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9.3







 박노자란 이름은 종종 들어봤지만 저서는 처음 접해본다. 노서아(러시아)의 사람(자)이란 의미로 지은 한국 이름 박노자. 한국인의 도움 없이 그의 자력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 고급 어휘를 구사해 당연히 한국인이 썼거나 한국인의 도움을 받은 줄 알았다. <비정상회담>의 타일러보다 뛰어난, 오히려 그 이상의 한국어와 언변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됐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듯 이 책은 한국과 노르웨이를 비교해 무조건 그 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노르웨이가 어떻게 부국이 됐고 천국과도 같은 복지 정책을 유지하고 그를 국민들이 누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한국 사회와는 어떤 점에서 다르고 지금 두 나라의 처지가 다른 것은 어느 정도 타의적인 결과임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둘 다 똑같이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 생활을 겪었지만 비교적 유럽 선진국들 사이에서 대접받으며 간접적으로나마 식민주의의 덕도 볼 수 있던 노르웨이와 달리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6.25와 독재자들의 등장 같은 악재를 연이어 겪어 애당초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노르웨이나 여타 유럽 나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는 있어도 그들 문화를 동경하다 못해 열등감을 느끼는 건 과하다고 저자는 계속 설파한다.


 다른 나라도 아닌 노르웨이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꽤 관심 있게 읽혔다. 저자는 노르웨이에서 배울 점은 분명 많으나 - 시민들의 놀라울 정도로 능동적인 정치 의식, 사치를 죄악시하는 듯한 검소한 소비 습관, 그리고 체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듯한 평등한 시민 의식 등 - 그 밝은 모습의 이면엔 분명 그늘이 존재하고 또 그만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벌인 노력 내지는 몇몇 부끄러운 행보를 언급하길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결국 노르웨이도 백인 우월주의가 알게 모르게 있는 서방 국가라 무조건 찬양했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란 것이다. 애초에 시작점이 월등히 유리했기에 천국에 가까운 사회를 이룩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 책이 집필된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인 2002년이다. 책에선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주로 언급하는데 - 나머지 노벨상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수여한다. - 그 수상 소식에 우리나라 사람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한 것을 두고 노르웨이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우리나라의 열등의식 표출로 본다는 건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인 것 같다. 작년에 <기생충>도 그렇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국위선양에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 같다. 수상 소식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공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닐 텐데. <기생충>이나 <채식주의자>나 결국엔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된 것이 아닌 그저 더 유명한 작품이 됐을 뿐이니까. 그런데 우린 너무나 기뻐한다. 말로는 우리 것이 최고라면서 외국, 정확히는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나 편입에 대한 일종의 열망을 엿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지적은 꽤 뼈아프면서도 정확했다.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이방인이기에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예리하고 유익했으며 우리나라 사람이 읽기에 퍽 애정 어린 구석이 있었다. 덕분에 그간 품어왔던 노르웨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은 조금은 수그러들게 됐다. 생각해보면 이 책이 출간한지 9년 뒤에 노르웨이에선 엄청난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테러범 한 명으로 노르웨이를 나쁘게 봐선 안 될 일이지만, 분명 그 사건으로 하여금 우리는 노르웨이는 천국이 아니라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허점 역시 분명 존재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작가가 뭐라 생각했는지 궁금하네. 저자의 최근 저서에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찾아봐야겠군.

 서두에서부터 마지막 파트까지 꽤 흥미롭게 읽어나가다가 막판에 글의 방향이 틀어져 좀 당혹스러웠다. 어딘지 자연스러웠지만 근본적으로 이 글의 끝을 진보, 좌익에 대한 설명, 그리고 군대에 대한 비판과 양심적 병영 거부자 오태양 씨와의 대화로 마무리한 건 너무 생뚱맞았다. 읽는 동안엔 나도 모르게 인류애가 끓어오르는 대목이 많았지만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대안 없는 비판인 것 같아 지금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찾아보니까 박노자 씨는 특유의 과한 폭력 반대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는 모양인데 나도 그 비판의 논지를 알 것 같다. 이렇게 폭력으로 물들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대안 없이 공감과 윤리만 강조하니 좀 덧없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군대는 특히 몇 십 년, 혹은 백 년이 넘게 이어지는 상황이 낳은 시스템이기에 보다 치밀한 접근이 필요했는데...... 아니, 다 떠나서 이 글의 마무리로는 너무 느닷없는 주제라 초반에 느낀 좋은 인상이 많이 깨졌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이런 내용이려나?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내용이라면 나도 준비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흘려들을 건 흘려들을 텐데 이렇게 요상하게 글을 마무리 짓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아무래도 박노자 씨의 다른 저서도 읽어봐야겠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필력의 소유자지만 그때는 좀 긴장이란 걸 하면서 읽어야겠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작가한테 완전히 홀릴 수도 있으니.

문제는 비서구 지역의 비민주성을 그토록 비웃는 서구 사람에게는 민주주의가 신념이기보다는 단지 사회의 관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안 지켜도 되고 또 안 지킬 수 있는 지역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도덕을 너무 쉽게 용도 폐기한다. - 104p




그리고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유럽인이 이번 수상을 둘러싼 한국의 ‘국가적 잔치 분위기‘를 유럽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등의식 표출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이를 자제할 수 있어야만 남의 찬탄과 비방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길로 나아가는 옛 선비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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