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ㅣ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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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원래 책을 오래 읽으면 자세 때문에 허리가 아프곤 했는데 이 책은 다른 의미로 내 허리를 아프게 했다. 택배 업체에서 상자를 내리는 파트를 가리키는 은어 '까대기' 알바를 하게 된 주인공의 1년 동안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의 이름이 다른 것만 빼면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담겨진 작품이었다. 작가는 만화를 그리면서 6년을 까대기 알바를 했다는데 나 역시 이들의 작업 현장이 어떤지 아주 모르진 않기에 읽는 내내 작가가 절로 존경스러워졌다.

 물론 작중의 작업 환경은 실제에 비하면 많이 유순한 편이었을 것이다. 훨씬 거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우울한 분위기와 욕설이 팽배했을 것이다. 비록 짧게 일하고 떠났지만 예전에 교보문고 북센터와 다른 공장에서 단기 알바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 성격에 지친 것도 있지만 인간 관계 때문에 그만둔 게 훨씬 컸다. 그에 비하면 작중의 근무 환경은 비록 미래는 어두워도 사람들끼리 인정은 넘쳐 아무래도 작가의 창작이 가미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면 작가가 성실하면서 기본적으로 세상의 따뜻한 모습을 주목하는 긍정적인 멘탈의 소유자거나.


 땀내나면서 정감 넘치는 이야기는 교훈도 있으면서 비판적인 요소도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택배 업계는 규모에 비해 법률과 융통 사이를 오가는 열악한 근무 환경, 육체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노고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자인 작가는 무척 뼈아프게 전달해냈다. 여기서 말하는 푸대접이란 단순히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도 크게 한몫한다. 택배가 있기에 우리의 삶이 윤택해진 걸 간과한 지난날을 강하게 반성하게 되는데 정작 작품은 그렇게까지 비판 일변도는 아니다. 우리가 좋건 나쁘건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택배 업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상상 이상으로 전문적으로 분업이 된 점과 정이 있어 마냥 지옥 같은 곳도 아니라는 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나는 작가가 적잖이 겸손하다고 보는데 어쩌면 이런 성정 덕분에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부러운 부분이다.

 일과 집필의 병행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나로선 육체 노동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까대기 알바를 6년이나 해낸 작가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다. 어찌나 대단해 보이는지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지금 내 고민은 너무나 어리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힘든 예술가의 이야기란 점에서 내게 대단히 무겁게 읽히는 만화였다. 작중 주인공이 상자를 옮길 때마다 내 허리도 같이 아픈 것 같았고 - 특히 겨울에 장갑이 부족해 벌벌 떠는 장면은 내가 다...... - 주인공이 만화가란 꿈에 다가가는 장면은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뭐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책만 읽고 있을 것인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내 이런 심정에 대해 얘기했더니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공 비결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말이 아니었으면 난 아직도 자괴감에 허덕였을 것이다. 확실히 작가의 사정과 내 사정을 동일시하기 힘들긴 하다. 작가는 타향살이 중에다 빚도 있어 까대기 알바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 작가의 시련은 그야말로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고민과 상황은 내게 필연적인 시련인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종교는 믿지 않지만 신이 우리의 시련을 해결해주지 않고 시련을 내려주고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걸 뚫을 힘을 내길 바라서란 얘기는 꽤 좋아한다. 말인즉슨 우리의 시련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 마음에 들었는데, 만약 지금의 내 고민도 필연적인 시련이라면 나와 살아온 나날이 다른 타인의 이야기에 자괴감을 느끼며 주저앉는 건 그 시련을 뚫을 힘에 하등 보탬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요즘 멘탈이 약해져서 이 책을 읽고 본의 아니게 더욱 우울해졌는데 결과적으로 - 친구의 도움도 빼먹을 수 없겠지만. 고맙다, 친구야. - 내게 자극이 된 것 같아 참으로 의미 있는 독서였다. 저자가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이 만화를 그렸을 것 같진 않지만... 작가가 겸손하기 때문인지 더욱 자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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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 ㅣ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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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최근 잇달아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일본 추리소설을 접했다. 저번에 읽은 <밀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꺼내는 방법>에선 동명의 표제작으로나마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마리 필요한가>는 다소 광기 어린 고양이 사랑을 다뤄 스산할 정도였다. 가만 보면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카가와시' 시리즈가 작풍이 한없이 유머러스한 것에 비해 사건의 양상은 섬뜩한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품이 그런 점에서 가장 역대급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런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유머를 남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도 때도 없이 남발되는 유머는 좀 거슬렸지만 그래도 이번엔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말장난하고 슬랩스틱 코미디하고 마니아가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은 호불호가 좀 갈리겠지만 개중엔 유익한 장면도 더러 있었다. 마네키네코에 얽힌 전설이나 종류 같은 건 이 책을 접하기 전엔 몰랐던 정보라서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작중 몇몇 인물처럼 마네키네코에 매료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마네키네코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단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식당이나 가게 앞에 놓아두는 한 손을 올린 고양이 인형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니, 세상만사 관심을 가져서 손해볼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분량이 다소 긴 감은 있지만 특수한 소재와 설정과 반전 덕에 끝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던 소설이다. 물론 특정 인물의 남다른 고양이 사랑은 논란거리긴 한데 이 부분은 작가가 너무 반전에 치중해서 벌어진 논란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의 인물의 됨됨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뜬금없다거나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당사자 없이 추측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레 소설적 완성도나 흥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추리소설적인 재미인 반전은 잘 살린 건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 핵심 트릭을 그림이나 표처럼 시각적인 자료를 동원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수많은 종류의 트릭이 있지만 이 트릭이야말로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끝까지 말로 설명한 게 아쉬웠다. 내가 요새 이해력이 떨어진 건지 추리소설 속 물리트릭이 잘 와 닿지 않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래도 그림은 있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 트릭이면 만든 작가도 그림으로라도 재현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그림을 삽입하는 게 까다로운 작업인지 궁금해졌다.


 탐정 사무소와 형사팀의 시선이 번갈아 진행되는 전개가 이번 작품에서 유독 빛을 발한 것 같다. 어느 한 쪽으로도 활약이 쏠리지 않고 양쪽이 이인삼각하는 식으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데 탐정과 형사, 둘 중 한 명도 없었다면 해결되지 않았을 걸 생각하면 이 둘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탐정이 그랬듯 독자인 나 역시 고양이 찾는 전개가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그렇게 삽질이나 하는 줄 알았던 탐정이 사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범인의 동기를 짚어낸 것도 눈길이 갔다. 사실 작품의 복선은 너무 사사로운 데가 많아 공정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대충 말은 돼 아주 억지스럽진 않았다. 다만 탐정 우카이 모리오나 스나가와 경부나 평소 행동거지에 비해 추리력이 비범한 걸 보면 추리소설이 뭘 어째도 픽션이란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픽션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극적으로 사건이 해결될 수도 없고 애당초 그 자잘한 복선을 다 놓치지 않고 해결에 근접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초반엔 마네키네코니 일본 영화니 해서 너무 마니악한 소재가 연달아 등장해 상당히 지루하게 읽혔고 사건 양상도 흥미롭지 않았지만 작가를 믿고 읽어내려가니 또 그럴싸한 이야기가 펼쳐져 첫인상과는 달리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막판에 동기 부분의 연출이 미약한 것만 제외하면 구성이나 트릭이 준수한 편이었는데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무난히 도전해볼 작품일 것이다. 단, 이 작품이 왜 <저택섬>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리즈 중간 작품이기도 하고, 오히려 1편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가 가장 완성도가 있어서 그 작품부터 출간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미 9년이나 지난 일이라 지금 논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 작가의 작품들이 제법 반향을 일으켰으니 결과적으로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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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꺼내는 방법 ㅣ 명탐정 오토노 준의 사건 수첩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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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7.8







 비범한 추리력에 비해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의 명탐정 오토노 준이 등장하는 시리즈 전편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후속작도 읽어봤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장편인 줄 알고 읽었는데 이번에도 단편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비슷한 제목의 소설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와 헷갈렸던 모양이다. 참고로 그 작품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장편 추리소설인데 이 작품을 읽고 바로 이어서 읽었다.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어쨌든, 단편 추리소설의 깔끔함과 절묘함을 잘 살린 전편에 비해 요번 수록작들은 기대에 못 미쳤다. 상대적으로 식상하게 읽혔는데 역시 괜한 기대는 금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탐정이 주역으로 등장하기보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는데 이것도 '탐정이 소심하다'는 설정이 있기에 가능했던 색다른 재미였다고 본다.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언제 출간될지 모르겠는데 - 아직 일본에서도 7, 8년째 안 나오고 있다고... - 만약 나온다면 이 이상의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좋을 듯하다. 트릭이나 반전의 놀라움이야 당연한 거고, 기본기 이상의 개성이 있어야 계속 챙겨볼 테니 말이다. 아예 장편으로 한 번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단편이 몇 편 연재된 적 있어서 다음 책도 나온다면 단편집이 될 것 같다.



 '밀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꺼내는 방법'


 표제작. 밀실에 들어간 고양이 때문에 산통 다 깨진 범인이 절규하는 상황도 재밌었고 결국 그 검은 고양이 때문에 함정 수사를 펼쳐 범인을 잡은 것도 재밌었다. 다만 검은 고양이를 밀실에서 빼낸 트릭은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각적인 자료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그 트릭을 고안한 장본인의 발상이 너무 기발해서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지게 들렸다. '물리의 기타야마'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트릭이었지만 조금만 더 개연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음악은 흉기가 아니야'


 제목도 흥미롭고 트릭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씁쓸함이 감도는 결말도 좋았다. 탐정은 만능이 아니다, 단지 수수께끼만 해결할 뿐. 이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사라진 흉기라는 테마에 있어서 제법 참신한 트릭이 나오는데 그 트릭을 나타낸 말이 바로 '음악은 흉기가 아니야' 다. 트릭이 먼저였을지 제목을 먼저 지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정전에서 새벽까지'


 명색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명탐정의 쓰임새가 가장 야박하고 짓궂었던 작품. 계획이 허술한 것에 비해 포기를 모르는 범인들도 재밌었고 이 에피소드에서 특별히 탐정역을 맡은 인물도 오토노 준과 달리 답답하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살인을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상황을 다룬 도서추리물이기에 다른 수록작들보다 긴장감이 넘쳐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범인을 완벽하게 코너로 모는 탐정의 솜씨도 볼 만했다. 최근에 읽은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에서도 탐정의 유전자엔 남다른 데가 있는지 그의 가족들의 활약도 제법이었는데 이 소설도 비슷한 맥락에서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시리즈 3편이 나오면 이 부분을 부각시킨다면 좋겠다. 뭐, 작가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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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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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강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요즘엔 이렇게 책으로 타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경험도 경험 나름인데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실로 귀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나한테 아주 생소한 이란의 근대사를 접할 수 있었는데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 만화는 이란에 대해 무지한 유럽권 독자를 겨냥해 탄생됐다고 한다. 이 작품은 <쥐>, <팔레스타인>과 함께 3대 르포 만화로 칭해지는데 저자가 이 작품을 그릴 때 <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직 그 작품을 못 읽었는데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런 걸 흔히 고구마 줄기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이 책 덕에 <쥐>를 비롯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흔히 관심이 없는 문화권에 대해선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획일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이란에 가졌던 인상이 딱 그랬다. 한중일이 그렇게 다르듯 중동, 서남 아시아 국가들도 상당히 방대하고 다종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졌을 텐데 지금까지 그저 '이슬람 문화권'으로만 뭉뚱그려 인식하고 그 내밀한 면모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저자가 겨냥했던 유럽권 독자들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뉴스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 우리도 버젓이 무의식적으로 인종 차별을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차별하는 마음엔 국경이 없다.


 테헤란의 중산층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주인공은 혼란스런 이란의 역사 속에서도 여차저차 성장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은 절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기에 그녀의 미래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자기네 딸이 이래저래 퇴행적인 이란과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부모는 그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갈 것을 권한다. 주인공이 이란에서의 유년기를 보내는 게 전반부의 내용이고 빈으로 유학을 간 4년 뒤에 이란으로 귀국했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게 후반부의 내용이다. 전반부는 이란과 주인공네 가족에 대한 얘기가 중점적으로 다뤘고 후반부에선 외국에서 이란인으로서 살아가는 고충과 반대로 외국물 먹은 여성이 다시 이란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충을 다뤘다.

 이 작품의 장점은 일단 작가가 고향인 이란을 쉽고 깊이있게 묘사한 것이다. 외세에 시달리다 독재 정치에 신음했다가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가 제대로 꼬이는 이란의 상황과 그에 따른 주인공네 가족 주변의 환경을 그려내 자연스럽게 이란이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됐다. 생소한 나라였고 문화였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통해 '중동=이슬람'이 아니란 것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주인공네 가족이 유복하고 화목하단 걸 감안하더라도 이란의 가정의 모습은 아시아나 서양의 문화권에 익숙한 내 눈에도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같구나 싶었다. 가족 사이는 끈끈하고 불의에 반감을 갖고 어떤 식으로든 피를 흘리며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모두 남일 같지 않았다.


 예전에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를 꼬집은 만화 <인티사르의 자동차>를 포스팅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이슬람의 독한 규율이나 특정 성별에 편파적인 잣대에 대해 한 말이었는데 <페르세폴리스>는 여기서 '동의하지 않은 한 명'인 주인공이 이란에서도 외국에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이란에선 교육 수준이 높아 보수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대로 유럽에선 이란인이란 이유만으로 인종 차별을 당한다. 자국에 애정도 없고 비관적으로 바라봤던 주인공도 인종 차별에선 피가 솟을 수밖에 없다. 이란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란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치들이 멋대로 떠들어대기 때문에.

 작품은 주인공이 프랑스로 이민을 가면서 끝나는데 작가는 그 이후에도 녹록찮은 인종 차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맨탈이 강한 주인공은 그러한 차별을 의연히 넘겼겠지만 이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건 적잖이 짜증났을 터다. 그래서 이 만화를 그렸고 성과는 제법 거둔 듯하다. 유수의 만화상을 수상했고 작가가 제작과 감독으로 참여한 동명의 영화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에 질려 이란을 등진 작가의 작품이 이란을 드높인 셈이다. 이 작가가 아니었으면 이란에 대해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성과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문은 이 작품에도 해당된다. 솔직히 말해 이 작품 덕에 이란에도 상류층이 있고 원래부터 이슬람교가 국교가 아니었으며 - 그 나라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그렇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가 형성된 것도 아니라는 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 그 전까진 국민들이 술도 마시고 해외 여행도 왕왕 다니는 등 우리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최근에 접한 소련 배경의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하면서 사회주의나 보수적인 종교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감시하고 유난을 떨고 생사람 잡고 정작 국민들은 코웃음 치고... 이 두 사회의 공통점을 통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세상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뿐인 이 작품이 범세계적인 메시지로 감상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란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홀로 빈으로 유학온 것에 대해 스스로 해외에서 하릴없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며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 이게 주인공 기준에서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지, 아마 국적이 이란이 아니었다면 유학 생활 중에 방황은 좀 했을지언정 제법 건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 읽는 나는 씁씁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튼 주인공의 번민은 이란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히잡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면서 더 심화되는데 결국엔 특유의 맨탈과 가족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우울함을 극복한다.


 한 사람의 근간엔 가족이나 국가 등 수많은 도움과 시련이 들어섰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렇게 자라난 한 사람이 나중에 세상이 끼치는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속된 말로 '내가 욕해도 남은 안 된다'는 심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이 좋든 나쁘든 이란과 세계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면 확실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사사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읽기 전엔 어둡고 암울한 작품일 것만 같았는데, 흑백이긴 해도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가감 없이 뼈가 있는 내용을 그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에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 금방 읽었다. 아무래도 자전적 이야기라 그리기에 애로사항이 많이 따랐을 텐데 - 약간의 과장이나 연출이 있었을지 모르겠다만. - 이 정도의 흡입력과 완성도를 갖췄다는 게 실로 경이로웠다. 동명의 영화와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부디 이 작품을 그린 재능이 이 작품으로 끝이 아니길 바란다.



 p.s 후반부에 주인공이 이란에서 다녔던 대학교에서 '진정한 종교인'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박수도 합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주인공과 진정한 종교인이 있어야만 이란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란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곳이 다 마찬가지겠다.

살다보면 형편없는 인간을 많이 많나게 될 게다. 그들이 네게 상처를 주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렴. ‘내게 해코지하는 건 그들이 어리석어서‘라고.

그래야 그 못된 짓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단다. 세상에서 원한과 복수보다 나쁜 건 없거든... 늘 품위를 잃지 말고, 네 스스로에게 정직하도록 해라. - ‘지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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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 대 홈스의 대결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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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내용이 별로거나 취향이 아니더라도 캐릭터의 매력이 걸출하면 계속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다시 읽은 '뤼팽' 시리즈가 딱 그렇게 읽혔다. 이번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은 제목대로 홈스와의 대결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나마 있던 장점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홈스와 상극인 뤼팽의 매력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솔직히 어렸을 때처럼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홈스에 의해 체포된 뤼팽이 '꼭 얼굴을 비춰야 할 약속이 있다'며 프랑스 경찰을 따돌린 뒤에 한다는 짓이 바로 영국으로 가려는 홈스를 배웅하는 거란 대목에선 제법 뿜었다만... 돌이켜보면 뤼팽이 정말 전무후무한 매력을 겸비한 캐릭터구나 싶은 장면이 많지만 그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하느라 이야기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캐릭터만으로 작품 전체가 만족스러울 순 없는 법이다.

 캐릭터란 대목에서 솔직히 가장 발끈할 사람들은 홈스의 팬인 일명 셜로키언일 것이다. 뤼팽에 비해 홈스가 상당히 못나게 묘사되는데 셜로키언이 아닌 내가 봐도 이건 좀 심하다고 - 참고로 난 원작 '셜록 홈스' 시리즈보다 드라마 <셜록>을 훨씬 좋아한다. - 생각했다. 무엇보다 '홈스' 시리즈 원작에 대한 고증도 잘 지켜지지 않아 아예 배경과 이름만 같은 별개의 인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작품이 집필된 1906년도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희박할 시기라 이런 기괴한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했지, 요즘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단 도용에, 심지어 원작 훼손까지 더해졌으니 모리스 르블랑은 시리즈 후속작을 쓸 시간도 없이 삽시간에 파산에 이르렀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보단 모험소설에 가까운 시리즈의 매력이 덜 드러난 스토리와 홈스라는 캐릭터의 무리한 등장이 무엇보다 아쉬운 점이었다. 수록된 두 편의 중편 모두 사건을 해결하고 뤼팽을 체포하려는 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뤼팽' 시리즈답지 않았고 무엇보다 모리스 르블랑이 이런 쪽으로 필력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뤼팽과 홈스가 대치하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돌입하자 인물들의 동선도 잘 전달도 안 되고 뤼팽의 트릭은 다소 황당무계한 구석이 있어서 확실히 추리소설 읽는 맛이 덜했다. 그런데 제아무리 고증이 별로였다지만 엄연히 명탐정인 홈스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추리소설 읽는 맛이 덜해서야...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머쓱하긴 또 처음이었다. 차라리 뤼팽의 시점에서 전개됐으면 훨씬 흥미진진했을 것 같은데.

 뤼팽과 홈스 둘 다 어느 정도 체면은 차리면서 일종의 무승부 상태로 끝을 맺는데 독자에 따라선 이 연출도 미흡하다고 여길 사람도 적잖을 듯하다. 이래저래 영향력이 강한 범죄소설의 캐릭터들이 이 정도로 격돌하는 작품도 없다보니 -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로의 명예를 살려주는 무승부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선 중국 무술 영화 '엽문' 시리즈만한 작품도 없다고 본다.  - 어떻게 보면 무승부 연출은 무척 중요한 건데 이 작품에선 명백히 홈스가 손해를 많이 입었다고 본다. 그런데 원작자인 코난 도일이 캐릭터 등장을 허용한 것이 아닌 르블랑이 무단으로 등장시킨 것이니 작가와 팬들이 항의를 한 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과 앞의 철자만 바꾼 '헐록 숌즈Herlock Sholmes'로 고쳐진 판본도 많은데 내가 읽은 이 책은 '셜록 홈스'라고 표기됐다. 역자인 성귀수 씨는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해 셜록 홈스로 쓰는 것을 고집했다는데 내가 봤을 땐 르블랑만 아니라 코난 도일의 의도도 존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뤼팽' 시리즈는 초반에 유독 홈스를 의식했는데 특히 내 기억으론 다음 작품 <기암성>에선 이 점이 엄청난 악재로 작용한다. 뤼팽이 어느 정도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국가 대항의 상징격인 존재로서 탄생했고 인기를 얻은 캐릭터기에 홈스의 등장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게 반복되면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까지 바래지기 마련이다. 이 작품이 실질적으로 '탐정 대 괴도의 대결' 이라는 추리소설의 한 테마를 최초로 구현한 원조격 작품인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논란거리만 눈에 밟혀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다르게 보면 정말 선구적인 작품인데... 참 아까운 완성도다.



 p.s 개인적으로 나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났던 건 홈스보단 왓슨이었다. 명색이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한 캐릭터인데 저렇게 망쳐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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