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미술여행 - 루벤스에서 마그리트까지 유럽 미술의 정수를 품은 벨기에를 거닐다
최상운 지음 / 샘터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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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제목대로 브뤼셀, 브뤼헤, 안트베르펀, 겐트 같은 플랑드르 지방의 도시들에 있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과 그 작품을 그린 화가의 생애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라 언젠가 이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 꼭 챙겨갈 것이다. 작가가 책에 담아낸 정보의 독보성과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는데, 그래도 독보성은 무시할 수 없다.

 도시나 미술관에 대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보단 거의 그림에만 집중하는 터라 조금이라도 취향이 아닌 작품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바로 집중이 흐트러지게 된다는 아쉬움이 있는 책이었다. 설명을 단순 나열하는 작가의 필력은 흡입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처음 보지만 흥미로운 작품이 등장하면 바로 상쇄되는 아쉬움이기에 독자에 따라선 딱히 대단찮은 단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 지금에 와서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단순히 나의 취향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최근 삼성역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을 보고 왔는데, 그때 느낀 감동과 거의 비슷한 기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19세기 중후반부터 태동한 인상주의 경향의 작품을 프랑스 화단 중심으로 접하곤 하는데, 그 전시에서 이탈리아도 프랑스 못지않게 좋은 작품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음을 느낀 것처럼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대표작과 저력을 엿볼 수 있다.

 맛집 옆집도 맛집이란 말처럼 19세기 중후반엔 프랑스 못지않게 이탈리아에도, 그리고 벨기에에도 뛰어나고 의식 있는 화풍을 지닌 화가들이 많았다. 단지 유명하지 않을 뿐, 그 당시에 전세계적으로 좋은 작품이 태동했었음을 깨닫게 돼 시야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벨기에 화가라고 하면 솔직히 마그리트밖에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앙소르나 크노프, 델보 등 독창적이다 못해 대체불가의 창작력을 지닌 화가가 있었음을 알게 됐고, 훗날 떠날지 모를 벨기에 여행은 더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직관하고 싶은 작품 리스트가 한껏 늘어난 덕분이다.

 그와 동시에 소수의 유명한 작품만 알고 있던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와 진면목도 접할 수 있는 등 전반적으로 분량에 비해 컨텐츠가 튼실한 책이었다. 아까 작가의 필력이 흡입력이 떨어지네 어쩌네 씨부렁거렸지만, 나중에 여행 중에 현지에서 이러한 튼실한 컨텐츠에 감사하며 읽어나갈지 모르겠다. 확실히 미술관 다녀온 직후나 직전엔 지금 읽었을 때보다 더 흡수가 잘 될 테지. 그때가 너무 늦지 않게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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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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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전에 읽었을 땐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밌었는데 다시 읽으니 처음만 못했다. 작중에 나오는 영화의 각본을 담당한 혼고의 진의가 궁금하지 않아서도, 호타로가 갖는 배신감에 공감을 못해서도 아니다. 아무래도 거드름 피우는 듯한 문체 때문에 쉽게 와 닿을 이야기도 몽롱하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추리소설을 읽을 때 문체를 문제삼는 편은 아니지만 호타로의 심리 묘사가 중요한 작품이었기에, 어쩌면 영화의 진실이나 새로 덧입혀진 트릭보다 훨씬 중요했기에 유독 눈에 밟혔다.

 가상의 창작물의 진실을 다각도로 추리하는 플롯은 생각보다 난이도 높고 진지하며, 추리의 방향성도 제각각이라 제법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런 작품의 특성상 정작 뒤에 마련된 진실 내지는 작중 창작물의 완성도는 어딘지 미묘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방면으로 기대하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 내가 괜히 호타로의 심리 묘사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고전부' 시리즈가 청춘을 보내는 이들의 아픔과 성장을 중요한 테마로 다루는 만큼 탐정역이자 화자를 맡고 있는 호타로의 역할을 경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호타로의 급발진과 변덕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나는 상술했던 문체를 벗겨내고 살펴본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감정선이었다고 본다. 내용이나 의도가 어찌 됐든 간에 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테스트를 당했는데 기분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아이들 중에 자신의 특출난 능력 유무에 들뜨고 좌절당하는 모습은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설령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고 한들 자신이 기대한 재능과 다르면 당사자 입장에선 순간 격해지는 것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새 개인적으로 나 자신의 재능이나 나아갈 길에 대해 의구심과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호타로의 급발진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타인에게 조종당했다는 데서 오는 불쾌함과 허탈함은 너무도 잘 알기에...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걸 넘어서 부러 모른 척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괜히 기대를 품었다가 되돌아올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하는 호타로의 모습이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이상하게 비치진 않았다. 셜로키언보다 재밌는 건 많다고 말하는 사토시가 오히려 너무 쿨해서 와 닿지 않았지.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자신에 관해 객관적이고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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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올빼미
누쿠이 도쿠로 지음, 최현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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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을 지금까지 한 십여 권 정도 읽었는데 이 작품이 설정은 가장 참신했다. 하지만 설정만 참신했지 전반적인 완성도는 고르지 못했다.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사형을 당하는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작소설집인데 표제작 '종이올빼미'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이 설정 및 세계관 설명 소개에 그치고 있어서 소설 읽는 느낌이 덜했다.

 '새장 속의 새들'은 이야기의 착안점은 좋았지만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인의 동기가 뜬금없을 만큼 극단적이라 별 감흥이 일지 않았으며 '레밍의 무리'는 반전은 재밌었지만 다소 설명적인 문체는 몰입도를 저해시키고 나무위키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흠이었다. '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와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경우 전자는 엽기적이고 후자는 도서형 추리소설다운 절박함과 비장미가 느껴졌는데 두 작품 다 동기와 트릭이 다 읽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가물가물할 만큼 인상이 흐릿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상 앞선 네 편의 수록작은 연작소설집에서 절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편 '종이올빼미'를 위한 발판으로 기능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대망의 표제작은 어땠느냐면, 이 작품은 제법 괜찮았다. 작중 사형 제도 안에서 간과되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유족 사이의 속죄와 용서의 미덕을 굉장히 진정성 있게 풀어내고자 했고 이러한 진정성은 흡사 작가의 다른 작품 <난반사>를 연상시켰다. 신분조차 알 수 없는 연인의 비밀을 파헤치는 전개는 흥미로웠고 제3자인 듯 아닌 듯한 주인공의 입장이 객관적이면서 때론 감정적으로 작중의 사형 제도를 생각해보게 만들어 몰입도를 자아냈다. 어찌나 몰입도가 높던지 그가 결말 이후에도 아무쪼록 마음의 평안을 찾았길 바랄 정도였다.

 끝으로 작품 속 사형 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자면, 그런대로 이치에 맞는 제도인 듯하나 모든 법과 제도가 그렇듯 단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어 그렇게 덮어 놓고 숭배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은 이상 열렬한 지지자나 반대자가 될 이유가 없잖은가. 때문에 '레밍의 무리'에서처럼 자살할 용기가 없으니 일부러 죽어 마땅한 사람을 벌하고 국가로부터 안락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흐름은 다소 무리수로 다가왔다. 작품 속에 무슨 내용을 담을 것인지는 작가의 마음이지만, 인간의 광기를 과장시킨 감이 없잖은 이 부분은 어딘지 유치하게 읽히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시선이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에 말했듯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을 거의 십여 권 정도 읽었다. 결코 적게 읽은 것이 아닌데 새삼 예전에 재밌게 읽은 작품을 다시 집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종이올빼미>만 읽고선 작가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은 듯해 괜히 이전에 읽은 작품들이 그리워졌다. 조만간 <난반사>나 <미소 짓는 사람>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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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수사 2 : 수사의 재구성 - 果斷 미도리의 책장 15
곤노 빈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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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



스포일러 있음


 '은폐수사' 시리즈 2편인 이 작품은 지난 1편의 단점까지 보완하고 있어 가히 역대급 완성도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 출간될 때 '수사의 재구성'이라는 다소 재미없는 부제가 붙었는데 원래 부제는 '과단'이다. 그렇게 잘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 바꾼 듯한데, 과감한 결단을 내린 류자키가 위기에 내몰리는 이야기의 흐름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바뀐 부제가 약간 아쉽다.

 허나 '수사의 재구성'이 재미없긴 해도 잘못된 부제는 아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지만 인질을 잡은 범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또다시 좌천될 위기에 처한 류자키는 수사를 재구성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이러한 과정의 몰입도가 1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이 작품에서 류자키는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서장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트릭은 디테일이 돋보인 데다가 막판의 반전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으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이 반전의 양상이 뻔하다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으나 류자키가 어처구니 없는 책임을 지게 되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한 독자가 훨씬 많을 것이므로 이 정도는 옥의 티라 여길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몰입도나 서장으로서의 류자키의 일과나 전문성, 합리성도 아닌 류자키의 변화다. 일에 전념하느라 간과하곤 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물론 그의 신념 일부가 변하는 걸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그의 아들이 추천한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서 마음을 다잡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과감한 명령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 독이 아닌 오히려 득이 되어 진범을 체포할 수 있던 것이겠다.

 전자는 류자키가 홀대하다시피 했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아들을 이해함과 동시에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지금이야 일본이 절대불변의 애니메이션 강국이긴 하지만, 그 일본에서도 애니메이션이 예술의 일각으로 인정받은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류자키가 딱 애니메이션을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인식하는 세대에 속하고 더군다나 그는 학창시절 공부만 해서 예술에 대해선 더욱 협소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입만 열면 합리성만 따지는 양반이 지극히 비합리적인 일 - 영화 관람을 통해 시야가 트이는 전개가 어찌나 통쾌하던지...


 후자는 이 작품이 본질적으로 1편보다 뛰어난 이유라고 보는데, 일찍이 이 작품의 3장에서 류자키는 서장으로서 참석한 초등학생 학부모와 교사들과의 자리에게 일장연설을 한 부분과 연관하여 곱씹어보면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3장에서 류자키가 한 말을 내가 이해한 대로 함축해서 말해보자면, 이 세상이 너무도 풍요로워진 대가로 우리는 사생활이라든가, 아이들의 눈치나 범죄자의 인권처럼 과거엔 별 신경도 쓰지 않던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 살게 됐고, 그렇다 보니 놓치게 되는 것도 많아져 도리어 과거보다 세상은 퇴보했거나 살기 위험해졌다... 는 것인데, 역시 앞뒤 맥락을 자르고 옮겨적으니 너무 극단적인 발언인 것처럼 들리는군. 나와 달리 류자키는 매우 조리 있게 잘 설명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풍요를 포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대신 경찰 등을 비롯한 타자에게 무조건 날선 반응을 보이는 대신 간단한 협조나 가족과의 대화만으로도 범죄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예방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 장면 직후에 인질 사건이 터짐으로써 류자키는 물러터진 세상의 잣대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한다. 사살당한 범인의 총에 총알이 다 떨어져 없었다는 이유로 인권 단체 같은 데서 일대 비난이 쏟아지고 경찰 상층부는 사건의 책임자인 류자키에게 어떻게든 패널티를 주고자 수석 감찰관까지 나서게 만든다. 도저히 류자키가 학부모 앞에서처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참으로 답답하면서 한심한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답답하고 한심한 양상으로 전개된 덕분에 류자키는 진범을 잡는 식으로 사고를 전환하게 됐다. 그것이 류자키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지만 수사 책임자로서 포기하지 않은 덕에 그렇게나 일사천리로 진범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만약 여론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류자키는 자신이 인질을 무사히 구출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실제로는 인질들이 사건을 조작하고 생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뻔뻔히 살아남은 걸 떠올리면 위와 같은 가정은 정말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3장에서의 류자키가 펼친 주장은 반은 맞으면서 반은 틀린 말이지 않은가 싶다. 세상이 물러터져서 놓치게 된 것은 많지만, 반대로 물러터졌기에 놓치지 않게 된 것도 있음을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잖은가. 합리성만이 옳다 여긴 그가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마음을 다잡은 것도 통쾌했지만, 풍요를 얻은 대신 물러터진 사회를 통찰한 류자키에게 도리어 물러터진 사회 덕분에 진범을 잡을 수 있었다고 반론을 제시하는 듯한 전개여서 의미심장했고 곱씹는 재미가 충분했다.

 이러한 재미는 1편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완벽히 보완하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지난 1편 포스팅 때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전편에선 소년 범죄의 가볍기 짝이 없는 양형의 부당함이라든가, 아니면 법이 유독 세간의 정의 구현의 심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꼬라지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류자키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춰 흐지부지된 것이 내심 아쉬웠다. 반면 2편은 그렇지 않았다. 박진감 넘치는 수사 과정, 경찰 조직의 다양한 갈등이나 시종 압박감에 시달리는 류자키의 심리를 묘사하면서도 주제의식 또한 예리하게 다루고 있어 전방위적인 만족스러움을 안겨줬다.


 게다가 전편의 장점이 바래진 것도 아니다. 경찰의 다양한 부서의 알력이라든가 경직된 걸 넘어 부조리한 조직의 분위기를 신랄하게 묘사함으로써 이상적인 엘리트주의의 화신인 류자키의 캐릭터성이 시종 돋보였다. 흔히 류자키처럼 지위가 높고 가부장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은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자신감을 갖는다거나 아랫사람이 자기 일을 한답시고 자신을 대우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류자키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지위가 한참 낮은 부하 형사들, 인질 사건 중에 마주친 특수부대 팀 SIT나 SAT에게도 쓸데없는 참견 없이 그대들이 전문가니 사건을 주도하라며 전폭적으로 의견을 구하거나 자신이 캐리어다 보니 총기나 사건 수사의 노하우 등 현장에 미숙하단 사실을 인정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태도에 부하들이 머뭇거리면, 뭔가 잘못됐을 시 책임은 상관인 자신이 진다면서 부하들을 독려하는 등 이번 작품에서도 류자키의 엘리트주의는 빛을 발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잘할 뿐이고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류자키의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지시 덕분에 사건 해결 및 진범 체포라는 공통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경찰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의 리더십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감탄은 입원한 아내의 부재로 인해 남은 가족끼리 가사를 해나가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로 터져나왔다. 자신이 서장이랍시고 집에서도 으스대지 않고 가사에 대해 전무한 것에 부끄러워 하면서도 아내나 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에서 나는 인간에게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건 태도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솔직하고 치우치지 않은 태도는 도의적으로나 합리적으로나 옳고 유리한 전략일 수밖에 없는데, 혹시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위와 같은 깨달음을 덕분에 이 작품이 아마도 올해 읽은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추리소설로나 조직소설로나 캐릭터소설로나 풍자소설로나 가족소설로나 뭐로나 깔 구석이 전무하고, 특히 아내의 입원으로 인한 긴장감이 인질 사건 못지않은 등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개가 일품이라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3편이 국내에 출간될 일은 없을 듯한데, 드라마가 나왔다고 하니 그 드라마를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니면 일본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찾아 읽든가. 간혹 이렇게 꾸준히 소개되지 않고 중간에 끊긴 시리즈를 접할 경우 원서를 읽어볼까 하고 충동적으로 읊조리게 되는데 이 경우엔 그 읊조림이 더 진지하게 새어나왔다. 진짜 일본어 공부를 해서 읽어버려? 어느 세월에 읽겠나 싶지만 이런 충동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정말로 실행될 수도 있겠다.



 P.S 옥의 티 하니까 생각난 것이 있는데, 아들이 전편에선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이번 편에선 뜬금없이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바꾸고 싶다는 게 약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언론과 애니메이션은 남극과 북극만큼의 간극보다 더 크지 않나 싶어서... 이건 류자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P.S 2 그러고 보니 최근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개봉했던데, 보러 가볼까. 오랜만에 보고 싶어졌다.

나는 흉악한 범죄와 맞서는 첫 번째 무기가 합리성이라고 믿고 있네. - 197p

반드시 대의를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작은, 아주 작은 하나. 너무나 작더라도 자신이 믿는 바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위해 싸우면 된다. - 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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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전쟁활동 5 - 완결
하일권 글.그림 / 재미주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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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내가 이 작품을 웹툰으로 보다가 군입대를 하면서 안 보게 됐으니 처음 접한 것이 어언 12, 아니 13년 전인가? 하일권의 작품은 거의 다 섭렵했지만 어쩌다 보니 이 작품만 결말을 모른 채 지내왔는데 이렇게 늦게라도 완독하니 뿌듯함이 남달랐다. 작품의 내용도 10년도 더 전에 연재됐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어서 이제라도 찾아 읽은 보람이 있었다.

 지금 봐도 깔끔한 설정이고 결말 또한 여운이 있었다. 물론 기초 설정에 의구심이 아예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군필자만 몇 명인데 학도병까지 대대적으로 동원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라는 게 당장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바꿔 말하면 이 점 하나를 제외하니 거의 모든 면에서 현실적이었던 작품으로 느껴졌다. 점수 경쟁과 생존을 동시에 강요당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짝사랑도 하고 고백했다 차이고, 우정도 돈독히 다지다가 갈등하며 부딪치고 장난치고 슬퍼한다. 동급생들이 그대로 소대를 이뤄 미지의 생물과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은 여느 밀리터리 작품과는 비교가 불허한 독특함과 몰입도를 자아내 50화 분량의 이야길 하루만에 독파하는 것이 가능했다.


 후반부 국영수의 광기 어린 폭주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 세포와의 전쟁 양상 때문에 긴장감이 유지됐던 것도 이 작품의 백미다. 끝내 전쟁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와 수능을 준비하게 되지만, 결국 전쟁이 없었다면 죽지도 않았을 '전우'의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져 홀가분함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한다. 드라마가 과연 이러한 상실감과 허무함을 제대로 살렸을는지 의심될 정도로 짙은 여운이 선사됐고, 사건의 이면에서의 진실은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국영수... 작가가 말하길 전쟁이 없었다면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했을 아이를 너무 나쁘게 그린 것 같다고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극악무도하게 인물을 묘사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참 너무했다, 너무했어.

 장난치듯 지은 제목과 달리 작품의 분위기는 엄청나게 진지하고 살벌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유머도 있고 연재 당시에 유행하던 밈 같은 것도 엿볼 수 있었던 데다가 캐릭터들의 캐미도 발군이어서 완급 조절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하일권은 모든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발표하는 작품마다 완성도가 고른 것으로 정평이 났지만, 완급 조절은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나지 않은가 싶다. 덕분에 고통스러운 내용임에도 다음 전개를 궁금해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한 명씩 퇴장할 때마다 나 역시도 절로 숙연해질 수 있었다. 한동안 잊고 지낸 '만신'의 저력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반가웠고 작가의 다른 작품도 소장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작품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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