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사냥꾼 - SF 미스터리, 4단계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1
알프레드 슬롯 지음, 엘리자베스 슬롯 그림, 이지연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8.9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복제인간'을 다룬 SF 작품으로 아직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레몬>과 마이클 베이의 영화 <아일랜드>를 최고로 친다. 특히 <아일랜드>는 복제인간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인데 혹시 복제인간 다룬 작품 중에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에 추가하겠다. 아무튼, 내가 <아일랜드>를 고평가하는 이유는 작중에서 복제인간들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합리적이고 치밀하며 무척 거국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장기 대체품으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미래가 도래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롤모델로 삼을 만한 것이 바로 <아일랜드>의 세계관이 아닐까? 그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입을 더 못 놀리겠어서 간단히 말하자면 그 작품에 비해 이번에 읽은 <복제인간 사냥꾼>에 나온 설정은 어딘가 허술하게 보였다.

 이 작품의 출간 연도는 1982년이며 작중 배경은 무려 2019년, 당시 기준으로 거의 40년 정도 뒤의 미래다. 이 소설을 2020년 연초에 읽으니까 기분이 묘했다. 옛날 사람들은 기술이 빨리 발전될 거라 생각했구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과학 기술은 SF 소설 뺨치게 발전을 거듭했으나 우리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에 의해 발표와 동시에 엄청난 논란을 낳을 것이 자명해 발표를 꺼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음모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 초 줄기세포 복제로 세간이 떠들썩했던 걸 떠올리면 아주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적어도 유전학에 한해선 꽤나 그럴 듯해 보이는데.


 그저 인간의 장기 대용품으로 만들어졌을 뿐인 복제인간을 수용소에 넣고 관리한다는 본작의 설정은 무척 잔인했다. 복제인간을 철저하게 도구 취급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발상이다. 누구누구 2호, 3호라는 식으로 부르면서 원래 주인이 위독해졌을 때 잡아다가 장기만 축출하는 시스템이 전세계에 걸쳐 상업화됐다는 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참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주인공은 장기 축출을 거부하고 도망친 복제인간을 잡아주는 복제인간 사냥꾼인데 프로패셔널하게 복제인간을 잡는 것 외엔 관심이 없으며 - 이 남자의 관심사는 의뢰비와 의뢰를 어떻게 하면 빨리 성공하느냐다. - 복제인간을 철저하게 인간이 아닌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프로패셔널한 사냥꾼이 그다지 프로패셔널하지 못한 의뢰인을 만난다는 게 이 소설의 발단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자신의 복제인간과 가까이 지냈고 개별적인 이름도 지어주는 등 복제인간을 인간처럼 대했던 의뢰인의 가족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제인간을 잡아다주길 바라기는커녕 저마다의 입장과 소신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작업이 힘들 텐데도 주인공은 사람들이 걱정한 대로 활약을 펼친다.


 대상 독자를 청소년보다 더 아래로 설정한 것치고 초반부에 묘사되는 인물 설정이라든가 후반부의 반전 등이 복잡하고 심오해서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순수하고 어리지 않으므로 오히려 이 소설의 문법이 적절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결말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참 기분 좋은 해피엔딩이란 건 부정할 수 없고 개연성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게 그렇게 치밀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복제인간에 관한 이슈는 논리보단 감성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거의 일관된 자세를 보인 주인공의 심경의 변화는 약간 급작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변심하는 건 좀... 조금만 더 초반의 염세주의적인 작풍이 남아있더라도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작품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쉽게 예견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만큼 작중에서 복제인간을 다루는 방식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말 역시 허술한 감이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영화 <아일랜드>가 예전에 나온 동일한 소재의 작품들에서 보완점을 잘 찾았구나 싶었다. 그럼 반대로 생각했을 때, 만약 복제인간이란 소재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접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보면 <복제인간 사냥꾼>이 선구적인 작품이라 오히려 불리했던 작품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 책이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선구적인 작품이란 말에 과연 몇이나 동의할까 싶지만 그래도 출간 연도나 대상 독자를 어린이로 잡은 걸 고려하면 충분히 선구적이라 부를 만하다. 이런 책을 어렸을 때 읽었어야 했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