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에프 그래픽 컬렉션
닉 아바지스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9.7 







 지구 최초의 우주 여행자로 알려진 라이카는 사실 러시아어로 짖는 개를 뜻한다. 라이카의 본명은 쿠드랴프카이며 이 이름은 사람 대신 우주 탐사 훈련을 견뎌야 했던 개들에게 소련 과학자들이 붙여준 애정 어린 이름 중 하나다. 곱슬머리. 뜻도 짖는 개에 비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세간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쉬워서 그런지 더 많이 알려졌지만 나는 쿠드랴프카라 기억해야 하는 게 훨씬 옳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나마 나는 쿠드랴프카를 쿠드랴프카로 부르겠다. 

 쿠드랴프카를 통한 실험은 어느 뭐로 보나 인간의 욕심을 위한 희생, 개죽음에 불과했다. 소련이 자신들의 사회주의가 미국보다 우월하다는 걸 선전하기 위해 일부러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아 쿠드랴프카가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계획을 짤 시간이 부족했다. 우주로 떠난 쿠드랴프카는 실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했지만 당시엔 우주를 일주일 정도 돌아다니다 안락사 캡슐을 먹고 인도적으로 죽었다고 알려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 만화를 읽기 전 내가 쿠드랴프카의 일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게 여기던 대목은 쿠드랴프카가 우주에서 일주일 가까이 좁은 우주선에서 있다가 안락사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는 좁은 우주선에서 우주가 뭔지도 모르는 쿠드랴프카로선 인간이 시킨 대로 생존하고 주어진 캡슐을 먹고 마지막에 안락사당했다는 게 너무 가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퍼뜨린 광고는 도리어 그들이 우주선 실험을 위해 개의 생명이나 고귀함 같은 건 우습게 여긴다는 것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쿠드랴프카가 소련에게 남긴 데이터는 제법 요긴했다지만, 나중에 쿠드랴프카를 비롯한 우주견들을 돌본 박사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개 한 마리의 죽음을 정당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낱 개의 생명이 우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류의 대의 앞에서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만, 개는 인류가 자신보다 약하디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순종적이고 대가 없는 충성을 보인다 해서 인간 대신 실험 대상으로 삼아 미지의 세계인 우주에 다짜고짜 보내는 게 과연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차라리 우주에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다는 게 나은 건지 모르겠다. 쿠드랴프카로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자신이 우주의 외톨이가 됐다는 배신감과 적막함과 마주하지 않았다는 게 종이 한 장만큼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 작품은 쿠드랴프카의 실화를 바탕으로 몇 가지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 있다. 고증은 철저히 했지만 가령 쿠드랴프카가 어떻게 잡혀서 우주기지로 왔는지, 그 특유의 얌전함과 영리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소련 우주기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았으며 쿠드랴프카를 비롯한 개들에게 정을 품었지만 소련 특유의 냉혹하고 고압적인 분위기 탓에 차마 개들이 희생되는 실험에 거역할 수 없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등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과장된 장면은 없었고 다소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쿠드랴프카의 시점도 무언가 웅장하게 다가왔다. 이 시점은 보는 이의 부채감을 더욱 부추기는데 이런 요소가 너무 눈물겨워서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뜻 권하지 못하겠다. 

 <라이카>는 우주 배경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독특하고 남다른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두긴 했지만 그로 하여금 이만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은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끊임없이 재평가를 내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의 저자처럼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고 재해석하는 사람들 덕분에 인간은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쿠드랴프카의 희생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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