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ㅣ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유왕무 옮김, 이억배 그림 지음, 이억배 그림, 유왕무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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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여느 동화답게 글씨도 크고 그림도 많아서 각을 잡고 읽으면 한 시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작품이지만 그 이야기의 깊이마저 얇진 않다. 출판사에서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시리즈에 이 작품을 첫 번째로 선정했던데, 모르긴 몰라도 부모들이 읽으면 훨씬 더 좋을 작품이라 생각했다. 특히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거나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줄 자신의 복제품으로 여기는 부모에게 이 동화가 좀 더 각별하게 읽힐 듯하다. 

 물론 소설을 읽고서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리라고 여길 만큼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례로 내 부모님 세대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청년 시절에 본 세대지만 그 자식 세대인 내 또래들이 대학 입시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부모가 될 예정이지만 좋은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젊은 독자들에게 좋은 부모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아, 그렇게 생각하니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마냥 과장된 말로 여겨지지 않는다. 


 폐유로 뒤덮인 바닷물에 온몸이 오염된 갈매기는 항구까지 필사적으로 날아가 항구의 고양이 소르바스 앞에서 숨진다. 갈매기는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부탁을 하는데 자신이 낳을 알을 잘 간직해주고 알에서 새끼가 부화했을 때 먹지 말고 그 새끼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세 번째 가히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지라 소르바스는 다른 항구 고양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각각 개성 하난 끝내주는 항구 고양이들이 머릴 맞대 새끼 갈매기 아포르뚜나다를 쥐나 다른 굶주린 고양이로부터 지켜주고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주기에 이른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특히 아포르뚜나다가 고양이에게 길러진 탓인지 비행에 대한 의지가 결여돼 그 의지를 심어주는 것부터 은근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소르바스가 아포르뚜나다에게 한 말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인상 깊은 구절로 인용한 바로 그 문장이다. 이 문장은 여러 독자들이 이 작품의 명언으로 많이 꼽는 문장으로 부모와 다른 운명을 가진 자식의 길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설령 자식이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찬 상황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말이 일품이다. 내 개인적으론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가능해질 때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설파한 구절은 몇 번을 읽어도 감동적이다. 앞뒤 맥락 없이 읽어도 작품의 분위기가 전달될 만큼 좋은 문장인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갈등이 남과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임을 생각하면 타인을 비난하기 전에 이 문장을 곱씹는 것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소르바스처럼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더라도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어느 정도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이 세상이 보다 따뜻해지리란 상상이 마구 솟아오른다. 


 아쉽게도 이 작품의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가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많은 작품을 냈고 다행히 국내에도 몇 작품 출간돼서 그 작품들을 찾아볼 생각인데, 평생에 걸쳐 소설 집필을 비롯해 인권과 관련된 운동을 많이 했던 작가가 코로나에 의해 명을 달리 했다니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도쿄에 있던 내 친구가 초창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감염돼 미각을 잃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 다행히 지금은 70% 회복됐다고 한다. - 코로나라는 게 진짜 얕봐선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경각심이 생겼다. 게다가 코로나가 자연적인 질병이 아닌 어떤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됐다는 의혹도 강하게 받는데 인간이 환경을 비롯한 지구를 파괴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바로 그 코로나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참 야속한 일이라 느껴졌다. 더 살아있었다면 코로나로 황폐화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집필 활동에 옮겼을지도 모르는데... 애석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 



 p.s 여담이지만 이억배라는 동화 작가의 그림도 만만찮게 좋았던 그림이다. 작품 분위기랑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개성적인 화풍이라 작품의 내용을 더 몰입도 높게 감상이 가능했다. 이분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너는 우리와는 달라. 하지만 네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 (중략)

우린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것을 깨닫게 했어. 너는 갈매기야. 그러니 갈매기들의 운명을 따라야지. 너는 하늘을 날아야 해. 아포르뚜나다, 네가 날 수 있을 때, 너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가지는 감정과 우리가 네게 가지는 애정이 더욱 깊고 아름다워질 거란다.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이지. - 117~1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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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2
단지 글.그림 / 레진코믹스(레진엔터테인먼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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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8 






 이 작품의 제목이자 작가의 필명이기도 한 '단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뜻의 부사가 아닌 단지斷指, 잘려나간 손가락이란 뜻이란다. 단행본에서는 이 필명의 유래가 나오지 않았는데, '부모에게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단지, 잘려나간 손가락'이란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작품의 제목과 필명이 같다는 데서 이 작품이 작가의 일상을 담은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현재진행형으로 - 지금이야 작가 입장에선 다 끝난 일이지만 연재 시점에선 현재진행형이었음이 느껴졌다. - 자신의 일상을 담아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그야말로 연재물이기에 그릴 수 있던 몰입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었다. 

 살면서 부모와 다투지 않았거나 반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만 '남들도 그러니까'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누군가 자신이 이렇게 아프다고 말하면 '난 너보다 더 아픈데 잘 극복했다. 그런데 넌 왜 그러냐? 한심하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멸시하는 사람도 많다. 이 작품 <단지>는 간단히 소개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참다 못해 토로한 일기장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받을 비판과 악플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터져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결과는 작가처럼 어디 한 곳 기댈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단지>는 최고의 공감의 장이 됐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오늘의 우리만화상까지 받았다는 건 다른 건 몰라도 작가의 상처가 작가가 이상해서 얻은 상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꼭 위태롭거나 절박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부모와 갈등이 있을 것이기에 이 작품은 거의 남녀노소에게 어필될 만한 작품이리라 생각된다. 시기를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 네이버 웹툰에서도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비슷한 작품이 많이 연재됐지만 <단지>가 가장 으뜸이었다. 일단 자기연민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정서적으로 학대를 가한 부모를 절대악으로 여기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봤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겐 화해고 자시고 대화란 걸 할 의지가 없어서 자식 쪽에서 의절을 하겠다는, 어찌 보면 희대의 불효일 수 있는 행위가 매우 큰 정당성과 공감을 형성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네이버에서 본 <단지>와 비슷한 컨셉의 연재 만화들은 짙은 페미니즘 성향과 끝없는 자기연민과 공감 호소에 그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작품의 연재 시기를 보니 한창 페미니즘이 크게 대두될 즈음이라 이 작품을 페미니즘 작품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던데 그렇 인식하기엔 엄연히 결이 다르다. 작중에서 작가가 당하는 가정폭력의 요인으로 남아선호사상이 크게 다뤄지긴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 느낌은 아니고, 작가가 독자의 사연을 받아서 그리는 2부에선 남자 독자의 이야기도 나와 가정폭력이란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만 벌어지는 비극이 아님을 강조한다. 말이 나온 김에, 페미니즘이 비난을 받고 외면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편가르기를 매우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우를 범하는 것을 들 수 있을 텐데 <단지>에선 그런 식의 극단성이나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대목이 생각보다 굉장히 적어 작품의 내용이 한없이 우울한 것과 별개로 읽히기는 수월하게 읽혔다. 


 읽는 내내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고통은 다 약과였구나, 혹은 작가가 너무 호구라서 가족들이 더 호구로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전자의 경우, 저자도 자신보다 더 심한 학대를 당한 사람의 이야길 접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다가도 결국 상처의 본질이 같음을 깨닫고, 또 학대가 흔하다는 이유로 학대의 아픔도 옅어지지 않음을 역설하는 장면이 있다. 그 대목에서 독자인 나는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과 비교해 그 깊이를 축소하지 말자며 묘한 힐링을 받았다. 

 한편 후자의 경우엔 내가 작가만큼 악랄하게 시달린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경제적으로 분명 독립했음에도 오빠와 엄마한테 호구로 취급당할 짓을 계속하는 모습에 연민보다 답답함이 앞섰다. 관계가 나아지리란 희망도 딱히 없으면서 그래도 좋은 관계는 유지하고픈 작가의 어정쩡한 태도가 상대에게 가 닿을 리 없잖은가. 그래서 그렇게 이대로 계속 휘둘리며 살 것 같았지만 작가는 자신의 필명대로 관계를 먼저 끊어낸다. 사실, 이 전개는 매우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자기연민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연을 끊다니, 그것도 연재 당시 기준으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그리다니...... 


 개인적으로 부모자식 사이가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관계라는 것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한 쪽이 마냥 일방적으로 잘하고 잘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때문에 내심 이 작가는 지금까지 호구로 지내온 것은 부모가 호구로 대한 것과 천성이 호구인 것이 결합된 현상이라 얕잡아봤었는데, 아무래도 얕잡게 여겨져야 할 것은 작가가 아닌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작가는 호구가 아니라 단지 진정성 있게 가족과 소통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단지 호구 같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작가의 대단함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처 못 알아본 게 민망하고 작가에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단지>는 총 2부로 나뉘어졌는데 1부는 단행본 2권 중반까지, 2부는 2권 후반을 장식한다. 2부는 작가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독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외전으로 외전이다 보니 처음엔 흥미가 반감됐지만 읽다 보니 두 가지 때문에 다시 빠져들며 읽게 됐다. 하나는 가정폭력의 양상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데서 오는 참담함 - 어쩔 수 없게도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는 안도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과 다른 하나는 그 사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솜씨였다. 자기 얘기를 하는 데에만 능한 작가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고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됐다. <방탕일기>라는 작품이 카카오웹툰에서 연재됐다던데 그 작품도 봐야겠다. 원래 네이버 이외의 플랫폼에서 웹툰을 보려고 하지 않는데 -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봐야 될 작품이 겉잡을 수 없이 많아지니까. - 이 작가라면 예외다. 


 끝으로 1부의 마무리에서 이 작품의 단행본을 작가가 자신의 의절한 친모한테 택배를 보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그 아줌마 성격상 우리가 기대하는 극적이고 바람직한 변화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게다가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했으니 충격도가 어마어마할 텐데 그냥 의절한 채로 넘어갔을지 어땠을지 궁금하다. 작가 입장에선 그래도 자기 시선에서 유리하게 그려졌음을 인지한 것 같지만 당사자는 너무 불합리하게 여길 수도 있는 노릇이고... 이 작가는 너무 잘 풀렸지만 사람들이 대체로 자신이 겪은 실화를 작품화하는 걸 기피하는 것은 다 저런 논란과 분란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단지 작가는 부디 이대로 아무 탈 없이 승승장구하시길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정말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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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9.3 







 실로 전형적인 추리소설인 것 같으면서도 깜찍한 트릭을 선사하는 구라치 준의 장편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작품의 트릭도 트릭이지만 역자의 후기도 기억에 남았는데, '냉장고가 빌 때까지 일을 하지 않는 작가'라니까 역자가 '냉장고가 어서 비길 바라며' 라고 후기를 남긴 게 일품이었다. 10년 전에 이 소설을 다 읽고서 포스팅을 남길 당시 나도 그에 지지 않고자 '작가의 냉장고를 내가 털어서라도 글을 쓰게 하고 싶다'고 농을 던진 게 기억이 나는데, 이후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역시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이 흔치 않은 수작임을 느낄 수 있었고 10년 만에 다시 읽은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엔 냉장고를 털어야겠다는 생각까진 안 들었지만. 

 아무래도 반전의 놀라움이나 트릭의 참신함 - 적어도 내 기준에선 지금 읽어도 참신하고 기발했다. - 등의 추리소설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교훈이나 이야기 연출 방식이 두 번째 읽을 때도 재밌기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지난 번보다 점수를 박하게 줄 수밖에 없었다. 몇몇 캐릭터들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골때린다는 걸 제외하면 이야기에 몰입할 만한 매력적인 요소도 조금 부족하고 각 장마다 앞에 첨부되는 작가의 '거짓말은 하지 않는' 멘트만이 그나마 궁금증을 자아내 작가가 바랐던 대로 완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단지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은 결코 아니거니와 독자의 관심도가 떨어질 만한 논리적인 추리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추리소설의 소임을 다하는 만큼 요번에도 머리 굴리며 읽는 재미는 여전했다. 책 첫장에는 이 작품에 대한 검은숲 출판사의 자체적인 평가가 실렸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논리정연함'이 5점 만점에 6점을 부여했는데 그 점수가 과대평가로 여겨지지 않는다. 적어도 90년대에 집필된 소설이란 점을 감안하면 특정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도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구라치 준의 작품은 이후에도 <지나가는 녹색 바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국내에 출간됐는데 모두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에 미치지 못했다. 엄연히 이 작가가 제1회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작가인 만큼 수상작인 <항아리 속의 천국>이란 작품이 출간되길 기다렸지만 10년 동안 애먼 작품만 출간됐다.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들이 우리나라에서 꽤나 반응이 좋았던 걸 생각하면 - 대표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 우타노 쇼고의 <벚꽂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밀실살인게인2.0>을 꼽을 수 있겠다. - 아직까지 출간이 안 된 게 이상한데... 뭔가 사정이 있겠지만 아무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긴 해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후 몇 번 실망하긴 했어도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구라치 준이라는 이름을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트릭이나 캐릭터, 클로즈드 써클을 제외한다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작가의 잡지식과 작가가 자극을 준 쓰즈키 미치오의 <일흔다섯 마리의 까마귀>, 그리고 사회생활할 때 욱하면 진짜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교훈 아닌 교훈도 꽤나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에서 쓸데없이 방대했던 UFO에 대한 어떤 캐릭터의 연설은 그 부분만 따로 떼서 읽으면 되게 흥미로웠고, 이 작품에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일흔다섯 마리의 까마귀>는 왠지 출간 가능성이 극히 적어보여 더 궁금하고, 주인공 스기시타가 감정 조절을 못해서 좌천당하면서 무슨 꼴을 당하느냐가 작중에서 꽤 깊이 있게 다뤄진 만큼 한 번 더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까 이 작품이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선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적어도 '욱하지 말자, ㅈ되기 싫으면.' 이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힘든 교훈을 이 작품이 꽤나 잘 다뤘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스기시타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지옥에 꼼짝없이 빠지고도 남았을 테니... 정말이지 교훈이라면 이만한 교훈도 없을 듯하다. 


 두서 없이 여러 좋았던 요소를 나열했지만, 끝으로 이 소설이 그래도 결국 기본이 탄탄했기에 뒷맛이 아주 좋았음을 강조하도록 하겠다. 아무리 기발한 트릭과 소재가 있어도 기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트릭은 기발해도 소재는 극히 평범했지만 막연하게 기대를 주는 방식과 더불어 교과서적이면서 확실하게 재미를 보장하는 동시에 허점이 없는 만듦새를 선보여 후반부의 몇몇 뜬금없는 전개나 설정이 대단히 극적으로 비춰져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책장을 덮게 됐다. 

 워낙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 허전한 감도 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겠으나 한 편으로 확실하게 끝을 맺는 추리소설이 오히려 더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고 이 작품이 그에 정확히 부합해 왜 내가 이 작품을 두 번 읽기로 10년 전에 생각했었는지 이해가 됐다. 간혹 다시 읽으면 왜 다시 읽기로 했었는지 납득이 안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아 아주 반가웠다. 



 p.s 인상 깊은 구절은 다시 읽어도 가슴에 찔리는 명언이다. '실현되지 못한 타인의 꿈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실현되지 못한 타인의 꿈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 4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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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ㅣ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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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 작품 주인공인 이름인 미숙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 또래인 90년대생 중에도 간혹 있을 텐데 실제로 미숙이들이 다 '미숙아'라고 놀림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미숙이도 미숙이 나름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이름이 미숙이라고 해서 미숙아라고 놀리는 건 너무 노골적일 뿐더러 아재 개그라 핀잔을 들을 수도 있으니 정말로 그렇게 놀리는 사람은 적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세상의 따돌림은 훨씬 더 교묘하고 비겁하고 잔인하니까. 차라리 대놓고 미숙아라고만 부르는 건 귀여운 수준이지. 본작의 미숙이의 고통을 폄훼하자는 건 아니지만, 세상이 점점 나쁜 쪽으로 진화하고 있어서 정말 별 감상이 다 나오게 된다. 

 80년대 중후반 출생의 여성이며 가난한 집안에다 언니가 있고 시인인 아빠를 둔 미숙은 나와 크게 공통 분모가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학창 시절을 잘 보내지 못했고 친구가 극히 적고 그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도 사이가 소원해지는 일련의 전개는 내 삶과 맞닿은 부분이 많아 알게 모르게 꽤나 감정 이입했던 것 같다. 큰 틀에서, 아주 큰 틀에서 봤을 땐 이 작품도 페미니즘을 근간에 뒀다고 할 수 있으나 내겐 그보단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의 성장 만화로 읽혔다. 이래저래 메시지 보단 몰입에 더 초점을 둔 작품이므로 어두운 작풍임에도 생각보다 부담 없이 읽히는 게 일품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골때리는 요소 중 하나로 수틀리면 상대를 비방하다 못해 손찌검을 날리기까지 하는 미숙의 아버지를 꼽겠다. 꼴에 지가 남자고 가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권위가 무시되는 걸 견디지 못해 저러나 싶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가장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분량이 은근히 많지 않음에도 등장할 때마다 역겨웠다. 그래도 국어 교사들 사이에선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로 괜찮은 시를 썼던 모양이지만 - 그런데 전공의 특성상 시인인 교수를 많이 봤지만, 실제로 인격적으로 어른이라 느껴지거나 닮고 싶은 사람은 내 경험상 정말 거의 없었다. -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 살림에 별 보탬이 못 됐을 테니 실질적 가장은 미숙의 어머니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길 외조하는 아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해야 정상인데 주인공네 아버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등장하는 장면의 반 이상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장면이다. 돈 잘 벌어오는 회사원이라면 아내를 패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미숙의 엄마가 사람이 무른 것인지 아무튼 집안의 위계 질서가 신기할 정도로 유일한 남자인 미숙의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가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진짜 요즘엔 좀처럼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그럼에도 미숙이네 학교의 국어 교사는 아버지의 새로운 시집은 언제 나오냐며,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남다르시다'며 칭찬을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국어 교사는 시집만 보고 한 발언일 테니 악의는 없었겠지만, 안 그래도 아버지 닮아 필력이 좋은 것도 탐탁찮은 미숙에게 그 말은 거대한 반발을 샀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심리적 저항감이 없었다면 재이가 아닌 미숙이 문단에 진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재이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주변에 친구와 자기 스스로의 상하 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를 깔보는 사람이 참 많은데 재이도 결국 그 많고 많은 쓰레기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한결 같이 쓰레기였던 아버지보다 미숙에게 더한 배신감을 안긴 인물인데, 처음엔 미숙과 재이 둘 사이의 우정이 어딘지 심상찮아서 이 만화가 백합물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 사실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모호하다. - 이내 미숙의 가정사를 허락 없이 '문학적으로' 만천하에 까발리는 만행을 저질러 둘의 관계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가슴 아프게도 미숙에겐 재이 입장에선 '만만한 쪼다'로 비쳐진 걸 제외하면 잘못한 점이랄 게 전혀 없고 재이는 철면피라도 깐 듯 나중에 아는 친구를 통해 미숙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무신경하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상식이라는 가치에 기대기엔 세상엔 비상식적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탄식을 시종 굳은 표정인 미숙이 대신 내가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3부에서 언니가 죽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집에서 키우던 개를 미숙이가 독립하면서 데려와 이름을 본래 자신이 정했던 '절미'로 바꾸는 전개를 내내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다. 언니의 죽음도 결국 아버지가 남긴 유전적인 문제가 원인이라 더 비극적이었는데, 나는 내심 미숙이에게 이보다 더한 비극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남자친구도 지금까지의 분량 안에선 꽤 건실한 사람인 듯하고 절미도 미숙이가 극진히 보살펴 자기 똥을 먹지 않는 등 우려했던 것에 비해 여운과 희망이 넘치는 결말이라 가볍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속시원히 해결된 갈등도 없고 적절히 죗값을 치른 인물도 없지만 그럼에도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주인공인 미숙 역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열린 결말에서 독자인 나 역시 까닭 모를 정도로 큰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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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8.3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째 되는 지금에 이 책을 읽으니 난 사실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반려견을 안락사시킬 때 얼굴의 피부에 경련이 올 만큼 울었었고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약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반려묘를 무려 세 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그날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개를 다룬 소설이라기에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소년과 개>를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것치고 서사적으로 그리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으로 내용으로만 따지면 일본의 그 유명한 하치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감동적인 서사를 자랑하면서 눈물을 쥐어짜는 듯한 신파적인 문체가 아닌 담백하면서 가독성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글쎄, 이 가독성 있는 문체란 것이 담백하게 집필된 덕분도 있지만 촘촘하거나 무게감이 있는 문장이나 서사와는 거리가 멀어 구현된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저자가 본래 누아르 작품을 쓰던 분이라 당초 예상보다 개와 일종의 거리감을 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나오키상 심사평을 보니 미야베 미유키가 '개를 의인화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낸 감동적인 수작' 이라고 하던데, 잘은 몰라도 동화가 아닌 이상 개를 의인화하는 작품이 그렇게 많나 싶어 그게 이 작품만의 장점인지 잘 모르겠으나 '개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감 없이 읽히리란 점에서 말이다. 


 개를 싫어하다 못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 앞에서 아무리 개가 위대한 동물이라고 떠들어도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저자가 서두에서 개는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물이라며 예찬을 하길래 이 작품 자체도 개에 대한 근거 없는 예찬으로 점철됐으면 어쩌지 하고 우려됐으나 누누이 말했듯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상당히 자연스런 감동을 연출했다. 재밌는 건 개는 가만히 있는데 그 개를 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깨닫고 삶을 돌아보고 모종의 결심을 하는 장면들인데, 인간을 향한 개의 무조건적인 태도로 하여금 인간이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구도가 워낙에 흔한 클리셰고 이 책에서만도 여섯 번 반복되기에 뒤로 갈수록 지겨웠던 걸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사에 특별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예상했던 대로 어느 정도는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해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리라곤 장담하진 못하겠다. 그럭저럭 감동적이라고 느낀 내가 너무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인 걸까? 

 하나 격하게 공감한 것은 동물은 인간에게 큰 감정은 없지만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동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는 대목이었다. 그를 제외하면, 난 아직까지 동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는지 이 여섯 편의 단편이 안일하게 반복되는 시나리오란 감상만 나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둘러싸면서 감동적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나오키상을 수상한 걸 보니 이 책을 작가의 문체 그대로 덤덤하게 읽은 내 스스로가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건가? 차라리 신파가 더 효과적이었으려나?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소년과 개'에서 살짝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속 깊이 묻어둔 탓에 더 이상 개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여력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분석하게 됐다. 


 누가 누아르 작가 아니랄까봐 개의 이야기라고 예상했던 것에 비해 수위 높은 범죄 묘사도 나오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 만큼 강렬한 결말에 이르게 되니 순전히 개의 이동, 개가 이동하는 목적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굳이 개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서사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충만했는데 개가 등장함으로써 서사가 느슨해지고 획일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 이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중소설에게 수여되는 상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나오키상인데 이렇게 느슨한 서사여도 괜찮은 건가 하는 의구심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개를 등장시킨 소설로 나오키상을 받은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니 너무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나오키상 수상이 이렇게 쉬웠나 하고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 작품이 쉽게 집필된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획일적인 서사긴 해도 사람의 이야기나 사람들이 개와 교감하는 이야기는 결코 안일하게 그려졌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과 개가 교감한 역사가 무척 길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모두가 알 만한 장면을 다룬 서사가 나오키상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이 지난 탓에 내 감성이 덩달아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교감의 이야기가 아직도 너무 당연한 탓에 이 소설의 내용이 강렬하지 못했던 것인지... 난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무슨 연유인지 잘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저자가 범죄를 그리는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닌 듯해 저자가 주특기라는 누아르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불야성>이라는 작품이 상당히 유명하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정작 그 소설을 읽었는데 어색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보단 읽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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