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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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째 되는 지금에 이 책을 읽으니 난 사실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반려견을 안락사시킬 때 얼굴의 피부에 경련이 올 만큼 울었었고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약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반려묘를 무려 세 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그날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개를 다룬 소설이라기에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소년과 개>를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것치고 서사적으로 그리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으로 내용으로만 따지면 일본의 그 유명한 하치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감동적인 서사를 자랑하면서 눈물을 쥐어짜는 듯한 신파적인 문체가 아닌 담백하면서 가독성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글쎄, 이 가독성 있는 문체란 것이 담백하게 집필된 덕분도 있지만 촘촘하거나 무게감이 있는 문장이나 서사와는 거리가 멀어 구현된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저자가 본래 누아르 작품을 쓰던 분이라 당초 예상보다 개와 일종의 거리감을 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나오키상 심사평을 보니 미야베 미유키가 '개를 의인화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낸 감동적인 수작' 이라고 하던데, 잘은 몰라도 동화가 아닌 이상 개를 의인화하는 작품이 그렇게 많나 싶어 그게 이 작품만의 장점인지 잘 모르겠으나 '개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감 없이 읽히리란 점에서 말이다. 


 개를 싫어하다 못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 앞에서 아무리 개가 위대한 동물이라고 떠들어도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저자가 서두에서 개는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물이라며 예찬을 하길래 이 작품 자체도 개에 대한 근거 없는 예찬으로 점철됐으면 어쩌지 하고 우려됐으나 누누이 말했듯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상당히 자연스런 감동을 연출했다. 재밌는 건 개는 가만히 있는데 그 개를 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깨닫고 삶을 돌아보고 모종의 결심을 하는 장면들인데, 인간을 향한 개의 무조건적인 태도로 하여금 인간이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구도가 워낙에 흔한 클리셰고 이 책에서만도 여섯 번 반복되기에 뒤로 갈수록 지겨웠던 걸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사에 특별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예상했던 대로 어느 정도는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해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리라곤 장담하진 못하겠다. 그럭저럭 감동적이라고 느낀 내가 너무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인 걸까? 

 하나 격하게 공감한 것은 동물은 인간에게 큰 감정은 없지만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동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는 대목이었다. 그를 제외하면, 난 아직까지 동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는지 이 여섯 편의 단편이 안일하게 반복되는 시나리오란 감상만 나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둘러싸면서 감동적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나오키상을 수상한 걸 보니 이 책을 작가의 문체 그대로 덤덤하게 읽은 내 스스로가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건가? 차라리 신파가 더 효과적이었으려나?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소년과 개'에서 살짝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속 깊이 묻어둔 탓에 더 이상 개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여력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분석하게 됐다. 


 누가 누아르 작가 아니랄까봐 개의 이야기라고 예상했던 것에 비해 수위 높은 범죄 묘사도 나오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 만큼 강렬한 결말에 이르게 되니 순전히 개의 이동, 개가 이동하는 목적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굳이 개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서사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충만했는데 개가 등장함으로써 서사가 느슨해지고 획일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 이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중소설에게 수여되는 상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나오키상인데 이렇게 느슨한 서사여도 괜찮은 건가 하는 의구심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개를 등장시킨 소설로 나오키상을 받은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니 너무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나오키상 수상이 이렇게 쉬웠나 하고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 작품이 쉽게 집필된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획일적인 서사긴 해도 사람의 이야기나 사람들이 개와 교감하는 이야기는 결코 안일하게 그려졌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과 개가 교감한 역사가 무척 길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모두가 알 만한 장면을 다룬 서사가 나오키상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이 지난 탓에 내 감성이 덩달아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교감의 이야기가 아직도 너무 당연한 탓에 이 소설의 내용이 강렬하지 못했던 것인지... 난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무슨 연유인지 잘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저자가 범죄를 그리는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닌 듯해 저자가 주특기라는 누아르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불야성>이라는 작품이 상당히 유명하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정작 그 소설을 읽었는데 어색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보단 읽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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