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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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나랑 여행 스타일이 대단히 잘 맞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돼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 가볼까 하고 얘기해본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 올 줄 알고 너무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그 친구가 비엔나 커피 컨셉의 카페 프랜차이즈 매니저로 일해서 그런지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던데 나도 호기심이 가 검색해보니 오스트리아도 안 알려져서 그렇지 꽤 괜찮은 여행지일 것 같았다. 보통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여행으로 묶여서 체코나 헝가리로 갈 때 들르는 곳 정도로 여겨지던데 -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와 헷갈리거나... - 그렇게 취급하기엔 막강한 문화적 유산이 많은 나라라는 게 내가 검색을 통해 받은 인상이었다.

 특히 클림트가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대우를 받는 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점이었다. 그동안 너무 뭉크한테만 관심을 가진 것 같아서 슬슬 다른 화가한테도 입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오스트리아에 관심도 생겼겠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어쨌든 클림트도 궁금해져 이 책을 펼치게 됐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속한다. 이 시리즈는 특유의 전문성 있는 내용과 빼곡히 수록된 사진 등 여러모로 고급진 컨셉을 자랑하는데 저번에 읽은 <뭉크>가 워낙에 괜찮아서 이번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아무래도 내가 클림트에 무지한 터라 <뭉크>를 읽을 때보단 흥미가 덜하긴 했지만, 클림트의 작품 활동을 그가 일평생을 살았던 도시인 빈의 특성과 연관을 지어 해석한 것과 시간순이 아닌 키워드에 따라 클림트의 생을 따라간 것, 그리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에피소드 등은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특히 이 초상화의 경우엔 내가 작년에 뉴욕 노이어 갤러리에 갔을 때 직접 본 작품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 그림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이 에피소드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참고로 그 초상화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노이에 갤러리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클림트의 일대기를 시간 순대로 따라가지 않은 건 약간 불친절한 과정이기도 했다. 일부 대표작만 알지 화가에 대한 선행 학습이 거의 전무했기에 약간 따라가기 벅찼던 측면이 없잖았다. 대놓고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클림트가 뭉크에 비해 비교적 승승장구했고 순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미술 그 자체를 감상하기보단 작품과 화가에 관련된 다양한 드라마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순전히 클림트의 작품의 테크닉적 부분을 살펴보는 전개는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어딘가 말이 반복된다 싶을 즈음엔 집중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클림트의 살펴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분리파와 급격한 화풍 변화가 모두 흥미롭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적은 내 입장에서 생경했다 뿐이지 평소 미술이나 클림트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더없이 충실한 구성의 책일 테니 내 개인적인 감상은 귀담아 듣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런 나한테도 빈과 클림트의 관계를 살펴본 책의 내용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단 걸 강조하고 싶다. 찬란했던 옛시절의 광취에서 벗어나지 못해 프랑스나 독일이 여러모로 진보를 거듭할 때 과거의 재현에 관심을 기울인 시대착오적인 빈, 그 빈의 분위기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됐는데 초반엔 주류에 편입하고자 비교적 평이한 그림을 그리던 클림트가 얼마 안 있어 철저하게 클림트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그릴 수 없는 작품을 그려낸 건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 다 분리파에 속했을 때 그려진 것인데, 이 '분리파'가 기존 예술계와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분리시키려는 취지에서 붙여진 이름인 걸 생각하면 클림트만큼 이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듯하다.

 클림트가 영리했던 건지 아니면 의외로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빈이지만 그만큼 클림트가 독보적이라 그런 건지 고흐나 뭉크가 수모를 겪은 것과 달리 클림트는 논란은 있을지언정 화가로서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클림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에 '황금'과 '장식'이 많아 너무 겉멋에 치중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 그리 정이 잘 안 갔는데 이렇게 일대기를 다 훑어보니 정이 안 간다는 이유로 폄하할 위인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는 독보적인 예술가였고 그 자신의 예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단 건 귀감이 될 만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화가의 삶과 드라마에만 주목한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은 뒤부터는 그림의 기법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속된 말로 'X손'의 소유자인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내게 거리감이 느껴졌던 화가들이 이제는 경이로운 동시에 어떤 화가나 크든 작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졌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삶은 아니었지만 화가로서의 명성에 있어서는 한이 서릴 만큼의 여한은 없어 보이는 클림트이기에 읽으면서 묘하게 힐링도 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신적인 화가가 그렇듯 클림트는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국민 화가로 칭해질 정도로 격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공감할 수 있던 내용의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생긴 김에' 읽은 게 아주 적절한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작년에 대충 구경하고 나온 감이 있는 노이에 갤러리도 다시 가고 싶어졌는데 지금 유럽이나 뉴욕이나 상황이 별로라서 그 날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정말 언젠가는 갈 생각인데... 몇 년은 기다릴 각오는 해야겠다. 그때까지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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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가미 10 - 환상의 나라, 완결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9.8








 작중 어떤 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주사를 맞는다. 그 주사 속엔 1/1,000의 확률로 사망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들어있다. 그 시한폭탄은 18세에서 24세 사이에 작동한다. 말했다시피 시한폭탄은 1/1,000의 확률로 들어있다. 자신이 1,000명 중 한 명임을 알게 되는 건, 한마디로 자신이 러시안 룰렛의 희생양임을 알게 되는 순간은 죽기 바로 24시간 전이다. 그때부터 당사자는 고작 24시간의 시한부 인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키가미'는 24시간의 시한부 인생을 살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사망통지서를 가리킨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키가미를 배달하는 업에 종사하는 공무원인 후지모토다. 그는 각 에피소드에서 여러 사람에게 느닷없이 찾아가 지금부터 시한부 인생임을 선고한다. 1,000명에 한 명 꼴이니 모두들 기막힌 반응을 보이고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지금 죽어선 안 되는 절박하고 안타까운 이유를 갖고 있다. 후지모토는 처음엔 공무원 특유의 자기 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이들의 최후를 관망한다. 가끔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그는 상부를 상대한테 시말서를 쓰느라 씨름할 뿐이고 근본적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고 하진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이키가미'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품는 모습을 보였다간 그 즉시 '퇴폐사상자'로 찍힐 테니까.


 내가 이 작품의 소재를 들었을 때 가장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던 부분은 국민을 무작위로 골라 죽이는 시스템보단 그 시스템이 어떻게 통과되고 정착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 일련의 시스템은 국가번영유지법, 줄여서 '국번'으로 불린다. 여기서 번영이란 단어가 생뚱맞다고 느낄 텐데, 무작위로 죽는 사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 주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할 것이고 그를 통해 실제로 지금과 같은 번영을 이룩했다는 취지에서 이 법은 존속되고 있다. 이 나라의 분위기는 국번을 숭배할수록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며 이 법에 의문을 품거나 혹은 의문을 품는 듯한 사람이 보이면 퇴폐사상자로 간주해 정부가 교육을 실시한다. 시한폭탄이라는 다소 과장된 설정이 있긴 하지만 작품 속엔 여럿 끔찍하고도 있음직한 상상을 통해 파시즘 국가만이 선사할 수 있는 막장스런 분위기를 훌륭히 연출해낸다. 작품을 읽기 전에 내가 품었던 두려움은 읽으면서 더욱 심화됐고 최후반부에선 상상 이상으로 소름이 돋았다.

 국민을 무작위로 죽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전에 세뇌를 시키는 것도 실로 소름 돋는 일인데 한편으론 그렇게까지 국번이란 것을 존속할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국번사하는 사람들은 - 국번에 의해 죽는 사람들, 이키가미를 받는 사람들 - 전부 18세에서 24세 사이니까 그 사이엔 고등 교육까지 다 받은 젊은 인재도 포함됐을 테고 그런 사람들까지 죽인다는 건 장기적인 측면에선 번영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이키가미도 고작 사망 하루 전에 알리는 것도 문제다. 하루 전에 알려봤자 정서적으로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며 무슨 돌발 상황이 생길지 가늠도 안 된다. 실제로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가 이 돌발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억제하기 위한 제약도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란 느낌인데 이래서야 국민들이 국번을 철저히 숭배하려야 숭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 것이다. 세뇌만으론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 나라의 국번이 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로 작중에선 타인의 국번사를 반면교사로 삼는 인물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후지모토처럼 공무원이 아닌 이상 국번을 자기 일상의 일부로 여기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재앙으로 여길 뿐이다. 갑자기 24시간의 시한부 인생이 시작된 덕분에 만감이 교차할 사건이 벌어지고 때론 국번의 순기능이라 볼 수도 있을 사례도 나옴에 따라 얼핏 국번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건가 하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작중 인물들 중 극히 일부에 한해서만. 아무튼 유지하느라 품도 많이 들고 반박 요소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국번이 과연 이 나라 입장에서 수지가 맞는 법률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의문은 나름대로 그럴싸하고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며 전부 해소된다. 이 진실은 차라리 국가 번영 같은 허상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국번을 유지하는 진짜 이유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어긋나긴 했지만 논리적이었다. 그야말로 논리적인 역겨움이었달까. 이 진실이 작품 초반부터 설정된 것인지 궁금한데, 일단은 구멍 투성이인 국번의 존재 의의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식의 인구 조절 설정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 가장 압도적인 설정과 세계관이었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통해 다양한 서스펜스를 그리는 것도 흥미로웠고 각 에피소드의 퀄리티가 일정한 것이나 여러 일을 겪으면서 단순한 방관자에 불과했던 후지모토가 주체적인 인물로 변모하는 일대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주인공치고 너무 관망만 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참 오래도 걸렸지만 결국 국가 체제에 반기를 드는 건 역시 쾌감이 넘쳤다. 아, 오히려 이만한 파시즘 국가에선 주인공 같은 소시민이 용기를 내기가 이만큼 오래 걸리는 게 더 현실적이려나. 그 변화 과정에 사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한 건 약간 아쉽지만 쿠보와의 관계를 통해 누가 내 편인지 구분이 안 가는 딜레마가 그려졌던 것도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겠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야말로 작품의 진정한 백미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시한부 인생이란 반복적인 서사 구조와 일정한 분량 때문인지 간혹 반복되거나 소모적이거나 연출이 과하거나 개연성이 얼렁뚱땅인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에 있어 다 소중한 에피소드였다. 세계관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긴 시간에 걸쳐 독자들로 하여금 국번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과정이 조금 더 밀도 있고 짤막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특히 후반부의 전개가 너무 몰아치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서 - 특히 후지모토의 각성이... - 그 점은 좀 아쉽다. 작품의 연재 기간을 보니 분량에 비해 완결에 이르는 시간이 긴 편이던데 한 편의 분량을 보면 주간 연재는 아니었을 거고 월간 연재였을 듯해 스토리의 세세한 아쉬움이 더욱 걸린다. 이래저래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니 완결하기까지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따랐을 것 같은데 이런 제약이 작가의 창작 환경을 괴롭힌 게 아닐까 하고 추측된다.

 최근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을 그린 작품을 많이 접했다. 사회주의 소련 시대를 묘사한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전트6>와 극보수 이슬람 정권의 <페르세폴리스>, 70세가 되면 안락사시킬 거라는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70세 사망법안, 가결>과 이 작품 <이키가미>까지. 전부 한 걸음 옆에서 보면 그렇게 엉망진창일 수 없는 세계관이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세뇌당할 수밖에 없거나 쉽게 저항하기 힘든 사정이 있음을 토로하는 작품들이다. 실재했든 가공이든 지금 우리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세계를 접하니 내 삶과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돌아보게 되는데, 세상이 생각보다 허술한 것 같아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고 결코 무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의 세계가 하도 막장이다 보니 반면교사로 삼기에 수월할 뿐더러 전에 없이 우리나라가 천국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너무 자아도취에 빠지진 말되 어떤 식으로든 부당함에 저항한 인물들의 모습에서 본받을 점이 무엇인지 곱씹어봐야겠다.


 설령 비겁한 도망자에 불과할지라도 목숨을 걸었던 후지모토처럼 우리 역시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후지모토가 말하듯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 남은 생을 시체나 다름없이 살게 된다 하더라도... 최후반부에 나오는 이 후지모토의 독백은 그 자체만으로 이 작품을 읽는 보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작품의 논리적인 역겨움은 충분히 씻겨졌으므로.

 이 작품을 그린 마세 모토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변신>을 원작으로 한 <헤드>를 그린 만화가인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오리지널 작품을 읽게 돼 감개무량했다. 창작 활동이 잘 풀리지 않는 만화가나 원작이 있는 만화를 그리는 줄로 알았는데 이 작가를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키가미>를 완독하는데 오래 걸린 이유는 작품이 절판됐고 중고서점을 통해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쉽기 그지없는데 나의 짧고 사사로운 포스팅을 통해 소소하게라도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아니면, 책임을 면할 수만 있다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 그건가...?

그렇다면 뭣 때문에 살고 있는가! 자기 존재에 책임지지 않는 인생이... 어떻게 살아갈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마치, 태어난 순간부터...

죽은 것과 같지 않은가... - Episode 20 환상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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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9.5






 스포일러 : 결말에 대해 언급했음


 작년에 읽은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전율을 선사해준 가키야 미우의 다른 작품을 읽어봤다. 제목과 설정 덕에 작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은데 - 일각에선 일본판 <82년생 김지영>이라고도 하더라. 일리가 있는 얘기다. - 막상 읽어보니 기대에 비해 SF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아 의외였다. 아니, 무엇을 숨기랴.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대단히 실망했다.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70세가 되면 사망해야 한다는 사상 초유의 법률을 두고 고부 갈등이니 세대 차이에 대해서만 얘기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굉장히 상상을 자극하고 할 얘기도 많은 소재인데 너무 작가 본인의 장기에만 치중하는 듯한 전개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오히려 이게 더 정답이고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어머니와 남편, 딸의 비중이 적지 않나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만.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기까지 2년이 남았다는 설정은 색다른 긴장감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처럼 국가적 규모의 공익을 위해 사람 목숨 빼앗는 일까지 손을 대는 극단적이고 반인륜적인 법률 및 사상을 다루는 작품을 꽤 좋아하는데 당장 생각나는 건 소설 <백년법>, <살인출산>과 만화 <이키가미>, 그리고 타노스가 등장했던 '어벤져스' 3, 4편이다. 이 작품들에선 70세 사망법안조차 귀엽게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인구 조절' 계획을 묘사하는데 흔히 이런 작품은 이미 이런 계획이 사회에 깊숙이 녹아들어 모든 사람이 세뇌를 당한 상황과 반대로 그 계획이 기존 사회의 관념과 충돌해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뉘는 것 같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경우엔 일단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기존 사회의 관념과 충돌을 보인다고 말하기엔 사람들의 동요가 너무 적어 묘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작가의 SF적 상상력이 빈약하단 반증이다. 작중 다카라다 집안의 양상이 우리 현실을 마주보게 하고 그 집안 문제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작품을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에 버금가는 가독성 좋은 문체나 캐릭터 설정을 갖추지 못했다면 더더욱 힘들었을 듯하다.


 보통 이런 종류의 작품은 한 가족의 이야기만 그리기 보단 여러 가족이나 집단,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주목하면서 군상극의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 작가는 우리 시대의 갈등 양상을 대표할 만한 가족에 집중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처음엔 소재가 충격적인 것에 비해 시시한 주제의식과 전개라 생각했지만 이야기의 주역인 도요코가 시어머니 병 수발에 지치다 폭발한 다음 가출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과 몰입도가 보통이 아닌 터라 초반의 불만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이란 작자의 행태 때문에 읽는 내가 다 살의가 솟았던 것과 도요코처럼 체념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게 인상적이었다. 나처럼 제3자가 보면 저렇게 불합리하고 엇나간 관계도 없는데 그런 관계를 날 때부터 이어온 당사자들에게 있어선 다들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 허덕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서다. 명문대를 졸업해놓고 취업이 불발돼 히키코모리가 되기 직전인 아들이나 쉽사리 가출을 결심하지 못하는 도요코가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갔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70세 사망법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나라가 '70세가 되는 모든 국민을 안락사시키자, 그러면 연금을 비롯한 모든 사회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니까.' 라고 말을 하겠는가? 그런데 이 모든 결정은 하루이틀 논의된 게 아니라 몇 번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기에 설득력을 얻은 것일 텐데 그 사건의 예로 바로 다카라다 가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곧 불행해질 가족의 모습이었으니까. 이들의 모습에 집약적인 사회 병폐, 세대 갈등 가부장적 사고와 취업난 등은 작중에서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는 핵심적인 이유였으니까.


 이 밑엔 스포일러 있음


 알고 보니 70세 사망법안은 국민들로 하여금 노후가 없어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일종의 쇼였음이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너무 도박인 것 같아 현실성도 떨어지고 이후 정부가 취할 방침이란 것도 너무 희망적이라 어째 의심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그럴싸한 계획이고 또 실제로 다카라다 가족한테 일어난 변화가 너무 바람직해서 작품의 소재가 전에 없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성격이 원래 그런지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때처럼 상당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었는데 그 작품과 마찬가지로 과정에 있어서 누군가 인내하고 희생해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 저마다 결점이 있던 인물들이 그 결점을 고침으로써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리란 전망을 품게 해 진정 좋은 해피엔딩이었다고 본다.

 70세 사망법안이라는 정부 차원의 극단적인 개입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스스로 변화하는 용기를 낸 것은 그들 다카라다 가족 구성원 스스로의 몫이었던 것, 그리고 기대완 사뭇 달랐지만 한 가족에 집중해 작가 본인의 장기를 살리면서도 SF적인 구색을 갖추고 신선한 해석을 가미한 것이 엄청난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왜 항상 인구 조절을 다룬 SF는 비장하고 비참한 결말이어야 하는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라고 다들 말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 정말 멋졌다. 제목이 주는 막장스런 인상과는 달리 여러 의미에서 힐링이 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는데, 개중 장르적 글쓰기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깨부쉈다는 측면에서 적잖은 충격적이었다. 아직 이 작가의 작품을 두 권밖엔 못 읽었는데 다른 작품들도 기대된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다들 제목이 비슷비슷해서 별로 관심이 안 갔는데, 이거 아무래도 괜한 선입견은 버려야겠다.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니까 아빠도 죽을 때까지 일해요. - 3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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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ㅣ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8.3







 을씨년스럽고 상투적인 제목의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가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흔히 접하기 힘든 아이슬란드의 소설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한국 독자인 내게 있어서 그렇게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것에 놀라게 된다. 물론 아이슬란드식 인명과 지명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작가의 작품을 <저체온증>, <무덤의 침묵>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하는데 본의 아니게 시리즈를 정반대의 순서로 접하게 됐다. 원래대로라면 이 작품을 제일 먼저 접했어야 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의 개인사가 사건 자체와는 연관은 없지만 비중은 어마어마하기에 가급적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가 된다. 하긴 처음 <저체온증>의 책장을 펼치면서 설마 이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찾아가며 읽을 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일부 아이슬란드식 문화는 낯설지만 저자의 각주가 있어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가령 아이슬란드의 국토 면적이며 인구나 인구 밀도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이름을 짓는 문화 등을 딱히 선행 학습하지 않아도 됐던 건 다행이었다. 개중 에를렌뒤르 형사와 그의 동료들이 초반에 주기적으로 언급했던 '아이슬란드식 범죄'란 게 내 눈길을 끌어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에서 과연 추리소설적인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기도 해 적잖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런 질문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은 물론 다른 북유럽 추리소설, 흔히 '노르딕 누아르'라 불리는 추리소설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질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 문화권은 워낙에 인구 밀도도 낮고 범죄율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어떻고 범죄율이 어떻고 하는 건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목하는 요소일 뿐이다. 아무리 인구가 적고 복지 제도로 인해 범죄율이 현저히 적어도 극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하나도 다르지 않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번에 읽은 <저주받은 피>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었는데, 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어딘가 아이슬란드스런 맛은 떨어졌지만 이것이야말로 아이슬란드처럼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도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가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를 두고 '마치 아이슬란드의 가가 형사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두 캐릭터와 시리즈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아닌 사건 관계자 모두의 심리를 살펴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특히 닮았는데 차이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의 천재성과 더불어 인격도 묘사하며 이상적인 경찰의 모습을 그린 반면에 인드리다손은 에를렌뒤르를 천재적으로 묘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결점이 많은 인물로 그려 그의 행보에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소설과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국제 무대에서 적잖이 낯서리라고 여긴 것일까? 낮은 인구 밀도와 느슨한 수사 조직 덕분인지 조작이나 은폐처럼 뒷일따윈 생각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보는 게 '아이슬란드식 살인'이라는 에를렌뒤르와 동료 형사들의 발언은 작중 사건을 통해 철저히 부정당한다. 사건 현장엔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요상한 글귀가 남겨졌고 사망한 피해자의 과거는 역겹기 짝이 없어 형사들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가 과거에 일으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혹은 그의 자녀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의심되는데 당연히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수록 과거의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들춰내게 되므로 작중에선 여러모로 형사들의 '도덕적 역경'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식의 역전된 발상, 이른바 '죄 많은 피해자와 동정할 수밖에 없는 범인'은 '김전일'을 통해 이미 익숙한 테마였는데 작품의 무대가 아이슬란드라서 그런지 묘한 울림을 줬다.


 좋게 말하면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론 제목이 주는 인상대로 평범한 추리소설에 불과했다. 물론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그를 묘사하는 방식은 훌륭했다. 아까 히가시노 게이고와 잠시 비교했는데 그 작가와 비교하면 문체의 가독성은 떨어져도 깊이와 통찰은 그에 견줄 만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사실 이 깊이 있는 분위기 때문에 너무 무겁게 읽히는 감도 있지만 단순히 흥미 위주로 성폭행이란 범죄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 작가로서 좋은 자세였다. 성폭행이 낳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을 상상해낸 것도 마찬가지로 주목할 부분이다. 범인의 동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그렇기에 작품의 씁쓸함은 더욱 배가됐다. 비슷한 소재로는 의외로 가까운 나라인 노르웨이의 추리소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떠오르는데 이런 걸 보면 북유럽이라고 그들의 정서를 우리가 이해 못하리란 건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북유럽의 추리소설은 그들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 집필됐다는 해석이 있다. 복지 제도가 있음에도 범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점을 두고 제도에 무슨 빈틈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간과했던 부분이 있는지 반성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저주받은 피>도 그런 경향하고 아주 동떨어진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엔 나는 아이슬란드엔 성범죄가 없으리라 여겼던 것 같은데 그 막연한 편견엔 분명 선구적인 복지 제도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의 이미지가 분명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인구가 그렇게 적은데 범죄가 일어나봤자 얼마나 일어나겠느냐고 여긴 탓도 클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인구가 적다고 해서, 또 복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사람 본성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아무래도 아아이슬란드를 너무 우리나라와 별개의 정서를 가진 나라이리란 편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이미 작가의 작품을 세 번째로 접하는 내가 이런 편견을 아직도 갖고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어필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편견과 관련이 있을 터다. 아이슬란드라는 배경과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세계 여러 독자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고 그 기저엔 인간이 본질적으로 국적과는 상관없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깔렸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 유리열쇠상 수상, 영화화된 걸 보면 작가의 생각은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평범한 추리소설이란 생각은 여전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에를렌뒤르 형사가 내뿜는 분위기나 범인의 기구한 사연, 그리고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천인공노할 비극은 제법 강렬하단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작품의 준수한 만듦새에도 자꾸 평범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데엔 이러한 보편성을 의식했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런 요소 덕에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작품이나 아이슬란드 소설에 입문하기엔 꽤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엔 <저체온증>으로 입문하긴 했지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그토록 흥행하고 국내에도 가장 먼저 소개된 '해리 홀레' 시리즈 작품이란 걸 생각하면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도 <저주받은 피>부터 읽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더욱이 순서상 국내 출간된 시리즈 작품들 중 시간 순서상 가장 앞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제 내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목소리> 한 작품밖에 없다. 그 작품은 <무덤의 침묵>과 <저체온증> 사이에 나온 작품으로 알고 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지 않나 싶은데 내가 그 작품을 읽을 즈음엔 작품이 몇 권 더 소개됐으면 좋겠다. 국내에서의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의 입지를 생각하면 너무 큰 바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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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 - 콩나물 팔다 세상을 뜬 경제학사 ㅣ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3
최영숙 지음 / 가갸날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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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에서 접한 최영숙은 1930년대에 스톡홀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이란 점에서 내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에 봐도 시대를 앞선 인물인 최영숙은 귀국 당시 이런 재원이 나라 발전에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 기대돼 대중의 주목을 한껏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영숙이란 이름은 굉장히 낯설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귀국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요절해 역사 속에 그 이름을 제대로 아로새기지 못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새로읽기'라는 기획 아래 편간됐으며 책 속엔 생전에 최영숙이 집필한 글들과 그녀가 귀국했을 적과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사의 기사 등이 수록됐다. 구사하는 언어만 5개가 됐던 그녀치곤 살아생전에 남긴 글은 굉장히 적은 편인데 유학 생활 중에 꿈꿔온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그럴싸하게 실현해보기도 전에 숨이 다한 게 못내 아쉽다.


 책에 수록된 글들만으로 최영숙이 우리나라에 귀국하고 겪은 차별이나 역경, 당시 시대상은 느끼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유학 생활이나 귀국길에 인도에 들러 간디나 나이두와 만난 것, 그녀가 사랑했던 인도 남자와의 이야기도 단편적으로 접해 상상의 여지가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행보를 디테일하게 접하고 싶던 나로선 아쉬운 부분이었다. 본문의 글들이 나름 다양한 취지로 수록되긴 했지만 뭔가 했던 얘기 반복하는 느낌도 적잖았단 것도 마찬가지로 아쉬웠다.

 최영숙에 대한 자료가 매우 희박한 탓에 이 200쪽을 못 넘기는 결과물도 편집하는 입장에선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최영숙의 일생은 소설적인 접근을 동원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녀가 임신했던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면서 저속한 궁금증을 숨기지 않던 신문 기사 같은 태도만 아니라면 아예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일 듯하다. 최영숙 생전의 행보들이 워낙 범상치 않아서 상상을 자극시킨 만큼 만약 성사된다면 꽤 흥미진진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 고증만 잘 된다면 나쁘지 않을 텐데... 쉽진 않을 것 같다.


 만약 최영숙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유학 생활 당시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던 남성에게 조국으로 돌아가 발전에 이바지할 생각에 '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고 했던 그녀가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시대 탓에 재능을 펼칠 수 없었다는데 정도가 덜해졌을지언정 근본적인 면에선 요즘에도 같은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 그녀가 가슴에 품었을 비전이 궁금하다.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그녀를 비롯해 미처 꿈을 개화시키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에서도 배울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 국경따윈 개의치 않는 최영숙의 과감한 행동력과 외국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조국에 돌아온 패기 등은 지금도 울리는 바가 크다. 적어도 패기 부족한 요즘의 나를 채찍질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 환경은 그리 열악하지도 않고 목표도 명확한 만큼 늑장 좀 작작 부려야지. 거참, 요새는 뭘 읽어도 이런 감상만 남는 것 같다.;;



 p.s 글이 집필된 시기가 시기다 보니 문체가 옛스러우면서 독특하게 읽혔는데 많이 낯설었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매끄럽게 현대화하기도 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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