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에서 일주일을 - 시속 20킬로미터의 창조도시
박현아 지음 / 가쎄(GASSE)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8.4







 가나자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간 가보고 싶은 일본 소도시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간 개성이 뚜렷한 일본에서도 '창조도시'라고 불리는 가나자와는 흔히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등 제법 전통을 잘 보존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실체가 궁금해 직접 가나자와를 답사하게 된다. 작지만 강하다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한 이 도시가 이런 평가를 듣는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던 걸까?

  고작 일주일간의 시간만으론 가나자와가 이룩한 가치를 살펴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실제로 저자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섭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인상을 받았다. 공예 도시, 예술 도시라는 키워드에 대해선 역시 전공을 한 사람답게 전문적으로 사유할 줄 알고 또 틈을 주지 않고 이어나가는 인용들도 흥미로웠지만 책의 발간 시기가 2014년이라 그런지 내용들이 썩 신선하진 않았다. 뭐, <진격의 거인>을 언급한 건 괜찮았고 또 DDP가 막 건설될 즈음에 집필돼서 아직 그 디자인의 의의를 추측하는 부분에서의 통찰력은 인정할 만했지만. 하긴, 2014년에 나온 책을 그 당시에 읽었더라면 이런 불평은 생길 수조차 없었을 테니 작가로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읽어서 나도 한 번 가나자와에 다녀오기라도 할 걸 그랬다.


 내가 일본 여행을 10번을 넘게 다녀왔기 때문일까, 작가의 사유가 수준급이긴 해도 솔직히 가나자와는 아니더라도 일본 소도시를 몇 군데 돌아다녀본 나도 한번쯤 생각해본 것들이라 유달리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생각은 그래봤자 추측의 영역이고 저자는 그보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크나큰 차이가 있지만...

 가나자와가 고베, 나고야와 함께 창조도시로 선정됐다는데 다른 두 도시에 비해 가나자와는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아무래도 체급이 떨어지는 도시다. 이 책은 가나자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데 내 기준에선 가나자와가 일본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가졌다는 게 그다지 어필되지 않았다. 저자가 나고야와 고베까지 가본 다음에 이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몰라도 이 책을 쓸 당시엔 일본의 도시를 도쿄와 삿포로, 교토 같은 대도시였다니 가나자와 같은 소도시를 방문한 게 퍽 신선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저자가 가나자와에서 주목했던 전통이란 키워드가 굳이 아니더라도 나가사키라든지 하코다테나 마츠야마처럼 개성적으로 관광 요소를 어필하는 중소도시를 가봤던 내게 있어선 가나자와가 창조도시로 선정돼야 했던 이유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가나자와는 가보고 싶은 도시지만... 저자 역시 일주일간의 기간만으로 가나자와에 대해 말하기엔 역부족임을 자각하고 있고 독자인 나도 어느 정도는 저자의 상상을 근거로 뭉뚱그려 글을 채워나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예술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저자의 통찰은 지금 봐도 나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DDP가 이 대목에서 인용됐는데 2020년 현재 DDP가 동대문을 넘어 한국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뛰어난 선견지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전통을 지키는 것에 주력하는 게 아니라 현대의 기술과 개성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것들과 호흡해나간다는 맥락은 시간이 더 흘러도 유용할 얘기리라. 내가 가나자와를 방문해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 있는 21세기 미술관이 궁금하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옛것에 함몰돼 혁신을 두려워하는 도시는 장기적으로 큰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거지만 언제 다시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외국을 배경으로 한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앞에서 식상하다느니 어떻다느니 실컷 얘기했지만, 요즘 '외국에선 배울 게 없고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극단적 인식이 호응을 얻는 게 내심 불안하던 중에 이렇게 외국에서 배움을 얻는 내용의 책은 참 반갑게 읽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세계가 단절됐지만, 세계는 연결된 유연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지리적 국경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 국경까지 세우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읽은 건데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 참,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이런 세상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손쉽고 편리한 단절과 구분의 유혹을 뿌리치고 세계를 연결된 유연한 것으로 보는 일은 도전정신을 요한다. -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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