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8.0 






 베네수엘라는 석유라는 압도적인 자원이 있음에도 지도자들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남미 국가 중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안이 최악이라고 한다. 사실상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베네수엘라라는 나라를 잘 몰랐던 주제에 - 오히려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됐을 정도다. - 이렇게 '최악'이란 단어를 쓰는 데엔 이 책이 베네수엘라 작가가 쓰는 자국 디스를 베이스로 뒀기 때문임을 밝힌다. 생지옥이나 다름 없는 베네수엘라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 아멜라이다 팔콘이 이웃집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 통칭 '스페인 여자의 딸'의 시체를 발견한 뒤 그녀의 신분을 위장하고서 스페인으로 도주하려는 이야기 <스페인 여자의 딸>은 정말이지 베네수엘라의 가감 없는 현실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설마 이게 현실일까 싶지만 아마도 현실일 것 같다는 게 더 소름 돋는 일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한국어를 쓰는 외국이 없기에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하려는 주인공의 대담함이 개인적으로 신기하게 다가왔다. 언어적인 어려움 없이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감도 안 잡히므로. 아무튼 주인공이 신분 위장을 망설이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일말의 미련? 절대 아니고, 자신이 신분을 위장하고 스페인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들켰을 때 돌아올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것만이 그녀가 행동을 망설이는 이유였다. 엄청난 수위의 잔혹함으로 점철된 보복은 거의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해 살짝 감각이 마비될 정도였는데, 이렇다 보니 주인공이 망설이는 이유나 고국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는 것도 이해가 갔다. 


 물론 주인공이라고 아예 베네수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 추측할 수 있는 요소로 유럽 스페인어의 'z' 발음에 대한 주인공의 시선이나 베네수엘라 건국 영웅과 그의 조력자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릴 때의 주인공의 감정을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유럽 스페인의 'z' 발음이 영어의 'th' 발음, 이른바 번데기 발음과 유사한 것에 비해 남미 스페인의 'z' 발음은 거의 's' 발음에 가깝고 아이러니하게도 남미 사람들이 스페인 사람들의 오리지널 'z' 발음을 좀 이상하게 여긴다는 점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스페인 군인과 원주민까지(!) 몰아내고 오직 스페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 자신들만이 이 땅(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의 북부 지역)의 주인이 될 정당성이 있다며 독립을 주장한 건국 영웅 볼리바르의 이야기를 염두에 둘 필요성이 있다. 

 이 두 요소가 내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30년 일제강점기를 겪은 뒤 일본과 관련된 흔적을 약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우려고 했던 역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 스페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 사람들이 국가를 세운 역사와 두 문화가 혼합된 자신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퍽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전히 스페인의 오리지널 문화(언어)가 아닌 혼합된 자신만의 문화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제는 고국을 등지고 스페인으로 가는 것말곤 선택지가 없는 주인공의 처지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언어도 통하고 얼추 문화도 비슷할 테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사람으로 위장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신분 위장 자체가 범죄인 데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베팅이니 그를 강제하고 있는 고국에 주인공은 애정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원망하면 또 모를까. 하지만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주인공은 신분 따위가 아닌 자신의 운명, 자신의 운명을 둘러싼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참 새삼스럽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치안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걸 감사하게 된다. 이런 상대적 우월감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을 알지만 말이다. 


 소재나 배경은 흥미롭지만 가독성이 약해서 완독하는 데 다소 힘든 작품이다. 책의 시놉시스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필시 중간에 덮어버렸을 것이다. 난 이러한 원인을 세 가지라 생각하는데, 일단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것, 상대적으로 낯선 남미 문학이라는 것, 그리고 역자가 아직 번역 경험이 적다는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이유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세 번째 이유에 대해선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어 문학에 대한 소비가 영미 문학이나 일본 문학에 비해 턱없이 적어 번역가들의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한 감이 있는데 그런 경향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가 자기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것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스페인이나 남미 문학이 좀 더 각광을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아쉬움이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 자체가 신분 위장 이야기치고 전개나 결말이 시시하고 허무한 게 아쉬웠지만 자국 이야기 디스를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해준 작가 덕에 진솔함 하나는 끝내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나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아까 위에서 말했지만 이런 작품들을 통해 스페인어 문학이 차례차례 소개됐으면 좋겠다. 예전에 찬호께이의 <13.67>이 대히트를 치고 중화권 추리소설이 많이 소개됐던 것처럼.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마냥 현실감 없는 바람은 아니리라 본다.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 248p



오직 한 글자만이 ‘출가‘와 ‘출산‘을 가를 뿐이다. - 2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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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은 셋 세라 ㅣ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9.5 







 명랑한 갱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를 접했다. '내가 강도를 하는 게 더 낫겠다.'는 황당한 이유로 모인 4명의 은행 강도는 이번에도 어처구니 없이 위기에 몰리는데, 상대가 워낙 저질이다 보니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처럼 조직 자체가 와해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엉뚱한 개그 캐릭터 못지않게 빌런을 묘사하는 것에도 재주가 있는 이사카 코타로는 - 데뷔작 <오듀본의 기도>의 시로야마, <사신의 7일>의 혼조, <마리아비틀>의 왕자가 대표적일 텐데 이 작품의 히지리도 유형은 달라도 이들에 견줄 만한 악인이었다. -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한 악당을 선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놓고 악당이 아닌 법으로는 재단하기 애매한 기레기 중에 상기레기인데 엄연히 범법자인 명랑한 갱들로선 맞서기 은근히 껄끄러운 상대라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였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미카엘이 기자로서의 윤리를 아웃사이더인 리스베트에게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명랑한 갱은 셋 세라>에서는 윤리 따위 완전히 씹어먹은 개차반 인성의 기자가 나와 공분을 산다. <마리아비틀> 이후로 또 한 번 오랜만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통해 허구의 대상에게 적대심을 품었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적절한 방식으로 응징을 당해 쾌감이 있었다. 무분별하게 혀를 놀린 자, 마찬가지로 혀에 자멸하리라. 다시 말하지만 히지리가 저지른 짓에 비하면 응징이 약한 감은 있으나 경찰이 아닌 명랑한 갱들로서는 이게 최선이었으리라. 아니, 오히려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응징을 했기에 그나마 더 쾌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체포를 당하는 정도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완벽주의자이자 거짓말을 간파하는 나루세, 인간에겐 환멸을 동물에겐 무한한 애정을 품는 구온, 생체 시계를 가진 숙련된 드라이버 유키코, 그리고 카페 사장이나 은행 강도도 어울리지 않는 참된 예능인 교노까지, 완벽한 개성과 케미를 자랑하는 '명랑한 갱'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인 듯하다.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은행 강도 이야기를 가볍고 명랑하게 써도 되는지 고민한 모양이지만 명랑한 갱들이 기본적으로 선을 넘지 않는 의적에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설이 꼭 올곧은 얘기만을 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에 신작을 냈다고 한다. 독자로서 참 다행인 일인데, 전작에 뒤지지 않는 밝고 건전하고 재밌는 은행 강도 이야기의 신작을 본 것도 좋지만 작가가 고민을 한 보람이 있게 재밌는 한편으론 묵직한 부분도 있어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온갖 저급하고 분별 없는 기사를 써갈기는 기레기, 그 기레기의 기사를 아무런 분별도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독자라고 내세우며 '알 권리' 운운하는 기레기... 대책 없는 악순환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주목한 이 작품은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상상 그 이상으로 쓰레기 인성의 소유자인 히지리를 통해 우리가 악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법의 심판 그 이상의 무언가임을 불현듯 깨닫게 해준다. 그래, 이런 놈에겐 사형보다 더한 것이 필요하다. 


 히지리가 소름 끼치는 이유는 간이 부었는지 명랑한 갱에 관한 기사를 쓰겠다고 당사자들한테 직접 협박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정당화하는 천박한 사상 때문인데, 비록 무력은 별 볼 일 없을지언정 사상이 너무 위험해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사상이 위험한 놈들은 간혹 죽음조차 큰 위협이 되지 않기도 하는데, 히지리는 그 정도로 맛탱이 간 작자는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 왔는지 어느 정도는 깨달을 수 있는 방식으로 - 물론 히지리는 반성하지 않겠지만. - 그를 파멸로 몰고 간 명랑한 갱의 작전은 제법 적절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통쾌하기 그지없다. 

 아마 이 시리즈도 후속작이 계속 나올 듯하다. 이사카 코타로의 '킬러' 시리즈, '사신 치바' 시리즈와 더불어 이 시리즈도 만족스러웠는데 이 작가의 시리즈는 늘 옳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최초의 시리즈 캐릭터인 구로사와 등장하는 작품을 요 몇 년 동안 못 읽은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아직 이 작가의 작품 중 못 읽은 작품이 많아 참 설렌다. <칠드런>의 후속작 <서브마린>도 읽어야 하고... 바쁘다 바빠! 

스스로 은인이라 칭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 32p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아마, 그 말도 거짓말일 거예요. - 66p



인간의 나쁜 부분은 타인에게 조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야. -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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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2 - 굿나잇 혹은 굿모닝 ㅣ 길에서 만나다 2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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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개인적으로 네이버 웹툰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으나 단행본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주연급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조연들의 이야기는 거의 편집당했는데, 단행본으로 펴낼 때는 분량 제한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편집을 당해도 너무 당해 팬으로서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단행본으로 접했을 때는 그래도 정확히 어떤 내용이 편집당했는지 기억이 나지만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이젠 그마저도 가물가물했다. 좋게 말해 과감하다고도 할 수 있는 분량 줄이기만 아니었다면 정말 무한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책이었을 텐데. 

 앞서 말했듯 약간의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여전히 사랑스런 작품이다. 이야기가 약간 편집된 탓에 희수가 비교적 굴곡 없이 꿈을 이룬 것처럼 비쳐졌는데 - 연재 때는 좀 더 우여곡절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 그럼에도 인물들의 위트 있는 대사나 아름다운 그림체는 제대로 살아있어 말 그대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가의 수채화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고 서정적이라 빠져들면서 읽게 됐다. 특정 일러스트도 물론이거니와 모든 장면이 정말 '그림'이 따로 없었는데 재밌게도 작가는 연재를 빠르게 하기 위해 수채화를 택했다고 한다. 수채화가 특별히 자신 있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수채화를 그리다 보면 잘못 그려도 수정을 하지 못하니까. 말인즉슨 연재 속도를 위해 택한 수채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다른 웹툰 작가와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 작가의 나름대로의 철학도 작품을 즐길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자신이 편식을 하는 사람이기에 편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거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요소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은 힐링을 안겨줬다. 이는 그림에서도 반영되는 부분으로, 평생을 서울에서 산 내가 간과했던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는 이 작가의 시선을 보노라면 나 혼자 세상을 칙칙하게 사는 것 같아 왠지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위트 있는 대사를 쉴 틈 없이 치는 캐릭터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주인공 희수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엇비슷한데 지금 그의 처지가, 데뷔 영화를 촬영하기 전의 그의 모습은 현재 내 처지와 닮은 데가 있어 씁쓸하게도 공감이 됐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20대 초반엔 남의 일이라 읽었는데... 다만 신기한 건 그때도 희수처럼 조금 반사회적이라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려도 난 내 소신껏 살고 골목길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막연히 그를 롤 모델로 삼았던 것 같은데 정말 희수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서 얼떨떨한 기분도 든다. 물론 난 희수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 생각은 든다. 내가 롤 모델을 잘못 삼진 않았구나. 


 희수가 걸었던 길을 내가 온전히 따라 걷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방향 설정이나 그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참고하고자 했던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작중에서 희수의 성공을 통해 위로 받은 것 같아서 오랜만에 읽은 보람이 있게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난 희수처럼 인생에 광명이 오려면 더 걸릴 듯하지만 그래도 적잖이 위로가 됐다. 삶은 역시나 다양하고 아름답구나. 모든 길과 풍경이 다 다른 것처럼. 추상적인 말이지만 <길에서 만나다>를 읽다 보면 이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생 사랑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첫 번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생 꿈꾸지 않고 살아가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은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더는 꿈꾸지 않겠다고, 다시 사랑은 없다고 마음을 닫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거나 복수가 되지 않는다. 마음속에 솜털만큼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아주 어둡고 깊은 곳일지라도 0.1초의 사랑이 남아 있다면 두 번째 꿈을 꾸어도 좋다. - 2권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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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이윤기 옮김 / 섬앤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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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거의 12년 전에 읽은 소설로 그 당시엔 독서를 거의 하지 않음에도 이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은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워낙 가독성이 좋은 덕분도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 치점 신부의 종교관이 내 종교관과 제법 일치하는 데가 많아 거부감 없이 읽었던 것 같다. 지난 12년 사이 내 종교관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기에 <천국의 열쇠>는 여전히 참된 종교 소설로 읽혔다. 

 최근 <침묵>을 읽던 중에 이 책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됐는데, 여전히 700페이지는 무겁고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분량이지만, 또 그 분량이 전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침묵>을 읽은 다음에 읽으니 많은 부분에서 가슴이 벅찼던 작품이기도 했다. 모든 신부가 치점 신부처럼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면 성화 밟기에 따른 고뇌, 신의 침묵에 대한 딜레마 같은 건 고민거리 축에 들지도 못했을 테니까. 


작품의 제목인 '천국의 열쇠'는 치점의 말에 따르면 정해진 조건을 충족시켜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말처럼 다른 종교를 믿어도, 혹은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올곧은 가치관을 기준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만 하면 쥐어지는 것이라 한다. 이는 반대로 몇 십 년이나 종교계에 몸을 담거나 그 조직 안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가령 작중의 안셀름 밀리처럼 선행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물이라면 천국의 열쇠 역시 얻을 수 없음을 역설한다. 

 역자인 이윤기 씨는 무신론자 의사 탈록이야말로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라며 작가는 이 인물의 임종을 지키는 치점 신부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안심시키는 장면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강조한 것이라 했다. 나는 이 장면도 명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다음에 치점 신부와 베로니카 수녀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베로니카 수녀가 왜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 축복을 빌었느냐고 실로 꼴통스런 발언을 해대며 이전까지 시시콜콜한 이유들로 품어온 치점 신부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그 장면 말이다. 그에 대해 치점 신부는 인간적이고 솔직하게 당신의 혐오감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설령 탈록이 무신론자였을지언정 좋은 의사이자 사람이기에 신부인 자신으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못을 박았다. 후에 베로니카는 반성 끝에 치점 신부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난 무신론자지만 주변에 독실한 기독교도 친구들은 많은데 그들의 얘길 들어보면 작금에 비해 현재의 기독교는 꽤 유연해졌다고 한다. 적어도 고전 소설에 나오는 종교적 논쟁은 무신론자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기독교도들에게 철 지난 논쟁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기독교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치가 떨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믿은 자만 천국에 통과시켜주는 편가르기식 교리를 들 수 있는데, 치점 신부의 태도는 편을 가르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종교에 상당히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 이래저래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은 직업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종 기독교 교리와 그 교리를 신봉하는 꼴통 기독교도들과 충돌하는데, 이보다 가관인 것은 종교계도 엄연히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 파벌도 있고 은연중에 차별도 있으며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도 있어 치점 신부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다가 이제 좀 사정이 나아지려고 하면 조직의 명령에 따라 격동의 소용돌이로 빠지고 만다는 게 읽는 입장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참으로 씁쓸한 지점이었다. 종교는 신이 아닌 인간들이 만들었을 뿐이란 나의 냉소적인 의견이 마냥 헛소리가 아니란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건 나조차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치점 신부가 중국으로 선교를 가는 것도 말이 좋아 선교지 사실상 완전히 유배나 다름없는데 적어도 표면적으론 치점 신부를 비롯한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 대부분이 아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 것도 좀 흥미로웠고 그 안에서 각기 다른 국적의 수녀들이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서로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대립하는 건 우스웠고 종래엔 치점 신부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더니 다른 신부가 기껏 그에게 한다는 소리가 '중국에서 30년 넘게 모은 신자 수가 다른 신부가 5년 동안 모은 신자 수보다 적다'는 건 격분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내게 <천국의 열쇠>는 신부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치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엔 인간의 위선과 기독교도들의 허접한 민낯이 훨씬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지라 그 대척점에 있는 치점 신부는 그저 빛으로 여겨질 따름이었다. 물론 작가가 노린 부분이었겠지만 단언컨대 내겐 작가가 의도한 그 이상의 효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역자인 이윤기 씨가 미국 생활 중 유일하게 TV에서 틀기만 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가 바로 <왕국의 열쇠>였다고 한다. 내 경우엔 TV에서 틀기만 하면 보게 되는 영화로 <다크 나이트>와 <바스터즈>를 들 수 있으려나? ...아무튼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그레고리 펙이 치점 신부로 분했다는데 러닝타임이 130분이라고 한다. 700페이지 분량이 130분 안에 잘 다뤄졌을까 싶지만 얘길 들어보니 꽤 잘 만든 듯하다. 중국에 대한 묘사는 시대를 감안하면 많이 허접할 것 같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으면 무조건 볼 생각이다. 과연 그 영화를 보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크로닌의 다른 대표작 <성채>를 읽는 게 먼저일까? 어느 쪽이 됐든 기대되긴 마찬가지다. 

믿음이 돈독한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굳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불교도들, 회교도들, 도교의 신봉자들...... 심지어는 선교사를 잡아먹는 식인종들까지도...... 나름의 종교를 신실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참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것입니다. - 426~4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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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동사의 맛 - 이야기그림으로 배우고 익히는 우리말 움직씨
김영화 지음, 김정선 원작 / 유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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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서 비교할 순 없지만 그런대로, 마치 학습 만화를 대하는 기분으로 즐기면서 읽었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다양하고 비슷하면서도 미세하게 뜻이 다른 동사가 많은 줄은 모르진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모아 놓으니까 장관이 따로 없었다. 처음엔 모든 동사의 의미를 다 구분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회를 거듭하니 뭐가 뭔지 머리가 복잡했는데... 대놓고 학습 만화가 아닌 이야기의 흐름에 따른 주인공의 사유에 집중하고 그걸 또 쫓아가고 스스로 곱씹어 보는 맛이 있어 통상적인 학습 만화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려고 한다. 

 배경이 되는 도서관은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종로도서관인데, 집 근처에 있어 종종 이용해 읽는 내내 반가웠다. 종로도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서관으로 100년 이상 됐으며 - 몇 번 증축하긴 했다. - 그래서 그런가 장서량도 많다. 위치는 여느 도서관처럼 좀 구석진 곳에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후미지지 않아서 산과 고층 건물이 어우러진 서울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도서관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종로도서관을 배경으로 삼았던 걸까? 주인공이 프라하로의 짧은 당일치기 여행을 꿈꾸는 장면이 나왔듯 - 무려 쿤데라의 <농담>과 함께 말이다! - 이 책은 말에 관한 책이자 곧 사유에 관한 책인 동시에 공간적인 여행의 묘미도 맛볼 수 있어서 이래저래 내 입꼬리를 들썩이게 했다. 그리고 이건 진짜 여담이지만, 어쩌면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인해 종로도서관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뉴스를 봤기에 작중 그림 속 종로도서관의 풍경에 더욱 미소가 지어졌던 것도 같다. 


 약간 아쉬운 부분이라면 미세한 동사의 의미 차이를 그림으로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전에 실린 풀이 그대로 소개하고 넘어가는 연출이 많았다는 것이다. 시각적인 가독성이란 측면에서 만화만큼 우세한 장르가 없기에 원작 그대로 연출한 듯한 그림이 조금은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결국 원작을 읽어봐야 알 일이지만, 또 작품의 분위기가 취향에 맞아 그리 거슬리는 단점은 아니었지만, 학습 만화로서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뚜렷한 만큼 더 신경 쓰면 어땠을까 싶다. 작중 소개되는 동사들의 의미 차이가 미세하니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갔으니까 말이다. 

뒤쳐지지 않고 제대로 서야만 뒤처지지 않겠지.

하지만 어떨 땐 그냥 뒤쳐진 채로 배를 드러내 놓고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 뒤처지다/뒤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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