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서비스부
브누아 뒤퇴르트르 지음, 함정임 옮김 / 강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7.9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은 어디에 회원가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엔 감정을 잘 통제하는 편인 나를 삽시간에 성격 다 버리게 만드는 일은 바로 고객서비스와 관련해 어디 사이트를 들어간다거나 아님 상담사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다. 남들은 그런 나를 보고 뭘 그렇게 성을 내냐고 하고 나도 가끔 내가 왜 이럴까 싶다. 지금은 비교적 성을 덜 내는 편이지만 여전히 저런 일들은 나로 하여금 숨길 수 없는 분노를 유발한다.

 브누아 뒤퇴르트르의 짧은 소설 <고객서비스부>는 이전에 읽은 <소녀와 담배> 못지않은 프랑스산 똘끼와 투덜거림을 쉬지 않고 발산해낸다. 차이가 있다면 이 작품이 그나마 공감대를 넓게 형성하기에 좋은 작품이란 것이다. 누구나 휴대폰은 갖고 있을 테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모델로 교체를 했을 것이며 그럴 때마다 각종 통신사, 고객서비스부와 관련해 골머릴 앓아본 적이 있을 테니까. 만약 없다면 그것대로 이 소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소설을 수식하는 문구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21세기의 랭보' 가 있는데 나 역시 공감이 많이 갔다.


 상담 전화가 됐건 인터넷 사이트가 됐건 나를 분노케 하는 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때문에 나는 한때 스마트폰에서 2G폰으로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다. 하나는 내게 필요한 고객서비스를 받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단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일련의 과정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회사를 위한 것이라는 강한 깨달음이었다. 전자는 내가 기계치라서 그런 거라며 넘길 수 있다 해도 후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인 것 같아 더 화딱지가 난다.

 글쎄, 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쿠폰이든 적립금이든 꼬박꼬박 챙기는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소비자를 위한 게 아닌 전적으로 판매자들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는 윈윈이라 생각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수많은 선택지 중에 소비자들이 자기네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니 철저하게 자기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당연하게도 '손해 보는 장사'라는 점을 어필하며 쿠폰을 뿌리거나 할인 행사를 하거나, 혹은 소비자에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들이밀며 어떻게든 고객 유치라는 성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실수로 택시에 휴대폰을 놓고 내린 주인공이 고객서비스부에 전화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소설은 짧음에도 장면 장면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읽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고자 했지만 그러기 위해선 이들에게 철저하게 돈을 갖다 바치게 된다는 걸 깨달은 주인공은 조금 도가 넘을 정도의 투덜거림을 시전해 회사를 상당히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후반부엔 가상의 존재인 줄 알았던 도미니크 델마르와 대면하고야 마는데 이 장면도 참 가관이었다. 마치 최근에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결말은 내가 반쯤 예상한 대로 블랙 코미디스럽게 그려져서 딱하 안타깝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 결말로 이르는 과정은 좀 아쉬웠다. 뭔가 말을 하다 만 느낌이랄까? 굴복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좀 더 물고 뜯어야 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중반부의 지리멸렬한 전개를 좀 덜어내고 후반부에 집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분량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껏 느껴왔으나 어디서 잘 토로하지 못했던 불만을 충분히 대변하기엔 약간 애매한 연출이었기에 공연히 화만 났지 딱히 남는 게 없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작가한테 동지 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좋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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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트 타탱의 꿈 - Novel Engine POP
곤도 후미에 지음, RYO 그림, 문기업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8.1






 프랑스 요리 비스트로 '파 말'을 배경으로 한 일상 추리물 <타르트 타탱의 꿈>은 곤도 후미에의 또다른 시리즈물이다. 알아보니까 곤도 후미에는 여러 시리즈물을 집필했던데 다양한 소재를 깊게 파고드는 작가의 성향이 이뤄낸 결과물들이 아닌가 싶다. 국내엔 작가의 대표작만 소개된 듯한데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작품이 소개됐으면 좋겠다.

 이 작가는 이번에 프랑스 요리에 꽂혔는지 어지간한 추리소설에서 보기 힘들 수준의 디테일한 요리의 세계를 선보이는데 문제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식견이 좁은 탓인지 작중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요리들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단 것이다. 와인이며, 디저트, 표제작에 들어가는 타르트 타탱 등 생소하기만 한 음식이었다. 작가의 묘사가 맛깔나서 침이 고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에 의존해야 했기에 그게 좀 아쉽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 어떻게 보면 그 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진짜 요리를 전공한 사람한테는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이런 전문성 높은 글은 그 자체만으로 즐거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을 만족스런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데엔 약간 주저된다. 비스트로 파말이란 배경, 요리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와 해결이란 작품의 컨셉은 확실히 개성적이지만 소재 자체가 워낙 마이너해 추리소설의 미덕이랄 수 있는 공정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져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작품의 탐정 역할을 맡은 오너 쉐프 미후네의 추리는 요리사로선 당연한 추리를 하는 것이겠으나 그게 일반 독자들한텐 초월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사실, 요리를 전공하거나 같은 요리사들한테도 좀 비범하게 느껴질 것 같다. 더욱이 수록된 작품들의 분량이 3~40페이지 정도라 이 비범함이 더 극대화된 경향이 있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질 틈도 없이 한 번에 답을 내놓으니까. 그래서일까, 솔직히 말하면 어떨 때는 미스터리보다 비스트로의 장사 풍경이나, 직원들간의 케미, 손님들과의 일화 등이 더 와 닿고 흥미롭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가볍고 편안한 기분으로 읽기에 제격인 일상 추리소설집이었다. 이것만으로 취향 깨나 갈릴 텐데 일반적으로 고가로 취급되는 프랑스 요리가 메인 소재라 독자에게 어필하기가 더욱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 작품을 읽고 난 다음에 얻게 된 긍정적인 변화 하나쯤을 말하자면, 그건 바로 프랑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중국, 터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인데 우리는 흔히 중국 요리, 유럽이라고 하면 이탈리아 요리만 익숙하지 프랑스 요리에 대해선 무지하다. 미식의 나라라는 명성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테니 한 번쯤 먹어보고는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고 망설인다면 이 책을 읽는 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곤도 후미에를 비롯해 이렇게 일상의 다양한 소재를 소설로 담아내는 작가들은 존중해 마땅하다. 소설이란 독자로 하여금 간접 체험을 가능케 하는 매체로써 아주 적절하다. 물론 그 자리는 방송이, 최근엔 유튜브로 많이 대체되긴 했으나 역시 소설엔 소설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또한 곤도 후미에 같은 경우엔 전에 읽은 <샤를로트의 우울> 때도 그랬지만 작가 본인이 일상 생활을 하며 겪거나 느낀 일들,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재주가 출중해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감탄이 나왔다. 이건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도 굉장히 자극이 되는 일이었다. 이야깃거리는 정말 주변에 널렸는데 단지 내가 파고들어 쓰질 않았을 뿐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열중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몰라. -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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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사냥꾼 - SF 미스터리, 4단계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1
알프레드 슬롯 지음, 엘리자베스 슬롯 그림, 이지연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8.9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복제인간'을 다룬 SF 작품으로 아직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레몬>과 마이클 베이의 영화 <아일랜드>를 최고로 친다. 특히 <아일랜드>는 복제인간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인데 혹시 복제인간 다룬 작품 중에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에 추가하겠다. 아무튼, 내가 <아일랜드>를 고평가하는 이유는 작중에서 복제인간들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합리적이고 치밀하며 무척 거국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장기 대체품으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미래가 도래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롤모델로 삼을 만한 것이 바로 <아일랜드>의 세계관이 아닐까? 그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입을 더 못 놀리겠어서 간단히 말하자면 그 작품에 비해 이번에 읽은 <복제인간 사냥꾼>에 나온 설정은 어딘가 허술하게 보였다.

 이 작품의 출간 연도는 1982년이며 작중 배경은 무려 2019년, 당시 기준으로 거의 40년 정도 뒤의 미래다. 이 소설을 2020년 연초에 읽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옛날 사람들은 기술이 빨리 발전될 거라 생각했구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과학 기술은 SF 소설 뺨치게 발전을 거듭했으나 우리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에 의해 발표와 동시에 엄청난 논란을 낳을 것이 자명해 발표를 꺼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음모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 초 줄기세포 복제로 세간이 떠들썩했던 걸 떠올리면 아주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적어도 유전학에 한해선 꽤나 그럴 듯해 보이는데.


 그저 인간의 장기 대용품으로 만들어졌을 뿐인 복제인간을 수용소에 넣고 관리한다는 본작의 설정은 무척 잔인했다. 복제인간을 철저하게 도구 취급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발상이다. 누구누구 2호, 3호라는 식으로 부르면서 원래 주인이 위독해졌을 때 잡아다가 장기만 축출하는 시스템이 전세계에 걸쳐 상업화됐다는 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참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주인공은 장기 축출을 거부하고 도망친 복제인간을 잡아주는 복제인간 사냥꾼인데 프로패셔널하게 복제인간을 잡는 것 외엔 관심이 없으며 - 이 남자의 관심사는 의뢰비와 의뢰를 어떻게 하면 빨리 성공하느냐다. - 복제인간을 철저하게 인간이 아닌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프로패셔널한 사냥꾼이 그다지 프로패셔널하지 못한 의뢰인을 만난다는 게 이 소설의 발단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자신의 복제인간과 가까이 지냈고 개별적인 이름도 지어주는 등 복제인간을 인간처럼 대했던 의뢰인의 가족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제인간을 잡아다주길 바라기는커녕 저마다의 입장과 소신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작업이 힘들 텐데도 주인공은 사람들이 걱정한 대로 활약을 펼친다.


 대상 독자를 청소년보다 더 아래로 설정한 것치고 초반부에 묘사되는 인물 설정이라든가 후반부의 반전 등이 복잡하고 심오해서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순수하고 어리지 않으므로 오히려 이 소설의 문법이 적절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결말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참 기분 좋은 해피엔딩이란 건 부정할 수 없고 개연성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게 그렇게 치밀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복제인간에 관한 이슈는 논리보단 감성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거의 일관된 자세를 보인 주인공의 심경의 변화는 약간 급작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변심하는 건 좀... 조금만 더 초반의 염세주의적인 작풍이 남아있더라도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작품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쉽게 예견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만큼 작중에서 복제인간을 다루는 방식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말 역시 허술한 감이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영화 <아일랜드>가 예전에 나온 동일한 소재의 작품들에서 보완점을 잘 찾았구나 싶었다. 그럼 반대로 생각했을 때, 만약 복제인간이란 소재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접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보면 <복제인간 사냥꾼>이 선구적인 작품이라 오히려 불리했던 작품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 책이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선구적인 작품이란 말에 과연 몇이나 동의할까 싶지만 그래도 출간 연도나 대상 독자를 어린이로 잡은 걸 고려하면 충분히 선구적이라 부를 만하다. 이런 책을 어렸을 때 읽었어야 했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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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의 시대 사계절 만화가 열전 3
박건웅 지음 / 사계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8.1







  사실 풍자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명확한 걸 넘어 노골적이기까지 한 주제의식은 항상 내 기대 이상의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풍자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표현함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은 못 넘어가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는 지금 검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얀 마텔이 자신의 소설 <20세기의 셔츠>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역사적 사실은 꼭 역사적 법칙만이 아닌 예술의 법칙에 따라서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작가의 그림체나 컷 분할이 산만하게 느껴져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졌다. 그런대로 개성적이고 귀여운 면도 있으나 어쨌든 그 작은 그림 하나하나에 텍스트를 우겨 넣으니 읽으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내용에 대해선 크게 할 말이 없다. 미안한 얘기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 생각해봤거나 누군가와 얘기해본 내용들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만화들은 짧고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풀어내 구성은 괜찮았고 풍자 만화라고 해서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었지만 대체로 예상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만화를 그린 당시가 이명박 정권 때라 그런 건지, 이미 많이 접해본 이슈들이라 더욱 식상하게 다가왔는지 몰라도 아무튼 눈에 확 들어오는 신선함이 이 책에선 없었다. 특히 '페스트'와 '역병'의 내용은 오히려 식상할 지경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쥐에 대한 의인화, 그리고 섬뜩한 그림체는 확실히 인상적이긴 했어도 말이다.


 바로 어제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 특히 정치를 주요 소제로 다룬 작품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노골적인 작품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그 영화는 좋은 작품이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 이 만화도 식상해서 그렇지 나쁜 작품은 아니다. 솔직히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는 인정해줘야 한다. 아까 언젠가 어디선가 생각해봤거나 얘기해본 내용이랬지만 그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능력이고 용기니까. 그렇기에, 기왕 용기를 낸 김에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난 이야기를 접하면서 여러 생각 들게 만드는 복잡미묘함을 선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로 내달리는 정치 이야기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남산의 부장들>도 그렇고 <삽질의 시대>도 결과적으론 좋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나와도 나와도 세부적인 소제만 달라질 뿐 어째 하는 얘기는 다 비슷할 거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이 부분은 창작자는 물론이고 그 창작물을 감상하는 우리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겠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는 것처럼, 냉정한 독자가 늘어날수록 창작자는 보다 노력하게 될 것이므로. 참 고무적인 얘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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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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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0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사실 소설을 먼저 읽었다가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포기하고 영화로 보게 됐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겠다. 작가가 그렇게 어려운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로 번역이 이뤄진 것도 아닌데 가독성이 유독 떨어졌던 건 그냥 작가의 문체가 나와 상극이었던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영화가 괜찮았던 것에 용기를 내 다시 읽어본 이 소설은 영화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 읽히거나 하진 않았다. 영화로 먼저 접한 원작 소설을 굳이 다시 찾아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원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이 오히려 영화보다 불친절하다면 불친절한 편이라 내심 놀라웠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가 번걸아가며 진행돼 궁금증을 높였던 반면 원작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돼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철저하게 주인공 '나'의 시선에서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슈미츠 부인 - 왜 '부인'인지... 옛날 번역의 한계인 건가? - 의 비밀이나 주인공의 심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이나 감정의 골이 풀어지는 것도 모조리 주인공의 내면에서 이뤄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영화가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복선이라든가 여백의 미 등 영화가 서사적으로 조금 더 고급스런 연출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외국 소설을 읽을 때 번역을 탓하려고 않는 편인데 최근 들어 그런 다짐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비롯해 이 책 <책 읽어주는 남자>는 내가 직접 사거나 빌려 읽은 것이 아닌 집에 이미 있는 책, 어머니가 옛날에 구매하셨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 읽은 것인데 아무튼 그렇다 보니 번역의 느낌이 딱 옛날 느낌이었다. 번역가로선 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옛날 책은 어쩔 수 없이 옛날 책이라고, 그 특유의 현실감 떨어지는 문장들이 요즘 번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작가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번역이란 현시대의 감각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이상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아 말을 아낄 것이지만, 확실히 '느낌적인 느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약간 철이 지난 번역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밟혔다.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쓸 때 많이 했으므로 특별히 더 덧붙이거나 하진 않겠다. 이 말은 즉, 소설과 영화가 연출의 차이는 있어도 내용상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더 돋보였다.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가 없다는 말을 반박할 때 좋은 예시가 될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아주 명작이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565014971

 이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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