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이윤기 옮김 / 섬앤섬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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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거의 12년 전에 읽은 소설로 그 당시엔 독서를 거의 하지 않음에도 이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은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워낙 가독성이 좋은 덕분도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 치점 신부의 종교관이 내 종교관과 제법 일치하는 데가 많아 거부감 없이 읽었던 것 같다. 지난 12년 사이 내 종교관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기에 <천국의 열쇠>는 여전히 참된 종교 소설로 읽혔다. 

 최근 <침묵>을 읽던 중에 이 책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됐는데, 여전히 700페이지는 무겁고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분량이지만, 또 그 분량이 전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침묵>을 읽은 다음에 읽으니 많은 부분에서 가슴이 벅찼던 작품이기도 했다. 모든 신부가 치점 신부처럼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면 성화 밟기에 따른 고뇌, 신의 침묵에 대한 딜레마 같은 건 고민거리 축에 들지도 못했을 테니까. 


작품의 제목인 '천국의 열쇠'는 치점의 말에 따르면 정해진 조건을 충족시켜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말처럼 다른 종교를 믿어도, 혹은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올곧은 가치관을 기준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만 하면 쥐어지는 것이라 한다. 이는 반대로 몇 십 년이나 종교계에 몸을 담거나 그 조직 안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가령 작중의 안셀름 밀리처럼 선행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물이라면 천국의 열쇠 역시 얻을 수 없음을 역설한다. 

 역자인 이윤기 씨는 무신론자 의사 탈록이야말로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라며 작가는 이 인물의 임종을 지키는 치점 신부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안심시키는 장면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강조한 것이라 했다. 나는 이 장면도 명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다음에 치점 신부와 베로니카 수녀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베로니카 수녀가 왜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 축복을 빌었느냐고 실로 꼴통스런 발언을 해대며 이전까지 시시콜콜한 이유들로 품어온 치점 신부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그 장면 말이다. 그에 대해 치점 신부는 인간적이고 솔직하게 당신의 혐오감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설령 탈록이 무신론자였을지언정 좋은 의사이자 사람이기에 신부인 자신으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못을 박았다. 후에 베로니카는 반성 끝에 치점 신부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난 무신론자지만 주변에 독실한 기독교도 친구들은 많은데 그들의 얘길 들어보면 작금에 비해 현재의 기독교는 꽤 유연해졌다고 한다. 적어도 고전 소설에 나오는 종교적 논쟁은 무신론자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기독교도들에게 철 지난 논쟁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기독교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치가 떨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믿은 자만 천국에 통과시켜주는 편가르기식 교리를 들 수 있는데, 치점 신부의 태도는 편을 가르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종교에 상당히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 이래저래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은 직업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종 기독교 교리와 그 교리를 신봉하는 꼴통 기독교도들과 충돌하는데, 이보다 가관인 것은 종교계도 엄연히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 파벌도 있고 은연중에 차별도 있으며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도 있어 치점 신부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다가 이제 좀 사정이 나아지려고 하면 조직의 명령에 따라 격동의 소용돌이로 빠지고 만다는 게 읽는 입장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참으로 씁쓸한 지점이었다. 종교는 신이 아닌 인간들이 만들었을 뿐이란 나의 냉소적인 의견이 마냥 헛소리가 아니란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건 나조차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치점 신부가 중국으로 선교를 가는 것도 말이 좋아 선교지 사실상 완전히 유배나 다름없는데 적어도 표면적으론 치점 신부를 비롯한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 대부분이 아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 것도 좀 흥미로웠고 그 안에서 각기 다른 국적의 수녀들이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서로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대립하는 건 우스웠고 종래엔 치점 신부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더니 다른 신부가 기껏 그에게 한다는 소리가 '중국에서 30년 넘게 모은 신자 수가 다른 신부가 5년 동안 모은 신자 수보다 적다'는 건 격분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내게 <천국의 열쇠>는 신부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치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엔 인간의 위선과 기독교도들의 허접한 민낯이 훨씬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지라 그 대척점에 있는 치점 신부는 그저 빛으로 여겨질 따름이었다. 물론 작가가 노린 부분이었겠지만 단언컨대 내겐 작가가 의도한 그 이상의 효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역자인 이윤기 씨가 미국 생활 중 유일하게 TV에서 틀기만 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가 바로 <왕국의 열쇠>였다고 한다. 내 경우엔 TV에서 틀기만 하면 보게 되는 영화로 <다크 나이트>와 <바스터즈>를 들 수 있으려나? ...아무튼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그레고리 펙이 치점 신부로 분했다는데 러닝타임이 130분이라고 한다. 700페이지 분량이 130분 안에 잘 다뤄졌을까 싶지만 얘길 들어보니 꽤 잘 만든 듯하다. 중국에 대한 묘사는 시대를 감안하면 많이 허접할 것 같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으면 무조건 볼 생각이다. 과연 그 영화를 보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크로닌의 다른 대표작 <성채>를 읽는 게 먼저일까? 어느 쪽이 됐든 기대되긴 마찬가지다. 

믿음이 돈독한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굳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불교도들, 회교도들, 도교의 신봉자들...... 심지어는 선교사를 잡아먹는 식인종들까지도...... 나름의 종교를 신실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참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것입니다. - 426~4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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