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8.3







 을씨년스럽고 상투적인 제목의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가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흔히 접하기 힘든 아이슬란드의 소설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한국 독자인 내게 있어서 그렇게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것에 놀라게 된다. 물론 아이슬란드식 인명과 지명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작가의 작품을 <저체온증>, <무덤의 침묵>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하는데 본의 아니게 시리즈를 정반대의 순서로 접하게 됐다. 원래대로라면 이 작품을 제일 먼저 접했어야 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의 개인사가 사건 자체와는 연관은 없지만 비중은 어마어마하기에 가급적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가 된다. 하긴 처음 <저체온증>의 책장을 펼치면서 설마 이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찾아가며 읽을 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일부 아이슬란드식 문화는 낯설지만 저자의 각주가 있어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가령 아이슬란드의 국토 면적이며 인구나 인구 밀도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이름을 짓는 문화 등을 딱히 선행 학습하지 않아도 됐던 건 다행이었다. 개중 에를렌뒤르 형사와 그의 동료들이 초반에 주기적으로 언급했던 '아이슬란드식 범죄'란 게 내 눈길을 끌어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에서 과연 추리소설적인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기도 해 적잖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런 질문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은 물론 다른 북유럽 추리소설, 흔히 '노르딕 누아르'라 불리는 추리소설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질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 문화권은 워낙에 인구 밀도도 낮고 범죄율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어떻고 범죄율이 어떻고 하는 건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목하는 요소일 뿐이다. 아무리 인구가 적고 복지 제도로 인해 범죄율이 현저히 적어도 극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하나도 다르지 않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번에 읽은 <저주받은 피>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었는데, 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어딘가 아이슬란드스런 맛은 떨어졌지만 이것이야말로 아이슬란드처럼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도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가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를 두고 '마치 아이슬란드의 가가 형사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두 캐릭터와 시리즈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아닌 사건 관계자 모두의 심리를 살펴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특히 닮았는데 차이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의 천재성과 더불어 인격도 묘사하며 이상적인 경찰의 모습을 그린 반면에 인드리다손은 에를렌뒤르를 천재적으로 묘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결점이 많은 인물로 그려 그의 행보에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소설과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국제 무대에서 적잖이 낯서리라고 여긴 것일까? 낮은 인구 밀도와 느슨한 수사 조직 덕분인지 조작이나 은폐처럼 뒷일따윈 생각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보는 게 '아이슬란드식 살인'이라는 에를렌뒤르와 동료 형사들의 발언은 작중 사건을 통해 철저히 부정당한다. 사건 현장엔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요상한 글귀가 남겨졌고 사망한 피해자의 과거는 역겹기 짝이 없어 형사들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가 과거에 일으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혹은 그의 자녀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의심되는데 당연히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수록 과거의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들춰내게 되므로 작중에선 여러모로 형사들의 '도덕적 역경'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식의 역전된 발상, 이른바 '죄 많은 피해자와 동정할 수밖에 없는 범인'은 '김전일'을 통해 이미 익숙한 테마였는데 작품의 무대가 아이슬란드라서 그런지 묘한 울림을 줬다.


 좋게 말하면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론 제목이 주는 인상대로 평범한 추리소설에 불과했다. 물론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그를 묘사하는 방식은 훌륭했다. 아까 히가시노 게이고와 잠시 비교했는데 그 작가와 비교하면 문체의 가독성은 떨어져도 깊이와 통찰은 그에 견줄 만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사실 이 깊이 있는 분위기 때문에 너무 무겁게 읽히는 감도 있지만 단순히 흥미 위주로 성폭행이란 범죄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 작가로서 좋은 자세였다. 성폭행이 낳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을 상상해낸 것도 마찬가지로 주목할 부분이다. 범인의 동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그렇기에 작품의 씁쓸함은 더욱 배가됐다. 비슷한 소재로는 의외로 가까운 나라인 노르웨이의 추리소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떠오르는데 이런 걸 보면 북유럽이라고 그들의 정서를 우리가 이해 못하리란 건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북유럽의 추리소설은 그들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 집필됐다는 해석이 있다. 복지 제도가 있음에도 범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점을 두고 제도에 무슨 빈틈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간과했던 부분이 있는지 반성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저주받은 피>도 그런 경향하고 아주 동떨어진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엔 나는 아이슬란드엔 성범죄가 없으리라 여겼던 것 같은데 그 막연한 편견엔 분명 선구적인 복지 제도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의 이미지가 분명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인구가 그렇게 적은데 범죄가 일어나봤자 얼마나 일어나겠느냐고 여긴 탓도 클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인구가 적다고 해서, 또 복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사람 본성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아무래도 아아이슬란드를 너무 우리나라와 별개의 정서를 가진 나라이리란 편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이미 작가의 작품을 세 번째로 접하는 내가 이런 편견을 아직도 갖고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어필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편견과 관련이 있을 터다. 아이슬란드라는 배경과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세계 여러 독자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고 그 기저엔 인간이 본질적으로 국적과는 상관없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깔렸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 유리열쇠상 수상, 영화화된 걸 보면 작가의 생각은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평범한 추리소설이란 생각은 여전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에를렌뒤르 형사가 내뿜는 분위기나 범인의 기구한 사연, 그리고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천인공노할 비극은 제법 강렬하단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작품의 준수한 만듦새에도 자꾸 평범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데엔 이러한 보편성을 의식했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런 요소 덕에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작품이나 아이슬란드 소설에 입문하기엔 꽤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엔 <저체온증>으로 입문하긴 했지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그토록 흥행하고 국내에도 가장 먼저 소개된 '해리 홀레' 시리즈 작품이란 걸 생각하면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도 <저주받은 피>부터 읽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더욱이 순서상 국내 출간된 시리즈 작품들 중 시간 순서상 가장 앞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제 내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목소리> 한 작품밖에 없다. 그 작품은 <무덤의 침묵>과 <저체온증> 사이에 나온 작품으로 알고 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지 않나 싶은데 내가 그 작품을 읽을 즈음엔 작품이 몇 권 더 소개됐으면 좋겠다. 국내에서의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의 입지를 생각하면 너무 큰 바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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