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어지러이 나는 섬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8.8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으면 꼭 추리소설의 탈을 쓴 다른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곤 한다. 분명 틀과 형식은 추리소설이 맞는데, 이를 테면 '범인 찾기' 류의 전형적인 추리소설인데 막상 읽으면 범인의 정체보다 범인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동기를 궁금해하니 어딘지 본격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옛날에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임상범죄학자가 된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유독 범인의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향을 무척 좋아한다. 동기가 빈약하거나 안일하게 채워넣는 추리소설보다 훨씬 낫다. 난 이런 인간미가 있는 추리소설이 좋다. 설령 추리소설로써 완성도가 떨어진다 느껴질지라도.

 이 작품이 일본 어느 추리소설 랭킹에서 1위를 했다는데 솔직히 많이 의아하다. 나름 괜찮은 작품이긴 하지만 어디서 1위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다. 2007년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라... 책 앞표지에 적힌 이 과분한 기록이 이 작품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까마귀 어지러이 나는 섬>은 단순히 형식이나 기록으로 가늠할 수 있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른바 관점이 다른 추리소설인 것이다. 외딴 섬에 발을 잘못 들인 히무라와 아리스, 그들은 섬의 불청객으로서 먼저 모인 사람들의 모습에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한다. 이 수상함은 작품의 메인 미스터리로써 후에 등장할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정체보다 궁금증을 낳는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외딴 섬에 모인 걸까?

 보통 저런 질문은 큰 궁금증을 안기기 전에 진즉에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끝까지 작품을 읽게 하는 원동력으로써 활약한다. 살짝 삐딱하게 말하자면 본말전도라고 해야 할까? 본말전도든 뭐든, 중요한 건 이 작품의 저자가 바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것이다. 본편인 범인 찾기보다 더 궁금한 미스터리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건가? 다 읽은 지금도 얼떨떨할 지경이다.

 작가 특유의 사유는 이 작품에서도 건재했다. 서브 컬쳐, 복제 인간,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 하나의 작품을 쓰기 위해 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고, 또 이런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한 작품에 모일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걸 해낸다. 이게 추리소설의 몰입도는 떨어뜨리는 부분일 순 있어도 작가가 지향하는 깊이와 고상함의 측면에선 제 역할을 해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특이해도 정말 특이한 추리소설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 대체로 그렇지만 기나긴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사건의 양상은 몇 번을 생각해도 허무하다. 여기서 웃긴 건 범인의 정체나 동기가 크게 궁금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내 자신과 그런 자신의 반응을 유도한 소설의 짜임새다. 그래서 신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없진 않았다는 것이, 허무한 한편으로 작중에서 오간 이야기들이 아른거린다는 것이.

 취향은 좀 타도 확실히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드문드문 신작이 번역되는데 조금만 더 자주 출간됐으면 좋겠다. 크게 재밌다고 하긴 힘들지만 은근히 끌리는 맛이 있다.



 p.s 위에 옮긴 '인상적인 구절'은 본편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참 괜찮은 구절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겸손한 말은 이래저래 공감이 많이 갔다.

불특정다수와 자신을 대치시키며 ‘그 어떤 독자보다 내가 똑똑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착각은 자존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 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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