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9.6






 스포일러 대놓고 많음



 상당히 연극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소설로 특유의 몰입감 덕에 펼치면 그대로 결말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10년 전에 처음 읽을 당시엔 그랬다. 다시 읽은 지금은 그간 적잖은 작품을 접했기 때문인지 처음 읽었을 때처럼 신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엔터테인먼트 소설로는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연이어 터지는 반전이며 너무나 개성적인 캐릭터며, 심지어 무대가 확장되는 3부에선 원래부터 요상했던 이야기가 더욱 요상해지면서 코믹함과 스릴이 폭주해버렸다. 이 부분은 지금 봐도 놀랍다. 웃음과 섬뜩함을 이렇게까지 동시에 절묘하게 취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저자인 기노시타 한타는 본래 일본 영화계와 연극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라는데 그러한 경력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이를테면 한정된 공간에서의 진행이나 연극 대본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대사들은 저자를 소설가보단 극작가로 보이게 만든다. 물론 진짜 희곡과는 달리 인물들의 대사와 상황 이면의 심리 묘사도 일품이라 작중 상황이 앞뒤가 맞지 않음에도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지대했다. 허술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사부로 일당의 연극은 오가와 입장에선 그보다 현실감 넘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고, 일당 안에서 그나마 판단력이 있다고 여겨졌던 마키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니 그저 망상이 심한 호모;;에 불과했던 것 등 시점 분할을 활용한 스토리 텔링의 묘미를 제대로 선보인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끼리 갇혔다는 심플하고 식상할 수 있는 설정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탄생한 이 기묘한 코믹 서스펜스는 아마 소설가나 극작가 지망생이라면 부러움을 금치 못할 시나리오겠다. 근데 부러운 것에서 끝내야지, 무단으로 도용하면 안 될 일일 것이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대학로에서 오픈런 중인 한 연극이, 정확히 '코믹추리극'을 표방하는 어떤 연극이 이 작품과 상당히 유사한 플롯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우연히 그 연극을 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완전히 판박이였다.

 그 근거를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것, 호모 외양의 남자가 '신체를 만지면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 오늘 자살할 예정이라는 이상한 여자가 등장하는 것, 각자가 꺼림찍한 과거를 고백하는 것 , 알고 보니 주인공 빼고 다들 아는 사이였고 이 모든 게 함정이었단 것, 그 사실을 안 주인공을 일당이 일단 마취약을 이용해 잠재우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마취약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이라서 어처구니없게도 주인공을 죽여버린 것, 남편의 불륜 여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맡긴 주인공의 아내가 상술했던 '이상한 여자' 역할을 맡은 여자와 아는 사이였던 것, 결국 그 이상한 여자의 독자적인 계략에 의해 주인공이 죽었던 것 등... 오히려 다른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어쩌면 그 연극이 이 작품의 저자에게 정당하게 허락을 구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엔 플롯이 교묘하게 다르고 또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적이 있어서 과연 내가 말한 문제의 작품의 시나리오가 과연 합법적인 결과물인지 의심이 된다. 반대로 우연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보기엔 너무 판박이라서 순진하게 그런 가능성을 검토해보거나 하고 싶진 않다.

 무엇보다 내가 그 연극을 볼 때 소설의 제목 <악몽의 엘리베이터>를 포스터나 팜플렛에서 발견하지 못해서 과연 정당한 허락에 의한 2차 창작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 연극이 제법 흥했고 오랜 기간 공연해서 섣불리 제목을 언급하긴 그렇지만 아마 내가 봤을 땐 표절이 확실해 보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솔직히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인 눈 가리고 아웅이라...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야 할까?


 정작 소설 본편에 대한 얘기보단 표절 의혹이 드는 어떤 연극 얘기만 잔뜩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지 않기가 어려울 만큼 꼭 닮아서 부득이하게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매력적인 작품일수록 표절과 도작의 의혹이 강하게 든다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봤기에 지금 이렇게 내 안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이 의혹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혹시 <악몽의 엘리베이터>를 읽어봤고 그 연극이 궁금한 사람은 따로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나만 이런 의심이 드는 건지 궁금하다.



 p.s 소설과 연극 두 작품의 관계의 합법성을 떠나, 소설의 전개가 훨씬 깔끔하고 몰입도며 만듦새가 뛰어나니 둘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무조건 소설을 읽을 것을 강하게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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