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 - 콩나물 팔다 세상을 뜬 경제학사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3
최영숙 지음 / 가갸날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7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에서 접한 최영숙은 1930년대에 스톡홀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이란 점에서 내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에 봐도 시대를 앞선 인물인 최영숙은 귀국 당시 이런 재원이 나라 발전에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 기대돼 대중의 주목을 한껏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영숙이란 이름은 굉장히 낯설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귀국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요절해 역사 속에 그 이름을 제대로 아로새기지 못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새로읽기'라는 기획 아래 편간됐으며 책 속엔 생전에 최영숙이 집필한 글들과 그녀가 귀국했을 적과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사의 기사 등이 수록됐다. 구사하는 언어만 5개가 됐던 그녀치곤 살아생전에 남긴 글은 굉장히 적은 편인데 유학 생활 중에 꿈꿔온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그럴싸하게 실현해보기도 전에 숨이 다한 게 못내 아쉽다.


 책에 수록된 글들만으로 최영숙이 우리나라에 귀국하고 겪은 차별이나 역경, 당시 시대상은 느끼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유학 생활이나 귀국길에 인도에 들러 간디나 나이두와 만난 것, 그녀가 사랑했던 인도 남자와의 이야기도 단편적으로 접해 상상의 여지가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행보를 디테일하게 접하고 싶던 나로선 아쉬운 부분이었다. 본문의 글들이 나름 다양한 취지로 수록되긴 했지만 뭔가 했던 얘기 반복하는 느낌도 적잖았단 것도 마찬가지로 아쉬웠다.

 최영숙에 대한 자료가 매우 희박한 탓에 이 200쪽을 못 넘기는 결과물도 편집하는 입장에선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최영숙의 일생은 소설적인 접근을 동원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녀가 임신했던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면서 저속한 궁금증을 숨기지 않던 신문 기사 같은 태도만 아니라면 아예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일 듯하다. 최영숙 생전의 행보들이 워낙 범상치 않아서 상상을 자극시킨 만큼 만약 성사된다면 꽤 흥미진진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 고증만 잘 된다면 나쁘지 않을 텐데... 쉽진 않을 것 같다.


 만약 최영숙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유학 생활 당시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던 남성에게 조국으로 돌아가 발전에 이바지할 생각에 '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고 했던 그녀가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시대 탓에 재능을 펼칠 수 없었다는데 정도가 덜해졌을지언정 근본적인 면에선 요즘에도 같은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 그녀가 가슴에 품었을 비전이 궁금하다.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그녀를 비롯해 미처 꿈을 개화시키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에서도 배울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 국경따윈 개의치 않는 최영숙의 과감한 행동력과 외국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조국에 돌아온 패기 등은 지금도 울리는 바가 크다. 적어도 패기 부족한 요즘의 나를 채찍질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 환경은 그리 열악하지도 않고 목표도 명확한 만큼 늑장 좀 작작 부려야지. 거참, 요새는 뭘 읽어도 이런 감상만 남는 것 같다.;;



 p.s 글이 집필된 시기가 시기다 보니 문체가 옛스러우면서 독특하게 읽혔는데 많이 낯설었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매끄럽게 현대화하기도 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