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8.3







 부모 자식 관계란 생각만큼 순탄하고 알기 쉬운 관계가 아닌 애증의 관계라는 말에 과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까. 남들은 부모가 있는 것만으로 복에 겨운 줄 알라고 하겠지만 한 발작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가족이고 뭐고 자시고 간에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대개의 가정이 그런 위태로운 관계 속에 처했는데, 방송이나 여타 매체에선 그런 날선 모습은 최대한 순화시킨 채 내보낼 뿐이라고 생각한다. 동화처럼 바람직한 가족상으로 세상 모든 가족을 바라보기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의외로 상식따윈 가볍게 상회하는 이상한 사람이 참 많아서 말이다.

 이 작품에는 일견 불효녀로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홀어머니인 자신의 친모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졌는데 응급실에 들어가 상태가 어떤지, 치료 가능성이 어떤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현실 도피긴 한데 주인공의 모습은 그보다도 의문스러운 구석이 몇 가지 더 있다. 주인공 친구들이 어머니의 생사를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넌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정작 당사자는 희로애락이 마비된 듯 떨떠름하게 반응한다. 그보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코마 상태인 것보다 자신의 떨떠름한 반응에 더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나름대로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정작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던 일들, 가령 일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것에 의례적으로도 미안해하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당당하게 구는 태도라든가 함몰 유두 때문에 젖을 먹이지 못했다든가 하는 이유 등 정말 자질구레한 이유들을 열거하며 자신이 지금 엄마로부터 도피하려는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게 뭔 돼먹지 못한 경우인가 싶지만 난 은근히 공감이 갔다. 물론 주인공의 방황하는 전개나 명확하지 않은 결말은 답답했지만 방황의 내용 자체는 작가가 소신껏 솔직하게 잘 적어냈다고 생각했다. 한 집에서 얼굴 마주보고 사는 사람들끼리 큰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점을 찾지만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물러서지 않아 괜히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이 대표적일 테고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의 차이는 오히려 사소하기에 더 눈에 밟힌다는 게 꼭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도 비슷한 문제로 부모님과 언성을 높인 적이 있는데 한 번 기분이 상하면 속으로 극단적인 저주도 퍼붓는 경우가 적잖았다. 만약 그렇게 사이가 소원해진 직후에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더라면 50%의 확률로 언성을 높였던 것을 뉘우치겠지만 나머지 50%의 확률로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끔찍한 얘기지만 선한 본성 못지않게 악한 본성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 작품의 본편이나 과테말라의 호세 이야기는 부모 자식이라는 애증의 관계를 진솔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고도 잘 그려냈다고 본다. 간혹 너무 진솔한 얘기들은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불편한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품은 공감이 갈 정도로 진솔하면서도 마지막 선인 자식의 도리라는 걸 긍정해 다 읽고서 따뜻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이를 통해 부모 자식 관계란 붙어 사는 이상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그 과정들로부터 도피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소중함 내지는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고서 사이가 돈독해지며 거기서 뜻밖에 자아성찰도 하게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확하게 결말이 나지 않아 작가가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결판난 것 없이 모호하게 처리된 결말 덕에 더 나은 결말, 이를테면 기적을 상상하게 돼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서두를 장식하는 과테말라의 호세 이야기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어 읽는 맛이 남달랐고 남을 웃기는 재능이 딱히 없는 코미디언 지망생이라는 주인공의 설정도 특이하고 주인공의 친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되는 '초코'와 '딸기'라는 특이한 별칭의 캐릭터들, 엄마의 동료 전 선생도 은근 개성적인 캐릭터였는데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좀 밋밋한 이야기일지언정 캐릭터들이 주는 흡입력은 상당한 작품이라 느껴졌다. 특히 오묘한 과거사를 가진 초코의 등장은 다소 우울한 분위기가 팽배했던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다면 안 좋은 결말에도 끄떡없으리란 작가의 철학이 있기에 초코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 것 같다.

 작가의 후기를 읽어보니 이 작품이 제법 자전적으로 집필된 모양이던데 그런 만큼 작중의 캐릭터들이 뜬금없이 등장했더라도 작가 본인에겐 정말 잊히지 않는 중요한 사람들이라 작품 속에 녹여낸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여간 그놈의 인간애 덕에 이래저래 호감이 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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