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9.8






 누가 나보고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한다. 난 지금이 좋다. 지금이란, 대학에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생활을 일컫는다. 이런 생활은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인 시절부터 그토록 꿈꾸던 것이었다. 때문에 다시 하릴없이 입시를 위해 원치 않는 공부도 해야 했던 그 시절로는 가급적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당시에 하던 공부가 전부 대학 입시로 귀결되던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부질없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과목 - 대체로 윤리, 역사, 외국어에 속하는 과목들이었다. - 을 제외하면 점수는 간신히 낙제만 면하는 정도였는데 이는 흥미가 동하지 않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 천성 탓이 크다.


 입시를 위한 성적과 결과 만능주의로 점철된 우리나라 교육계는 정말이지 들여다볼수록 가관인 세계다. 교육이 본래 지녔을 숭고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그런 교육 환경 아래서 학청 시절을 보낸 나에게 있어서 재밌어서 배운다거나 재밌어서 가르치는 드라마 같은 얘기는 영 낯설게 들리기만 할 뿐이다.

 <화려한 수업>의 주인공 애나는 아이비리그를 졸업하자 자기 평생의 꿈인 교사가 되겠다고 부모에게 선언한다. 명문대를 졸업한 딸이 기껏 한다는 말이  '선생질'을 하겠다는 게 '실망'스러운 그들은 결국 애나의 가출과 더불어 반쯤 의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후 애나는 운 좋게 명문 사립학교에 교사로 취임하고 그토록 바라던 교육계에 종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이 부푸는데...


 주인공 애나는 이상을 믿고 나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순진해 빠진 인물을 조롱하듯 현실은 애나에게 환멸을 안긴다. '다이아몬드' 수저인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랭던홀은 뇌물이나 다름없는 학부모들의 유지비에 적셔진 곳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사는 오직 좋은 대학으로 갈 수 있는 성적뿐이다. 성적을 좋게 받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데 돈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학교 숙제에 가격을 매겨 사람을 매수한다. 이른바 '과외 선생'이라고, 자녀의 숙제를 대신할 사람을 말이다.

 이 작품은 이상주의자 신입 교사 애나가 교육계의 현실에 지쳐 타락하다가 깨달음을 얻고 다시 이상을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표지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작풍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칙릿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실제론 교사였던 작가의 경험에 기반을 둔 날카로운 사회 비판 소설이었다. 선진국의 교육계가 이렇게 막장일까 싶은데 상위 1%라고 하니 어쩐지 납득이 갔다. 그 납득엔 절망과 박탈감이 뒤따랐다.


 칙릿 소설 특유의 화려한 작풍은 본편의 참담한 내용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교육자로서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할수록 학생과 학부모가 반발하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은 애나는 자신의 경제적, 감정적 결핍을 돈과 화려한 생활로 채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즈음, 애나의 충동을 비집고 들어온 과외 선생 제안은 그녀의 타락에 발동이 걸리게 만든다. 놀랍게도 이 타락의 과정이 은근히 유쾌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지는데 점점 무뎌지는 애나의 양심을 의식하며 읽는다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다.

 무시할 수 없는 돈의 힘으로 자녀들의 학력을 사고 - 모든 성적이 그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과외 선생'을 뒀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면 학력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렇게 자란 자녀들이 나중에 자기 자식들에게 똑같이 되풀이하는 악순환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인지 모른다. 그 흐름을 거스르려다 상처를 입은 애나는 반작용으로 학생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양심은 팔려도 막대한 돈이 들어오는 일로 위안을 삼거나 자기 처지를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단순히 사회 비판을 하는 것에 그쳐도 괜찮을 뻔했지만 -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 이 책은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해 놀라운 여운을 선사한다. 아이들의 학업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어른들의 가치관과 교육계의 빈틈을 돈으로 파고들어 어처구니없이 좋은 성적을 취득하는 세태에 해결 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정말 간단하면서도 괜찮은 방안을 제시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 습득이 다가 아니라 다방면의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이고 인지하는 능력 또한 기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애나의 성장은 눈여겨볼 만한 것이었다. 순진했어도 학생을 가르치는 보람을 추구했던 애나가 점차 학생들을 등지고 돈과 명품을 쫓는 과정은 교사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과외 선생의 도움 없이 학생들 자체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던 수업 시간 동안의 작문 시험은 애나가 알려고 하지 않은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과외 선생이 모든 일을 대신하다 보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던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돈의 진정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이 허울만 좋게 좋은 학교에 가봤자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어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미성숙한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로는 아이들이나 그들 부모는 아주 악역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교육계의 부정한 흐름이 낳은 씁쓸한 현상이니까.

 교육의 참된 기능과 그에 종사하는 교육자의 됨됨이에 대해 묻는 이 작품은 비밀스럽고 부정한 사교육을 통해 비판과 교훈을 동시에 취한다. 사교육이 개입하기 어려운 수업 시간 동안의 시험과 공부를 통해 - 숙제는 일절 없다. 따라서 과외 교사는 수업 시간에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학생을 '교육'시켜야 한다. - 교육계의 그늘에 반기를 들며 끝나는 애나의 의야기는 결국 흔한 불가사리 이야기에 불과한지 모른다.


 흔한 불가사리 이야기란, 파도에 휩쓸려 모래사장에 나온 불가사리들이 햇빛에 쪄죽으려고 하는데 이때 한 아이가 불가사리를 바다에 도로 던진다. 아이를 지켜보던 어른이 그래봤자 모든 불가사리를 구할 수 없다고 만류하는데 아이는 '그래도 방금 던진 불가사리는 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 불가사리 이야기 덕분에 적잖은 여운과 해피엔딩의 산뜻함을 느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완벽한 해결보다 최선의 행동이 좋은 결말이자 결말 이후의 즐거운 상상으로 이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결과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 교육계의 이념과 대비되는 종류의 결말이라 더욱 남달랐다. 최선의 이야기란 그토록 즐겁고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내가 이 학교에서 부도덕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학생들과 선생들은 내게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 185p




진짜로 돈밖에 모르는 게 뭔지 말해줄까요? 가정교사를 고용해서 자기 자식한테 숙제에도 가격이 있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 370p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을 해고할 수는 없어. - 412p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기를 기대하는 걸까요? - 433p




‘그만둬라, 꼬마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니? 너무 많아. 어차피 전부 돌려보낼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소년이 말하길......

제가 방금 던진 불가사리는 살 수 있죠. - 435~4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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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어지러이 나는 섬 ㅣ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8.8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으면 꼭 추리소설의 탈을 쓴 다른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곤 한다. 분명 틀과 형식은 추리소설이 맞는데, 이를 테면 '범인 찾기' 류의 전형적인 추리소설인데 막상 읽으면 범인의 정체보다 범인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동기를 궁금해하니 어딘지 본격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옛날에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임상범죄학자가 된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유독 범인의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향을 무척 좋아한다. 동기가 빈약하거나 안일하게 채워넣는 추리소설보다 훨씬 낫다. 난 이런 인간미가 있는 추리소설이 좋다. 설령 추리소설로써 완성도가 떨어진다 느껴질지라도.

​

 이 작품이 일본 어느 추리소설 랭킹에서 1위를 했다는데 솔직히 많이 의아하다. 나름 괜찮은 작품이긴 하지만 어디서 1위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다. 2007년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라... 책 앞표지에 적힌 이 과분한 기록이 이 작품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까마귀 어지러이 나는 섬>은 단순히 형식이나 기록으로 가늠할 수 있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른바 관점이 다른 추리소설인 것이다. 외딴 섬에 발을 잘못 들인 히무라와 아리스, 그들은 섬의 불청객으로서 먼저 모인 사람들의 모습에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한다. 이 수상함은 작품의 메인 미스터리로써 후에 등장할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정체보다 궁금증을 낳는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외딴 섬에 모인 걸까?

​

 보통 저런 질문은 큰 궁금증을 안기기 전에 진즉에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끝까지 작품을 읽게 하는 원동력으로써 활약한다. 살짝 삐딱하게 말하자면 본말전도라고 해야 할까? 본말전도든 뭐든, 중요한 건 이 작품의 저자가 바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것이다. 본편인 범인 찾기보다 더 궁금한 미스터리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건가? 다 읽은 지금도 얼떨떨할 지경이다.

 작가 특유의 사유는 이 작품에서도 건재했다. 서브 컬쳐, 복제 인간,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 하나의 작품을 쓰기 위해 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고, 또 이런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한 작품에 모일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걸 해낸다. 이게 추리소설의 몰입도는 떨어뜨리는 부분일 순 있어도 작가가 지향하는 깊이와 고상함의 측면에선 제 역할을 해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특이해도 정말 특이한 추리소설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 대체로 그렇지만 기나긴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사건의 양상은 몇 번을 생각해도 허무하다. 여기서 웃긴 건 범인의 정체나 동기가 크게 궁금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내 자신과 그런 자신의 반응을 유도한 소설의 짜임새다. 그래서 신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없진 않았다는 것이, 허무한 한편으로 작중에서 오간 이야기들이 아른거린다는 것이.

 취향은 좀 타도 확실히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드문드문 신작이 번역되는데 조금만 더 자주 출간됐으면 좋겠다. 크게 재밌다고 하긴 힘들지만 은근히 끌리는 맛이 있다.



 p.s 위에 옮긴 '인상적인 구절'은 본편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참 괜찮은 구절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겸손한 말은 이래저래 공감이 많이 갔다.

불특정다수와 자신을 대치시키며 ‘그 어떤 독자보다 내가 똑똑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착각은 자존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 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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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8.8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유머 단편집을 다 읽었다. <흑소소설> , <독소소설>과 마찬가지로 <괴소소설>까지 두 번 읽었다. 내가 처음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인 만큼 두 번째로 읽어도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땐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가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지금 와서 읽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더군다나 작가의 작품 중 몇 안 되는 '작가의 말'이 수록되기까지 했으니 보다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울컥전차'


 내가 지하철을 안 타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는 소설. 버스도 만원일 땐 끔찍하지만 지하철은 더 삭막하다고 생각한다. 자리에 앉는 것에 그토록 많은 신경전이 있고 다들 속으로 얼마나 남을 헐뜯는지 그 이면을 낱낱이 파헤친 작품. 다루는 군상이 한둘이 아니라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다시 읽어도 참 재밌었고 결말이 특히 예술이었다. 덧붙여서 이번에 한 가지 더 느낀 게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옛날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은근히 저평가를 당하는 작가지만 옛날부터 - 이 소설집은 1995년에 출간됐다. - 폭넓은 시야를 갖고 있었다며 감탄했다.



 '할머니 골수팬'


 소위 '덕심'이란 게 이렇게나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자신의 부모님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 특유의 관찰력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가볍지만 때론 오싹하게 읽혔다.



 '고집불통 아버지'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도 자식을 야구 선수로 키우려고 자기 일인양 나서는 아버지가 나오는데 일본엔 이런 아빠가 많은가 보다. 사실 자기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키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인데도 엄연히 사적인 영역이므로 뭐라 건드리지 못하겠는 안타까움이 물씬 베어있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막판이 그렇게 짜릿했나 보다.



 '역전동창회'


 작가 본인의 말에 따르면 교사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짧은 글임에도 그 감정의 깊이가 전해졌다. 이 작품은 그런 작가의 기획 동기와는 무관하게 제법 씁쓸해서 웃긴 코미디 소설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동창회 같은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덩달아 땀이 났다.



 '초 너구리 이론'


 지금 보니 나의 과학관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후에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읽으면서 보다 개념이 확립되긴 했는데 그래도 시초는 히가시노 게이고다. 아무리 비과학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다면 그건 과학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법 주문도, 투명 망토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귀신 이야기에도 다 해당이 되는 얘기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과학자야말로 그런 세상의 과학적 상식이 깨지길 가장 기대하는 사람이란다. 이 소설은 그런 관점에서 작성된 황당하지만 논리적인, 그러나 안쓰러운 작품이었다.



 '무인도의 스모 중계'


 과거의 스모 중계를 통째로 외우는 전문가와 함께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유일한 여흥으로 전문가의 스모 중계를 듣는 것이라는 설정이 무척 재밌었다. 결말은 좀 싱거웠지만 표현 방식에는 복선이 있어서 그런대로 웃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가 주변에 있으면 되게 재밌겠다.



 '하얀 들판 마을 vs 검은 언덕 마을'


 어째 추리소설가가 쓸 법한 코미디 소설이었다. 배드 타운에 드리워진 문제를 꼬집은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광기에 몰려 서로의 마을에 시체를 넘기는 정치적 움직임이 아주 장관이었다. 나중엔 익히 예상됐지만 처음에 소설의 전개를 보고 의외의 전개라서 헛웃음이 난 기억이 난다.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설. 하지만 제일 좋았다. 코미디 소설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SF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실험 대상이 되어 젊어졌다가 다시 노인이 된 주인공의 심리를 일기 형식으로 추적하는 내용으로 젊음이 되돌아온 환희와 다시, 그것도 급격히 늙어가는 것에 대한 절망이 아주 흡입력 있게 읽혔다. 작가는 단편으로 썼기에 만족스럽다 했지만 난 생각이 반대다. 장편으로 쓰기엔 약간 심플한 설정이지만 장편이기에 살릴 수 있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독소소설>에 수록된 '속죄'와 느낌이 비슷했다. 코미디 소설집인데 아이러니하게 코미디 소설이 아닌 작품이 제일 좋았네.



 '동물가족'


 동물로 묘사한 인간상과 붕괴되는 가족의 모습이 융합한 소설. 이것도 웃음과는 거리가 있다. 작가 자신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는데 충분히 납득이 간다. 시도가 신선하니 많이 접한 이야기도 새롭게 읽힌다. 결말도 인상적이었고. 너무 일본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묘사는 참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블랙 유머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흑소소설>에서 밝혔지만 듣자하니 최근에 또 한 편의 블랙 유머 소설집을 펴냈다고 한다. 이 얘길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언제 출간하나 기다리고 있다. 작가 이름을 생각하면 출간되긴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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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 하늘에 계신 아빠가 들려주는 사랑의 메시지
롤라 제이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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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내겐 일찍 곁을 떠난 부모가 없다. 운이 좋게도 우리 부모님은 정정하시고 약간의 위기는 있었지만 두 분 다 그럭저럭 잘 극복하고 계시다. 그런데 최근 내 주변 사람들이 부모를 잃는 것을 보면서 만약 부모님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상을 하고 만다.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5살 때 하늘에 간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30살까지 살다 갔는데 자신의 어린 딸을 위해 자기가 살면서 나름대로 익힌 삶의 지혜를 담긴 '매뉴얼'을 남긴다. 본격적인 틴에이저인 13살부터 30살까지. 엄마가 재혼하는 날 고모로부터 매뉴얼을 받은 주인공은 매뉴얼을 각별히 여기며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펼친다.


 6년 전에 읽은 이 소설은 그때완 좀 다르게 읽혔다. 잇따라 다시 읽은 책들이 전보다 더 괜찮았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10점 만점이라 여겼는데... 내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매뉴얼 속 주인공의 아버지의 걱정처럼 시시콜콜한 잔소리로 읽히진 않았으나 이상하게 내용이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어째서 그런 걸까?

 내용에 트집을 잡자면, 일단 주인공이 매뉴얼에 대해 제법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젠 곁에 없는 아빠의 존재에 대한 결핍을 아빠가 남긴 글로 달랜다는 것은 듣기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이면엔 또 다른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을 법도 하다. 가령 글로써 자기 삶에 개입하려는 아빠에 대한 초점 없는 원망이나 방황 같은 게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소설에선 그런 기색이 상당히 옅었다. 한마디로 주인공이 참 착했다.


 착한 주인공도 좋지만 착하다 보니 소설이 교훈적이고 감성에 충만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대체로 무난하게 읽혀졌다. 주인공의 삶에 학업, 연애, 취업 등 여러 사건과 위기가 찾아오지만 아빠가 남긴 매뉴얼이란 소재와 결부시켜 그리다 보니 언뜻번뜻 피상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영국 청소년이 자라는 과정을 바라봄에 따르는 문화적 신선함은 제법 재밌었지만 아빠의 매뉴얼의 내용은 평범해서 -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마찬가지로 특별할 테지만 내용만 보면 적절한 수준의 조언과 지혜에 불과해 익숙하게 들린다. - 어째 미묘하게 재밌다 말았다. 전개도 약간 빨랐던 것 같고.

 내가 너무 냉소적이고 비관적이게 됐나? 처음 읽었을 때 감동의 도가니였던 게 믿기지 않는다. 그것 참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주인공이 30살 생일을 맞아 펼친 매뉴얼의 마지막 페이지는 지금 봐도 감동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내 삶에 큰 변화가 생겼을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루이스, 네가 믿는 것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짐을 싸 들고 집에 가는 편이 낫단다. -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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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 하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8.7






 처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그가 코미디 소설만 쓰는 작가인 줄 알았다. <한 밤중에 행진>,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만 보면 정말 코미디 소설가인 것만 같다. 이후 <올림픽의 몸값>이나 최근에 읽었던 <침묵의 거리에서>를 통해 작품 색깔이 다양한 작가라고 인식하게 됐지만 기본적인 뿌리는 코미디 소설가라고 여겼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작품은 작가가 데뷔 직후에 쓴 초기작으로 그간 코미디 소설가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작가의 뿌리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간 작가의 추리소설, 범죄소설은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오히려 이런 작품이 더 전문 분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특히 이 작품의 분위기는 내가 알던 오쿠다 히데오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는데 그럼에도 작풍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가로서 월등한 능력을 가졌다며 감탄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장기인 여러 등장인물의 교차되는 시선이 십분 다뤄진 작품으로 각각의 일상의 행복이 어떻게 방해당하는지 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의 주제와 접근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와 흡사했는데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손을 들고 싶다. 장르 소설의 측면에선 미야베 미유키의 사이코패스와 악당 - 예를 들면 <모방범> 같은 작품. 여담이지만 <모방범>과 <방해자>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모방범>이 1위를, <방해자>가 2위를 받았다. -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읽히지만 순수하게 무너지는 일상을 살펴보는 데에는 오쿠다 히데오 같은 필치가 더 와 닿는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은 따뜻한 나머지 어딘지 오그라드는 부분이 있는데 오쿠다 히데오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친구들과 함께 비행을 일삼는 막장 고등학생, 아내와의 사별 후 삶의 의지가 결여된 듯한 형사, 동네 마트에서 알바를 하며 가족과의 소소한 행복을 꾸려나가는 주부. 이렇게 3명이 폭행과 방화, 야쿠자 조직과의 알력, 노동 현장 고발 등 여러 사건에 휘말려 서로의 인생에 균열을 낸다. 그 균열은 처음엔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작았지만 균열이 점점 커져 결국 무너져버리는 제방처럼 끝을 향해 내달리는 인물들의 심리가 부족함 없이 그려졌다.


 개인적으로 페이지는 빨리 넘어감에도 어째 지루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서서히 무너지는 일상과 그에 따른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보니 감수하고 읽을 법했는데 그래도 작가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흡입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세 인물의 시선이 번걸아 가며 진행되느라 흐름이 막혔던 것 같은데 요전에 읽은 <침묵의 거리에서>를 떠올리면 참 대조되는 부분이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세 명보다 더 많은 인물의 시선을 다뤘는데 심지어 이 작품보다 분량이 적었음에도 내용이 난잡하지 않고 풍성했다. 중심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그린 그 작품은 각 인물이 맡은 역할과 상징하는 바가 적절했는데 이는 유감스럽게도 <방해자>에선 살짝 부족한 요소다.

 물론 점점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그린 점에서 이 작품은 굉장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검소하고 소심한,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평범한 일본 소설의 주부 같았던 교코는 처음의 인상과는 다르게 점차 행동력 있고 감정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 개인적으론 구노의 이야기보다 더 눈길이 갔다. 소설을 읽으면서 특정 캐릭터 한 명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까지 바뀌기는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복선과 반전을 추구하는 장르 소설로써가 아닌 범죄 소설,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터진 범죄에 잇따르는 균열에 추측하는 작품의 특성에 의거하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교코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포자기한 듯 이미 불행을 등에 업은 구노는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 반면에 교코는 정말 평범했지만 자신이 놓인 일상 속 평화가 위협받자 보이고 마는 반응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종국에 가서는 소름이 돋기도 했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초반에 받은 인상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반전 어린 전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주 사소한 흔들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음을 최근 들어서 절감하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의 내용에 정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품을 읽은 게 2주 전이고 일이 생긴 건 요번 주였는데 선후는 뒤바뀌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 완독했을 때완 또 다르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우연찮게 범한 범죄는 해결이 된다 해도 뒤끝이 안 좋다. - 하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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