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 (특별 리커버 에디션) - 스페인, 포르투갈 문화&아트 투어 전문가 최경화의 포르투갈 완전 탐구
최경화 지음 / 모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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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해외 여행이 그림의 떡인 상황에서 이런 책을 읽는 게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러시아나 터키, 멕시코, 대만, 영국,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 대한 엄청난 '뽕'에 취하곤 한다. 내 경우엔 이런 책이 꽤나 도움이 된다. 읽는 동안엔 마치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해외에 떠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 그대로 덧없는 착각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꽤나 유익하리라 믿는다. 정말로 언젠간 떠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최근에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져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됐다. 읽은 사람들 평을 접해보니 포르투갈 입문용으로 제격인 책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포르투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아예 없다시피 한 내가 읽어도 이해가 쏙쏙 가고 그 나라의 매력이 잘 전해졌다. 전문적인 여행 서적은 아니지만 작가가 스페인어와 미술사학을 전공한 덕에 일반적인 여행 서적보다 언어와 문화, 미술에 조예 깊은 내용이 많았다.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므로 - 그 점을 독자에게 정확히 알리는 게 이 책을 집필한 이유라고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기도 했다. - 스페인 문화에 조예가 깊은 작가가 얼마나 전문적으로 집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읽고 나니 오히려 스페인 문화에 빠삭하기에 스페인 문화와 뚜렷이 구분되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포르투갈의 문화에 대해 더 예리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작가의 남편이 포르투갈 사람이고 현재 포르투갈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배우자가 외국인이라고 그 나라에 빠삭해지는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작가의 전문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듯하다. 


 포르투갈의 미적 감각이 대표적으로 발현된 아줄레주 타일을 비롯해 여러 건축 양식, 에그타르트와 포트 와인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식문화, 리스보아와 포르투 - 리스보아는 리스본의 포르투갈 원어 발음 - 의 관광 명소 및 로컬 명소, 그 외에 다른 도시들까지 다룬 이 책은 작가가 집필을 위해 제법 노력했다는 흔적이 전해졌다. 포르투갈의 역사나 예술 어느 한쪽에 대해 얘기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저자는 가급적 많은 것을 담아내려 애썼고 포르투갈의 그늘진 부분, 살라자르 독재 시절이나 그로 인한 경제 침체 등도 짧지만 가감 없이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예술 파트에 비해 역사 부분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게 할애됐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특히 관심 있던 살라자르 독재와 카네이션 혁명 등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근대사가 중세 시대에 비해 간략히 다뤄진 감이 있어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명색이 출간 5주년을 기념한 리커버 에디션인 만큼 내용이 더 증강됐으리라 기대하고 일부러 리커버 에디션으로 구매했는데, 아무래도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 포르투갈이 어쩌다 이토록 존재감 없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적절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이 책이 무슨 포르투갈 문화를 무조건 찬양하고 보는 감상적인 책은 결코 아니지만 포르투갈의 미적 감각을 엿보기엔 적절할지언정 포르투갈의 역사를 완전히 익히기에 좋은 선택이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책에 수록된 사진이나 소개되는 미술 양식들에 대한 서술이 출중하고, 또 책의 만듦새가 워낙 예뻐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는 건 강조하겠다. 


 어디까지나 입문용 도서라는 본분에 충실했을 뿐, 이 책을 정말로 포르투갈 여행 때 들고 갈 정도로 희소성 있는 내용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나처럼 포르투갈에 무지한 독자를 위한 입문용 도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 본분에 충실했던 저자의 노력을 이 이상 폄훼하고 싶진 않다. 이건 비꼬는 말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문자를 위한 책이 없으면 누가 포르투갈에 입문할 수 있단 말인가. 내 경우엔 이제 입문이 끝났으니 다른 전문적인 책을 찾아 읽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아쉬움은 아쉬움 대로 언급하되 구태여 이 책의 단점이라고까지 강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렇게 한사코 부정하는 게 더욱 미심쩍게 들릴 걸 알지만 아무튼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작가의 지식이 예사롭지 않아 작가가 집필한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스페인 미술관 산책>이란 책을 집필했던데, 스페인 미술관에 대한 로망이 적잖은 내게 있어 놓칠 수 없는 책일 것 같다. 그 책은 꼭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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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닉 아바지스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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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7 







 지구 최초의 우주 여행자로 알려진 라이카는 사실 러시아어로 짖는 개를 뜻한다. 라이카의 본명은 쿠드랴프카이며 이 이름은 사람 대신 우주 탐사 훈련을 견뎌야 했던 개들에게 소련 과학자들이 붙여준 애정 어린 이름 중 하나다. 곱슬머리. 뜻도 짖는 개에 비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세간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쉬워서 그런지 더 많이 알려졌지만 나는 쿠드랴프카라 기억해야 하는 게 훨씬 옳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나마 나는 쿠드랴프카를 쿠드랴프카로 부르겠다. 

 쿠드랴프카를 통한 실험은 어느 뭐로 보나 인간의 욕심을 위한 희생, 개죽음에 불과했다. 소련이 자신들의 사회주의가 미국보다 우월하다는 걸 선전하기 위해 일부러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아 쿠드랴프카가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계획을 짤 시간이 부족했다. 우주로 떠난 쿠드랴프카는 실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했지만 당시엔 우주를 일주일 정도 돌아다니다 안락사 캡슐을 먹고 인도적으로 죽었다고 알려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 만화를 읽기 전 내가 쿠드랴프카의 일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게 여기던 대목은 쿠드랴프카가 우주에서 일주일 가까이 좁은 우주선에서 있다가 안락사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는 좁은 우주선에서 우주가 뭔지도 모르는 쿠드랴프카로선 인간이 시킨 대로 생존하고 주어진 캡슐을 먹고 마지막에 안락사당했다는 게 너무 가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퍼뜨린 광고는 도리어 그들이 우주선 실험을 위해 개의 생명이나 고귀함 같은 건 우습게 여긴다는 것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쿠드랴프카가 소련에게 남긴 데이터는 제법 요긴했다지만, 나중에 쿠드랴프카를 비롯한 우주견들을 돌본 박사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개 한 마리의 죽음을 정당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낱 개의 생명이 우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류의 대의 앞에서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만, 개는 인류가 자신보다 약하디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순종적이고 대가 없는 충성을 보인다 해서 인간 대신 실험 대상으로 삼아 미지의 세계인 우주에 다짜고짜 보내는 게 과연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차라리 우주에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다는 게 나은 건지 모르겠다. 쿠드랴프카로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자신이 우주의 외톨이가 됐다는 배신감과 적막함과 마주하지 않았다는 게 종이 한 장만큼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 작품은 쿠드랴프카의 실화를 바탕으로 몇 가지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 있다. 고증은 철저히 했지만 가령 쿠드랴프카가 어떻게 잡혀서 우주기지로 왔는지, 그 특유의 얌전함과 영리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소련 우주기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았으며 쿠드랴프카를 비롯한 개들에게 정을 품었지만 소련 특유의 냉혹하고 고압적인 분위기 탓에 차마 개들이 희생되는 실험에 거역할 수 없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등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과장된 장면은 없었고 다소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쿠드랴프카의 시점도 무언가 웅장하게 다가왔다. 이 시점은 보는 이의 부채감을 더욱 부추기는데 이런 요소가 너무 눈물겨워서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뜻 권하지 못하겠다. 

 <라이카>는 우주 배경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독특하고 남다른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두긴 했지만 그로 하여금 이만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은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끊임없이 재평가를 내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의 저자처럼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고 재해석하는 사람들 덕분에 인간은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쿠드랴프카의 희생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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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9.3







 박노자란 이름은 종종 들어봤지만 저서는 처음 접해본다. 노서아(러시아)의 사람(자)이란 의미로 지은 한국 이름 박노자. 한국인의 도움 없이 그의 자력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 고급 어휘를 구사해 당연히 한국인이 썼거나 한국인의 도움을 받은 줄 알았다. <비정상회담>의 타일러보다 뛰어난, 오히려 그 이상의 한국어와 언변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됐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듯 이 책은 한국과 노르웨이를 비교해 무조건 그 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노르웨이가 어떻게 부국이 됐고 천국과도 같은 복지 정책을 유지하고 그를 국민들이 누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한국 사회와는 어떤 점에서 다르고 지금 두 나라의 처지가 다른 것은 어느 정도 타의적인 결과임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둘 다 똑같이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 생활을 겪었지만 비교적 유럽 선진국들 사이에서 대접받으며 간접적으로나마 식민주의의 덕도 볼 수 있던 노르웨이와 달리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6.25와 독재자들의 등장 같은 악재를 연이어 겪어 애당초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노르웨이나 여타 유럽 나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는 있어도 그들 문화를 동경하다 못해 열등감을 느끼는 건 과하다고 저자는 계속 설파한다.


 다른 나라도 아닌 노르웨이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꽤 관심 있게 읽혔다. 저자는 노르웨이에서 배울 점은 분명 많으나 - 시민들의 놀라울 정도로 능동적인 정치 의식, 사치를 죄악시하는 듯한 검소한 소비 습관, 그리고 체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듯한 평등한 시민 의식 등 - 그 밝은 모습의 이면엔 분명 그늘이 존재하고 또 그만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벌인 노력 내지는 몇몇 부끄러운 행보를 언급하길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결국 노르웨이도 백인 우월주의가 알게 모르게 있는 서방 국가라 무조건 찬양했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란 것이다. 애초에 시작점이 월등히 유리했기에 천국에 가까운 사회를 이룩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 책이 집필된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인 2002년이다. 책에선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주로 언급하는데 - 나머지 노벨상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수여한다. - 그 수상 소식에 우리나라 사람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한 것을 두고 노르웨이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우리나라의 열등의식 표출로 본다는 건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인 것 같다. 작년에 <기생충>도 그렇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국위선양에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 같다. 수상 소식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공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닐 텐데. <기생충>이나 <채식주의자>나 결국엔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된 것이 아닌 그저 더 유명한 작품이 됐을 뿐이니까. 그런데 우린 너무나 기뻐한다. 말로는 우리 것이 최고라면서 외국, 정확히는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나 편입에 대한 일종의 열망을 엿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지적은 꽤 뼈아프면서도 정확했다.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이방인이기에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예리하고 유익했으며 우리나라 사람이 읽기에 퍽 애정 어린 구석이 있었다. 덕분에 그간 품어왔던 노르웨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은 조금은 수그러들게 됐다. 생각해보면 이 책이 출간한지 9년 뒤에 노르웨이에선 엄청난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테러범 한 명으로 노르웨이를 나쁘게 봐선 안 될 일이지만, 분명 그 사건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르웨이는 천국이 아니라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허점 역시 분명 존재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작가가 뭐라 생각했는지 궁금하네. 저자의 최근 저서에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찾아봐야겠군.

 서두에서부터 마지막 파트까지 꽤 흥미롭게 읽어나가다가 막판에 글의 방향이 틀어져 좀 당혹스러웠다. 어딘지 자연스러웠지만 근본적으로 이 글의 끝을 진보, 좌익에 대한 설명, 그리고 군대에 대한 비판과 양심적 병영 거부자 오태양 씨와의 대화로 마무리한 건 너무 생뚱맞았다. 읽는 동안엔 나도 모르게 인류애가 끓어오르는 대목이 많았지만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대안 없는 비판인 것 같아 지금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찾아보니까 박노자 씨는 특유의 과한 폭력 반대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는 모양인데 나도 그 비판의 논지를 알 것 같다. 이렇게 폭력으로 물들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대안 없이 공감과 윤리만 강조하니 좀 덧없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군대는 특히 몇 십 년, 혹은 백 년이 넘게 이어지는 상황이 낳은 시스템이기에 보다 치밀한 접근이 필요했는데...... 아니, 다 떠나서 이 글의 마무리로는 너무 느닷없는 주제라 초반에 느낀 좋은 인상이 많이 깨졌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이런 내용이려나?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내용이라면 나도 준비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흘려들을 건 흘려들을 텐데 이렇게 요상하게 글을 마무리 짓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아무래도 박노자 씨의 다른 저서도 읽어봐야겠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필력의 소유자지만 그때는 좀 긴장이란 걸 하면서 읽어야겠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작가한테 완전히 홀릴 수도 있으니.

문제는 비서구 지역의 비민주성을 그토록 비웃는 서구 사람에게는 민주주의가 신념이기보다는 단지 사회의 관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안 지켜도 되고 또 안 지킬 수 있는 지역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도덕을 너무 쉽게 용도 폐기한다. - 104p




그리고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유럽인이 이번 수상을 둘러싼 한국의 ‘국가적 잔치 분위기‘를 유럽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등의식 표출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이를 자제할 수 있어야만 남의 찬탄과 비방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길로 나아가는 옛 선비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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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9







 한때는 드문드문 출간되던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이 어느 순간부터 줄줄이 출간되는 것 같다. 그 작가의 작품을 <천사의 나이프>부터 출간되던 족족 챙겨봤던 터라 지금과 같은 유명세가 놀랍기 그지없다. 한동안 작가의 작품을 안 찾아본 사이에 이렇게나 인기 작가가 됐다니... 이와 같은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가 바로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라던데, 서점에서 자주 눈에 띈 스테디 셀러라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반신반의했다. 그놈의 청개구리 기질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야쿠마루 가쿠가 맞긴 한 건가 싶기 때문이었다. 왠지 몰라도 스테디 셀러와는 거리가 먼 작가라 생각했는데.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입소문을 퍼뜨린 데에는 엄청난 가독성과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의 덕이 큰 것 같다. 이전작들의 주인공에 비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견디다 못해 청승을 떨지 않아 독자로서 몰입하기 용이한 캐릭터였다. 그렇다 보니 진지한 맛이 있던 작가의 특성은 상대적으로 얕게 느껴졌으나 대신 장르적인 재미, 박진감과 미스터리함은 상당히 상승했다. 주인공의 설정과 가해자에게 적절한 단죄를 내리지 못하는 문제 투성이 사회에 대한 묘사의 세세함이 떨어진 게 아쉽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일상이 아득히 멀어져가며 궁지에 몰리는 주인공의 추락과 그에 대한 심리 묘사가 꽤 볼만해서 나름 만족스럽게 읽혔다. 특히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초자연적인 설정은 신선한 시도였는데, 끝까지 자기 컨셉에 충실한 범인의 말투도 묘하게 웃겨서 - 일본의 '존댓말 캐릭터'는 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도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이렇게 주인공을 괴롭히느냐며 궁금한 마음에 멈추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어딘지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듯한 인상을 받아왔기에 이런 속도감 있는 추격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작가의 모습이 꽤 긍정적으로 비쳐졌다. 깊이와 재미의 균형이 약간 삐걱거리지만 다음엔 깊이와 재미 두 가지를 보다 순조롭게 조절하리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확실히 주제의식이나 주인공의 모습이 비슷비슷했던 걸 생각하면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주인공은 작가 입장에서 꽤나 신선하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이전작들에서 다뤄온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든 죗값을 치루지 않았다 해도 나중엔 그보다 더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작가의 인과응보식 철학이 반영된 캐릭터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할수록 재밌는 캐릭터였다. 첫인상에 비해 상당히 거친 성정을 갖고 있었고 참작이 안 되는 과거 역시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분히 인간적이라 동정하게 되고 살인을 망설이는 모습은 또 의외라 본성까지 글러먹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의 정체, 작품의 후반부에서 몰아치는 반전과 더불어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선을 넘지 않았다는 설정은 약간 작위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 '선'이란 것이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정말 넘기 힘들기 때문에 '선'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생각해봤다. 저렇게까지 궁지에 내몰렸음에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약간 답답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동정할 가치도 없는 작자들이라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가령 내 처지라고 생각해보면 제아무리 판이 짜여졌다 해도 타인을 죽이기란 보통 각오로는 해낼 수 없다며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눈 딱 감고 무슨 짓을 못할까 싶다가도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뒷걸음질 치는 게 인간으로서의 통상적인 모습이리라. 게다가 주인공은 과거나 현재나 자신이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살인은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선은 넘지 않았다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을 테니 더욱 살인을 범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범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 정답이었지만, 그런 결과론적인 얘길 떠나서 결국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주인공의 모습은 미련하고 이기적이란 소릴 들을 수 있을지언정 결국 선을 넘지 않아 언젠가 가족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란 희망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작가는 그런 의도로 결말을 그렇게 모호하게 처리한 게 아니었을까.

 상술했듯 이 작품을 기점으로 작가의 작품이 꽤 많이 출간됐던데, 그렇다 보니 지뢰도 섞여있는지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래도 선택지가 많아서 뭘 먼저 읽어볼까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아마 단편집 <형사의 눈빛>을 먼저 읽을 것 같다. 작가의 단편집이 궁금하기도 하고 유명 문학상 후보에 든 작품이 다수 수록된 것으로 알고 있어 꽤 괜찮아 보인다. 작가의 장편밖에 안 읽어봤는데, 단편은 과연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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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러시아
시베리카코 지음, 김진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5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5년 전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할 때 가장 고생한 게 바로 음식이었다. 최근에야 블라디보스토크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며 각광을 많이 받고 있지만 5년 전엔 미지의 여행지나 다름없어 도대체 그곳에서 뭘 먹어야 할는지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버거킹만 두 번을 들러야 했는데;; 만약 그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최소한 이걸 먹어야지 저걸 먹어야지 하고 목표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작가가 실제로 1년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대체로 맛있는 러시아 음식과 러시아 생활 중에 겪었던 러시아 문화의 흥미로운 점, 문화 차이에 놀랐던 점 등을 과하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게끔 그려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낯선 나라인 만큼 작중에서 작가가 놀라는 포인트가 한국 독자인 내가 놀라는 포인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나 선호하는 식재료, 의외로 닮은 식성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았다. 간단한 레시피도 적혀 있던데 그림까지 그려져 이해하기 쉬웠고 - 과연 몇 명의 독자가 이 레시피를 보고 러시아 요리를 해먹을까 싶지만... - 작가의 맛 표현도 명확해 실제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 언제 러시아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나중에 러시아에 간다면 이 요리들을 기억하고 하나씩 도전해보려고 한다.


 전술했듯 러시아 여행 때 러시아 음식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대체로 느끼하고 기름지고 달았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유난히 그 여행에서 이상한 것들만 골라 먹어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아니면 나와 러시아 음식이 정녕 맞질 않은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먹어봤다는 킹크랩과 블린도 못 먹어서 이래서야 러시아 땅을 잠깐 밟았을 뿐 러시아 음식을 먹어봤다고 얘기할 순 없을 듯하다.

 작가는 러시아인 남편이 처음에 러시아에 가서 살아보자고 제안했을 때 러시아 특유의 춥고 무서운 이미지 때문에 거절했었지만 막상 러시아에 가니까 러시아의 맛있는 음식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종국에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아쉬워하기까지 하는데, 새삼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문화권에서건 추울 땐 따뜻한 음식을 먹고 더울 땐 시원한 음식을 먹길 원한다. 그리고 사람의 입맛은 생각보다 편차가 크질 않다. 맛있는 음식은 대체로 만인에게 맛있게 여겨진다. 그렇게 보면 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작품 말미에 '러시아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또 와야지' 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말이 참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국경을 넘어 여행을 떠나는 게 무척이나 요원해보이는 요즘에 이런 작품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한편으로 작가가 참 부럽기 그지없었다. 마음 같아선 음식이 입맛에 하나도 안 맞아서 고생하더라도 러시아든 어디든 떠나고 싶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배탈이 나 고생한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경솔한 발언인지 안다. 작가가 책에서 그린 러시아에서의 일상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잠시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 어쨌든 시국이 시국인 지라 참 흥미롭고 유익하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미약하나마 해소할 수 있던 책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이 작가는 일본에 있으려나, 러시아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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