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유왕무 옮김, 이억배 그림 지음, 이억배 그림, 유왕무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9 






 여느 동화답게 글씨도 크고 그림도 많아서 각을 잡고 읽으면 한 시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작품이지만 그 이야기의 깊이마저 얇진 않다. 출판사에서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시리즈에 이 작품을 첫 번째로 선정했던데, 모르긴 몰라도 부모들이 읽으면 훨씬 더 좋을 작품이라 생각했다. 특히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거나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줄 자신의 복제품으로 여기는 부모에게 이 동화가 좀 더 각별하게 읽힐 듯하다. 

 물론 소설을 읽고서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리라고 여길 만큼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례로 내 부모님 세대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청년 시절에 본 세대지만 그 자식 세대인 내 또래들이 대학 입시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부모가 될 예정이지만 좋은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젊은 독자들에게 좋은 부모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아, 그렇게 생각하니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마냥 과장된 말로 여겨지지 않는다. 


 폐유로 뒤덮인 바닷물에 온몸이 오염된 갈매기는 항구까지 필사적으로 날아가 항구의 고양이 소르바스 앞에서 숨진다. 갈매기는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부탁을 하는데 자신이 낳을 알을 잘 간직해주고 알에서 새끼가 부화했을 때 먹지 말고 그 새끼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세 번째 가히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지라 소르바스는 다른 항구 고양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각각 개성 하난 끝내주는 항구 고양이들이 머릴 맞대 새끼 갈매기 아포르뚜나다를 쥐나 다른 굶주린 고양이로부터 지켜주고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주기에 이른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특히 아포르뚜나다가 고양이에게 길러진 탓인지 비행에 대한 의지가 결여돼 그 의지를 심어주는 것부터 은근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소르바스가 아포르뚜나다에게 한 말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인상 깊은 구절로 인용한 바로 그 문장이다. 이 문장은 여러 독자들이 이 작품의 명언으로 많이 꼽는 문장으로 부모와 다른 운명을 가진 자식의 길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설령 자식이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찬 상황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말이 일품이다. 내 개인적으론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가능해질 때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설파한 구절은 몇 번을 읽어도 감동적이다. 앞뒤 맥락 없이 읽어도 작품의 분위기가 전달될 만큼 좋은 문장인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갈등이 남과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임을 생각하면 타인을 비난하기 전에 이 문장을 곱씹는 것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소르바스처럼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더라도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어느 정도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이 세상이 보다 따뜻해지리란 상상이 마구 솟아오른다. 


 아쉽게도 이 작품의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가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많은 작품을 냈고 다행히 국내에도 몇 작품 출간돼서 그 작품들을 찾아볼 생각인데, 평생에 걸쳐 소설 집필을 비롯해 인권과 관련된 운동을 많이 했던 작가가 코로나에 의해 명을 달리 했다니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도쿄에 있던 내 친구가 초창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감염돼 미각을 잃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 다행히 지금은 70% 회복됐다고 한다. - 코로나라는 게 진짜 얕봐선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경각심이 생겼다. 게다가 코로나가 자연적인 질병이 아닌 어떤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됐다는 의혹도 강하게 받는데 인간이 환경을 비롯한 지구를 파괴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바로 그 코로나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참 야속한 일이라 느껴졌다. 더 살아있었다면 코로나로 황폐화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집필 활동에 옮겼을지도 모르는데... 애석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 



 p.s 여담이지만 이억배라는 동화 작가의 그림도 만만찮게 좋았던 그림이다. 작품 분위기랑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개성적인 화풍이라 작품의 내용을 더 몰입도 높게 감상이 가능했다. 이분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너는 우리와는 달라. 하지만 네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 (중략)

우린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것을 깨닫게 했어. 너는 갈매기야. 그러니 갈매기들의 운명을 따라야지. 너는 하늘을 날아야 해. 아포르뚜나다, 네가 날 수 있을 때, 너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가지는 감정과 우리가 네게 가지는 애정이 더욱 깊고 아름다워질 거란다.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이지. - 117~11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