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8.0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사실 소설을 먼저 읽었다가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포기하고 영화로 보게 됐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겠다. 작가가 그렇게 어려운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로 번역이 이뤄진 것도 아닌데 가독성이 유독 떨어졌던 건 그냥 작가의 문체가 나와 상극이었던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영화가 괜찮았던 것에 용기를 내 다시 읽어본 이 소설은 영화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 읽히거나 하진 않았다. 영화로 먼저 접한 원작 소설을 굳이 다시 찾아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원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이 오히려 영화보다 불친절하다면 불친절한 편이라 내심 놀라웠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가 번걸아가며 진행돼 궁금증을 높였던 반면 원작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돼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철저하게 주인공 '나'의 시선에서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슈미츠 부인 - 왜 '부인'인지... 옛날 번역의 한계인 건가? - 의 비밀이나 주인공의 심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이나 감정의 골이 풀어지는 것도 모조리 주인공의 내면에서 이뤄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영화가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복선이라든가 여백의 미 등 영화가 서사적으로 조금 더 고급스런 연출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외국 소설을 읽을 때 번역을 탓하려고 않는 편인데 최근 들어 그런 다짐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비롯해 이 책 <책 읽어주는 남자>는 내가 직접 사거나 빌려 읽은 것이 아닌 집에 이미 있는 책, 어머니가 옛날에 구매하셨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 읽은 것인데 아무튼 그렇다 보니 번역의 느낌이 딱 옛날 느낌이었다. 번역가로선 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옛날 책은 어쩔 수 없이 옛날 책이라고, 그 특유의 현실감 떨어지는 문장들이 요즘 번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작가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번역이란 현시대의 감각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이상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아 말을 아낄 것이지만, 확실히 '느낌적인 느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약간 철이 지난 번역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밟혔다.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쓸 때 많이 했으므로 특별히 더 덧붙이거나 하진 않겠다. 이 말은 즉, 소설과 영화가 연출의 차이는 있어도 내용상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더 돋보였다.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가 없다는 말을 반박할 때 좋은 예시가 될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아주 명작이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565014971

 이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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