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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의 시대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3
박건웅 지음 / 사계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8.1
사실 풍자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명확한 걸 넘어 노골적이기까지 한 주제의식은 항상 내 기대 이상의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풍자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표현함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은 못 넘어가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는 지금 검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얀 마텔이 자신의 소설 <20세기의 셔츠>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역사적 사실은 꼭 역사적 법칙만이 아닌 예술의 법칙에 따라서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작가의 그림체나 컷 분할이 산만하게 느껴져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졌다. 그런대로 개성적이고 귀여운 면도 있으나 어쨌든 그 작은 그림 하나하나에 텍스트를 우겨 넣으니 읽으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내용에 대해선 크게 할 말이 없다. 미안한 얘기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 생각해봤거나 누군가와 얘기해본 내용들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만화들은 짧고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풀어내 구성은 괜찮았고 풍자 만화라고 해서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었지만 대체로 예상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만화를 그린 당시가 이명박 정권 때라 그런 건지, 이미 많이 접해본 이슈들이라 더욱 식상하게 다가왔는지 몰라도 아무튼 눈에 확 들어오는 신선함이 이 책에선 없었다. 특히 '페스트'와 '역병'의 내용은 오히려 식상할 지경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쥐에 대한 의인화, 그리고 섬뜩한 그림체는 확실히 인상적이긴 했어도 말이다.
바로 어제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 특히 정치를 주요 소제로 다룬 작품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노골적인 작품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그 영화는 좋은 작품이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 이 만화도 식상해서 그렇지 나쁜 작품은 아니다. 솔직히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는 인정해줘야 한다. 아까 언젠가 어디선가 생각해봤거나 얘기해본 내용이랬지만 그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능력이고 용기니까. 그렇기에, 기왕 용기를 낸 김에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난 이야기를 접하면서 여러 생각 들게 만드는 복잡미묘함을 선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로 내달리는 정치 이야기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남산의 부장들>도 그렇고 <삽질의 시대>도 결과적으론 좋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나와도 나와도 세부적인 소제만 달라질 뿐 어째 하는 얘기는 다 비슷할 거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이 부분은 창작자는 물론이고 그 창작물을 감상하는 우리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겠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는 것처럼, 냉정한 독자가 늘어날수록 창작자는 보다 노력하게 될 것이므로. 참 고무적인 얘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