오늘 핀에어에서 환불 신청했던 비행기 요금이 드디어 통장으로 들어왔다. 항공사가 많이 적자에 시달린다기에 더 걸릴 거라 여겼지만 암튼 3월에 계획했던 여행 취소는 이렇게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코로나가 유행하지 않아서 계획대로 갔더라면 그게 가장 좋았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앞으로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또 해외 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차이로 10만 원을 아끼고 말고에 울고 웃었던 나날은 사실상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여행에 대한 갈증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 중에 읽은 이 책은 잠시나마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줬다.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을 꿈꿨던 사람이나 해외 자전거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여행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전거도 못 타고 그림도 못 그려서 그런지 이 작가가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그림체로 자신의 지난 자전거 여행을 그려낸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옛날부터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작가 정도면 가히 축복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그림으로 여행을 추억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와 함께한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과 제주도 여행, 오키나와 여행까지 담아낸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여행 코스가 지극히 작가 취향을 따르지만 작풍이 워낙 유쾌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옛날에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었을 때도 느낀 건데 만화가인 작가답게 미술관이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단조롭거나 난해할 수 있을 여행 코스를 작가의 꼼꼼한 그림체 덕에 독자인 나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중엔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도 있었는데 작가의 기억력이 상당한지 아무런 어색함 없이 화폭에 재현됐다.

 자신의 경험을 흥미롭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없었던 일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어찌 됐든 남의 이목을 끌며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은 예술가에게 있어 단연 필수불가결한 재능일 터다. 이번에 읽은 <드로잉 자전거 여행>에는 원체 내 취향과도 맞는 요소가 많아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긴 좀 힘들지만, 이 정도면 네덜란드나 자전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끔 만들 만한 책이리라 본다. 자전거의 매력이라든가 여행의 재미를 꽤 실감나고 소모적이지 않게 잘 전달했기 때문인데, 나도 약소하게나마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 다시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여행 만화를 즐기는 한편으로 반성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너무 의무적으로, 억지로 짜내듯 쓴 건 아니었나 싶어서...


 상관없는 얘길 수 있지만 여행에 관한 얘길 잠깐 하고자 한다. 요새 안 그런 나라가 없지만, 코로나로 인해 유럽에 미친 파장은 정말 난리도 아니다. 낙관적인 애기일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코로나는 결국 극복이 될 듯한데, 반대로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비관하게 된다. 나라끼리 고립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은데, 오늘만 해도 베를린 지하철에서 우리나라 유학생 부부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뉴스도 나오는 등 도저히 어떻게 봐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여행 만화를 읽는 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최근 나는 유럽에 동경을 품었던 시절이 기억도 안 날 만큼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만화책으로라도 유럽 여행기를 통해 힐링을 하면서도 뉴스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개해버린다. 최근엔 이 책에서 나오는 네덜란드가 스웨덴에 이어 집단면역을 선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 스웨덴은 넓기라도 하지 네덜란드는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체 뭔;; - 진정으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됐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인 나라는 실질적으로 한 곳도 없지 않나 싶었다. 지금 유럽이 방역에 관해 굉장히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쌓은 인문학적 토대 전부를 하루아침에 무가치하다고 깎아내리는 건 너무 극단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고 - 이 만화로 말할 것 같으면 자전거에 관한 네덜란드의 인프라나 폐허가 된 도시를 어떻게 재건시키는가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으니 무조건적인 동경과 비판을 어느 나라에건, 또 어느 누구에게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2달 전이었더라면 여행 만화를 보고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확실히 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9.6







 3부작의 1편은 가히 역작이었던 반면에 바로 다음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의 완성도는 좀 미묘했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인 <에이전트 6>가 그렇게 기대되진 않았는데, 다행히도 3편은 시리즈를 완결하는 이야기로서 손색이 없었다. 레오와 라이사가 서로 이름도 몰랐던 시절을 그린 프롤로그부터 작가의 장기인 밀도 높은 소련 묘사가 돋보여 향후 작품의 완성도가 걱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직전에 읽은 <모스크바의 신사>와는 상반된, 그야말로 소련 시절의 냉혹함을 다룸과 동시에 냉전 시대가 낳은 비극의 양상에까지 묘사를 확장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까지 읽고나니 소련도 소련이지만 그와 대치하던 미국이라고 하등 나을 게 없었단 생각이 들지 않던가. 작가의 비판의식이 소련이란 무대를 넘어선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이념 싸움에 희생된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은 1편 이상으로 심금을 울렸으므로.

 중반부까지는 느릿하지만 긴장감 있게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믿을 수 없는 장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연출하는 방식이 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논란이 된 어떤 장면과 흡사했는데, 무척 중요한 장면을 무심히 지나가듯 묘사해 이게 진짜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애통하게도 그 전개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고 레오는 이후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가족을 파멸로 이끈 사건의 현장인 미국으로 가야 했는데 당시 미국은 소련의 주적이라 당연히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레오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생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실로 눈물겨웠다. 내가 이 작품을 올해 초에 읽었더라도 공감이 덜 됐을 텐데, 이념이나 여러 정치적 문제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출입국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 결은 다르지만 그래도 남일 같지 않았다. 문제는 레오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 한 번 벗었던 비밀 경찰의 옷을 다시 입어 국가에 충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프간에서 그들의 혁명과 전쟁을 지원하는 일을 반강제적으로 맡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여차저차해서 미국으로 가지만 이 과정은 무척 고단했다. 레오는 말할 것도 없고 읽는 나한테도 고단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돌아가서 적응도 안 됐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집중엔 환기가 되지만 그럼에도 한시라도 빨리 미국으로 가도 부족할 판에 이게 뭐하는 삽질인가 싶어 몰입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프간에서의 전개가 생각보다 길어 솔직히 말해 대충 읽고 넘어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무대가 실제 역사적 흐름에 작가가 픽션을 섞은 결과물임을 깨닫고 나중에라도 전율을 느끼게 됐다. 이런 요소가 있으니 소설의 내용이 마냥 허구로 느껴지지 않고 리얼하게 다가왔던 것이리라. 그렇다 해도 설마 아프간 전쟁을 이런 식으로 풀어내다니, 참 대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돈만 있다면 외국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또 그때나 지금이나 국경을 넘지 못해 피범벅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으로 무겁게 읽혔다. 그리고 레오가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사건의 진실도 정말 구역질이 치밀어 내 입에서 신물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그간 비판의 대상이었던 소련뿐 아니라 주적인 미국도 소련 못지않은 음모로 가득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정말 그놈의 사상 싸움이 뭐라고 목적을 위해 사람 목숨 벌레로 여기는 국가 소속 요원들의 가치관은 제아무리 허구라도 기가 찼다.


 <에이전트 6>의 근간에는 사랑이 있는데 이때 사랑은 이성에게 품는 사랑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품는 사랑과 더불어 인류애적 사랑도 모두 해당된다. 이런 사랑들은 통제될 수도 없고 꾸며낼 수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감정인데 이는 1편인 <차일드 44>에서부터 제기된 레오의 자기속죄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한때 그 누구보다 국가에 충성을 다했던 레오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잃는 데에 적잖이 일조했는데 당장 이번 작품의 프롤로그에서도 레오가 홧김에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던 전적이 밝혀진다. 그렇게 보면 레오가 지금에 와서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게 역겹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가 사랑이란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변해가는 모습이 일찍부터 묘사돼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2편에선 그의 죄의식이 맹목적이라 잘 와 닿진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선 1편부터 고난을 함께한 아내를 향한 사랑이나 약속이 그려져 몰입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특히 1편부터 읽었다면 후반부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악마나 다름없던 그의 행보를 익히 알고도 그가 겪은 비극에 이토록 눈물이 나오다니, 세 번의 이야기에 걸쳐 고난이 끊이지 않은 레오가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 지켜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누군가 레오에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믿느냐고 묻는데 넓게 보면 이 '차일드 44' 3부작이 바로 그 질문을 소련과 주인공 레오에게 묻고자 작가가 집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편의 작품을 통해 소련이란 낯선 무대를 독보적 필력으로 묘사한 작가 덕분에 나의 관심사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진 듯하다. 소련이나 러시아나 몇 편의 소설과 영화로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앞으론 그 나라의 역사가 아주 생소하게 다가오진 않게 됐다. 현실감 없이 넓은 땅덩어리며 참혹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며 실상 모든 나라들이 어두운 역사를 통해서 티가 나지 않게라도 변해간다는 것 등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이 3부작은 내게 단순히 스릴러를 넘어 낯선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길라잡이였다. 쉽게 의지하기엔 작품들이 전부 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지 않은 편이었지만 러시아의 문화적 입지가 국내에서 꽤 옅다는 걸 생각하면 이만한 완성도의 소설이 있다는 건 꽤 환영해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완결까지 봤으니 이제 영화로 나온 <차일드 44>를 볼 차례인 것 같은데 평가가 안 좋아서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듣자하니 다들 영어로 대화한다는데 그게 제일 거부감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흥행에도 실패해 후속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2편은 몰라도 3편은 영화화하기기에 좋은 격정적인 장면이 많아서 이 작품까지 영화화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못내 아쉽다. 1편이 왜 그렇게 평이 안 좋은지 불안하지만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당신에겐 사랑하는 사람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오하는 사람들도 중요한 거죠. - 51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5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은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추천을 받았던 책이라 내심 궁금했는데 누군가의 호의 덕에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됐다. 그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이야길 접하는 순간에 부적절한 경우란 없고 오히려 모든 순간이 시의적절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에 본 영화 <쇼생크 탈출>과 요즘 시국이 겹쳐 보여서 대단히 남다르게 읽혔다. 러시아 버전 <쇼생크 탈출>이라 봐도 좋을 만큼 - 묘하게 <피아니스트의 전설>도 연상되지만 그 작품과는 결이 살짝 다르다. - 인간의 자유 의지에 보답하는 듯한 쾌감 어린 결말,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상황에 꽤 본받을 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히.

 이 이야기는 1922년, 로스토프 백작이 '구시대의 유물'을 용서치 않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무기한 연금형에 처해지면서 시작된다. 상당한 두께의 작품으로 개인적인 얘길 하자면 만약 이 백작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가독성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20세기 이전의 러시아 문화라든가, 신사에게 요구되는 전반적인 교양 등에 내성이 없다 보니 700쪽이 넘는 그 긴 분량 내내 흥미를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최근에 접한 <더블 스타>와 <양들의 침묵>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아도 주인공이 매력적이라면 소화 못할 작품은 없다는 걸 <모스크바의 신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범죄자의 유형은 천차만별이지만 정치범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방에 갇혀도 다른 범죄자보다 제정신을 잘 유지한다고들 한다. 육신의 자유가 제한돼도 정신적 수련이 뒷받침되면 나름대로의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인 걸까? 그러고 보면 위에서 언급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앤디가 독방에 2주나 갇히고도 머릿속에 음악 선율이 있어 그 안에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반쯤은 허세겠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도 군대에서도 취미 생활이 많은 유형의 사람일수록 '시간이 안 간다'는 소릴 입에 담는 법이 없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역할 때까지 지루함의 나날을 보냈다.

 군생활은 21개월로 끝나고 - 요샌 더 짧아졌다지만 -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19년을 쇼생크에서 갇혀 있었다. 뭐, 그 감옥엔 3~40년을 갇힌 죄수들도 있는데 <모스크바의 신사>의 로스토프도 그들에 비견할 만했다. 연금형에 처한 백작은 이제 이전과 같은 법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됐으나 내면의 풍부한 지성과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적 명성까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메트로폴 호텔은 실제로 모스크바에 있는 호텔로 그 유명한 크렘린 궁전과 볼쇼이 극장이 지근거리에 있는 그야말로 러시아 심장부에 자릴 잡은 호텔이다. 처음에 백작은 연금형에 따라 기존에 머물던 스위트룸에서도 쫓겨나지만 그의 품격에 반한 호텔 직원이나 그의 명성을 알아본 투숙객과의 인연 덕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급 호텔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인사로서 활약하게 된다.


 작중 시대상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소련인데 이 시기는 '차일드 44' 3부작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의 칼바람이 불던 - 혁명의 성공을 증명한답시고 자국민이고 뭐고 다 감시하고 여차하면 죄다 쓸어버렸던 - 바로 그 시기에 해당한다. 전개에 따라 이 호텔에도 시대의 그늘이 드리우는데, 그래도 소련이 귀빈을 대접하기 위한 이미지 관리용 호텔이라 그런지 '구시대의 유물'인 로스토프가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기엔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중간에 충격적인 일들도 있었고 실의에 빠진 백작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으나 몇몇 사람들과 상황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답도 없어 보이는 호텔에서의 나날을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이후엔 새로운 손님과의 중요한 인연, 그리고 중립 지대처럼 소련 사회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절묘하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덕에 가끔은 백작의 처지가 벌인지 횡재인지 헷갈릴 정도로 로스토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곧잘 지켜나가곤 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탈출을 결심하게끔 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백작의 내면 세계의 풍부함 덕인지 실제로 이야기의 배경이 백작의 처지처럼 호텔을 벗어나지 않음에도 독자로서 특별히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읽히지가 않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육신의 자유를 넘나들기도 한다더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부당하게 갇혀 지낸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고작 사회적 거리두기도 버거워 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즘에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는 척만 하지 실질적으로 외출 횟수는 줄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마스크를 비롯해 위생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만, 로스토프의 처지를 떠올리면 외출 없이도 충분히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함에도 그를 노력하기라도 했는지 싶어 저도 모르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로스토프의 처지와 지금 시국을 무작정 동일시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으나 '모스크바의 신사'로서 내적 깊이의 중요함을 역설한 로스토프의 모습에서 배울 점은 많다고 본다. 딱히 요즘 시국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전까진 신사라든가 양반이 갖추는 교양의 요소들을 은근히 폄훼하곤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선 때론 당장에 삶의 기본적인 욕구와 직결되지 않아 보여도 문학, 미식, 음악 등을 아우르는 예술적 소양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걸 곱씹게 됐다. 분량이 방대한 덕인 걸까. 어떤 작품의 주제의식은 가끔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긴 분량에 걸쳐 주제의식을 전개하다 보니 주입이 아닌 내 안에 착실히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방대한 분량의 순기능을 하나 깨닫게 됐다.

 분량에 대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야기를 펼쳐나감에 있어 적절하기만 하다면 그 분량에 짧고 길다는 잣대는 무의미한 듯하다. 1,000쪽이 넘어도 이야길 하다 만 것 같으면 짧은 것이고 20쪽에 못 미쳐도 지루하면 그 이야기는 분량이 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스크바의 신사>의 분량은 적절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오히려 그 방대하면서 장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나중에 다시 정독하리라고 기약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작품을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새롭고 의미있고 시의적절하게 읽히리란 생각에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


 이 작품을 다 읽고서 바로 책장에 있던 '차일드 44' 3부작 마지막 작품 <에이전트 6>를 꺼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스크바의 신사> 마지막 장면의 시기와 그 작품의 도입부의 시기가 거의 비슷했다. 이렇게 연속으로 같은 시대 배경의 작품을 접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 로스토프와 레오가 작중에서 묘사만 안 됐다 뿐이지 한 번 정도는 마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돼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 다 저자가 러시아인이 아닌 영미권 작가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고증도 충족시키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운데, 한편으론 소련을 배경으로 둔 현대의 러시아 소설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견문이 좁아 아직 접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러시아 문학이 소련을 기준으로 씨가 말라 아직 그런 소설이 안 나온 건지...

 작중 로스토프의 교양 수준에서 엿볼 수 있듯 예전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문호가 러시아에도 많았는데 현재 러시아는 소설이고 영화고 예술 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괜한 오지랖 같긴 해도 러시아 문화에 무지한 나도 바로 떠오르는 현대 러시아 소설이나 영화가 딱히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소련이 끼친 영향이 크긴 큰가 보다. 이 영향력은 정말 무지막지한데, 나 역시 미국 작가가 쓴 이 러시아 배경의 이 소설이 괜히 힘들게 읽히진 않을지 걱정했을 정도였으니 정말 말 다했다. 결과적으론 기존 러시아 배경의 이야기가 주는 편견을 배신하는 밝고 보편적인 이야기였는데,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분들에겐 일단은 부담없이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대로 원래부터 러시아에 관심이 많았다면 러시아 고전 문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독성과 낮은 진입 장벽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지 마시길. 아, 어쩌면 선입견을 갖고 접근해야 더 반전 매력이 크게 느껴질는지 모르겠군.



 p.s 이 작품이 케네스 브래너 제작, 주연인 TV 드라마화 예정이라던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명색이 러시아가 배경인데 배우들이 전부 영어를 쓰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갑자기 배경을 영국이나 미국으로 각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자막 읽기 싫어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진짜 걱정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609p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 71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