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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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역주행한다는 점이 신기해서 눈길이 간 책이다. 때마침 이사를 갔다기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지인의 집에 이 책이 있던 걸 보고 운 좋게 빌려 읽을 수 있었다. 읽고나서 왜 역주행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꽤나 단단히 만든 오마주 작품이란 생각에 만족하며 덮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원작의 그 '이상함'을 설마 이리도 충실히, 거기다 추리소설적인 정서에 맞게 탈바꿈해놓았을 줄이야... 아니, 이런 말로도 부족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가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여러 상황적 증거를 토대로 살인사건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이상하고 멍청한 이상한 나라 주민들 때문에 애먼 앨리스만 의심을 당한다. 굉장히 찝찝해 하며 꿈에서 깨는 아리는 최근 생생해지고 있는 꿈 속의 풍경을 뒤로 한 채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 속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실족 사건이 벌어진 상태고 이 기이한 연관성은 앨리스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을 낳기에 이른다.


 꿈속에서 죽은 사람이 현실에서도 죽는다. 꿈속에서의 나와 현실에서의 나, 둘은 같은 듯 다른 자아이기도 한데 생과 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앨리스 죽이기>란 작품만의 독특한 서스펜스가 형성됐다. 이상한 나라에서 살인이 잇달아 터지는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머저리;;라서 -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 사건 수사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현실에선 사람들이 사고로 죽는 모양새라 사건 수사로도 발전하지 못해 범인은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유유히 도망치는 판국이다. 게다가 앨리스는 운이 없게도 용의자로 찍혀 진범을 잡아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 한 여왕의 명령에 의해 꼼짝없이 목이 달아날 판이니 이건 뭐 흥미롭게 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옛날에 읽어서 원작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났다. 하지만 작가가 마약이라도 하지 않는 한 집필이 요원해 보일 정도로 '이상한' 작품이었던 것만은 기억나는데 <앨리스 죽이기>가 그 점을 정말 기막히게 복원하지 않았나 싶다. 어느 정도냐면 이 작품을 읽고 '맞아, 원작이 정말 이상했었지.' 하고 역으로 기억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는데 시간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작품 다 읽길 권한다. 물론 <앨리스 죽이기>만으로도 즐기기에 문제는 없다.


 상당히 독특한 규칙에 제한을 받는 추리소설이었는데 '이상한 나라'라는 원작의 커다란 설정을 빌리면서도 작품만의 고유한 설정,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관을 창조해서 제법 괜찮은 2차 창작이지 않았나 싶다. 그게 이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은 물론이고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는데 일견 가상 현실이란 키워드를 논함에 있어 일맥상통한 소재이자 세계관이었기에 역주행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개인적으로 맛이 가서 웃기고 귀여운 한편으로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작풍은 좋았는데 추리소설의 묘미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진 않았던 게 좀 걸렸다. 흔히 말하는 단서의 공정함이나 범인과 반전의 의외성이 약하진 않았는데 - 하지만 정체에 관한 반전 중 하나는 복선이 부족한 경향이 있었다. - 이 점들이 작가가 새로 만든 설정의 유무를 떠나 일정 부분 이상 원작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완벽하지 못하다는 얘기지만, 은근히 추리소설적인 정서를 풍기기엔 성공했는데 막판의 전개가 지나치게 초월적인 나머지 살짝 멘붕이 올 뻔해서 자칫 '추리소설'의 틀로만 이 작품을 규정하려 했다간 여러모로 놓치는 부분이 맞지 않을까 해서 꺼내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추리소설의 탈을 쓴 어떤 소설이 바로 <앨리스 죽이기>인 것 같다. 장르 규정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이 작품의 초월성을 높이 사는 나로서는 특이한 추리소설이란 말로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너무 노골적이시군요.

하지만 정직하다는 건 그런 거야. - 1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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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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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9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도 많은 책을 써서 간혹 이름으로 책을 팔아먹는 작가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나는 실망스럽기는 해도 중박은 치는 작품이들이 많기에 뭘 그렇게까지 평가절하를 하나 싶다가도 저서가 워낙 많고 또 개중엔 정말 대작도 많아서 그런 작품으로 작가를 먼저 접한 독자들은 그렇지 않은 작품에 배신감을 느껴 혹평을 내리는 게 아닐까 하며 내심 공감이 간다. 방금 말했듯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는 놀랍게도 대작도 적잖이 써냈는데 그중에서 이 작품 <악의>는 아마 거의 모든 팬들이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리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의 명성은 그냥 두고 넘길 수 없다.

 내가 책을 다시 읽을 때면 최소 5년 정도 지나고 다시 펼쳐든 경우가 많다. 그 정도면 어렴풋한 스토리 라인만 기억나고 디테일은 대부분 잊혀져있기 마련인데 <악의>는 그렇지 않았다. 내용, 전개, 그리고 반전이 강렬하기 짝이 없어서 놀라울 정도로 선명히 기억났다. 오죽하면 두 번 읽을 필요를 못 느낄 정도였는데...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사실 추리소설은 반전에 죽고 살기에 두 번 읽을 필요까진 없는 장르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정말 잘 쓴 추리소설의 경우엔 설령 모든 전개가 기억나도 복선의 교묘함과 연출만으로도 몇 번이고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엔 추리소설의 작법에 따라 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기에 더더욱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닐 수 없었다.


 상술했지만 너무 강렬한 작품인 나머지 처음 읽을 때에 비한다면 그렇게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읽진 못했다. 강렬한 반전이 이렇게 독이 되는 구나 싶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어내려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처음 읽을 때 눈여겨보지 않은 장점과 옥의 티가 이번엔 보였다. 난 이 두 가지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눈여겨보지 않은 장점과 옥의 티는 이 작품의 3부에 해당하는 부분에 나오는 것들이다. 눈여겨보지 않은 장점이란 범인의 진정한 동기를 설명함에 있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의 진술로 짐작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가의 대표작 <백야행>에서 적극 활용된 기술인데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여백을 둠으로써 독자가 그 사이를 상상으로 채워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저절로 추리와 놀라움이 동반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세련되고 합리적인 서술 방식이라 생각하는데, 일단 가독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하고 절묘한 정보를 써내려간 동시에 자질구레한 감정의 편린을 독자의 상상의 재미로 남겨둔 점에서 그토록 감탄했던 것 같다.

 반면 옥의 티는 범인이 살인을 결심한 계기였다. 주의할 것은 동기와 계기가 살짝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난 이 부분만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았는데 딱히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었고 사족이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이 계기의 내용과 밝혀가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고 오싹했지만 이 때문에 가장 중요한 동기의 단순해서 오싹한 점이 약간 묻힌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붉은 손가락>도 추리소설적 반전이란 틀을 우선하느라 괜히 한 번 더 꼬아서 아쉬웠었는데 <악의>도 비슷한 부분에서 놀라움이 감소돼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나왔다는데 우리가 아는 아베 히로시 주연의 '신참자' 시리즈의 작품이 아닌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스페셜 드라마라고 한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이 다시금 아베 히로시의 연기로 리메이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가 시리즈의 최종화라고 하니 <악의>의 드라마화는 못 볼 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게 드라마 시리즈한테나 시리즈의 팬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드라마는 가족애를 기본으로 한 감동 코드로 흥행했기에 그와 결이 다른 <악의>는 자칫 시리즈의 분위기를 흐리게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원작 특유의 서술 방식 또한 한 사람의 팬으로서 영상화가 잘 될 것인지 확신이 안 서기에 이래저래 냉정하지만 납득은 가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가 형사' 시리즈의 알짜배기 작품을 두 번씩 읽었다. 이제 드라마랑 그 외의 다른 시리즈 작품도 보면서 최신작을 기다려야겠다. 정말 올 해 출간되긴 하는지...



 p.s 따로 인상 깊은 구절로 적은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최근 학교에서 합평 시간에 사람들을 너무 심하게 비판했는데 행여 도를 넘지 않았는지 괜히 불안해 잠이 잘 안 온다. 앞으로 잘 해야지...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건 착각 위에 성립되는 거야.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학생은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행복하다는 거야. - 83p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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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악마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3
김민경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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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을 접할 때 꽃이나 회화로 이야길 풀어나가거나 의미를 더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그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취향 같이 사소한 문제로 작품 감상을 방해받고 싶진 않다. 취향을 넘어서도 뭔갈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문학이란 반증일 테니까.

 이 작품은 군대에서 한 번 읽었지만 거의 기억에 남질 않았다. 당시엔 컨디션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까 - 다시 읽어본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기억에 없다. 기록만 있을 뿐. - 유독 취향에 맞지 않은 소재가 등장했기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고등학생 주인공이 할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출생과 가족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고 군더더기 없이 전개됐지만 꽤나 많은 부분을 할애해 감정선을 그려낸 그림에 관한 묘사가 나를 크게 좌절시켰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 지난 한 달간 포스팅 좀 부지런히 쓸 걸, 진짜. - 러시아의 어떤 그림이 주인공의 부모님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 나의 취향이, 그것도 이 빌어먹을 취향이 작품의 재미를 크게 깎아먹었다는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다.


 '앉아있는 악마'라는 제목의 그림은 검색창에 치면 바로 나온다. 나도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보게 됐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더 알아보면 좋을 듯하다. 소설 <앉아있는 악마>는 자칫 축복받지 못한 출생이라며 자책을 할 법한 주인공이 해묵은 감정과, 혹은 그러한 감정을 낳게 한 대상과의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거듭 말하지만 묘사 스타일이 나와 맞질 않아서 엄청나게 감동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게 이 작품의 단점이랍시고 특기할 요소는 절대 아니다. 최근 학교 수업 때 각자의 소설로 하여금 합평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때마다 사람마다 취향과 관점이 정말 다른 만큼 힘들더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비난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걸 간과하고 급우들한테 너무 날선 말만 해댄 것 같아 개인적으로 미안하기 그지없는데... 당사자들한테 제대로 사과를 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런 반성으로 말미암아 이 작품의 본질까진 차마 건드리진 못하겠다. 물론 몰입을 못했다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취향엔 맞지 않지만 괜찮은 작품'이란 여지는 남겨둬야겠다. 그게 독자로서의 예의라면 예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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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생물학 -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에 생물학이 대답합니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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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






 생물학에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한마디로 썰을 푸는 정도의 책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제법 구미가 당기는 질문이 많이 있는데 가령 '바퀴벌레를 죽이는 나, 잘못된 생각인 걸까요?' 라든가 '스테이크를 좋아하면서 동물 애호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 아이는 피망이라면 질색하는데 자라면서 음식을 가리지 않게 될까요?' 등 자질구레하면서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저자가 생물학자로서 나름의 의견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 질문에 약 5페이지 정도 할애하면서 진행되기에 가독성은 상당한데... 내용물이 다채로운 것에 비해 은근히 내실이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작가가 독자에게 생물학에 근거한 시야 넓히는 것에 주력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정작 질문에 대해선 어딘지 아리송한 말만, 이른바 동문서답을 쏟아낸다. 입심은 인정하지만 그러다 보니 논점을 저 스스로 잊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압권은 '방사선을 많이 발산하는 라듐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란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이었다. 라듐 얘기하니까 퀴리 부인의 일생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대답을 끝내는데 질문의 요지는 방사선을 발산하는 물질이 왜 전국(일본)에서 발견되느냐 하는 것이지 않은가.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외국인 입장에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인데 - 차마 입에 담기도 귀찮다. - 그걸 돌려 말하는 걸 넘어서 아예 다른 소리만 하고 있으니까 어이가 없었다. 이 질문 전에도 이런 느낌이 강해서 건성건성 읽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이 정도면 거의 책임 회피가 아닐까.


 혹여 책의 제목과 목차의 질문에 흥미가 돋아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한테 말하는 거지만, 그냥 관심 있는 분야의 생물학 책을 읽는 게 더 나을 테니 시간 낭비를 자처하지 않았으면 한다.

유전자는 우리에게 자손을 남기라고 지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 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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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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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일련의 명민한 얼개 안에서 집필된 글이라기 보단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작가의 지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하지만 본인이 말하는 것에 비해 작가는 꽤나 좋은 페미니스트 - 내가 보기엔 - 라서 글들이 아주 일관적이지 않더라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작가 본인이 왜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페미니스트상象에 얼마나 미치지 못했는지 그닥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책을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솔직히 이 기억엔 자신이 없다. 최근의 포스팅을 보면 기억이 안 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감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쯤되면 부끄러운 걸 넘어서 비참할 정도다. 이러려고 학교 과제에 매진했나 자괴감이 든달까?

 요즘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연예인은 참 할 게 못 되는구나 싶다. 휴가 때 페미니즘 저서 한 권 읽었다 하면 달려드는 작태들을 보노라면 우리나라엔 정말이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미개한 남자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들의 전제가, 이를테면 페미니스트란 곧 나쁜 년인데 하필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페미니스트라니,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다. 난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많으며 자신의 성별에 따른 부끄러움은 누구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 자신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음을 깨달을 때? - 이렇게 동성들의 모습 때문에 부끄럽기는 싫다. 싸잡아서 모욕을 당하는 게 얼마나 기분이 나쁜데.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특별히 동성이라고, 같은 국적이라고, 같은 인종이라고 근본적으로 다 같진 않다. 그 다름을 이해하는 것에서 페미니즘이 비로소 시작된다. 완벽하게 좋은 사람도 없고 완벽하게 나쁜 사람도 없다. 완벽하게 좋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없고 완벽하게 좋은 남자도 여자도 없다. 완벽하게 좋은 페미니스트도 없고 완벽하게 나쁜 페미니스트도 없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좋고 나쁨은 상시 변하는 것일 텐데 여기에 절대적인 기준이랍시고 자꾸 뭘 대입하려고 들면 그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는 특정 신문 기사, 가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서 느낀 여성 폭력의 짙은 그림자를 포착한 1부, 정치계에서 페미니즘의 입지를 다룬 2부,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느낀 매체의 불평등한 흑인 묘사를 다룬 3부로 구성됐다. 1부가 압도적으로 재밌었고 -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정말 재밌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내 서평이 그렇게 격찬 일색인 것이리라. - 2부는 좀 어렵고 3부는 솔직히 잘 와 닿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흑인으로서의 시선이라 퍽 신선했지만 다루는 작품인 <헬프>와 <장고>를 너무 평가절하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다소의 논란은 있겠으나 의미하는 바는 알겠어서 - 그러니까 매체 속 고정된 흑인에 대한 묘사가 불쾌하단 것인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게 처음엔 낯설어서 그렇지... 이 낯섦, 이젠 익숙해져야 하겠다! -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그렇게 '나쁜'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 않은가 하는 반문이 들었다. 자신을 비판하며 결점을 인정하는 것은 그 인간이 성장하고 있다는 아주 확실한 반증이다. 일단 여기서 저자의 '나쁨'은 상쇄되고도 남는다. 거기다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텍스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과 더불어 고정된 여성 캐릭터 묘사에 대한 의견은 나도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라서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1부의 글들에선 '페미니스트'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 답답하고 화를 잘 내고... 거 참 -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 덕분에 페미니즘의 문턱이 상당히 낮춰지는 효과를 낳았다.

 페미니즘과 반대되는 논리는 흑백논리다. 내 편과 네 편으로 이분되는 전근대적 사고로는 요즘의 복잡하면서도 합리적인 논쟁을 이해할 수 없다. 이 포스팅을 쓰는 지금, 책을 읽던 당시엔 예상할 수 없는 감상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아무튼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영 낯설었다면 이 책으로나마 해당 개념의 범용성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삶에 페미니즘이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때 좋고 나쁨의 감상을 내리는 것은 페미니즘 자체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몫이라는 걸 말이다.




 인상 깊은 구절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 13p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의무이며,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할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 원칙이라고 믿는다. - 16p


 훌륭한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책 자체보다 출판에 대해서 많이 떠들수록 정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잊게 되는 건 아닐까. - 54p


 착한 사람이 되는 건 나쁜 짓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 62p


 하지만 훨씬 더 유해한 캐릭터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지루하게 착한 캐릭터다. - 85p


 우리가 좋아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런 여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거부한다. 그 대신 그들은 자기 자신이 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 세상에는 읽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더 탄생한다. - 97p


 우리는 그저 어떤 소재를 똑바로 쓰고 재밌게 쓰는 데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낫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143p


 우리 여자들의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는 것, 수치스럽게도 우리의 권리는 언제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221p


 나는 동정과 연민이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않다. - 262p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늘 '열렬한' 보다는 '화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 3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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