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올빼미
누쿠이 도쿠로 지음, 최현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9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을 지금까지 한 십여 권 정도 읽었는데 이 작품이 설정은 가장 참신했다. 하지만 설정만 참신했지 전반적인 완성도는 고르지 못했다.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사형을 당하는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작소설집인데 표제작 '종이올빼미'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이 설정 및 세계관 설명 소개에 그치고 있어서 소설 읽는 느낌이 덜했다.

 '새장 속의 새들'은 이야기의 착안점은 좋았지만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인의 동기가 뜬금없을 만큼 극단적이라 별 감흥이 일지 않았으며 '레밍의 무리'는 반전은 재밌었지만 다소 설명적인 문체는 몰입도를 저해시키고 나무위키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흠이었다. '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와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경우 전자는 엽기적이고 후자는 도서형 추리소설다운 절박함과 비장미가 느껴졌는데 두 작품 다 동기와 트릭이 다 읽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가물가물할 만큼 인상이 흐릿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상 앞선 네 편의 수록작은 연작소설집에서 절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편 '종이올빼미'를 위한 발판으로 기능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대망의 표제작은 어땠느냐면, 이 작품은 제법 괜찮았다. 작중 사형 제도 안에서 간과되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유족 사이의 속죄와 용서의 미덕을 굉장히 진정성 있게 풀어내고자 했고 이러한 진정성은 흡사 작가의 다른 작품 <난반사>를 연상시켰다. 신분조차 알 수 없는 연인의 비밀을 파헤치는 전개는 흥미로웠고 제3자인 듯 아닌 듯한 주인공의 입장이 객관적이면서 때론 감정적으로 작중의 사형 제도를 생각해보게 만들어 몰입도를 자아냈다. 어찌나 몰입도가 높던지 그가 결말 이후에도 아무쪼록 마음의 평안을 찾았길 바랄 정도였다.

 끝으로 작품 속 사형 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자면, 그런대로 이치에 맞는 제도인 듯하나 모든 법과 제도가 그렇듯 단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어 그렇게 덮어 놓고 숭배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은 이상 열렬한 지지자나 반대자가 될 이유가 없잖은가. 때문에 '레밍의 무리'에서처럼 자살할 용기가 없으니 일부러 죽어 마땅한 사람을 벌하고 국가로부터 안락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흐름은 다소 무리수로 다가왔다. 작품 속에 무슨 내용을 담을 것인지는 작가의 마음이지만, 인간의 광기를 과장시킨 감이 없잖은 이 부분은 어딘지 유치하게 읽히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시선이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에 말했듯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을 거의 십여 권 정도 읽었다. 결코 적게 읽은 것이 아닌데 새삼 예전에 재밌게 읽은 작품을 다시 집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종이올빼미>만 읽고선 작가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은 듯해 괜히 이전에 읽은 작품들이 그리워졌다. 조만간 <난반사>나 <미소 짓는 사람>을 읽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