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 외 지음 / 돌베개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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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정작 SF 소설은 많이 읽지 않으면서 이렇게 SF를 소개하는 책은 많이 읽는 것 같다. 아직도 SF가 내게 낯설기 때문일까? 이 책에는 제목대로 SF계의 거장과 그들이 쓴 걸작을 소개했던 신문 사설들이 수록됐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부터 류츠신의 <삼체>까지 살펴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거나 혹은 시대에 영향을 끼친 SF 작품들을 다뤘는데 워낙에 저자들이 간결하면서 맛깔나게 소개해 기회가 닿는다면 언급된 책 전부를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막상 읽으면 내 취향 아닐 작품도 꽤 될 텐데. 어쩌면 SF 소개하는 책을 이래서 읽는 게 아닌가 싶었다.

 메리 셀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이란 캐릭터가 2차 창작을 거치면서 그 존재 의의가 어떻게 오인됐는지에 대해서 얘기한 첫 번째 장부터 몰입도가 높았다. 종이 질감이라든지 첨부된 사진의 퀄리티라든지 저자들 일러스트 등 전반적으로 책의 만듦새가 좋고 SF 전문가인 저자들의 글솜씨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3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박상준 씨는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SF에 관한 강의를 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분의 SF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는 SF의 매력을 어필하는 솜씨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이 정도로 애정을 담아 설명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접한 건지, 또 얼마나 많이 사유를 했을지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 한 분야에 미칠 수 있을까 싶어 일종의 자괴감도 든다. 나도 이렇게 박학다식하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나 소개된 작가들이나 다 좋아서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겠지.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처음엔 SF 소설가만 소개하는가 했더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나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스탠 리 등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SF 소설가로 분류되지 않는 조지 오웰 같은 작가도 <1984> 같은 작품을 들며 SF적 맥락 안에서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SF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동떨어진 장르가 아님을 이해시켜준다.

 이름과 작품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오래 전 작품이라 손길이 안 가는 독자들의 심리를 저자들도 아는지 왜 이 작품이 걸작이고 그를 쓴 저자가 거장인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했다. 원체 'SF 입문용' 책을 많이 읽어서 이번에도 같은 표현을 쓰기 좀 그렇지만;; 이 책이야말로 SF에 입문할 때 이정표로 삼을 만한 책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슷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젠 진짜로 그 작품들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므로 인상 깊던 부분을 꼽자면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으니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기억나는 것만 간략히 적어보겠다.


 이질적인 존재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작가가 썼고 너무 시대를 앞섰기에 저평가당했다는 게 해석이 갔다. 후대에 와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외형에만 주목해 괴물 이야기로만 소비했지, 그 캐릭터의 본질은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인데 저자인 메리 셀리가 여성이란 이유로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최초의 SF로 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개인적으로 로봇이 나오는 SF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에 소개된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도 흥미로웠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리메이크한 <플루토>로 짧게나마 접한 <아톰>의 세계관이 그렇게 방대하고 심오한지는 알지 못했다. 아울러 일본이 그 작품에 받은 영향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나라가 로봇을 만들 때 외형을 귀엽게 만드는 이유는 인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봇이 인간에게 파괴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란 게 충격이었다. 로봇의 권리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인 듯한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은 반드시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거렛 애트우드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페미니즘 요소 짙게 녹아든 작품도 궁금했다. <시녀 이야기>는 대개의 걸작 SF 작품들이 그렇듯 지금도 시의성이 있는 작품이고 최근에 30년만에 후속작도 나왔다는데 작품을 쓸 때 '역사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쓰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끌려 작품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거친 남자 스터일의 문체와 작풍을 구사하는데 저자가 실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문단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체체파리의 비법>이란 소설의 내용을 보니까 대단한 블랙 유머와 극한의 설정으로 당대 현실의 부조리를 제대로 꼬집어서 읽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작가가 남자 이름으로 활동한 것부터가 참 씁쓸한 부분이 아닌가...


 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김보영 작가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뿐만이 아닌 모든 SF 작품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SF는 황당무계하단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경시되곤 하는 장르다. 하지만 SF는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황당무계함을 통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보더 덜 황당무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장르가 아니냐는 게 내가 이 책을 읽고서 품은 생각이다. 사고의 경계를 허물게 만든다는 점에서 SF만큼 의미있는 장르도 없는 것 같다.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책에서 저자들 소개한 작품을 진정으로 읽고 싶어졌다. 만약 그 책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 저자들이 써놓은 감상과 내 감상을 비교해볼지 모르겠군. 그것도 재밌겠다.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면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우선 우리가 "윤리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 81p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 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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