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9.6








 오늘 핀에어에서 환불 신청했던 비행기 요금이 드디어 통장으로 들어왔다. 항공사가 많이 적자에 시달린다기에 더 걸릴 거라 여겼지만 암튼 3월에 계획했던 여행 취소는 이렇게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코로나가 유행하지 않아서 계획대로 갔더라면 그게 가장 좋았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앞으로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또 해외 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차이로 10만 원을 아끼고 말고에 울고 웃었던 나날은 사실상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여행에 대한 갈증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 중에 읽은 이 책은 잠시나마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줬다.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을 꿈꿨던 사람이나 해외 자전거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여행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전거도 못 타고 그림도 못 그려서 그런지 이 작가가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그림체로 자신의 지난 자전거 여행을 그려낸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옛날부터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작가 정도면 가히 축복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그림으로 여행을 추억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와 함께한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과 제주도 여행, 오키나와 여행까지 담아낸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여행 코스가 지극히 작가 취향을 따르지만 작풍이 워낙 유쾌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옛날에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었을 때도 느낀 건데 만화가인 작가답게 미술관이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단조롭거나 난해할 수 있을 여행 코스를 작가의 꼼꼼한 그림체 덕에 독자인 나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중엔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도 있었는데 작가의 기억력이 상당한지 아무런 어색함 없이 화폭에 재현됐다.

 자신의 경험을 흥미롭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없었던 일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어찌 됐든 남의 이목을 끌며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은 예술가에게 있어 단연 필수불가결한 재능일 터다. 이번에 읽은 <드로잉 자전거 여행>에는 원체 내 취향과도 맞는 요소가 많아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긴 좀 힘들지만, 이 정도면 네덜란드나 자전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끔 만들 만한 책이리라 본다. 자전거의 매력이라든가 여행의 재미를 꽤 실감나고 소모적이지 않게 잘 전달했기 때문인데, 나도 약소하게나마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 다시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여행 만화를 즐기는 한편으로 반성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너무 의무적으로, 억지로 짜내듯 쓴 건 아니었나 싶어서...


 상관없는 얘길 수 있지만 여행에 관한 얘길 잠깐 하고자 한다. 요새 안 그런 나라가 없지만, 코로나로 인해 유럽에 미친 파장은 정말 난리도 아니다. 낙관적인 애기일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코로나는 결국 극복이 될 듯한데, 반대로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비관하게 된다. 나라끼리 고립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은데, 오늘만 해도 베를린 지하철에서 우리나라 유학생 부부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뉴스도 나오는 등 도저히 어떻게 봐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여행 만화를 읽는 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최근 나는 유럽에 동경을 품었던 시절이 기억도 안 날 만큼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만화책으로라도 유럽 여행기를 통해 힐링을 하면서도 뉴스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개해버린다. 최근엔 이 책에서 나오는 네덜란드가 스웨덴에 이어 집단면역을 선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 스웨덴은 넓기라도 하지 네덜란드는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체 뭔;; - 진정으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됐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인 나라는 실질적으로 한 곳도 없지 않나 싶었다. 지금 유럽이 방역에 관해 굉장히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쌓은 인문학적 토대 전부를 하루아침에 무가치하다고 깎아내리는 건 너무 극단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고 - 이 만화로 말할 것 같으면 자전거에 관한 네덜란드의 인프라나 폐허가 된 도시를 어떻게 재건시키는가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으니 무조건적인 동경과 비판을 어느 나라에건, 또 어느 누구에게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2달 전이었더라면 여행 만화를 보고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확실히 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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