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그리핀, 위기일발 미스터리랜드 3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김미령 옮김, 모토 히데야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9.1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진 노리즈키 린타로가 비교적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쓴 추리소설. 이 작품이 속한 '미스터리랜드' 시리즈는 분명 일본 메이저 출판사 고단샤에서 저연령층의 독자를 위한 추리소설을 펴내고 싶다는 취지에서 창설된 시리즈일 텐데,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 특유의 논리적인 전개 때문에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음에도 기존 작풍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일단 표면적으로 괴도의 유쾌한 활극을 내세우는 작품이지만, 타란티노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 그의 영화가 액션 영화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연극 같은 연출에 당황하는 것처럼 이 작품도 정작 괴도의 활극보다 정적인 추리에 더 눈길이 가서 이럴 거면 작정하고 성인 독자를 대상의 추리소설로 쓰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표지의 귀여운 일러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 생기겠으나 이야기의 수위 자체는 제법 높은 편이다. 선정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서로를 속이는 것에 혈안이 되다시피 한 요원들의 민낯과 가상의 국가 보코논의 근대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작가의 여느 작품 못지않게 인간의 악의를 가감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일러스트는 귀여워서 심히 괴리감이 들었는데... 특히 작중에서 미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묘하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는 것에선 오싹함까지 전해졌다.


 그나마 구색을 갖추는 차원에서 전형적인 의적 캐릭터인 그리핀과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정한 흑막의 목적이 꽤나 유치한 데가 있다는 것에서 한 편의 동화 같은 느낌을 연출하긴 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유치하게 느껴졌던 동시에 그 인물의 일그러진 심리가 오싹함을 자극하기도 해 -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까... - 전반적으로 어둡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괴도 그리핀이란 캐릭터가 논리력이 우수한 것에 비해 괴도다운 신비로운 능력이 전무해 위기 상황에서 은근 허당처럼 당하고 마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도 작가 나름대로 클리셰를 비튼 결과인 것 같아 이쯤 되면 정말로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집필한 작품인 것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아니면 내가 저연령층 독자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거고 작가는 제대로 겨냥해서 썼던 걸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도 초반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서사와 밑밥 투척 때문에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중반부터는 액션도 많이 나오고 논리적인 추리 장면이 촘촘하게 전개돼서 탄력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도감 있는 전개는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기에 작가가 신경썼던 부분 같은데, 의외로 빠른 전개가 주인공의 추리 장면하고 밸런스가 나쁘지 않아 작가에게 있어 '미스터리랜드' 시리즈에 참여한 게 필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간 대놓고 길고 느릿하고 무거운 작품을 쓴다는 이미지를 탈피할 만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겉면과 달리 성인 취향의 요소가 물씬 들어간 작품이 탄생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도 잘 추구했다고 생각됐다. 그런 의미에서 대상 독자가 애매하다는 건 단점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뭐, 이렇게 후기를 쓰는 나부터가 성인 독자이니 그게 단점으로 느껴질 리가 없지.


 작가의 작품이 신간이 출간되지 않아서 옛날에 읽은 작품을 찾아 읽고 있는 실정인데, <요리코를 위해> 개정판도 좋지만 신간 소식도 들렸으면 좋겠다. 과작인 것치고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어 애가 타는데... 작가의 최신작도 좋지만 데뷔작을 비롯한 옛날 작품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항상 거론되는 작품들의 내용이 지금으로선 제일 궁금하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 나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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