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 포이즌 미도리의 책장 13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9.4







 한 여자가 무심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 때 누군가 다가와 '절 믿고 1년만 기다려주지 않겠습니까? 그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라고 속삭인다. 자살을 얘기한 여자도, 이상한 말을 꺼낸 누군가도 서로 혼잣말이었으니 듣고 잊어버리라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란 말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자살을 입에 담았을 뿐인 여자는 1년 뒤, 정말로 잠에 드는 기분으로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남은 1년을 살아가게 된다.

 주간지의 기자인 하라다는 자기가 취재했던 비극의 주인공들이 비슷한 시기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취재 당시에는 그래도 시련을 극복하고 잘 살아갈 것 같더니 돌연 자살해버린 것에 책임감, 허망함이 뒤섞인 기분이 들고 때마침 그들과 같은 종류의 독극물을 통해 자살한 한 여자에 대한 소식도 듣는다. 자살한 여자는 청각을 잃은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나 처자식을 사이코패스에게 살해당한 남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눈길이 덜 가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하라다는 의문을 떨쳐낼 수 없다. 자신의 의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하라다는 그녀의 지난 날을 살펴보게 되는데...


 국내에 출간된 혼다 다카요시의 책은 대부분 다 읽은 거 같은데 이 작품이 가장 추리소설다웠다. 물론 그마저도 추리소설인 줄 모르고 읽었다가 알고보니 추리소설이었다는 식인데 작가 입장에서 구현하기 까다로운 트릭인 것에 비해 독자 입장에서는 난이도는 쉬운 편에 속했다. 하지만 주제의식이나 작품 전체에 녹아든 감성과 기가 막히게 어울려 여운이 상당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반전이 없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반전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특히 반전이 드러나는 대목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아 작가에게 이래저래 도전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를 당사자의 시선과 생판 타인의 시선에서 접근하기에 그것만으로도 이번 교차 서술이 상당히 의의가 있었다.

 보험을 들 때 당사자가 1년 이내에 자살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보험금 수령이 곧 목적이 되는 막장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이 작품은 그 룰의 가치가 제대로 빛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여자가 죽었으니 결말까지 다 나온 거 아니냐고 생각이 들 테지만 인생에는 처음과 끝만 중요한 게 아니니 그리 속단해선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그 중간에서 당사자가 얼마나 고민하고 헤맸을 것인가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번민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그 과정이 은근히 긴박감 넘쳤다. 그리고 결말에선 교묘한 반전과 묵직한 여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중에서 자살 충동이란 독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은 크든 작든 다 연결된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전적으로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기가 쉽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내가 누군가와 짧게 대중교통을 탈 때 스쳐지나간 사이더라도 그 짧은 순간에 상대를 배려하거나 최소한 웃는 얼굴로 마주치기만 했더라면 상대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타인의 불행이 직간접적으로 다 나의 책임이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한번 그렇게 상상해보게 된다면 어디서 어떻게 또 누구가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자니 절로 겸허해졌다.

 작품은 자살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번 이해해보자고 얘기하는 것이다. 누군가 자살했네? 여기서 끝내지 말고. 물론 자살자의 지난 날을 상상해보는 게 숨이 막힐 듯한 일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만큼은 그러한 한계에 도전해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살이라는 결말이 정해진 어떤 인생도 소설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본 것이 아닐까 하고.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5767 


 이건 옛날에 쓴 포스팅.

인간이란 원래 고독한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 몫만큼의 고독을 안고 살아가죠. 어느 누구라도 더 가볍거나 더 무겁거나 하지 않아요. 똑같이 한 사람 몫의 고독을 모두가 안고 살아갑니다. 한 사람 몫의 고독이라면 참을 수 있어요. 인간에게는 그런 참을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절망에 빠졌을 경우는요? - 159p




어차피 죽은 사람입니다. 산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죽기 전에는 살아 있었죠. -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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