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 하늘에 계신 아빠가 들려주는 사랑의 메시지
롤라 제이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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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내겐 일찍 곁을 떠난 부모가 없다. 운이 좋게도 우리 부모님은 정정하시고 약간의 위기는 있었지만 두 분 다 그럭저럭 잘 극복하고 계시다. 그런데 최근 내 주변 사람들이 부모를 잃는 것을 보면서 만약 부모님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상을 하고 만다.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5살 때 하늘에 간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30살까지 살다 갔는데 자신의 어린 딸을 위해 자기가 살면서 나름대로 익힌 삶의 지혜를 담긴 '매뉴얼'을 남긴다. 본격적인 틴에이저인 13살부터 30살까지. 엄마가 재혼하는 날 고모로부터 매뉴얼을 받은 주인공은 매뉴얼을 각별히 여기며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펼친다.


 6년 전에 읽은 이 소설은 그때완 좀 다르게 읽혔다. 잇따라 다시 읽은 책들이 전보다 더 괜찮았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10점 만점이라 여겼는데... 내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매뉴얼 속 주인공의 아버지의 걱정처럼 시시콜콜한 잔소리로 읽히진 않았으나 이상하게 내용이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어째서 그런 걸까?

 내용에 트집을 잡자면, 일단 주인공이 매뉴얼에 대해 제법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젠 곁에 없는 아빠의 존재에 대한 결핍을 아빠가 남긴 글로 달랜다는 것은 듣기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이면엔 또 다른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을 법도 하다. 가령 글로써 자기 삶에 개입하려는 아빠에 대한 초점 없는 원망이나 방황 같은 게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소설에선 그런 기색이 상당히 옅었다. 한마디로 주인공이 참 착했다.


 착한 주인공도 좋지만 착하다 보니 소설이 교훈적이고 감성에 충만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대체로 무난하게 읽혀졌다. 주인공의 삶에 학업, 연애, 취업 등 여러 사건과 위기가 찾아오지만 아빠가 남긴 매뉴얼이란 소재와 결부시켜 그리다 보니 언뜻번뜻 피상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영국 청소년이 자라는 과정을 바라봄에 따르는 문화적 신선함은 제법 재밌었지만 아빠의 매뉴얼의 내용은 평범해서 -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마찬가지로 특별할 테지만 내용만 보면 적절한 수준의 조언과 지혜에 불과해 익숙하게 들린다. - 어째 미묘하게 재밌다 말았다. 전개도 약간 빨랐던 것 같고.

 내가 너무 냉소적이고 비관적이게 됐나? 처음 읽었을 때 감동의 도가니였던 게 믿기지 않는다. 그것 참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주인공이 30살 생일을 맞아 펼친 매뉴얼의 마지막 페이지는 지금 봐도 감동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내 삶에 큰 변화가 생겼을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루이스, 네가 믿는 것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짐을 싸 들고 집에 가는 편이 낫단다. -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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