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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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나랑 여행 스타일이 대단히 잘 맞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돼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 가볼까 하고 얘기해본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 올 줄 알고 너무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그 친구가 비엔나 커피 컨셉의 카페 프랜차이즈 매니저로 일해서 그런지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던데 나도 호기심이 가 검색해보니 오스트리아도 안 알려져서 그렇지 꽤 괜찮은 여행지일 것 같았다. 보통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여행으로 묶여서 체코나 헝가리로 갈 때 들르는 곳 정도로 여겨지던데 -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와 헷갈리거나... - 그렇게 취급하기엔 막강한 문화적 유산이 많은 나라라는 게 내가 검색을 통해 받은 인상이었다.

 특히 클림트가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대우를 받는 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점이었다. 그동안 너무 뭉크한테만 관심을 가진 것 같아서 슬슬 다른 화가한테도 입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오스트리아에 관심도 생겼겠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어쨌든 클림트도 궁금해져 이 책을 펼치게 됐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속한다. 이 시리즈는 특유의 전문성 있는 내용과 빼곡히 수록된 사진 등 여러모로 고급진 컨셉을 자랑하는데 저번에 읽은 <뭉크>가 워낙에 괜찮아서 이번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아무래도 내가 클림트에 무지한 터라 <뭉크>를 읽을 때보단 흥미가 덜하긴 했지만, 클림트의 작품 활동을 그가 일평생을 살았던 도시인 빈의 특성과 연관을 지어 해석한 것과 시간순이 아닌 키워드에 따라 클림트의 생을 따라간 것, 그리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에피소드 등은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특히 이 초상화의 경우엔 내가 작년에 뉴욕 노이어 갤러리에 갔을 때 직접 본 작품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 그림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이 에피소드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참고로 그 초상화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노이에 갤러리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클림트의 일대기를 시간 순대로 따라가지 않은 건 약간 불친절한 과정이기도 했다. 일부 대표작만 알지 화가에 대한 선행 학습이 거의 전무했기에 약간 따라가기 벅찼던 측면이 없잖았다. 대놓고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클림트가 뭉크에 비해 비교적 승승장구했고 순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미술 그 자체를 감상하기보단 작품과 화가에 관련된 다양한 드라마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순전히 클림트의 작품의 테크닉적 부분을 살펴보는 전개는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어딘가 말이 반복된다 싶을 즈음엔 집중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클림트의 살펴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분리파와 급격한 화풍 변화가 모두 흥미롭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적은 내 입장에서 생경했다 뿐이지 평소 미술이나 클림트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더없이 충실한 구성의 책일 테니 내 개인적인 감상은 귀담아 듣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런 나한테도 빈과 클림트의 관계를 살펴본 책의 내용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단 걸 강조하고 싶다. 찬란했던 옛시절의 광취에서 벗어나지 못해 프랑스나 독일이 여러모로 진보를 거듭할 때 과거의 재현에 관심을 기울인 시대착오적인 빈, 그 빈의 분위기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됐는데 초반엔 주류에 편입하고자 비교적 평이한 그림을 그리던 클림트가 얼마 안 있어 철저하게 클림트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그릴 수 없는 작품을 그려낸 건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 다 분리파에 속했을 때 그려진 것인데, 이 '분리파'가 기존 예술계와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분리시키려는 취지에서 붙여진 이름인 걸 생각하면 클림트만큼 이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듯하다.

 클림트가 영리했던 건지 아니면 의외로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빈이지만 그만큼 클림트가 독보적이라 그런 건지 고흐나 뭉크가 수모를 겪은 것과 달리 클림트는 논란은 있을지언정 화가로서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클림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에 '황금'과 '장식'이 많아 너무 겉멋에 치중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 그리 정이 잘 안 갔는데 이렇게 일대기를 다 훑어보니 정이 안 간다는 이유로 폄하할 위인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는 독보적인 예술가였고 그 자신의 예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단 건 귀감이 될 만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화가의 삶과 드라마에만 주목한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은 뒤부터는 그림의 기법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속된 말로 'X손'의 소유자인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내게 거리감이 느껴졌던 화가들이 이제는 경이로운 동시에 어떤 화가나 크든 작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졌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삶은 아니었지만 화가로서의 명성에 있어서는 한이 서릴 만큼의 여한은 없어 보이는 클림트이기에 읽으면서 묘하게 힐링도 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신적인 화가가 그렇듯 클림트는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국민 화가로 칭해질 정도로 격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공감할 수 있던 내용의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생긴 김에' 읽은 게 아주 적절한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작년에 대충 구경하고 나온 감이 있는 노이에 갤러리도 다시 가고 싶어졌는데 지금 유럽이나 뉴욕이나 상황이 별로라서 그 날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정말 언젠가는 갈 생각인데... 몇 년은 기다릴 각오는 해야겠다. 그때까지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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