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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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역주행한다는 점이 신기해서 눈길이 간 책이다. 때마침 이사를 갔다기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지인의 집에 이 책이 있던 걸 보고 운 좋게 빌려 읽을 수 있었다. 읽고나서 왜 역주행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꽤나 단단히 만든 오마주 작품이란 생각에 만족하며 덮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원작의 그 '이상함'을 설마 이리도 충실히, 거기다 추리소설적인 정서에 맞게 탈바꿈해놓았을 줄이야... 아니, 이런 말로도 부족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가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여러 상황적 증거를 토대로 살인사건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이상하고 멍청한 이상한 나라 주민들 때문에 애먼 앨리스만 의심을 당한다. 굉장히 찝찝해 하며 꿈에서 깨는 아리는 최근 생생해지고 있는 꿈 속의 풍경을 뒤로 한 채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 속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실족 사건이 벌어진 상태고 이 기이한 연관성은 앨리스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을 낳기에 이른다.


 꿈속에서 죽은 사람이 현실에서도 죽는다. 꿈속에서의 나와 현실에서의 나, 둘은 같은 듯 다른 자아이기도 한데 생과 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앨리스 죽이기>란 작품만의 독특한 서스펜스가 형성됐다. 이상한 나라에서 살인이 잇달아 터지는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머저리;;라서 -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 사건 수사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현실에선 사람들이 사고로 죽는 모양새라 사건 수사로도 발전하지 못해 범인은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유유히 도망치는 판국이다. 게다가 앨리스는 운이 없게도 용의자로 찍혀 진범을 잡아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 한 여왕의 명령에 의해 꼼짝없이 목이 달아날 판이니 이건 뭐 흥미롭게 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옛날에 읽어서 원작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났다. 하지만 작가가 마약이라도 하지 않는 한 집필이 요원해 보일 정도로 '이상한' 작품이었던 것만은 기억나는데 <앨리스 죽이기>가 그 점을 정말 기막히게 복원하지 않았나 싶다. 어느 정도냐면 이 작품을 읽고 '맞아, 원작이 정말 이상했었지.' 하고 역으로 기억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는데 시간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작품 다 읽길 권한다. 물론 <앨리스 죽이기>만으로도 즐기기에 문제는 없다.


 상당히 독특한 규칙에 제한을 받는 추리소설이었는데 '이상한 나라'라는 원작의 커다란 설정을 빌리면서도 작품만의 고유한 설정,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관을 창조해서 제법 괜찮은 2차 창작이지 않았나 싶다. 그게 이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은 물론이고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는데 일견 가상 현실이란 키워드를 논함에 있어 일맥상통한 소재이자 세계관이었기에 역주행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개인적으로 맛이 가서 웃기고 귀여운 한편으로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작풍은 좋았는데 추리소설의 묘미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진 않았던 게 좀 걸렸다. 흔히 말하는 단서의 공정함이나 범인과 반전의 의외성이 약하진 않았는데 - 하지만 정체에 관한 반전 중 하나는 복선이 부족한 경향이 있었다. - 이 점들이 작가가 새로 만든 설정의 유무를 떠나 일정 부분 이상 원작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완벽하지 못하다는 얘기지만, 은근히 추리소설적인 정서를 풍기기엔 성공했는데 막판의 전개가 지나치게 초월적인 나머지 살짝 멘붕이 올 뻔해서 자칫 '추리소설'의 틀로만 이 작품을 규정하려 했다간 여러모로 놓치는 부분이 맞지 않을까 해서 꺼내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추리소설의 탈을 쓴 어떤 소설이 바로 <앨리스 죽이기>인 것 같다. 장르 규정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이 작품의 초월성을 높이 사는 나로서는 특이한 추리소설이란 말로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너무 노골적이시군요.

하지만 정직하다는 건 그런 거야. - 1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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