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ㅣ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오헬리엉 루베르.윤여진 지음 / 틈새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9.3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는 예전에 즐겨 봤던 방송 <비정상회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멤버인 오헬리엉이 집필한 책이다. 출연자가 많은 방송의 특성상 멤버들에게 할당된 시간이 적다 보니 필연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멤버들의 비중이나 활약이 불충분하다 여겨졌는데, 이렇게 책으로나마 분량 제한 없이 좋아했던 멤버의 얘길 들을 수 있는 게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오렐리엉은 자국에 대한 비판을 거리낌 없이 하고 독특한 면모도 있으며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만큼 지적이라 그가 집필한 책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나 분량 제한 없이 프랑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오헬리엉에게도 매력적이었는지 서두에서부터 그가 책 집필에 정력적으로 임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헬리엉은 이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프랑스 북쪽 지방 출신의 프랑스인이라는 필터를 거친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얘기임을 서두에서 강조했는데, 그런 것치고 다루는 내용이 광범위하고 파리와 자신의 고향 릴과 프랑스의 다른 지방의 차이,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 등을 수시로 열거하며 진행하기에 지극히 사적이라는 예고가 무색할 정도로 생각보다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덮어 놓고 맹신하는 건 금물이지만, 오헬리엉은 단순히 한국에서 몇 년 넘게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사람이 아닌 한국 교단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리 최근에 프랑스에 살지 않았다 한들 그 내용의 신빙성이나 현실 반영도가 뒤떨어질 리 만무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요즘 프랑스의 모습에 입문하기에 최적의 책이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사람 사는 곳이란 감상이 절로 나오게 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프랑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책이나 뉴스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선에서 아는 것이지 실제로 직접 가봤거나 프랑스인과 대화를 하거나 하물며 프랑스어를 배워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현저히 적을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방대하고 또 그런 만큼 선입견 또한 두터운데, 대표적으로 혁명, 미식의 나라, 화가와 낭만의 나라, 나폴레옹, 영국과 경쟁하듯 식민지를 만든 나라 등 좋고 나쁜 것들이 섞였을 것이다. 어느 이미지나 우리나라완 물리적으로는 물론 심리적 거리도 멀거나 정반대인 지라 여러모로 현실에 존재하는 나라라거나 우리와 공감대가 있는 나라라는 인상은 잘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81년생 오헬리엉이 얘기하는 요즘 프랑스에 대한 얘기는 사뭇 흥미로웠다. 다시 말하지만 그야말로 프랑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 사는 곳이란 인상이 드니까 말이다. 물론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역사적 배경도 판이하고 걸어온 근대사 역시 많이 다르기에 당연히 다른 점이 더 많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정치나 교육 등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인식, 불완전함과 권위주의 등은 닮은 데가 많아 공감하며 읽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기회가 많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기에 부모가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대목은 의외면서 납득이 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린 효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받는 현실이 제아무리 어쩔 수 없다 해도 부끄러운 일로 자책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으니 책임과 배려는 부모 쪽에 더 있다는 인식일 텐데... 


 책의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내용을 정리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단연 좋았던 것을 꼽자면 단순히 프랑스를 소개하고 한국과의 차이를 비교하고 어디가 더 어떻고 좋다는 식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다 - 굳이 말하자면 프랑스나 한국보단 오히려 영국을 까는 내용은 좀 있는 편이었다...ㅋ - 는 점일 것이다. 물론 두 나라의 다름이 신기하고 이 부분은 괜찮고 저 부분엔 자성이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지의 글은 많았지만 이 책은 일단은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얘기인 터라 작가가 책의 내용들로 하여금 종합된 의견 내지는 주제의식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진 않았다. 덕분에 프랑스에 대한 거리감이 오히려 더 사라졌고 그 무수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 인종 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 관광 대국이란 명성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인프라 등 - 프랑스에 여행을 가거나 단기적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전엔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생각에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차이가 어떤 것이고 서로 사람 사는 곳이란 걸 느낀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하고 매력적인지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무조건적으로 숭배를 하든 무시를 하든 상대에 대한 무지는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별개의 존재로 선을 긋는 행위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타인과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나 혹은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평소에 자주 접하는 걸 특별한 계기 없이 관심을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프랑스와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 오헬리엉 같은 사람이 쓴 글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특히 요즘처럼 방송으로도 여행을 접하기 어려운 시국엔 여행이나 외국 문화를 엿보고 추억할 신간이 꾸준히 나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극심한 사람이 많은지 적잖은 책이 앞다퉈 출간되고 개중엔 그 내용이 그 내용 같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아무튼 - 참고로 이 책은 코로나 이전인 19년도 출간된 책이다. -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 조금씩 사라지게 해주는 책은 요즘 시국에는 그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본다. 

 한때는 <비정상회담>이 매주 월요일마다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줬는데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4년이 된 지금에 이렇게 개인적으로 좋아한 패널이 쓴 글을 읽으니 <비정상회담>을 본방사수했던 기억도 나고 또 방송에서 오헬리엉이 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렸을 내용이 사사로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다 담겨있어 실로 유익했다. <비정상회담> 시즌 2 제작은 요원해 보이니 오헬리엉을 비롯해 비정상회담 멤버들의 책이 여럿 출간됐으면 소원이 없겠다. 정말이지 바라 마지않는다. 

다만 빈부 격차, 경직된 계층 제도, 인종 차별 등의 진짜 분열을 해결할 정책을 강구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프랑스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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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9.4 







 치바는 자신에게 배정 받은 인간이 죽을 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사신이다. 그는 인간을 일주일 동안 조사한 끝에 언제나 '가'를 보고해 해당 인간의 죽음을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인간을 배정 받는다. 치바에게 인간을 배정해주는 부서는 '어차피 똑같은 내용의 보고를 할 텐데 하루만에 보고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대놓고 태업을 권장하고 실제로 치바는 동료 사신들로부터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냐며 별종 취급을 받기도 한다. 

 치바가 굳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주일을 다 사용해가며 인간을 관찰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일이니까 할 뿐이다. 추정컨대 그리스 철학자를 담당했을 정도라니까 인간이란 종족을 오랫동안 봐온 만큼 이골이 났을 그에게 새삼 죽음에 직면한, 바꿔 말하면 사신인 자신에게 걸린 인간에게 동정심이 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존재로 여기는 - 오직 인간이 낳은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을 다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치바는 정말이지 인간을 성실히 조사하되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하지 않는 쿨한 사신이다. 


 이사카 코타로 최고의 캐릭터라 평가받는 치바가 처음 등장하는 <사신 치바>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첫 번째 수록작이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치바는 정확하다'는 왜 추리소설과 관련된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애매한 장르와 허무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추리소설로 명명하기엔 불공정한 단서들과 또 무리수까지 있기에 이 수록작이 수상작이란 게 많이 의아했다. 그렇다고 첫 번째 수록작으로 적합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신의 보기 드문 변덕을 본 것에 의의를 둬야 하나? 바꿔 말하면 인간의 생과 사는 누군가의 변덕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교훈만 남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수록작들도 다 마찬가지다. 네 번째 수록작은 꿈에 그리던 여성과 교제를 시작한 남성이 반전 없이 죽는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졌지만 이야기의 교훈이나 결말엔 신선한 구석이 없었다. 치바가 사신이기에 벌어지는 해프닝들도 일종의 장난처럼 느껴져 잔잔한 웃음만 던져줄 뿐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아무리 좋게 얘기해줘도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수록작까지는 평작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번째 수록작인 '살인용의자와 동행하다'는 나머지 수록작 전부를 합친 것보다 압도적으로 좋았다. 앞선 수록작들은 치바와 그가 속한 사후세계의 설정을 설명하거나 치바가 사신인 탓에 벌어진 해프닝을 약간의 추리소설적인 기교로 풀어낸 엔터테인먼트였다면 다섯 번째 수록작부터는 7년 뒤에 출간된 장편 <사신의 7일>에 버금갈 만큼 인간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짙게 녹여져 이 캐릭터와 시리즈만의 개성이 온전히 전달됐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겪는 일보단 관찰하는 일에 가깝다. 누군들 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고 단지 주변 사람이 떠나는 일은 무수히 겪으며 살아가지 않은가. 추측이지만 이사카 코타로가 치바란 캐릭터를 쿨하게 설정한 이유는 단지 그게 멋있고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가 아닌 죽음이란 곧 관찰되어지는 것이란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신에게 있어 인간이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오해를 깨닫거나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는 아이러니조차 아무런 심리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데 도리어 이러한 쿨함, 혹은 냉정함이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공연히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는 대개 삶과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운명이나 아이러니, 희망이란 단어를 섞어가며 뭔가 멋있게 포장하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 모습이 사신이 아닌 제3자가 봤을 때 참 부질없게 비쳐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살인용의자와 동행하다'는 살인용의자인 모리오카를 치바 특유의 심드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후반부에서 반전에 도달하는 추리에 비약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심드렁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일관해 살인용의자인 모리오카를 동정하게 되지만 그래도 선은 지키고 있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짧다면 짧은 삶 속에서 고통 받으며 실수만 반복하다가 끝내 그 무엇도 만회하지 못한 채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단 진리에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이 몰아쳤다. 동시에 치바처럼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 없이는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죽음이 곧 절망이 아닌 구원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는 희한한 감상이 남기도 했다. 

 마지막 수록작은 반전도 반전이지만 치바 못지않게 캐릭터의 매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사실 반전의 내용이야 얼추 예상이 갔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이전 작품의 에피소드나 캐릭터가 언급돼 반가움과 더불어 여운이 제법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 반드시 절망이 아니라는 명제를 깔고 이야기가 진행돼 독자인 나는 물론이고 치바조차 시종 감탄하며 이야기에 끌려다니기까지 해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치바는 모든 일의 원흉이자 뒷정리를 담당하거나 심드렁한 채 인간을 깔보기 직전인 자세로 음악만 듣던 기본적으로 정적인 캐릭터였으나 이 이야기에선 눈에 띄는 깨달음을 얻지 않음에도 그의 내면에 변화가 생긴 듯해 읽으면서 묘하게 쾌감이 솟아났다. 이렇게 가끔 사신도 감탄시키는 인간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는데, 뜬금없지만 이 부분에서 내 인생의 목표가 막연하면서도 특이하게 방향이 전환됐다. 사신도 당황하거나 감탄할 정도로 지혜 있는 인간이 되자고.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치바의 모습을 보노라니 나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인간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이 시리즈는 <사신 치바>, <사신의 7일>까지 총 두 권 나왔으며 세 번째 작품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다. 이사카 코타로가 워낙에 이야기꾼인 지라 아마도 치바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가 언젠가 나오리라 생각하는데... 오래 걸려도 상관없으니 제발 좀 나왔으면 좋겠다. <사신 치바>를 처음 읽었을 땐 그저 쿨하고 독특한 사신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느낌이 아주 새로웠다. 두고 두고 읽을 듯하니 세 번째 작품이든 네 번째 작품이든 꾸준히 출간되길 소망한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는다. - 155p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이 가진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는 환멸이 아닐까요. - 240p



그렇게 부질없이 엇갈리기만 하는 게 인간의 특기 아닌가? - 287p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 3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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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 일러스트레이터가 도시를 수집하는 방법
영민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9.2 







 이전에 포르투갈에 관련된 책을 읽고 다른 책은 더 없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도 읽게 됐다.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포르투갈 여행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졌다. 그런데, 사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랑하기 위한 행위지 않은가 라며 나는 애써 그런 뉘앙스를 신경 쓰지 않으며 책장을 펼쳤다. 

 포르투갈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은 대체로 이렇다. 날씨가 좋고 음식이 맛있으며 여유롭고 낭만이 있으며 물가가 싸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관광지라 차분한 분위기의 나라라는 것. 작가가 우연한 기회로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한 달 가까이 여행한 내용을 기록한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는 이제는 천운을 타고나야지 외국에 가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암울한 시국에 까닭 모를 따스함과 희망을 안겨줬다. 최근에 친구와의 목포 여행이 불발됐음에도 '괜찮아, 돈 아꼈다 생각하고 다음에 가면 되니까.' 하고 애써 밝게 말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여행을 그리워하는 한 반드시 기회가 오리라고 확신까진 아니더라도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 뭐, 해외여행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당장 파리 올림픽도 무관중이 아닐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여행기는 내용보다는 느낌 위주라 실질적인 여행 정보를 얻기엔 부적절할 수도 있다고 미리 밝혔다. 하지만 걷기에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는 리스본과 포르투라 그랬던 걸까? 이 목적 없이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정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실질적인 여행 정보로 다가왔다. 로컬들이 갈 만한 루프탑 펍이나 카페, 서점 등 일반적인 여행책에서 잘 나오지 않을 법한 가게가 적잖이 소개돼 그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 현지의 분위기나 작가가 그 가게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직전에 읽은 <베네룩스 맥주 산책>이란 책은 순전히 맥주의 종류와 맛, 역사에 집중한 서술 때문에 마니악하게 느껴져 맥주를 좋아하는 나도 살짝 지루한 구간이 있었던 반면, 이 책에서의 서술은 전반적으로 과하지 않고 마니악하지 않으며 일러스트나 사진의 양과 배치가 적절해 절로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러스트를 전공한 작가라 그런가, 시각적으로 감각적이면서 가독성이 돋보였던 책이다. 

 이 책의 집필 시기나 작가가 실제로 여행한 시기가 몇 년이 지난 지라 포르투갈이 작가가 방문했던 그대로의 모습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포르투갈의 코로나 상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워낙에 장기적이고 또 궤멸적인 탓에 무엇 하나 낙관적으로 기대하기가 힘들다. 하물며 유럽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적은 포르투갈이지만 과연 향후에 내가 방문했을 때 그러한 분위기가 여전하리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리란 생각도 든다. 아마도 내가 실제로 포르투갈을 방문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뿐더러 마음의 준비도 상당히 필요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거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볼 수 있는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의 내용은 포르투갈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나로 하여금 꼭 방문해보리라는 다짐을 굳건히 다지게 만드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위에서 말했듯 난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포르투갈 여행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인 듯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랑하는 듯한 어조는 별로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당신의 포르투갈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하고 묻는 듯해 내 여행 욕구가 속절없이 들끓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나의 포르투갈은 과연 어떨까. 나는 실제로 포르투갈에 입국하면 어떤 인상을 받을 것이며 실망할 것인지 기대 이상일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10년 안에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그리웠던 것은 포르투라는 도시에 나를 집어넣는 일이었다.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시를 느끼는 일. - 4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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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룩스 맥주 산책 - 트라피스트를 찾아 떠나는 유럽여행
이현수 지음 / 메이드마인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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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선 벨기에 맥주를 최상등급으로 쳐준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맥주순수령'이 있을 정도로 맥주 만들기가 까다로운 독일과는 달리 벨기에에선 제약이 없어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던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독일 맥주가 품질은 좋아도 다양성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는 평을 듣던데, 두 나라의 맥주를 비교하며 마셔본 적은 없으나 이런 상반된 평가를 살펴보면 과연 '순수'니 '제약'이느니 하는 것들이 얼마만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 반문해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맥주이고 실제로 여행 때 맥주 양조장을 적잖이 가봤다. 그래봤자 삿포로, 아사히, 산토리 그리고 제주에일이 전부지만... 아무튼 코로나만 아니었더라면 더 다양한 맥주 양조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기린, 오리온, 칭따오, 기네스, 하이네켄, 칼스버스, 필스너 우르켈 등등. 무료로 생맥주를 시음하면 대박이고 무료가 아니더라도 참 특별하고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맥주의 특성상 마셔봤자 그리 과하게 취하지 않고 갈증을 달래기에 좋다는 측면에서 고된 여행 일정 중에도 반드시 보람을 선사했다. 때론 양조장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시간이나 체력을 소모한 적도 있었지만 다 적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게 다 맥주를 좋아하기에 나올 수 있는 감상이겠지만. 


 그런 내게 있어 이 책은 컨셉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부러움을 유발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맥주를 섭렵하는 여행이라니. 그 여정도 여정이지만 아내와 함께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도 참 부러웠다. 친구랑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맥주 기행을 다닐 만한 이성과 만날 수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베네룩스는 결코 일반적인 여행지가 아니다. 동행할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보통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대도시에 가는 걸 선호할 테니까. 

 국내에 출간된 유럽 여행 서적에서 이 책은 컨셉이나 여행지부터 독보적이기 이를 데 없는데 내용도 거의 맥주의 종류와 맛, 양조장과 펍의 위치에 대한 서술이라 맥주에 대한 정말로 지대한 관심이 없다면 책의 예쁜 만듦새나 사진의 배치가 무색하게 지루하게 읽힐 것이다. 단순히 문장의 흡입력만 따지면 저자가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다 보니 맥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지루했던 구간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워낙에 다루는 내용이 갓 나온 맥주 거품보다 신선해 책을 덮고 난 다음의 만족도는 상당했다. 언제 베네룩스 3국을 방문해볼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 책을 꼭 들고 가리라. 아까 지루한 구간이 있다고 했는데, 그 구간이란 바로 디테일하게 가게를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디테일은 실제로 그 도시를 걷지 않은 이상 흡입력 있게 읽기 힘든 법. 그러니 꼭 현지에서 읽어볼 테다. 그런데 과연 그때 나는 혼자일까, 다른 사람과 함께일까? 꼭 다른 사람과 함께이길. 아무리 맥주가 좋아도 혼자 펍에 가긴 쉽지 않다. 맥주는 은근히 혼술이 어려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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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ㅣ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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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최근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를 읽고 청부살인업자가 등장하는 소설이 읽고 싶어져 이 작품을 다시 펼치게 됐다. 3년 전에 읽을 때는 시리즈 전편을 안 읽어서 큰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접하고 읽으니 이 작품의 내용이 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청부살인~>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전형적으로 킬러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혐오스러워하며 종국엔 은퇴를 결심하는 킬러가 등장한다. <청부살인~>의 킬러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는 쿨함을 보여 당혹스러웠다면 후자의 킬러 '풍뎅이'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는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게 때때로 위선적으로 비쳐져 그의 은퇴를 응원하는 한편으로 거리를 두게 됐다. 그래, 범죄자에게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니까. 

 풍뎅이도, 또 작가도 위선이란 걸 알고 있는지 작품은 마냥 동정적인 시선으로 풍뎅이의 여정을 쫓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함께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와 그 이면에 도사리는 킬러 업계의 냉혹한 원리가 균형이 잡힐 듯 잡혀지지 않으며 중구난방으로 묘사되는데, 그 탓에 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몰입도는 떨어질는지 몰라도 풍뎅이에 대한 심정을 독자로서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의외로 절묘한 전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풍뎅이를 압박하는 불안감과 죄책감, 가족과의 유쾌하고도 진땀 나는 에피소드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풍뎅이라는 캐릭터가 다소 기계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시리즈 역사상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풍뎅이인 만큼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심적으로 고통 받는 전개가 나온 것이 옳았다고 본다. 


 뭐, 이사카 코타로의 필력 덕분에 가독성엔 문제가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최강의 킬러인 것이 무색하게 <악스>의 수록작들의 내용은 심심하거나 식상한 구석이 있었다. 첫 번째 수록작 'AX'는 당랑지부라는 사자성어를 강조하거나 이야기의 첫 수록작치고 내용이나 결말이 허무한 감이 있었고 'BEE'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는 풍뎅이의 모습이나 그 계기는 멋졌으나 이야기 자체는 가장 시시했고 그 다음 수록작 'Crayon'은 공처가이자 고독한 사나이 속성을 가진 풍뎅이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역할로만 기능하고 있어 인상에 강하게 남지 않았다. 

 업계의 다른 킬러와의 대결과 은퇴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수난을 다룬 'EXIT'와 'FINE'은 이사카 코타로의 감성이 묻어 나오는 비장함, 시리즈 특유의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킬러의 세계는 돋보였지만 의외로 허술한 풍뎅이의 은퇴 계획 때문에 2% 부족한 수록작이 아닐 수 없었다. 결말은 어느 정도 여운이 있었고, 풍뎅이나 의사나 인과응보를 치른 게 꽤나 합당하다 여겨졌지만 거의 예상 가능한 전개였기에 대단히 쾌감이 있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글쎄, 이번 작품의 경우엔 신선함보다 진정성, 특히 풍뎅이의 부성애에 초점을 맞췄고 그에 관해선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은 인정하겠으나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작가의 팬이나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팬에게 이 작품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으며 추천할 것 같진 않다. 


 반면 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편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은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물론 전편에서 내용이 이어지진 않고 간간이 전작의 캐릭터들이나 사건이 언급되는 것, 같은 킬러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 작품은 같은 시리즈로 묶일 만한 접점이 부족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가 킬러라는 직업군(?)의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면 <악스>를 읽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아내 눈치를 보는 풍뎅이의 면모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세심함이나 당랑지부라는 말을 마지막 수록작에서 회수하는 솜씨를 보노라면 경이롭진 않더라도 경지에 달한 안정적인 필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킬러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식상한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른 느낌이라니, 소재에 대한 이 작가의 애정 내지는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과연 나올까? 특별히 이 작품으로 완전히 끝이라는 느낌은 못 받았으니 별 일 없으면 네 번째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나는 그만한 기다림이 가치가 있는 시리즈라 생각한다. 과연 그 작품에서는 얼마나 비정하고 또 얼마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무척 기대된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도 누군가를 옹호할 때도 공정하자고 생각하라고. - 48p



부모라는 사람들은 늘 아차, 하고 생각하는 법이야. - 94p



"튀는 일이라는 게 뭔가요. 어둡다는 건 그저 조용히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간이 걸핏하면 다른 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풍뎅이는 알고 있었다. - 177p



온갖 무기나 흉기를 사용하고 또 상대해 온 풍뎅이 입장에서 보자면, 최종적으로 싸움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한다. -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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