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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러시아
시베리카코 지음, 김진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5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5년 전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할 때 가장 고생한 게 바로 음식이었다. 최근에야 블라디보스토크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며 각광을 많이 받고 있지만 5년 전엔 미지의 여행지나 다름없어 도대체 그곳에서 뭘 먹어야 할는지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버거킹만 두 번을 들러야 했는데;; 만약 그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최소한 이걸 먹어야지 저걸 먹어야지 하고 목표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작가가 실제로 1년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대체로 맛있는 러시아 음식과 러시아 생활 중에 겪었던 러시아 문화의 흥미로운 점, 문화 차이에 놀랐던 점 등을 과하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게끔 그려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낯선 나라인 만큼 작중에서 작가가 놀라는 포인트가 한국 독자인 내가 놀라는 포인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나 선호하는 식재료, 의외로 닮은 식성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았다. 간단한 레시피도 적혀 있던데 그림까지 그려져 이해하기 쉬웠고 - 과연 몇 명의 독자가 이 레시피를 보고 러시아 요리를 해먹을까 싶지만... - 작가의 맛 표현도 명확해 실제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 언제 러시아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나중에 러시아에 간다면 이 요리들을 기억하고 하나씩 도전해보려고 한다.
전술했듯 러시아 여행 때 러시아 음식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대체로 느끼하고 기름지고 달았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유난히 그 여행에서 이상한 것들만 골라 먹어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아니면 나와 러시아 음식이 정녕 맞질 않은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먹어봤다는 킹크랩과 블린도 못 먹어서 이래서야 러시아 땅을 잠깐 밟았을 뿐 러시아 음식을 먹어봤다고 얘기할 순 없을 듯하다.
작가는 러시아인 남편이 처음에 러시아에 가서 살아보자고 제안했을 때 러시아 특유의 춥고 무서운 이미지 때문에 거절했었지만 막상 러시아에 가니까 러시아의 맛있는 음식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종국에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아쉬워하기까지 하는데, 새삼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문화권에서건 추울 땐 따뜻한 음식을 먹고 더울 땐 시원한 음식을 먹길 원한다. 그리고 사람의 입맛은 생각보다 편차가 크질 않다. 맛있는 음식은 대체로 만인에게 맛있게 여겨진다. 그렇게 보면 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작품 말미에 '러시아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또 와야지' 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말이 참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국경을 넘어 여행을 떠나는 게 무척이나 요원해보이는 요즘에 이런 작품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한편으로 작가가 참 부럽기 그지없었다. 마음 같아선 음식이 입맛에 하나도 안 맞아서 고생하더라도 러시아든 어디든 떠나고 싶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배탈이 나 고생한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경솔한 발언인지 안다. 작가가 책에서 그린 러시아에서의 일상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잠시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 어쨌든 시국이 시국인 지라 참 흥미롭고 유익하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미약하나마 해소할 수 있던 책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이 작가는 일본에 있으려나, 러시아에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