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8.3







 부모 자식 관계란 생각만큼 순탄하고 알기 쉬운 관계가 아닌 애증의 관계라는 말에 과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까. 남들은 부모가 있는 것만으로 복에 겨운 줄 알라고 하겠지만 한 발작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가족이고 뭐고 자시고 간에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대개의 가정이 그런 위태로운 관계 속에 처했는데, 방송이나 여타 매체에선 그런 날선 모습은 최대한 순화시킨 채 내보낼 뿐이라고 생각한다. 동화처럼 바람직한 가족상으로 세상 모든 가족을 바라보기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의외로 상식따윈 가볍게 상회하는 이상한 사람이 참 많아서 말이다.

 이 작품에는 일견 불효녀로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홀어머니인 자신의 친모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졌는데 응급실에 들어가 상태가 어떤지, 치료 가능성이 어떤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현실 도피긴 한데 주인공의 모습은 그보다도 의문스러운 구석이 몇 가지 더 있다. 주인공 친구들이 어머니의 생사를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넌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정작 당사자는 희로애락이 마비된 듯 떨떠름하게 반응한다. 그보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코마 상태인 것보다 자신의 떨떠름한 반응에 더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나름대로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정작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던 일들, 가령 일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것에 의례적으로도 미안해하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당당하게 구는 태도라든가 함몰 유두 때문에 젖을 먹이지 못했다든가 하는 이유 등 정말 자질구레한 이유들을 열거하며 자신이 지금 엄마로부터 도피하려는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게 뭔 돼먹지 못한 경우인가 싶지만 난 은근히 공감이 갔다. 물론 주인공의 방황하는 전개나 명확하지 않은 결말은 답답했지만 방황의 내용 자체는 작가가 소신껏 솔직하게 잘 적어냈다고 생각했다. 한 집에서 얼굴 마주보고 사는 사람들끼리 큰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점을 찾지만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물러서지 않아 괜히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이 대표적일 테고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의 차이는 오히려 사소하기에 더 눈에 밟힌다는 게 꼭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도 비슷한 문제로 부모님과 언성을 높인 적이 있는데 한 번 기분이 상하면 속으로 극단적인 저주도 퍼붓는 경우가 적잖았다. 만약 그렇게 사이가 소원해진 직후에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더라면 50%의 확률로 언성을 높였던 것을 뉘우치겠지만 나머지 50%의 확률로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끔찍한 얘기지만 선한 본성 못지않게 악한 본성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 작품의 본편이나 과테말라의 호세 이야기는 부모 자식이라는 애증의 관계를 진솔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고도 잘 그려냈다고 본다. 간혹 너무 진솔한 얘기들은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불편한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품은 공감이 갈 정도로 진솔하면서도 마지막 선인 자식의 도리라는 걸 긍정해 다 읽고서 따뜻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이를 통해 부모 자식 관계란 붙어 사는 이상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그 과정들로부터 도피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소중함 내지는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고서 사이가 돈독해지며 거기서 뜻밖에 자아성찰도 하게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확하게 결말이 나지 않아 작가가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결판난 것 없이 모호하게 처리된 결말 덕에 더 나은 결말, 이를테면 기적을 상상하게 돼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서두를 장식하는 과테말라의 호세 이야기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어 읽는 맛이 남달랐고 남을 웃기는 재능이 딱히 없는 코미디언 지망생이라는 주인공의 설정도 특이하고 주인공의 친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되는 '초코'와 '딸기'라는 특이한 별칭의 캐릭터들, 엄마의 동료 전 선생도 은근 개성적인 캐릭터였는데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좀 밋밋한 이야기일지언정 캐릭터들이 주는 흡입력은 상당한 작품이라 느껴졌다. 특히 오묘한 과거사를 가진 초코의 등장은 다소 우울한 분위기가 팽배했던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다면 안 좋은 결말에도 끄떡없으리란 작가의 철학이 있기에 초코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 것 같다.

 작가의 후기를 읽어보니 이 작품이 제법 자전적으로 집필된 모양이던데 그런 만큼 작중의 캐릭터들이 뜬금없이 등장했더라도 작가 본인에겐 정말 잊히지 않는 중요한 사람들이라 작품 속에 녹여낸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여간 그놈의 인간애 덕에 이래저래 호감이 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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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5.5







 <기암성>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서 <813>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스케일도 무지막지하게 크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상당히 많으며 각자 개성이 있다. 전지전능한 괴도 신사 뤼팽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만 뤼팽의 적수일 뿐 실상은 뤼팽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 가니마르와 가니마르 못지않게 뤼팽에게 휘둘리는 홈스, 그리고 요번에 새로 등장하는 소년 탐정 이지도르 보트를레 등 흥미를 끄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몇몇 무리수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 프랑스 역사에 흥미가 있다거나 사전지식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이 작품은 황당하고 지루한 작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읽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뤼팽이 너무 전지전능하고 위기다운 위기에 처하지 않는 게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탐정이 노력해서 밝혀낸 줄 알았던 진실과 반전들이 사실 모두 다 뤼팽이 짜놓은 판에 장기말처럼 움직인 것일 뿐, 결국에 승리하는 건 뤼팽이라는 식의 전개는 너무 뻔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뤼팽이란 캐릭터가 100년 뒤 독자에게도 유효한 매력이 없었더라면 실로 비호감인 전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이야기의 주역인 이지도르 보트를레마저 별 매력이 없었다면 완독을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비록 뤼팽이 짜놓은 판의 장기말에 불과했을지언정 그 순진무구하고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소년 탐정의 존재감은 이번 작품에 있어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가히 신의 한 수라 불러도 모자랄 정도였다.


 작가가 전작인 <뤼팽 대 홈스의 대결>에서 홈스를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그린것 때문에 독자들한테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은 저번 작품마저 차라리 낫다고 여겨질 정도로 홈스가 치졸하게 그려져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셜로키언이 아닌 나도 이건 좀 아닌데 싶었는데, 전작에서도 홈스가 뤼팽에게 휘둘리긴 했어도 이야기 자체에 결함은 없어서 그냥 이름만 같은 영국 탐정이겠거니 하고 넘아갈 수 있던 반면 이번 작품은 홈스의 등장 때문에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괜한 등장이란 생각밖엔 안 들었다. 모리스 르블랑이 홈스를 너무 의식해서 뤼팽이란 정반대격인 캐릭터를 만든 것도 좋고 둘을 대결시키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처럼 홈스가 등장함으로 인해 완성도에 영향이 가니 이쯤 되면 홈스에 대한 작가의 견제가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홈스의 개입 여부와는 상관없이 씁쓸하게 맺어진 결말은 나름대로 여운이 남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뤼팽이 세상만사 자신의 뜻대로 풀리는 일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좀 짓궂긴 해도 인과응보라는 감상이 나왔다. 뤼팽이 의적이긴 하지만 조직 단위로 움직이고 때론 납치와 협박도 서슴지 않는 요번 작품의 행보를 통해 뤼팽 역시 지금보다 더욱 타락할 여지가 있는 흔하디 흔한 범죄자란 인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머와 낭만, 다재다능한 솜씨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이젠 더 이상, 적어도 이 작품에 한해선 그가 의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지금의 내게 있어 뤼팽의 이야기는 한 편의 길티 플레져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여성이라도 인과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라도 자신에게 반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의 소유자, 자신이 훔치고 싶은 모든 것을 반드시 쟁취해내려는 행동력과 전지전능함 등 뤼팽은 황당무계하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선망을 유도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유독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자기 마음대로 은퇴를 결심하고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약올리며 장난감 취급하다 최후에 크게 한 방 먹는 장면에선 별다른 동정심도 들지 않았는데, 뤼팽이 아무리 애써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결국엔 범죄자라고 작가가 선을 긋는 것 같아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예전엔 뤼팽이 독특한 정의관을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지금 와선 기상천외한 활극을 일삼는 범죄자로 여겨지는 게 신기했다. 내가 이제는 뤼팽 같은 작자에게 공감을 못할 정도로 변했다는 깨달음이 묘한 느낌을 줬다. 예전엔 참 좋아한 캐릭터였는데... 내 동심이 이미 손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버린 것 같아 참 시원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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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
최태섭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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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가급적 선입견 없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평점이 낮은 페미니즘 도서는 읽기 전부터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법이다. 차라리 평점이 아에 2~3점대로 확 낮으면 또 모르겠는데 애매하게 6점대에 있어서 굉장히 편향적인 논리력으로 중무장한 책이 아닐까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책의 서문이 너무나 술술 읽히고 또 독특한 맛이 있어 뒷내용도 궁금해서 마저 읽어내려갔다.

 이 책의 주된 논지 두 가지를 살펴보자면 남자들끼리도 의견을 합치시키지 못하는 개판 5분 전의 팀워크, 남자들의 가부장적 사고는 기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에 대해 얘기할 때 상당히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고 후자에 대해선 사뭇 동정적인 어투로 논리를 풀어냈는데 어느 쪽으로든 남성 입장에서 썩 달갑게 들릴 어투는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 정말로 달갑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단지 어투 때문만이 아니라 내용이 대부분 정곡을 찌르는 것들이기 때문이리라 본다. 아마 애매한 평점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치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곡을 찔렸다고 점수로 보복하다니.

 

 저자가 전개는 논리의 밀도며 사전 조사, 인용의 출처 등은 상당히 묵직했다. 조선시대부터 살펴본 한국 남자들의 우울한 자화상, 출처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의 근원을 이렇게까지 역사적으로 훑어보리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저자 스스로 인식한 문제에 대해 제법 전문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어 그 노력이 가상했다. 일부 작위적인 해석도 없지않았던 것 같지만 이만하면 인정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정확히는 2010년대를 배경으로 둔 작가의 통찰에는 날카로운 구석이 부족했다. 메갈리아에 왜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분노했는지에 관해선 제법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저자는 해석만 했을 뿐 결정적으로 본인의 생각은 명확히 털어놓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책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의견 합치를 보이지 못하는 남자들 못지않게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다양한 젠더 이슈에 관해 의견 합치를 하지 못하고 판도라의 상자인 양 경원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명확하게 이건 좋고 나쁘다고 말해버리면 후폭풍이 상당할 테니 저자는 최대한 세련되고 안전하게 남성 독자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결말을 맺었는데, 개인적으로 끝에 가서 소극적인 태도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말만 그럴싸하지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분위기는 2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내 시점에선 비웃음거리라기 보단 지극히 당연한 모습으로 여겨졌다. 결국 페미니스트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정답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 그저 끊임없이 논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하단 것을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때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철학이 아닌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선 페미니즘이 미래로 이끄는 계단일지언정 미래 그 자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열거하고 그 이유들이 매우 그럴싸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었는데 그 행위마저 대의로 정당화하려고 들면 페미니즘이든 뭐든그 철학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한국, 남자> 역시 요즘의 내게 있어 은근히 편향된 구석이 없잖은 책이었다. 2년 전에 출간된 남성 저자의 페미니즘 도서마저 편향적으로 읽히다니 유감스럽다. 역시 공동 저자가 참여한 책만이 답인가. 정말로 가능하다면 서로 반대되는 성향의 저자끼리 대담을 하는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책이 엄청 두꺼워지겠지만 그만큼 독자로서 유익한 내용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끝에 가선 아쉬웠지만, 작가가 본인의 계획과 포부에 맞게 한국 남성의 기원을 훑어 자신의 논리, 한국 남성의 편향된 가치관은 상당 부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된 것이란 주장을 제법 자세하게 전개시킨 점 때문에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책이다. 현대에 이르러선 인터넷 문화와 접목돼 더욱 지능적이고 적나라해진 여성 혐오의 양상을 세밀하게 분석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대부분 팩트에 근거했으리란 신뢰감을 들게 한 것도 괄목할 만한 부분이다. 젠더 이슈에 관해 정보량과 공부한 시간으로 따지면 이 작가하고 견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은 짧은 분량에도 글이 밀도 있으며 가독성도 좋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읽은 페미니즘 도서들 중엔 논리는 뛰어나지만 막판엔 감성에 호소하는 등 저자의 필력이 불안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책의 경우 후반에 급발진한 감이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인 필력이 출중해 이 작가가 쓴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페미니즘 도서도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까지 들게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약간의 아쉬운 점은 차치할 만큼 흡입력 있는 필력을 선보인 만큼 저자가 쓴 다른 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특권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역)차별로 인식하곤 한다. 오로지 내 눈앞의 풍경만이 진실이다. 그 속에서 남자들은 자기 연민과 정당성을 주조해낸다. 이 남자들은 기만자들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자 하는 것을 믿고 있는 이들이다. - 16p




동등한 주체이자 인간이자 동료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성별화되고, 육화되고, 이념화되고, 비하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남자들에게 가르쳐왔다. 남자들은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존해줄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이상한 성인식을 치러왔고,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서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들이다. -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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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 그리핀, 위기일발 ㅣ 미스터리랜드 3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김미령 옮김, 모토 히데야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9.1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진 노리즈키 린타로가 비교적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쓴 추리소설. 이 작품이 속한 '미스터리랜드' 시리즈는 분명 일본 메이저 출판사 고단샤에서 저연령층의 독자를 위한 추리소설을 펴내고 싶다는 취지에서 창설된 시리즈일 텐데,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 특유의 논리적인 전개 때문에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음에도 기존 작풍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일단 표면적으로 괴도의 유쾌한 활극을 내세우는 작품이지만, 타란티노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 그의 영화가 액션 영화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연극 같은 연출에 당황하는 것처럼 이 작품도 정작 괴도의 활극보다 정적인 추리에 더 눈길이 가서 이럴 거면 작정하고 성인 독자를 대상의 추리소설로 쓰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표지의 귀여운 일러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 생기겠으나 이야기의 수위 자체는 제법 높은 편이다. 선정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서로를 속이는 것에 혈안이 되다시피 한 요원들의 민낯과 가상의 국가 보코논의 근대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작가의 여느 작품 못지않게 인간의 악의를 가감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일러스트는 귀여워서 심히 괴리감이 들었는데... 특히 작중에서 미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묘하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는 것에선 오싹함까지 전해졌다.


 그나마 구색을 갖추는 차원에서 전형적인 의적 캐릭터인 그리핀과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정한 흑막의 목적이 꽤나 유치한 데가 있다는 것에서 한 편의 동화 같은 느낌을 연출하긴 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유치하게 느껴졌던 동시에 그 인물의 일그러진 심리가 오싹함을 자극하기도 해 -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까... - 전반적으로 어둡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괴도 그리핀이란 캐릭터가 논리력이 우수한 것에 비해 괴도다운 신비로운 능력이 전무해 위기 상황에서 은근 허당처럼 당하고 마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도 작가 나름대로 클리셰를 비튼 결과인 것 같아 이쯤 되면 정말로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집필한 작품인 것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아니면 내가 저연령층 독자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거고 작가는 제대로 겨냥해서 썼던 걸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도 초반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서사와 밑밥 투척 때문에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중반부터는 액션도 많이 나오고 논리적인 추리 장면이 촘촘하게 전개돼서 탄력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도감 있는 전개는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기에 작가가 신경썼던 부분 같은데, 의외로 빠른 전개가 주인공의 추리 장면하고 밸런스가 나쁘지 않아 작가에게 있어 '미스터리랜드' 시리즈에 참여한 게 필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간 대놓고 길고 느릿하고 무거운 작품을 쓴다는 이미지를 탈피할 만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겉면과 달리 성인 취향의 요소가 물씬 들어간 작품이 탄생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도 잘 추구했다고 생각됐다. 그런 의미에서 대상 독자가 애매하다는 건 단점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뭐, 이렇게 후기를 쓰는 나부터가 성인 독자이니 그게 단점으로 느껴질 리가 없지.


 작가의 작품이 신간이 출간되지 않아서 옛날에 읽은 작품을 찾아 읽고 있는 실정인데, <요리코를 위해> 개정판도 좋지만 신간 소식도 들렸으면 좋겠다. 과작인 것치고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어 애가 타는데... 작가의 최신작도 좋지만 데뷔작을 비롯한 옛날 작품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항상 거론되는 작품들의 내용이 지금으로선 제일 궁금하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 나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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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8.7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젊은 청춘인 주인공 철수의 신세를 고장이 잦은 가전제품으로 대치시킨 소설이다. 흡사 매뉴얼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데 철수의 인생과 미래를 성실하게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변호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독특하면서 알기 쉬운 비유로 가득찬 한 편의 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은 5년 전에 군대를 갓 전역한 내게 있어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읽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읽으니 전에는 감탄하며 읽었던 부분들이 지금은 식상하고 공허하게 다가왔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좀 별로라서, 5년 전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옅어진 상태라 이 작품이 별 감흥이 없게 읽힌 것 같다.

 매뉴얼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문체와 개성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일단 처음 읽었을 땐 신선했던 특징이 두 번째 접할 때는 딱 중언부언 그 이상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적인 묘사긴 했지만 다시 읽을 때도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철수의 오작동에 대한 변호를 위해 '세탁기한테 왜 탈수가 안 되냐고 따지는 격'이라는 식의 변호가 번번이 들어가 금방 지겨워졌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과 비슷하게 이 작품의 주인공 철수도 대다수의 독자들의 공감을 살 만한 행보를 보이긴 하지만 그 공감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자기 일'로 동일시하게끔 만들어주는 서사는 부실한 편이라 그 점이 아쉬웠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작품이 시처럼 읽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아쉬움 때문인 듯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있을지언정 물이 흐르는 듯한 서사가 부족했다. 이러니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겹고 어떻고를 떠나 매뉴얼에 빙자해 철수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저의는 높이 살 만했다. 모든 사람한테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느라 사람들의 다양한 가능성이 미처 발현되지 못한다는 작가의 웅변은 무척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 개인을 연령대에 따라 이때는 이래야 하고, 요때는 요래야 하고, 저때는 저래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단 걸 떠올리면 철수를 가전제품에 비유한 건 너무나 적절했다. 너무나 보편적인 이름을 가진 철수가 그 이름에 걸맞는 보편성을 갖추긴커녕 오히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자 부모를 비롯한 누나, 선생, 그녀들, 군대 조교와 회사 면접관들이 한숨을 쉬면서 철수를 오작동 투성이의 물건 취급하는 묘사는 적절하면 적절했지 결코 과한 비유가 아니었다.

 소설은 철수가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일단락 짓고 누군가 이 사용 설명서를 토대로 자신을 올바로 사용해주길 고대하다가, 문득 그 설명서를 자신이 제일 먼저 읽어야 함을 깨닫는다는, 다소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얼렁뚱땅 결말이 맺어진다. 조금 넘겨 짚자면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따뜻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얼렁뚱땅 결말이 지어졌다는 불만이 모조리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결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비록 소설이란 게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긴 하나 후반부에 '주의하기' 파트에서 철수가 누가 어떻게 바라봐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오작동을 일으켰던 장면을 상기해보면 - 예를 들면 느닷없이 컵을 바닥에 던지는 장면 - 단순히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완성해서 그걸 자신부터 먼저 읽기로 하자는 깨닫는다고 결말이 맺어진다는 것은 너무 막연하게 희망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이 작품이 10년 전에 집필된 소설이고 그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청춘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더 비관적이게 됐는지 가늠해보면 위와 같은 희망적인 결말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와 닿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철수와 같은 나이대에 이른 내 입장에선 사뭇 비관적으로 여겨진다. 내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쓴맛을 많이 맛보며 살아온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작성한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는 것이 고작 자기 위안에 불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르진 않다.

 분명 청춘의 우울함을 가감없이 묘파한 날카로운 작품임에도, 결말이 상대적으로 무른 편이라서 도리어 공허함만 커졌다. 어쩌면 다른 무엇도 아닌 청춘과 취업을 중심 소재로 다룬 만큼 유독 희망적인 결말에 반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문체나 묘사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과 상관없이 결말에 이르러선 보편적인 허무함이 남을 수 있다고 하면 말이 너무 심한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내 시점에선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고 막막함이 드리워진 터라 이 작품이 이전처럼 마냥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는 작품의 문체가 식상하게 읽힌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씁쓸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384388731

 이 포스팅은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쓴 것이다. 두 글의 온도차가 너무 다르다...

사용 설명서가 완성되어 갈수록 철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읽고서도 엄마와 아버지, 누나가 철수를 선택했을까. 그녀들이나 친구들, 또 면접관들은 어땠을까. 이걸 읽고도 철수를 사용할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사용 설명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철수를 선택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철수는, 과연 철수는, 철수를 선택했을까. - 147p




주의 사항은 점점 늘어 갔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읽지 않았고 제품의 오작동도 더욱 잦아졌다. 사용 설명서는 좀 더 많은 주의 사항으로 몸을 불릴 테지만, 사용자는 그럴수록 읽는 게 더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으니까. 사실 그게 그거니까. 그리고 그게 그거 아닌 제품이 시중에 유통될 리도 없으니까. - 202p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란 것을.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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