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답게 살 권리 소송 사건 -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동물들의 고발장
예영 글, 수봉이 그림, 김홍석 감수 / 뜨인돌어린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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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동물이라면 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우엔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있고 하니 여러 생태계의 동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중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당장 소, 돼지, 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린 그들의 맛에 너무 길들여져 당장 포기하라고 해도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물론이고 이미 사회에 대규모로 자리잡은 사업이라서 혹여 전면적으로 금지당할 시 피해를 입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동물이 동물답게 살 권리를 갈취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도 늘 우리는 어쩔 수 없다면서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이 있다면,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혹시 관성에 젖어서 그 대안을 외면하는 것뿐이라면 지금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 우리들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겐 동물권이 있으니까.


 이 책은 어린이용 도서로 사람의 이익 때문에 동물권이 갈취당하는 것을 동물의 의인화로 표현한 소설집이다. 처음엔 의인화 특유의 생뚱 맞은 화법에 적응이 안 됐지만 엄청난 주제의식 덕분에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상당히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의인화가 대단히 잔인한 연출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이유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곧 동물은 인간보다 하등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생물이라 여기는 커다란 요소일 터다. 그런데 이 책에서처럼 동물들이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리라 상상해보면 당장 입고 있는 옷에 모피랑 털이 얼마나 들어갔고 아까 먹은 고기가 어떤 식으로 내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도 자동적으로 연상돼 실로 기분이 찝찝해지고 만다.



 '강아지 탐정이 전하는 킁킁이의 안부'


 유기견을 추적하는 탐정견의 수사 일지. 가족끼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 강아지 킁킁이를 놓고 올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혼자 킁킁이를 그리워하는 의뢰인과 매일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대로 책임질 자신이나 각오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킁킁이의 삶이 그려져 자못 가슴이 아팠다. 또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 부르게 된 이유가 새삼 피부로 느껴지기도 했다. 외모만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한 동물이더라도 엄연히 가족이고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길들인 것엔 책임이 있으므로 함부로 버려선 안 될 것이다. 결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연출 때문에 끝까지 조마조마하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북극곰 기적이의 출생의 비밀'


 동물원에 언제 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평생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동물원이야말로 인간의 이기심이 미화된 장소라 생각하는데, 단적으로 말해 그곳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동물을 구경하고 싶다는 인간들 때문에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다니, 지나치게 동물을 괴롭히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북극곰은 특히 기온이 완전 다른 환경인 만큼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우울 증세, 자기 새끼에게도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인간이고 동물이고를 떠나서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상태라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망가지는 동물의 본능을 보노라니 내가 다 미안했다.



 '토끼 1369번의 마지막 하루'


 인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은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미친 과학자들을 창작물에서 자주 접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실험 동물로 쥐나 토끼가 많다. 때론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 극단적인 설정도 보지만 그럴 때면 상대적으로 쥐나 토끼의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 같다. 생명을 똑같이 하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건만.

 24시간 동안 인간에게 실험을 당하느라 서서히 죽어가는 토끼의 심리를 소름 끼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정말 암울하기 그지없다. 오늘이 끝나면 편해지리란 희망을 갖지만 마지막에 결국 영원히 편해지는 것을 바라다니... 픽션이고 의인화 설정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듣자하니 동물 실험이 곧 인체에 나타나는 효과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고 하고 대안도 있다는데 이제 이런 잔인한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닭답게 살 권리 소송 사건'


 표제작. 인간의 편의를 위해 무지막지하게 좁아터진 사육장에서 알을 낳는 것 외엔 허락되지 않은 닭들이 '닭답게 살 권리'를 호소하며 벌어지는 재판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판결은 보류됐지만 작중에 나온 말마따나 이 재판이 크게 주목을 받은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으리라 본다. 효율을 위해 털을 벗기고 부리를 자르고 좁은 우리에 세 마리씩 집어넣고... 이 문제에 대해서 남들과 똑같이 닭을 즐겨먹는 내게 지적할 자격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 문제는 영원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내가 닭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려면 어떠냐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같은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경제적인 문제가 깊숙이 관여된 사안이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대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잘못된 줄 알면서 그냥 넘어가는 건 할 짓이 못 되니까.



 '경주마 전력질주의 첫째 주 일요일'


 어렴풋이 경주마들도 힘들겠지 싶었지만 그게 말의 본성과 거리가 있어 매년 죽어나가는 말이 많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말이 빨리 뛸 수 있단 점에 주목해 인간은 말을 전력질주하게끔 길들였지만 본래 말들도 뛰고 싶을 때 뛰고 싶은 하나의 자유로운 생명이다. 작중에서 경주마 전력질주가 경기를 치를 때마다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는 쾌감은 분명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쾌감이라 자기도 덩달아 느껴지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말들은 고된 훈련과 경기 전 폭발할 듯한 긴장감 때문에 결코 행복해하지 않는다. 경마장도 동물원처럼 인간의 재미를 위해 동물을 전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잔인하지 않은가, 우리.



 '밍크 농장에서 온 편지'


 소재나 전개는 유기견과 토끼 이야기와 흡사했지만 가장 잔인하고 슬펐던 이야기다. 인간의 사치품을 위해 털을 바치고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남은 고기는 동족에게 먹이로 던져지는 등 구역질이 나는 내용이 담겨있다. 처음엔 희망을 가졌던 주인공 밍크가 자기 엄마에게 보내는 가상 편지에 점점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편으로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적는데...... 이런 내용을 쓰는 작가의 내면이 무너지진 않았을지 걱정될 만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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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사랑을 할까 - 트랜스휴머니즘,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12가지 질문들
로랑 알렉상드르 & 장 미셸 베스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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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극단적인 기술 옹호론자와 기술 이전에 논의돼야 할 문제를 언급하는 철학가 둘의 대담집. 프랑스인들의 대화라 그런지 가식 없이 직설적이고 양보 없는 설전이 인상적이었다. 책 제목만 보면 로봇 얘기만 나올 것 같지만 인간의 몸을 기계로 교체하는 것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준비, 신기술에 따른 정치적 변화나 SF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등 다방면에 대한 얘기가 담겨있었다.

 개인적으로 트랜스 휴머니즘은 우생론인가 여부를 따지는 건 너무 고차원적이고 민감한 나머지 어떨 때는 '이 둘... 지금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은 내 이해력이 미치지 못한 걸로 여기고 넘어가려 한다. '로봇도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서도 저자 둘이 사랑을 플라토닉적인 사랑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먼저 언급할 땐 '역시 프랑스인이구나' 싶으면서 이 역시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내 이해력이 저자 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걸로 이해하기로 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여러 기술은 우리를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로 안내해줄 것이다. 기술이란 게 늘 그래왔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존에 큰 영향을, 자칫하면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격하시킬 우려가 있을 만큼 초월적인 기술이라 이렇게 미리 논해보는 건 퍽 바람직하다. 난 아무래도 다급하고 독선적인 기술 옹호론자보단 철학자의 말이 더 와 닿았는데 이런 감상도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뀔지 모르겠다. 아직 인공지능의 진정한 성능이 그렇게 보급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비전공자가 상상으로만 넘겨짚기엔 좀 버거운 주제인 듯하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짧게나마 대담 형식으로 풀어나간 것도 좋았고 은근히 합의점이 있을 듯하다가 평행선을 달리는 저자 둘의 의견 차이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묘하게 내용이 기억에 남진 않아 읽어놓고도 찜찜한 기분이다. 내가 그만큼 이공학적 지식이나 미래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걸로 넘어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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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중독 ㅣ 아름다운 청소년 17
김소연.임어진.정명섭 지음 / 별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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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이 걱정해야 할 일은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기느냐가 아닌 어떻게 적응하느냐라고 한다. 결국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없어서 못 사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데 아무리 얘기를 들어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 SF 소설이 갖는 의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번에 읽은 SF 엔솔로지는 청소년 대상 소설들치고도 어지간한 성인 독자층도 아우를 수 있을 내용들이라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엔솔로지가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이상 수록작들 퀄리티가 고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데 어느 작품 하나 빠지는 구석 없이 개성적이고 완성도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특이점을 지나서'


 인공지능 로봇이 특이점을 지나면 인간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개념 하에 진행되는 소설. 우리 시대엔 작중에서의 이니 같은 학생 로봇이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그 대신 입시 문제, 진로 상담, 심지어 데이트 폭력 등 우리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문제들과 적절히 녹여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적성을 분석해 학생마다 진로를 정해준 탓에 무비판적이고 무기력하게 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이 의지하는 건 남자친구 한 명밖에 없는데 그 남자친구란 놈은 자기 입시 스트레스를 주인공에게 폭력적으로 풀어버린다. 그 와중에 주인공네 반에 전학을 온 학생 로봇은 당장 공공의 라이벌로 취급돼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어렸을 때 시키는 대로 생각없이 움직이면 '넌 애가 왜 이렇게 로봇 같니?'라고 부모님한테 한 소리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 많이 떠오른 작품이었다. 인공지능을 다룬 SF 소설이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준에 매우 알맞는 내용으로 남이 지시한 대로, 남자친구한테 모진 취급을 받던 주인공이 자기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흡입력 있게 그려냈다. 더군다가 주인공의 꿈이 로봇이 정복할 수 없는 분야인 음식이라니 더욱 통쾌했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라서 감동이 남달랐던 작품이다.



 '로봇 중독'


 세계관을 보면 바로 직전에 나온 소설보다 확실히 디스토피아적이다. 그래도 소설은 자못 유쾌하게 진행되는데 여기서도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로봇이 등장하며 주인공과 로봇의 관계가 훨씬 유기적으로 그려지기까지 해 주제의식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3D 프린팅 기술로 작은 로봇을 마구 만드는 주인공이 로봇의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내용인데 제목에 있는 중독이라는 단어도 부족할 만큼 아예 무감각하게 로봇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판이라 옆에 있는 로봇 지니와 주인공과의 유대가 더욱 돋보였다. 로봇에 생명을 주고 생각할 능력까지 준 인간이 가벼운 기분이나 책임감으로 로봇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굉장히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역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동적이기론 책에 수록된 세 작품 중 가장 월등한 작품이다.



 '거짓말 로봇'


 <명탐정의 탄생>을 쓴 정명섭 작가의 작품으로 사실 그 책을 읽고 추가적으로 알게 된 게 바로 <로봇 중독>이다. 아무튼 그 유명한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위반한 로봇, 거짓말을 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로 작중 배경이 화성이라 여러모로 고전적인 SF의 풍미가 가득한 소설이었다. 최근에 읽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에서도 그렇고 20세기 중후반부의 SF 작가들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배경 설정으로 많이 그린 것 같아서. 이 얘기도 지금 듣기에 황당무계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일 것이고 그 정도는 가능한 과학 기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퍽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때가 되면 로봇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솔직히 작품 자체의 설정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결말이 진지해서 이번에도 뜻밖의 묵직함을 얻게 됐다. 이런 식의 결말은 SF의 전매특허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추리소설보다 이 SF 소설이 더 인상 깊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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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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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5






 어디 가서 꼭 빠지지 않고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다. 이상하게 관심이 잘 안 가던데 우타노 쇼고의 이 작품을 읽으니까 살짝 흥미가 생겼다. 이 작품은 액자 구성을 띤 추리소설인데 액자 속에 해당할 '백골귀'란 작중의 소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로 쓰여져서 약간 구태의연하게 읽히긴 했지만 고전은 고전대로 느낌이 있어서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또 이 작품에서 액자 밖에 해당할 노년의 추리소설가 이야기는 작품에 있어서 의외의 역할과 반전을 담당하는데 어떻게 보면 '백골귀'의 핵심 트릭만큼이나 뻔하기도 있지만 다행히도 잘 속아넘어가고 말았다. 두 번째 읽는 작품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기억이 안 날 줄이야... 8년이나 지나서 읽으니 추리소설도 다시 읽는 맛이 제법이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내용을 다 까먹으니까. 이거, 칭찬이 아니려나?

 창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어느 청년에게 구출을 당하는 에도가와 란포. 며칠 뒤 그 청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의심스러운 란포는 절친한 사이이자 추리소설 애호가로 유명한 당대의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청년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함을 파헤친다. 그러면서 동반되는 모험과 기괴한 분위기, 그리고 반전... 작중의 소설 '백골귀'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진 본격 추리소설인데 이걸 다른 작가도 아닌 우타노 쇼고가 썼다니까 되려 신선하게 읽혔다. 아무래도 고전이자 란포의 느낌을 표방하느라 고루한 감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아이러니할 정도의 신선함은 작가 특유의 비틀기로 더욱 빛을 발해 그 자체가 곧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상관 없어 보이는 액자의 안과 밖의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인지 그 진면목이 빛났던 소설이었다. 작품이 발표된 당시엔 작가도 거의 신인이었는데 이렇게 옛날 작가의 문체를 따라하는 등 상당히 도전적인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란포의 작품을 읽지 않아서 정확히 비교할 순 없지만 딱 봐도 그 작가의 문체를 잘 구사한 듯하고 작중의 소설인 '백골귀'도 짜임새가 좋아서 아예 그 작품만 봐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우타노 쇼고가 아니지, 작가는 거기서 한번 더 비트는데 그 방향이 자연스럽고 의미심장해서 작품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이 시체를 사는 남자라니... 무시무시한 제목에 비하면 작풍은 가볍고 무엇보다 작품 내용과 따로 노는 것 같아서 의아할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이 제목에 대한 해석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역자가 한 해석도 그럴 듯하고 다른 해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보통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은 제목을 선호하지 않고 이 제목도 거의 그럴 뻔했는데 어떤 해석을 접하느냐에 따라서는 꽤 괜찮다 느껴지기도 해서 이것도 단점이라 할 순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싶을 정도로 마구 흥미로운 제목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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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포이즌 ㅣ 미도리의 책장 13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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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4







 한 여자가 무심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 때 누군가 다가와 '절 믿고 1년만 기다려주지 않겠습니까? 그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라고 속삭인다. 자살을 얘기한 여자도, 이상한 말을 꺼낸 누군가도 서로 혼잣말이었으니 듣고 잊어버리라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란 말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자살을 입에 담았을 뿐인 여자는 1년 뒤, 정말로 잠에 드는 기분으로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남은 1년을 살아가게 된다.

 주간지의 기자인 하라다는 자기가 취재했던 비극의 주인공들이 비슷한 시기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취재 당시에는 그래도 시련을 극복하고 잘 살아갈 것 같더니 돌연 자살해버린 것에 책임감, 허망함이 뒤섞인 기분이 들고 때마침 그들과 같은 종류의 독극물을 통해 자살한 한 여자에 대한 소식도 듣는다. 자살한 여자는 청각을 잃은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나 처자식을 사이코패스에게 살해당한 남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눈길이 덜 가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하라다는 의문을 떨쳐낼 수 없다. 자신의 의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하라다는 그녀의 지난 날을 살펴보게 되는데...


 국내에 출간된 혼다 다카요시의 책은 대부분 다 읽은 거 같은데 이 작품이 가장 추리소설다웠다. 물론 그마저도 추리소설인 줄 모르고 읽었다가 알고보니 추리소설이었다는 식인데 작가 입장에서 구현하기 까다로운 트릭인 것에 비해 독자 입장에서는 난이도는 쉬운 편에 속했다. 하지만 주제의식이나 작품 전체에 녹아든 감성과 기가 막히게 어울려 여운이 상당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반전이 없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반전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특히 반전이 드러나는 대목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아 작가에게 이래저래 도전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를 당사자의 시선과 생판 타인의 시선에서 접근하기에 그것만으로도 이번 교차 서술이 상당히 의의가 있었다.

 보험을 들 때 당사자가 1년 이내에 자살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보험금 수령이 곧 목적이 되는 막장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이 작품은 그 룰의 가치가 제대로 빛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여자가 죽었으니 결말까지 다 나온 거 아니냐고 생각이 들 테지만 인생에는 처음과 끝만 중요한 게 아니니 그리 속단해선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그 중간에서 당사자가 얼마나 고민하고 헤맸을 것인가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번민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그 과정이 은근히 긴박감 넘쳤다. 그리고 결말에선 교묘한 반전과 묵직한 여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중에서 자살 충동이란 독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은 크든 작든 다 연결된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전적으로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기가 쉽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내가 누군가와 짧게 대중교통을 탈 때 스쳐지나간 사이더라도 그 짧은 순간에 상대를 배려하거나 최소한 웃는 얼굴로 마주치기만 했더라면 상대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타인의 불행이 직간접적으로 다 나의 책임이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한번 그렇게 상상해보게 된다면 어디서 어떻게 또 누구가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자니 절로 겸허해졌다.

 작품은 자살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번 이해해보자고 얘기하는 것이다. 누군가 자살했네? 여기서 끝내지 말고. 물론 자살자의 지난 날을 상상해보는 게 숨이 막힐 듯한 일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만큼은 그러한 한계에 도전해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살이라는 결말이 정해진 어떤 인생도 소설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본 것이 아닐까 하고.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5767 


 이건 옛날에 쓴 포스팅.

인간이란 원래 고독한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 몫만큼의 고독을 안고 살아가죠. 어느 누구라도 더 가볍거나 더 무겁거나 하지 않아요. 똑같이 한 사람 몫의 고독을 모두가 안고 살아갑니다. 한 사람 몫의 고독이라면 참을 수 있어요. 인간에게는 그런 참을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절망에 빠졌을 경우는요? - 159p




어차피 죽은 사람입니다. 산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죽기 전에는 살아 있었죠. -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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