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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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전에 읽었을 땐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밌었는데 다시 읽으니 처음만 못했다. 작중에 나오는 영화의 각본을 담당한 혼고의 진의가 궁금하지 않아서도, 호타로가 갖는 배신감에 공감을 못해서도 아니다. 아무래도 거드름 피우는 듯한 문체 때문에 쉽게 와 닿을 이야기도 몽롱하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추리소설을 읽을 때 문체를 문제삼는 편은 아니지만 호타로의 심리 묘사가 중요한 작품이었기에, 어쩌면 영화의 진실이나 새로 덧입혀진 트릭보다 훨씬 중요했기에 유독 눈에 밟혔다.

 가상의 창작물의 진실을 다각도로 추리하는 플롯은 생각보다 난이도 높고 진지하며, 추리의 방향성도 제각각이라 제법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런 작품의 특성상 정작 뒤에 마련된 진실 내지는 작중 창작물의 완성도는 어딘지 미묘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방면으로 기대하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 내가 괜히 호타로의 심리 묘사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고전부' 시리즈가 청춘을 보내는 이들의 아픔과 성장을 중요한 테마로 다루는 만큼 탐정역이자 화자를 맡고 있는 호타로의 역할을 경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호타로의 급발진과 변덕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나는 상술했던 문체를 벗겨내고 살펴본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감정선이었다고 본다. 내용이나 의도가 어찌 됐든 간에 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테스트를 당했는데 기분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아이들 중에 자신의 특출난 능력 유무에 들뜨고 좌절당하는 모습은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설령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고 한들 자신이 기대한 재능과 다르면 당사자 입장에선 순간 격해지는 것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새 개인적으로 나 자신의 재능이나 나아갈 길에 대해 의구심과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호타로의 급발진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타인에게 조종당했다는 데서 오는 불쾌함과 허탈함은 너무도 잘 알기에...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걸 넘어서 부러 모른 척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괜히 기대를 품었다가 되돌아올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하는 호타로의 모습이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이상하게 비치진 않았다. 셜로키언보다 재밌는 건 많다고 말하는 사토시가 오히려 너무 쿨해서 와 닿지 않았지.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자신에 관해 객관적이고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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