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중독 아름다운 청소년 17
김소연.임어진.정명섭 지음 / 별숲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6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이 걱정해야 할 일은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기느냐가 아닌 어떻게 적응하느냐라고 한다. 결국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없어서 못 사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데 아무리 얘기를 들어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 SF 소설이 갖는 의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번에 읽은 SF 엔솔로지는 청소년 대상 소설들치고도 어지간한 성인 독자층도 아우를 수 있을 내용들이라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엔솔로지가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이상 수록작들 퀄리티가 고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데 어느 작품 하나 빠지는 구석 없이 개성적이고 완성도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특이점을 지나서'


 인공지능 로봇이 특이점을 지나면 인간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개념 하에 진행되는 소설. 우리 시대엔 작중에서의 이니 같은 학생 로봇이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그 대신 입시 문제, 진로 상담, 심지어 데이트 폭력 등 우리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문제들과 적절히 녹여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적성을 분석해 학생마다 진로를 정해준 탓에 무비판적이고 무기력하게 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이 의지하는 건 남자친구 한 명밖에 없는데 그 남자친구란 놈은 자기 입시 스트레스를 주인공에게 폭력적으로 풀어버린다. 그 와중에 주인공네 반에 전학을 온 학생 로봇은 당장 공공의 라이벌로 취급돼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어렸을 때 시키는 대로 생각없이 움직이면 '넌 애가 왜 이렇게 로봇 같니?'라고 부모님한테 한 소리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 많이 떠오른 작품이었다. 인공지능을 다룬 SF 소설이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준에 매우 알맞는 내용으로 남이 지시한 대로, 남자친구한테 모진 취급을 받던 주인공이 자기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흡입력 있게 그려냈다. 더군다가 주인공의 꿈이 로봇이 정복할 수 없는 분야인 음식이라니 더욱 통쾌했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라서 감동이 남달랐던 작품이다.



 '로봇 중독'


 세계관을 보면 바로 직전에 나온 소설보다 확실히 디스토피아적이다. 그래도 소설은 자못 유쾌하게 진행되는데 여기서도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로봇이 등장하며 주인공과 로봇의 관계가 훨씬 유기적으로 그려지기까지 해 주제의식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3D 프린팅 기술로 작은 로봇을 마구 만드는 주인공이 로봇의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내용인데 제목에 있는 중독이라는 단어도 부족할 만큼 아예 무감각하게 로봇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판이라 옆에 있는 로봇 지니와 주인공과의 유대가 더욱 돋보였다. 로봇에 생명을 주고 생각할 능력까지 준 인간이 가벼운 기분이나 책임감으로 로봇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굉장히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역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동적이기론 책에 수록된 세 작품 중 가장 월등한 작품이다.



 '거짓말 로봇'


 <명탐정의 탄생>을 쓴 정명섭 작가의 작품으로 사실 그 책을 읽고 추가적으로 알게 된 게 바로 <로봇 중독>이다. 아무튼 그 유명한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위반한 로봇, 거짓말을 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로 작중 배경이 화성이라 여러모로 고전적인 SF의 풍미가 가득한 소설이었다. 최근에 읽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에서도 그렇고 20세기 중후반부의 SF 작가들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배경 설정으로 많이 그린 것 같아서. 이 얘기도 지금 듣기에 황당무계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일 것이고 그 정도는 가능한 과학 기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퍽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때가 되면 로봇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솔직히 작품 자체의 설정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결말이 진지해서 이번에도 뜻밖의 묵직함을 얻게 됐다. 이런 식의 결말은 SF의 전매특허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추리소설보다 이 SF 소설이 더 인상 깊게 읽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