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ㅣ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9.6






 스포일러 대놓고 많음



 상당히 연극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소설로 특유의 몰입감 덕에 펼치면 그대로 결말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10년 전에 처음 읽을 당시엔 그랬다. 다시 읽은 지금은 그간 적잖은 작품을 접했기 때문인지 처음 읽었을 때처럼 신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엔터테인먼트 소설로는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연이어 터지는 반전이며 너무나 개성적인 캐릭터며, 심지어 무대가 확장되는 3부에선 원래부터 요상했던 이야기가 더욱 요상해지면서 코믹함과 스릴이 폭주해버렸다. 이 부분은 지금 봐도 놀랍다. 웃음과 섬뜩함을 이렇게까지 동시에 절묘하게 취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저자인 기노시타 한타는 본래 일본 영화계와 연극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라는데 그러한 경력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이를테면 한정된 공간에서의 진행이나 연극 대본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대사들은 저자를 소설가보단 극작가로 보이게 만든다. 물론 진짜 희곡과는 달리 인물들의 대사와 상황 이면의 심리 묘사도 일품이라 작중 상황이 앞뒤가 맞지 않음에도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지대했다. 허술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사부로 일당의 연극은 오가와 입장에선 그보다 현실감 넘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고, 일당 안에서 그나마 판단력이 있다고 여겨졌던 마키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니 그저 망상이 심한 호모;;에 불과했던 것 등 시점 분할을 활용한 스토리 텔링의 묘미를 제대로 선보인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끼리 갇혔다는 심플하고 식상할 수 있는 설정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탄생한 이 기묘한 코믹 서스펜스는 아마 소설가나 극작가 지망생이라면 부러움을 금치 못할 시나리오겠다. 근데 부러운 것에서 끝내야지, 무단으로 도용하면 안 될 일일 것이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대학로에서 오픈런 중인 한 연극이, 정확히 '코믹추리극'을 표방하는 어떤 연극이 이 작품과 상당히 유사한 플롯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우연히 그 연극을 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완전히 판박이였다.

 그 근거를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것, 호모 외양의 남자가 '신체를 만지면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 오늘 자살할 예정이라는 이상한 여자가 등장하는 것, 각자가 꺼림찍한 과거를 고백하는 것 , 알고 보니 주인공 빼고 다들 아는 사이였고 이 모든 게 함정이었단 것, 그 사실을 안 주인공을 일당이 일단 마취약을 이용해 잠재우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마취약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이라서 어처구니없게도 주인공을 죽여버린 것, 남편의 불륜 여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맡긴 주인공의 아내가 상술했던 '이상한 여자' 역할을 맡은 여자와 아는 사이였던 것, 결국 그 이상한 여자의 독자적인 계략에 의해 주인공이 죽었던 것 등... 오히려 다른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어쩌면 그 연극이 이 작품의 저자에게 정당하게 허락을 구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엔 플롯이 교묘하게 다르고 또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적이 있어서 과연 내가 말한 문제의 작품의 시나리오가 과연 합법적인 결과물인지 의심이 된다. 반대로 우연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보기엔 너무 판박이라서 순진하게 그런 가능성을 검토해보거나 하고 싶진 않다.

 무엇보다 내가 그 연극을 볼 때 소설의 제목 <악몽의 엘리베이터>를 포스터나 팜플렛에서 발견하지 못해서 과연 정당한 허락에 의한 2차 창작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 연극이 제법 흥했고 오랜 기간 공연해서 섣불리 제목을 언급하긴 그렇지만 아마 내가 봤을 땐 표절이 확실해 보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솔직히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인 눈 가리고 아웅이라...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야 할까?


 정작 소설 본편에 대한 얘기보단 표절 의혹이 드는 어떤 연극 얘기만 잔뜩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지 않기가 어려울 만큼 꼭 닮아서 부득이하게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매력적인 작품일수록 표절과 도작의 의혹이 강하게 든다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봤기에 지금 이렇게 내 안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이 의혹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혹시 <악몽의 엘리베이터>를 읽어봤고 그 연극이 궁금한 사람은 따로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나만 이런 의심이 드는 건지 궁금하다.



 p.s 소설과 연극 두 작품의 관계의 합법성을 떠나, 소설의 전개가 훨씬 깔끔하고 몰입도며 만듦새가 뛰어나니 둘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무조건 소설을 읽을 것을 강하게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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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일기 - 1등을 우대하지 않고 꼴찌를 차별하지 않는 '세계 최고 복지국가'의 빛과 그림자
나승위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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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스웨덴 일기>라는 심플한 제목의 이 책은 지난 번에 읽은 저자의 책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내용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저번에 읽은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는 스웨덴의 인문학적, 지리적 여행이었다면 요번 책에선 좀 더 일상적인 스웨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마냥 긍정적인 내용만이 아닌 어느 정도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부분도 짚어내고 있다는 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특히 이 부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데 평생 나고 자란 환경을 공유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저자와 나는 한국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곤 없지만 본문에서 끊이질 않는 스웨덴에서의 컬쳐 쇼크가 이렇게 공감이 가는 걸 보면 새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느껴졌다. 새삼스럽지만 저자의 스웨덴에서의 생활이 경이로웠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은 2년 전에 출간됐고 별 일이 없다면 저자는 계속 스웨덴에서 살고 있을 테지만, 요즘 근황은 어떨까? 알다시피 지금 스웨덴이 집단 면역으로 서서히 피를 보고 있으니...


 집단 면역을 택함으로써 복지 국가라는 기존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스웨덴이지만 그럼에도 배울 점이 여전히 많은 나라다. 방역 면에선 반면교사로 삼아야겠지만;; 적어도 복지나 성교육, 그리고 안전에 관해선 우리의 압도적인 롤모델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스웨덴이 왜 세계에서 운전 면허 취득하기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지 설명하는 첫 번째 장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서두였다. 각 나라의 교통 시스템이 생각 이상으로 천차만별이라 각각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렇게 운전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입장은 처음 접해봤다.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여정도 생각나 적잖이 흥미로웠다.

 안전에 대한 스웨덴의 철학은 이 나라 대표 자동차 브랜드 볼보에서 3점식 안전 벨트가 처음 개발됐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겠다. 이 벨트는 오늘날 기준으로 대단히 필수적인 안전 보호 장치인 만큼 개발한 당시에 특허를 신청해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안전을 위한 것이니 특허를 낼 수 없다'고 말한 점에서 안전은 특권이 아닌 기본이라는 스웨덴인들의 인식은 몇 번을 곱씹어도 놀랍기 그지없다. 아무튼 책에 실린 저자의 면허 취득하기까지의 여정은 역시 만만찮았는데 주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행되는 필기 시험이나 강의 시청의 퀄리티가 듣는 것만으로도 빡세서 내가 다 한숨이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 필기 시험은 우스갯소리로 한 번에 못 붙으면 가문의 수치라고 하지만 스웨덴의 시험 문제를 보면 한 번에 붙는 게 가문의 영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에 관한 스웨덴의 철학을 시작으로 익숙한 듯하면서도 여전히 놀라운 스웨덴의 복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북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많이 접해서 그런 걸까, 이전만큼 컬쳐쇼크를 느끼진 못했지만 저자의 글솜씨가 맛깔나기도 하고 또 실제로 거기 살고 있기에 담아낼 수 있는 현장감이 있기에 식상하게 읽히진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스웨덴 사회의 안 좋은 점이랄지, 결점에 대해서도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저자가 보통 공부를 한 게 아닌 듯 꽤나 전문적이라서 혀를 내둘렀다.

 아마 서양권 문화를 듣다 보면 한국인으로선 과연 저들의 부모 자식 관계가 그토록 독립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들 한 번씩 품을 것 같다.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계속 경제적으로 지원하거나 같이 살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나라 기준에서 학교에서 독립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거나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독립을 하지 않으면 월세를 받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 심지어 자녀들은 월세를 당연하다는 듯이 지불한다! - 한국인 입장에선 생경하게만 들린다. 이 독립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 자식은 물론이고 연인 관계, 부부 사이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혼은 그 문화권에선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데 아직도 이혼이나 한부모 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걸 떠올리면 스웨덴의 '쿨'한 사고방식은 자못 부러움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런 쿨한 얘기에 부러움이 드는 한편으로 막연하게나마 과연 그렇게 쿨해도 괜찮은지 하는 걱정도 들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물이라는데 혈연을 비롯한 가족 관계 안에서 개개인들이 독립된다면 그게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저자는 그 의문을 한 독거 노인이 사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발견된 뉴스를 통해 풀어나간다. 독립적인 개인의 영역이 소중해 당사자가 마음 먹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그렇기에 반대로 도움이 필요하거나 변고를 당했을 때 이를 감지할 만한 장치가 부족한 사회라는 분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스웨덴 입장에선 아무래도 억울한 내용일 테지만 최근 집단 면역을 택한 정부의 정책이나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낙관주의 및 독립에 대한 가치관이 이런 식으로 엇나갈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면에서 선진적인 나라도 없고 스웨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배울 점은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은 점 역시 존재한다. 내 나라에만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얘기도 들어보는 게 중요한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직접 발 붙이며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귀중하다. 저자가 책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모두 스웨덴 입장에서 이방인인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내용들이다. 스웨덴 현지인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것들도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냉정하게 분석해낸다. 물론 스웨덴이 괜히 스웨덴이 아니듯 대체로 좋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엔 그런 스웨덴도 완벽하진 않고 그 점은 2년 전에 이 책을 쓴 저자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스웨덴 이야기를 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내 나름대로 이 책을 펼치기 전에 한번 생각해봤다. 해외를 못 나가니까 이런 식으로 갈증을 해소하는 거라며 말은 하고 다녔지만 내가 왜 이런 책에 관심이 가고 읽으려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도 스웨덴은 여전히 선진국이라는 내 환상을 지키고 싶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렇게 선진국임에도 방역 대책은 왜 그 모양인지 비웃기 위해서 이러는지 자문해봤다.

 다 읽고 보니 내 감정은 꽤나 양가적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3월에 방문해봤을 스웨덴이란 나라에 대한 내 안에서의 복합적인 감정을 골고루 헤아려보기 위해 이 책을 펼친 것 같다. 만약 이 책이 찬양이나 비판, 한쪽으로 치우쳐졌더라면 스웨덴에 대한 나의 인상 역시 치우쳐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논조나 분석이 완벽하게 객관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박 겉 핥는 내용은 아닌 만큼 본질적인 스웨덴의 모습을 알아가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감상이 나왔을 텐데... 전에도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염병 덕분에 가치관이 변해가는 것도 곱씹어볼 만한 일이다.



 p.s 책의 마지막 장은 스웨덴 정치의 근대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중립을 표방하며 두 차례 세계전쟁의 화염에 휩쓸리지 않은 스웨덴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굉장히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지점인데, 다른 나라 입장에선 비겁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로 자국민을 지키는 데 성공한 스웨덴의 선택은 현재 국경의 문을 닫은 세계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문을 닫아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도 어느 쪽이건 존중할 만하다. 궁금한 건 미래의 평가다. 훗날 이 선택들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미래에서의 논쟁의 여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아마 그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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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쫌 아는 10대 - 인공지능, 네 정체를 밝혀라 ㅣ 과학 쫌 아는 십대 1
오승현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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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10대도 아니면서 뭐 이런 책을 다 읽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10대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펼쳐봤으면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지나치게 10대를 겨냥하는 듯한 문체가 거슬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꽤 읽은 만한 책일 것이므로. 특정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반드시 어려운 전공 도서로 입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놓고 입문용으로 쓴 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랬다.

 로봇,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등 수많은 용어의 차이를 잘 모르겠거나 인공지능의 실질적인 필요성이 와 닿지 않은 사람에겐 특히 권할 만한 책이었다. 나는 만화나 영화, 소설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졌는데 사람에 따라선 인공지능 이야기가 마냥 허황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되고자 하는 로봇에 관한 이야기나 반대로 로봇에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아직도 미래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여져지잖은가. 반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에게 반기를 들어 종래에 우릴 멸망시키리란 전개는 최초로 로봇이 등장한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에서부터 그려지는 등 인공지능과 관련된 미래는 예로부터 영 암울하게만 느껴져 존재 자체만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알파고의 등장은 그러한 반감을 더욱 부추기기까지 했는데 한편으론 더 이상 SF 속 로봇의 도래가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심어줬기에 인공지능에 있어 그보다 기념비적인 사건도 없을 듯하다. 이 책에서도 알파고 얘기가 나오는데 저자는 그를 통해 인공지능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기술해낸다. 알파고는 최고의 바둑 기사가 될 수 있지만 오직 바둑밖에 둘 줄 모른다. 그에 비해 인간은 알파고보다 바둑은 못 두지만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다른 다양한 일도 해낼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말인즉슨 인간과 인공지능이 이인삼각으로 뛰듯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임을 뜻하는데 모두가 아는 예시로 평균 이상의 통찰력을 선보인 저자의 필력이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의 순기능과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을 이 책은 간단한 예시를 통해 쉽고 빠른 이해를 도와준다. 자동차 자율주행 시스템의 이점을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편리함을 안겨주기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 왜 위험하고 어떤 점에서 불완전한가 하는 지적도 놓치지 않는 등 통찰력이나 시의성 면에서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유명한 인공지능 영화는 물론 실제 사례를 인용하는 것도 적절했다. 처음 보는 내용은 없었지만 <에이 아이>나 <바이센테니얼 맨>, <그녀>, 그리고 <터미네이터> 등 각 작품들에 담긴 담론은 모두 적확하게 짚어냈는데 이미 본 작품들임에도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맛깔나게 인용했다. 사실 위의 작품들이 워낙에 많이 인용돼서 질릴 법도 했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정말 보통이 아닌 작가였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관련 책도 많이 읽어서 그렇게 신선한 책은 아니었지만 문학을 제외한 인공지능 도서들이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생각하면 이 책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뭔가를 쉽게 전달하는 건 상상 이상의 재주를 요구하기 때문인데 이 책은 정말 막힘없이 해내기 때문이다. 10대를 위한 책이라곤 하지만 꼭 10대가 지나면 못 읽어줄 정도로 깊이가 얕은 책은 아니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10대를 위한 책이라고 깊이가 얕다는 건 근거도 없는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지식이란 건 사람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우지 않거나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지식이 이 세상에 태반이다. 그런 상황에서 10대를 위한 책을 읽는 게 대수도 아니며 오히려 그런 식으로 입문하는 게 더 효과적이리라. 비록 난 이 책으로 인공지능을 처음 접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내 눈에도 책의 전문성은 상상 이상이었으니 자신있게 추천해본다.

중요한 것은 뿌리가 아닐지 몰라. 어떻게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봐야 해. 위대한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야. 위대한 경험이 위대한 존재를 만들지. -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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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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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5







 이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 로봇은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비롯됐으며 그 말은 동명의 희곡에서 처음 고안된 용어다, 라는 말을 접하고 몇 년이 지난 다음인지 모르겠다. <로봇>은 - 원제는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다. - 정확히 100년 전인 1920년에 창작된 희곡으로 체코의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카렐 차페크에 의해 집필됐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거니와 특히 로봇, 인공지능이란 소재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오래 전에 집필된 지라 다소 투박한 구성에다 설정도 느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하나 고백을 하자면, 고전에 읽고서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거의 의례적으로 혁신적이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로봇>만큼 그 말을 진심으로 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로봇에 대한 담론이 A to Z까지 담겨졌던 것이다. 후에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그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익히 다뤄진 논쟁들이 이미 <로봇>에서 다뤄진 것들이란 게 - 그러고 보니 작중 로봇의 설정이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칸트를 연상시킨다. - 소름 돋는 일이었다. 로봇만큼 인간에 대해 돌아보기에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을 100년 전부터 시사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희곡답게 모든 전개를 대사로만 처리하느라 로봇을 묘사함에 있어 한계가 있던 건 분명 아쉬웠다. 인간의 모습을 갖췄으나 대놓고 영혼은 없다고 공장 직원들이 못을 박지만 헬레나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로봇들은 인간에게 반기를 들게 되고, 인간은 수세에 몰려 결국 멸망하고 만다는 게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로봇의 태동, 로봇의 변화, 로봇의 반란, 로봇의 지배까지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단편적인 대화로 전달되는 통에 극적인 면이 덜했다. 이건 내가 희곡을 불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이 작품의 경우엔 공연이 아닌 대본으로만 접해서 더욱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공연을 직접 봤으면 좋겠는데...

 캐릭터 구성이나 설정은 그런대로 적절했는데 서막에서 1부로 넘어갈 때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면서 헬레나가 느닷없이 도민과 결혼했다는 건 지금 봤을 땐 좀 어처구니 없는 전개로 비춰졌다. 남자가 구애했다고 그렇게 간단히 부부가 된다는 게 요즘 통념에선 여간 황당한 게 아니었지만... 헬레나를 세상 물정 모르고 무턱대고 로봇의 권리만 주장한다거나 인간성의 회복 운운하느라 일을 그르친다는 식으로 묘사한 걸 보면 그 당시 여성관이 정말 편협하긴 했다는 생각에 씁쓸하게 읽혔다. 그래도 비중이며 역할이며 상당히 의미 있는 캐릭터인데... 만약 오늘날에 공연한다면 이 부분을 현대적으로 손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작 그대로 공연했다간 공연히 논란만 낳을 수 있으므로.


 위에서도 말했지만 100년 전 작품이란 점이 무색하게 주제의식과 통찰력은 지금 읽어도 혁신적이었다. 인간의 외양을 갖췄지만 영혼이 없으므로 도구에 불과하다고 대놓고 하대를 받던 로봇들이 조금씩 인간적인 요소가 주입되자 바로 인간의 가장 안 좋은 부분인 폭력성을 배워 그대로 인간을 말살시킨다는 대목은 인공지능을 마주함에 있어서 우리가 꼭 염두에 둬야 할 반면교사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뿌린 씨앗이므로 우리에게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인데 원작자인 카렐 차페크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이 작품을 대단히 근원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며 집필했던 것 같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자와 피지배자,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이를테면 나와 타자 사이에 같음과 다름이 있고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를 어디까지 의식하고 상대를 대하겠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초반의 갈등은 로봇에게 영혼은 있다고 하는 헬레나와 그에 반박하는 공장측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헬레나는 근거 없이 너무 맹목적으로 로봇을 동정하는 반면에 공장측은 로봇을 철저히 상품으로 여기며 필요에 따른 조치가 아닌 이상 로봇에게 뭘 더 어떻게 대우할 생각 자체를 않는다. 둘 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가만 들어보면 사실 두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로봇을 완전히 인간으로 보긴 힘들지만 엄연히 인간의 외양을 띄고 있고 인공적이긴 해도 인간처럼 사고할 줄 알기에 덮어놓고 인간이 아니라고 보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초로 로봇이라 명명된 작중 로봇들은 실제로 우리가 로봇하면 떠올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신체를 가진 인공 생명체라서 이런 논란을 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만약 나중에 이러한 로봇이 우리 현실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유기체가 아닌 기계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데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성능이 우리의 상상을 상회한다는 건 더 이상 따로 언급해야 할 만큼 새삼스런 일이 아니므로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의 도래는 기정사실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단지 100% 인간과 같지 않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로봇을 배척한다면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 한들 결국 인간에게 앙심을 품게 되지 않을까?

 인공지능을 다룬 대부분의 SF, 디스토피아물은 위와 같은 상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카렐 차페크의 <로봇>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결말은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이 무엇이고 그렇다면 인간인들 로봇인들 다를 건 없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작중 로봇의 신체에 대한 설정이 워낙에 하이테크놀로지라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윤리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인간의 나쁜 점이 아닌 인간의 좋은 점을 체득한 서로 사랑하는 로봇 둘이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킨다면 과거의 인류는 잊혀지고 새로운 인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낙관적으로 말하자면 아마 그 새로운 인류들은 과거의 인류가 범한 잘못을 조금은 덜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린 결말의 이 희곡은 씁쓸하긴 해도 인류의 정의를 자문함으로써 제법 여운을 남기고 있다. 꽤 멋진 연출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고전을 넘어선 세련미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은 작품의 유명세가 많이 잊혀지기도 했고 -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생각보다 읽은 사람은 적은 걸 보면... - 읽은 사람들끼리는 역시 옛날 작품이라 할 만한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흔히 말하듯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라는 게 바로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체코 문학이라 하면 카프카의 <변신>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로봇>을 접하고 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체코의 문학들도 접하고 싶어졌다. 국내엔 체코의 작가라고 하면 카프카와 쿤데라가 유명한데 두 작가가 체코어가 아닌 각각 독일어, 프랑스어로 집필한 걸 생각하면 체코어로 집필 활동을 한 차페크야말로 체코인들에게 있어 가장 우러러볼 만한 작가일 듯하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국내에도 작가의 작품이 제법 소개됐던데 그 작품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제목만 봐도 재밌어 보이는 작품들이 많던데, 기대된다.

아, 도민,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만큼 낯선 것은 없다네. - 163p




흔히들 이야기하듯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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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ㅣ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9.2








 '어둠의 변호사'라는 시리즈 이름, <붉은 집 살인사건>이란 제목은 읽기 전엔 다소 낯간지러운 감이 있었지만 추리소설로써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고 나니 오히려 작가의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10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작품은 왜 도진기 작가가 한국 추리소설계의 절대강자라 불리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작가는 그 뒤에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는 물론 '진구' 시리즈를 비롯 많은 추리소설을 집필했는데 이렇게 내가 처음에 접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감동이 예전만 같진 않았다. 당장 고진과 유현 콤비의 매력이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잘 와 닿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이야기의 도입부도 묘하게 2% 부족할 뿐더러 고진이 남씨와 서씨 일가의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도 순전히 의뢰인의 조카가 너무 미인이라 그런 것도 없잖은 터라 독자에 따라선 되게 실없어 보일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진이란 캐릭터가 명색이 추리소설에서 탐정을 맡은 것치고 너무 헛다리만 짚는 것 같고, 그렇다고 변호사치곤 그쪽 분야로 두드러진 전문성을 드러내는 장면도 없어서 왜 굳이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게 했다. 물론 후반부에선 이 모든 의문과 불만을 모조리 만회해버리는데 이런 부분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의 아주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만해서 처음 읽었을 때 '와,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로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위에서 말한 불만이란 것들은 작품 전체적인 측면에선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작가의 글솜씨가 추리소설에 딱 맞게 속도감 있고 군더더기가 없는 등 무지하게 빨리 읽혀서 너무 밋밋한 거 아닌가 싶던 초반부를 금방 돌파할 수 있었다. 이윽고 도입부에서부터 품었던 고진의 긴장과 우려가 폭발하자 안 그래도 술술 읽히던 내용에 더욱 속도가 붙었는데 얼핏 보면 무난히 범인을 지목하고 해결이 될 듯했던 사건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후 고진은 미묘하게 알리바이를 갖추고 있던 용의자들, 짐작이 갈 듯 말 듯한 범인의 동기, 알리바이 조작은 물론이거니와 범인의 살해 방법조차 아리송했던 일련의 수수께끼들을 자신만의 함정 플레이로 다 빈틈없이 밝혀낸다.

 처음에 헛다리도 짚고 중반부에는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라며 지극히 탐정답게 거드름을 피우던 고진은 실로 '어둠의 변호사'란 이명에 걸맞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그게 참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니, 사건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편법을 동원해 본인이 아예 사형 집행인으로 나섰으니... 이 작품이 우리나라 법의 허점을 토로하는 비판적인 성격을 내세우고 있진 않지만 현직 법조인이 썼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법망을 넘나드는 탐정이 탄생해버렸는데 특히 이 작품에서의 사건을 다른 탐정 캐릭터가 맡았으면 어떨까 하고 막연하게 상상해보면 고진이 택한 방식은 확실히 이질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옛날 어디선가 읽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괜히 알량한 정의감에 악당을 구했다가 되려 뒤통수를 맞는' 전개가 영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 가치관이 제대로 녹아든 캐릭터이자 결말이었다고 본다.


 그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있었다. 한국 추리소설은 단지 한국 추리소설이란 이유로 외면당하는 것 같은데 한 번 편견을 버리고 책장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참 좋은 말이지만 작품을 못 썼다면 이 발언은 그저 발악에 불과했을 텐데 다행히도 작품 만듦새가 기대 이상이라 상당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발언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범인의 원격 살인 트릭은 정말 심플하면서도 기발해 두 번 접해도 놀라웠다. 사건의 이면을 너무 상상에 의존하며 추리했던 것이나 범인의 알리바이 트릭은 어째 구구절절한 감이 있었지만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던 사건이 이렇게나 본격 추리소설다운 사건으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이래저래 편견이 많이 깨졌다. 편견을 버리라는 작가의 말은 멋지게 작용한 셈이다. 이 말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통할 정도로 아직도 빛을 읽지 않은 만듦새란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을 읽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꾸준히 챙겨 보는 한국 추리소설가는 도진기 한 사람뿐인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추리소설의 위상이 비주류란 걸 생각하면 이 작가 한 명이라도 양질의 작품을 계속 집필한다는 건 참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가 시야가 좁고 편견이 아직도 강해서 다른 좋은 한국 추리소설가를 발견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편견을 버리라는 작가의 말은 작가 본인의 작품을 위한 말인 동시에 다른 동료 추리소설가들을 위한 말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이 출간된 당시만 하더라도 현직 판사였던 작가가 어느덧 고진처럼 변호사가 되는 등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나는 외면은 물론이고 내면은 얼마나 달라졌나 싶어 뜻밖에 반성을 좀 하게 됐다. 지금 보니까 고진이 알게 모르게 은근히 낡은 가치관의 소유자라는 게 딱 느껴질 정도면 정말 시간이 많이도 흐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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