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2 - 굿나잇 혹은 굿모닝 길에서 만나다 2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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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개인적으로 네이버 웹툰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으나 단행본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주연급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조연들의 이야기는 거의 편집당했는데, 단행본으로 펴낼 때는 분량 제한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편집을 당해도 너무 당해 팬으로서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단행본으로 접했을 때는 그래도 정확히 어떤 내용이 편집당했는지 기억이 나지만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이젠 그마저도 가물가물했다. 좋게 말해 과감하다고도 할 수 있는 분량 줄이기만 아니었다면 정말 무한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책이었을 텐데. 

 앞서 말했듯 약간의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여전히 사랑스런 작품이다. 이야기가 약간 편집된 탓에 희수가 비교적 굴곡 없이 꿈을 이룬 것처럼 비쳐졌는데 - 연재 때는 좀 더 우여곡절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 그럼에도 인물들의 위트 있는 대사나 아름다운 그림체는 제대로 살아있어 말 그대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가의 수채화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고 서정적이라 빠져들면서 읽게 됐다. 특정 일러스트도 물론이거니와 모든 장면이 정말 '그림'이 따로 없었는데 재밌게도 작가는 연재를 빠르게 하기 위해 수채화를 택했다고 한다. 수채화가 특별히 자신 있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수채화를 그리다 보면 잘못 그려도 수정을 하지 못하니까. 말인즉슨 연재 속도를 위해 택한 수채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다른 웹툰 작가와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 작가의 나름대로의 철학도 작품을 즐길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자신이 편식을 하는 사람이기에 편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거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요소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은 힐링을 안겨줬다. 이는 그림에서도 반영되는 부분으로, 평생을 서울에서 산 내가 간과했던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는 이 작가의 시선을 보노라면 나 혼자 세상을 칙칙하게 사는 것 같아 왠지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위트 있는 대사를 쉴 틈 없이 치는 캐릭터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주인공 희수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엇비슷한데 지금 그의 처지가, 데뷔 영화를 촬영하기 전의 그의 모습은 현재 내 처지와 닮은 데가 있어 씁쓸하게도 공감이 됐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20대 초반엔 남의 일이라 읽었는데... 다만 신기한 건 그때도 희수처럼 조금 반사회적이라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려도 난 내 소신껏 살고 골목길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막연히 그를 롤 모델로 삼았던 것 같은데 정말 희수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서 얼떨떨한 기분도 든다. 물론 난 희수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 생각은 든다. 내가 롤 모델을 잘못 삼진 않았구나. 


 희수가 걸었던 길을 내가 온전히 따라 걷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방향 설정이나 그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참고하고자 했던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작중에서 희수의 성공을 통해 위로 받은 것 같아서 오랜만에 읽은 보람이 있게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난 희수처럼 인생에 광명이 오려면 더 걸릴 듯하지만 그래도 적잖이 위로가 됐다. 삶은 역시나 다양하고 아름답구나. 모든 길과 풍경이 다 다른 것처럼. 추상적인 말이지만 <길에서 만나다>를 읽다 보면 이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생 사랑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첫 번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생 꿈꾸지 않고 살아가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은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더는 꿈꾸지 않겠다고, 다시 사랑은 없다고 마음을 닫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거나 복수가 되지 않는다. 마음속에 솜털만큼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아주 어둡고 깊은 곳일지라도 0.1초의 사랑이 남아 있다면 두 번째 꿈을 꾸어도 좋다. - 2권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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