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일기 - 1등을 우대하지 않고 꼴찌를 차별하지 않는 '세계 최고 복지국가'의 빛과 그림자
나승위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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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스웨덴 일기>라는 심플한 제목의 이 책은 지난 번에 읽은 저자의 책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내용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저번에 읽은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는 스웨덴의 인문학적, 지리적 여행이었다면 요번 책에선 좀 더 일상적인 스웨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마냥 긍정적인 내용만이 아닌 어느 정도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부분도 짚어내고 있다는 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특히 이 부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데 평생 나고 자란 환경을 공유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저자와 나는 한국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곤 없지만 본문에서 끊이질 않는 스웨덴에서의 컬쳐 쇼크가 이렇게 공감이 가는 걸 보면 새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느껴졌다. 새삼스럽지만 저자의 스웨덴에서의 생활이 경이로웠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은 2년 전에 출간됐고 별 일이 없다면 저자는 계속 스웨덴에서 살고 있을 테지만, 요즘 근황은 어떨까? 알다시피 지금 스웨덴이 집단 면역으로 서서히 피를 보고 있으니...


 집단 면역을 택함으로써 복지 국가라는 기존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스웨덴이지만 그럼에도 배울 점이 여전히 많은 나라다. 방역 면에선 반면교사로 삼아야겠지만;; 적어도 복지나 성교육, 그리고 안전에 관해선 우리의 압도적인 롤모델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스웨덴이 왜 세계에서 운전 면허 취득하기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지 설명하는 첫 번째 장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서두였다. 각 나라의 교통 시스템이 생각 이상으로 천차만별이라 각각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렇게 운전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입장은 처음 접해봤다.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여정도 생각나 적잖이 흥미로웠다.

 안전에 대한 스웨덴의 철학은 이 나라 대표 자동차 브랜드 볼보에서 3점식 안전 벨트가 처음 개발됐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겠다. 이 벨트는 오늘날 기준으로 대단히 필수적인 안전 보호 장치인 만큼 개발한 당시에 특허를 신청해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안전을 위한 것이니 특허를 낼 수 없다'고 말한 점에서 안전은 특권이 아닌 기본이라는 스웨덴인들의 인식은 몇 번을 곱씹어도 놀랍기 그지없다. 아무튼 책에 실린 저자의 면허 취득하기까지의 여정은 역시 만만찮았는데 주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행되는 필기 시험이나 강의 시청의 퀄리티가 듣는 것만으로도 빡세서 내가 다 한숨이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 필기 시험은 우스갯소리로 한 번에 못 붙으면 가문의 수치라고 하지만 스웨덴의 시험 문제를 보면 한 번에 붙는 게 가문의 영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에 관한 스웨덴의 철학을 시작으로 익숙한 듯하면서도 여전히 놀라운 스웨덴의 복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북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많이 접해서 그런 걸까, 이전만큼 컬쳐쇼크를 느끼진 못했지만 저자의 글솜씨가 맛깔나기도 하고 또 실제로 거기 살고 있기에 담아낼 수 있는 현장감이 있기에 식상하게 읽히진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스웨덴 사회의 안 좋은 점이랄지, 결점에 대해서도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저자가 보통 공부를 한 게 아닌 듯 꽤나 전문적이라서 혀를 내둘렀다.

 아마 서양권 문화를 듣다 보면 한국인으로선 과연 저들의 부모 자식 관계가 그토록 독립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들 한 번씩 품을 것 같다.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계속 경제적으로 지원하거나 같이 살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나라 기준에서 학교에서 독립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거나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독립을 하지 않으면 월세를 받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 심지어 자녀들은 월세를 당연하다는 듯이 지불한다! - 한국인 입장에선 생경하게만 들린다. 이 독립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 자식은 물론이고 연인 관계, 부부 사이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혼은 그 문화권에선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데 아직도 이혼이나 한부모 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걸 떠올리면 스웨덴의 '쿨'한 사고방식은 자못 부러움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런 쿨한 얘기에 부러움이 드는 한편으로 막연하게나마 과연 그렇게 쿨해도 괜찮은지 하는 걱정도 들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물이라는데 혈연을 비롯한 가족 관계 안에서 개개인들이 독립된다면 그게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저자는 그 의문을 한 독거 노인이 사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발견된 뉴스를 통해 풀어나간다. 독립적인 개인의 영역이 소중해 당사자가 마음 먹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그렇기에 반대로 도움이 필요하거나 변고를 당했을 때 이를 감지할 만한 장치가 부족한 사회라는 분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스웨덴 입장에선 아무래도 억울한 내용일 테지만 최근 집단 면역을 택한 정부의 정책이나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낙관주의 및 독립에 대한 가치관이 이런 식으로 엇나갈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면에서 선진적인 나라도 없고 스웨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배울 점은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은 점 역시 존재한다. 내 나라에만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얘기도 들어보는 게 중요한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직접 발 붙이며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귀중하다. 저자가 책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모두 스웨덴 입장에서 이방인인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내용들이다. 스웨덴 현지인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것들도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냉정하게 분석해낸다. 물론 스웨덴이 괜히 스웨덴이 아니듯 대체로 좋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엔 그런 스웨덴도 완벽하진 않고 그 점은 2년 전에 이 책을 쓴 저자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스웨덴 이야기를 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내 나름대로 이 책을 펼치기 전에 한번 생각해봤다. 해외를 못 나가니까 이런 식으로 갈증을 해소하는 거라며 말은 하고 다녔지만 내가 왜 이런 책에 관심이 가고 읽으려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도 스웨덴은 여전히 선진국이라는 내 환상을 지키고 싶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렇게 선진국임에도 방역 대책은 왜 그 모양인지 비웃기 위해서 이러는지 자문해봤다.

 다 읽고 보니 내 감정은 꽤나 양가적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3월에 방문해봤을 스웨덴이란 나라에 대한 내 안에서의 복합적인 감정을 골고루 헤아려보기 위해 이 책을 펼친 것 같다. 만약 이 책이 찬양이나 비판, 한쪽으로 치우쳐졌더라면 스웨덴에 대한 나의 인상 역시 치우쳐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논조나 분석이 완벽하게 객관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박 겉 핥는 내용은 아닌 만큼 본질적인 스웨덴의 모습을 알아가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감상이 나왔을 텐데... 전에도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염병 덕분에 가치관이 변해가는 것도 곱씹어볼 만한 일이다.



 p.s 책의 마지막 장은 스웨덴 정치의 근대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중립을 표방하며 두 차례 세계전쟁의 화염에 휩쓸리지 않은 스웨덴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굉장히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지점인데, 다른 나라 입장에선 비겁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로 자국민을 지키는 데 성공한 스웨덴의 선택은 현재 국경의 문을 닫은 세계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문을 닫아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도 어느 쪽이건 존중할 만하다. 궁금한 건 미래의 평가다. 훗날 이 선택들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미래에서의 논쟁의 여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아마 그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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