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1 







 최근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를 읽고 청부살인업자가 등장하는 소설이 읽고 싶어져 이 작품을 다시 펼치게 됐다. 3년 전에 읽을 때는 시리즈 전편을 안 읽어서 큰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접하고 읽으니 이 작품의 내용이 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청부살인~>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전형적으로 킬러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혐오스러워하며 종국엔 은퇴를 결심하는 킬러가 등장한다. <청부살인~>의 킬러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는 쿨함을 보여 당혹스러웠다면 후자의 킬러 '풍뎅이'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는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게 때때로 위선적으로 비쳐져 그의 은퇴를 응원하는 한편으로 거리를 두게 됐다. 그래, 범죄자에게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니까. 

 풍뎅이도, 또 작가도 위선이란 걸 알고 있는지 작품은 마냥 동정적인 시선으로 풍뎅이의 여정을 쫓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함께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와 그 이면에 도사리는 킬러 업계의 냉혹한 원리가 균형이 잡힐 듯 잡혀지지 않으며 중구난방으로 묘사되는데, 그 탓에 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몰입도는 떨어질는지 몰라도 풍뎅이에 대한 심정을 독자로서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의외로 절묘한 전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풍뎅이를 압박하는 불안감과 죄책감, 가족과의 유쾌하고도 진땀 나는 에피소드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풍뎅이라는 캐릭터가 다소 기계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시리즈 역사상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풍뎅이인 만큼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심적으로 고통 받는 전개가 나온 것이 옳았다고 본다. 


 뭐, 이사카 코타로의 필력 덕분에 가독성엔 문제가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최강의 킬러인 것이 무색하게 <악스>의 수록작들의 내용은 심심하거나 식상한 구석이 있었다. 첫 번째 수록작 'AX'는 당랑지부라는 사자성어를 강조하거나 이야기의 첫 수록작치고 내용이나 결말이 허무한 감이 있었고 'BEE'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는 풍뎅이의 모습이나 그 계기는 멋졌으나 이야기 자체는 가장 시시했고 그 다음 수록작 'Crayon'은 공처가이자 고독한 사나이 속성을 가진 풍뎅이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역할로만 기능하고 있어 인상에 강하게 남지 않았다. 

 업계의 다른 킬러와의 대결과 은퇴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수난을 다룬 'EXIT'와 'FINE'은 이사카 코타로의 감성이 묻어 나오는 비장함, 시리즈 특유의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킬러의 세계는 돋보였지만 의외로 허술한 풍뎅이의 은퇴 계획 때문에 2% 부족한 수록작이 아닐 수 없었다. 결말은 어느 정도 여운이 있었고, 풍뎅이나 의사나 인과응보를 치른 게 꽤나 합당하다 여겨졌지만 거의 예상 가능한 전개였기에 대단히 쾌감이 있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글쎄, 이번 작품의 경우엔 신선함보다 진정성, 특히 풍뎅이의 부성애에 초점을 맞췄고 그에 관해선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은 인정하겠으나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작가의 팬이나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팬에게 이 작품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으며 추천할 것 같진 않다. 


 반면 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편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은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물론 전편에서 내용이 이어지진 않고 간간이 전작의 캐릭터들이나 사건이 언급되는 것, 같은 킬러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 작품은 같은 시리즈로 묶일 만한 접점이 부족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가 킬러라는 직업군(?)의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면 <악스>를 읽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아내 눈치를 보는 풍뎅이의 면모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세심함이나 당랑지부라는 말을 마지막 수록작에서 회수하는 솜씨를 보노라면 경이롭진 않더라도 경지에 달한 안정적인 필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킬러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식상한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른 느낌이라니, 소재에 대한 이 작가의 애정 내지는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과연 나올까? 특별히 이 작품으로 완전히 끝이라는 느낌은 못 받았으니 별 일 없으면 네 번째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나는 그만한 기다림이 가치가 있는 시리즈라 생각한다. 과연 그 작품에서는 얼마나 비정하고 또 얼마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무척 기대된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도 누군가를 옹호할 때도 공정하자고 생각하라고. - 48p



부모라는 사람들은 늘 아차, 하고 생각하는 법이야. - 94p



"튀는 일이라는 게 뭔가요. 어둡다는 건 그저 조용히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간이 걸핏하면 다른 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풍뎅이는 알고 있었다. - 177p



온갖 무기나 흉기를 사용하고 또 상대해 온 풍뎅이 입장에서 보자면, 최종적으로 싸움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한다. - 19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