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8.5








 최근 잇달아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일본 추리소설을 접했다. 저번에 읽은 <밀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꺼내는 방법>에선 동명의 표제작으로나마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마리 필요한가>는 다소 광기 어린 고양이 사랑을 다뤄 스산할 정도였다. 가만 보면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카가와시' 시리즈가 작풍이 한없이 유머러스한 것에 비해 사건의 양상은 섬뜩한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품이 그런 점에서 가장 역대급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런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유머를 남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도 때도 없이 남발되는 유머는 좀 거슬렸지만 그래도 이번엔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말장난하고 슬랩스틱 코미디하고 마니아가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은 호불호가 좀 갈리겠지만 개중엔 유익한 장면도 더러 있었다. 마네키네코에 얽힌 전설이나 종류 같은 건 이 책을 접하기 전엔 몰랐던 정보라서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작중 몇몇 인물처럼 마네키네코에 매료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마네키네코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단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식당이나 가게 앞에 놓아두는 한 손을 올린 고양이 인형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니, 세상만사 관심을 가져서 손해볼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분량이 다소 긴 감은 있지만 특수한 소재와 설정과 반전 덕에 끝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던 소설이다. 물론 특정 인물의 남다른 고양이 사랑은 논란거리긴 한데 이 부분은 작가가 너무 반전에 치중해서 벌어진 논란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의 인물의 됨됨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뜬금없다거나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당사자 없이 추측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레 소설적 완성도나 흥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추리소설적인 재미인 반전은 잘 살린 건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 핵심 트릭을 그림이나 표처럼 시각적인 자료를 동원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수많은 종류의 트릭이 있지만 이 트릭이야말로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끝까지 말로 설명한 게 아쉬웠다. 내가 요새 이해력이 떨어진 건지 추리소설 속 물리트릭이 잘 와 닿지 않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래도 그림은 있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 트릭이면 만든 작가도 그림으로라도 재현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그림을 삽입하는 게 까다로운 작업인지 궁금해졌다.


 탐정 사무소와 형사팀의 시선이 번갈아 진행되는 전개가 이번 작품에서 유독 빛을 발한 것 같다. 어느 한 쪽으로도 활약이 쏠리지 않고 양쪽이 이인삼각하는 식으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데 탐정과 형사, 둘 중 한 명도 없었다면 해결되지 않았을 걸 생각하면 이 둘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탐정이 그랬듯 독자인 나 역시 고양이 찾는 전개가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그렇게 삽질이나 하는 줄 알았던 탐정이 사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범인의 동기를 짚어낸 것도 눈길이 갔다. 사실 작품의 복선은 너무 사사로운 데가 많아 공정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대충 말은 돼 아주 억지스럽진 않았다. 다만 탐정 우카이 모리오나 스나가와 경부나 평소 행동거지에 비해 추리력이 비범한 걸 보면 추리소설이 뭘 어째도 픽션이란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픽션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극적으로 사건이 해결될 수도 없고 애당초 그 자잘한 복선을 다 놓치지 않고 해결에 근접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초반엔 마네키네코니 일본 영화니 해서 너무 마니악한 소재가 연달아 등장해 상당히 지루하게 읽혔고 사건 양상도 흥미롭지 않았지만 작가를 믿고 읽어내려가니 또 그럴싸한 이야기가 펼쳐져 첫인상과는 달리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막판에 동기 부분의 연출이 미약한 것만 제외하면 구성이나 트릭이 준수한 편이었는데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무난히 도전해볼 작품일 것이다. 단, 이 작품이 왜 <저택섬>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리즈 중간 작품이기도 하고, 오히려 1편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가 가장 완성도가 있어서 그 작품부터 출간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미 9년이나 지난 일이라 지금 논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 작가의 작품들이 제법 반향을 일으켰으니 결과적으로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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