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9.6








 오늘 핀에어에서 환불 신청했던 비행기 요금이 드디어 통장으로 들어왔다. 항공사가 많이 적자에 시달린다기에 더 걸릴 거라 여겼지만 암튼 3월에 계획했던 여행 취소는 이렇게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코로나가 유행하지 않아서 계획대로 갔더라면 그게 가장 좋았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앞으로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또 해외 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차이로 10만 원을 아끼고 말고에 울고 웃었던 나날은 사실상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여행에 대한 갈증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 중에 읽은 이 책은 잠시나마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줬다.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을 꿈꿨던 사람이나 해외 자전거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여행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전거도 못 타고 그림도 못 그려서 그런지 이 작가가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그림체로 자신의 지난 자전거 여행을 그려낸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옛날부터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작가 정도면 가히 축복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그림으로 여행을 추억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와 함께한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과 제주도 여행, 오키나와 여행까지 담아낸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여행 코스가 지극히 작가 취향을 따르지만 작풍이 워낙 유쾌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옛날에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었을 때도 느낀 건데 만화가인 작가답게 미술관이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단조롭거나 난해할 수 있을 여행 코스를 작가의 꼼꼼한 그림체 덕에 독자인 나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중엔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도 있었는데 작가의 기억력이 상당한지 아무런 어색함 없이 화폭에 재현됐다.

 자신의 경험을 흥미롭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없었던 일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어찌 됐든 남의 이목을 끌며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은 예술가에게 있어 단연 필수불가결한 재능일 터다. 이번에 읽은 <드로잉 자전거 여행>에는 원체 내 취향과도 맞는 요소가 많아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긴 좀 힘들지만, 이 정도면 네덜란드나 자전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끔 만들 만한 책이리라 본다. 자전거의 매력이라든가 여행의 재미를 꽤 실감나고 소모적이지 않게 잘 전달했기 때문인데, 나도 약소하게나마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 다시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여행 만화를 즐기는 한편으로 반성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너무 의무적으로, 억지로 짜내듯 쓴 건 아니었나 싶어서...


 상관없는 얘길 수 있지만 여행에 관한 얘길 잠깐 하고자 한다. 요새 안 그런 나라가 없지만, 코로나로 인해 유럽에 미친 파장은 정말 난리도 아니다. 낙관적인 애기일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코로나는 결국 극복이 될 듯한데, 반대로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비관하게 된다. 나라끼리 고립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은데, 오늘만 해도 베를린 지하철에서 우리나라 유학생 부부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뉴스도 나오는 등 도저히 어떻게 봐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여행 만화를 읽는 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최근 나는 유럽에 동경을 품었던 시절이 기억도 안 날 만큼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만화책으로라도 유럽 여행기를 통해 힐링을 하면서도 뉴스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개해버린다. 최근엔 이 책에서 나오는 네덜란드가 스웨덴에 이어 집단면역을 선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 스웨덴은 넓기라도 하지 네덜란드는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체 뭔;; - 진정으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됐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인 나라는 실질적으로 한 곳도 없지 않나 싶었다. 지금 유럽이 방역에 관해 굉장히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쌓은 인문학적 토대 전부를 하루아침에 무가치하다고 깎아내리는 건 너무 극단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고 - 이 만화로 말할 것 같으면 자전거에 관한 네덜란드의 인프라나 폐허가 된 도시를 어떻게 재건시키는가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으니 무조건적인 동경과 비판을 어느 나라에건, 또 어느 누구에게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2달 전이었더라면 여행 만화를 보고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확실히 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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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9.6







 3부작의 1편은 가히 역작이었던 반면에 바로 다음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의 완성도는 좀 미묘했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인 <에이전트 6>가 그렇게 기대되진 않았는데, 다행히도 3편은 시리즈를 완결하는 이야기로서 손색이 없었다. 레오와 라이사가 서로 이름도 몰랐던 시절을 그린 프롤로그부터 작가의 장기인 밀도 높은 소련 묘사가 돋보여 향후 작품의 완성도가 걱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직전에 읽은 <모스크바의 신사>와는 상반된, 그야말로 소련 시절의 냉혹함을 다룸과 동시에 냉전 시대가 낳은 비극의 양상에까지 묘사를 확장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까지 읽고나니 소련도 소련이지만 그와 대치하던 미국이라고 하등 나을 게 없었단 생각이 들지 않던가. 작가의 비판의식이 소련이란 무대를 넘어선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이념 싸움에 희생된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은 1편 이상으로 심금을 울렸으므로.

 중반부까지는 느릿하지만 긴장감 있게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믿을 수 없는 장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연출하는 방식이 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논란이 된 어떤 장면과 흡사했는데, 무척 중요한 장면을 무심히 지나가듯 묘사해 이게 진짜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애통하게도 그 전개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고 레오는 이후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가족을 파멸로 이끈 사건의 현장인 미국으로 가야 했는데 당시 미국은 소련의 주적이라 당연히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레오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생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실로 눈물겨웠다. 내가 이 작품을 올해 초에 읽었더라도 공감이 덜 됐을 텐데, 이념이나 여러 정치적 문제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출입국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 결은 다르지만 그래도 남일 같지 않았다. 문제는 레오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 한 번 벗었던 비밀 경찰의 옷을 다시 입어 국가에 충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프간에서 그들의 혁명과 전쟁을 지원하는 일을 반강제적으로 맡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여차저차해서 미국으로 가지만 이 과정은 무척 고단했다. 레오는 말할 것도 없고 읽는 나한테도 고단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돌아가서 적응도 안 됐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집중엔 환기가 되지만 그럼에도 한시라도 빨리 미국으로 가도 부족할 판에 이게 뭐하는 삽질인가 싶어 몰입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프간에서의 전개가 생각보다 길어 솔직히 말해 대충 읽고 넘어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무대가 실제 역사적 흐름에 작가가 픽션을 섞은 결과물임을 깨닫고 나중에라도 전율을 느끼게 됐다. 이런 요소가 있으니 소설의 내용이 마냥 허구로 느껴지지 않고 리얼하게 다가왔던 것이리라. 그렇다 해도 설마 아프간 전쟁을 이런 식으로 풀어내다니, 참 대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돈만 있다면 외국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또 그때나 지금이나 국경을 넘지 못해 피범벅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으로 무겁게 읽혔다. 그리고 레오가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사건의 진실도 정말 구역질이 치밀어 내 입에서 신물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그간 비판의 대상이었던 소련뿐 아니라 주적인 미국도 소련 못지않은 음모로 가득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정말 그놈의 사상 싸움이 뭐라고 목적을 위해 사람 목숨 벌레로 여기는 국가 소속 요원들의 가치관은 제아무리 허구라도 기가 찼다.


 <에이전트 6>의 근간에는 사랑이 있는데 이때 사랑은 이성에게 품는 사랑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품는 사랑과 더불어 인류애적 사랑도 모두 해당된다. 이런 사랑들은 통제될 수도 없고 꾸며낼 수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감정인데 이는 1편인 <차일드 44>에서부터 제기된 레오의 자기속죄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한때 그 누구보다 국가에 충성을 다했던 레오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잃는 데에 적잖이 일조했는데 당장 이번 작품의 프롤로그에서도 레오가 홧김에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던 전적이 밝혀진다. 그렇게 보면 레오가 지금에 와서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게 역겹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가 사랑이란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변해가는 모습이 일찍부터 묘사돼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2편에선 그의 죄의식이 맹목적이라 잘 와 닿진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선 1편부터 고난을 함께한 아내를 향한 사랑이나 약속이 그려져 몰입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특히 1편부터 읽었다면 후반부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악마나 다름없던 그의 행보를 익히 알고도 그가 겪은 비극에 이토록 눈물이 나오다니, 세 번의 이야기에 걸쳐 고난이 끊이지 않은 레오가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 지켜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누군가 레오에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믿느냐고 묻는데 넓게 보면 이 '차일드 44' 3부작이 바로 그 질문을 소련과 주인공 레오에게 묻고자 작가가 집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편의 작품을 통해 소련이란 낯선 무대를 독보적 필력으로 묘사한 작가 덕분에 나의 관심사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진 듯하다. 소련이나 러시아나 몇 편의 소설과 영화로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앞으론 그 나라의 역사가 아주 생소하게 다가오진 않게 됐다. 현실감 없이 넓은 땅덩어리며 참혹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며 실상 모든 나라들이 어두운 역사를 통해서 티가 나지 않게라도 변해간다는 것 등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이 3부작은 내게 단순히 스릴러를 넘어 낯선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길라잡이였다. 쉽게 의지하기엔 작품들이 전부 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지 않은 편이었지만 러시아의 문화적 입지가 국내에서 꽤 옅다는 걸 생각하면 이만한 완성도의 소설이 있다는 건 꽤 환영해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완결까지 봤으니 이제 영화로 나온 <차일드 44>를 볼 차례인 것 같은데 평가가 안 좋아서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듣자하니 다들 영어로 대화한다는데 그게 제일 거부감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흥행에도 실패해 후속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2편은 몰라도 3편은 영화화하기기에 좋은 격정적인 장면이 많아서 이 작품까지 영화화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못내 아쉽다. 1편이 왜 그렇게 평이 안 좋은지 불안하지만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당신에겐 사랑하는 사람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오하는 사람들도 중요한 거죠. - 5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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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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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은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추천을 받았던 책이라 내심 궁금했는데 누군가의 호의 덕에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됐다. 그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이야길 접하는 순간에 부적절한 경우란 없고 오히려 모든 순간이 시의적절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에 본 영화 <쇼생크 탈출>과 요즘 시국이 겹쳐 보여서 대단히 남다르게 읽혔다. 러시아 버전 <쇼생크 탈출>이라 봐도 좋을 만큼 - 묘하게 <피아니스트의 전설>도 연상되지만 그 작품과는 결이 살짝 다르다. - 인간의 자유 의지에 보답하는 듯한 쾌감 어린 결말,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상황에 꽤 본받을 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히.

 이 이야기는 1922년, 로스토프 백작이 '구시대의 유물'을 용서치 않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무기한 연금형에 처해지면서 시작된다. 상당한 두께의 작품으로 개인적인 얘길 하자면 만약 이 백작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가독성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20세기 이전의 러시아 문화라든가, 신사에게 요구되는 전반적인 교양 등에 내성이 없다 보니 700쪽이 넘는 그 긴 분량 내내 흥미를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최근에 접한 <더블 스타>와 <양들의 침묵>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아도 주인공이 매력적이라면 소화 못할 작품은 없다는 걸 <모스크바의 신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범죄자의 유형은 천차만별이지만 정치범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방에 갇혀도 다른 범죄자보다 제정신을 잘 유지한다고들 한다. 육신의 자유가 제한돼도 정신적 수련이 뒷받침되면 나름대로의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인 걸까? 그러고 보면 위에서 언급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앤디가 독방에 2주나 갇히고도 머릿속에 음악 선율이 있어 그 안에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반쯤은 허세겠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도 군대에서도 취미 생활이 많은 유형의 사람일수록 '시간이 안 간다'는 소릴 입에 담는 법이 없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역할 때까지 지루함의 나날을 보냈다.

 군생활은 21개월로 끝나고 - 요샌 더 짧아졌다지만 -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19년을 쇼생크에서 갇혀 있었다. 뭐, 그 감옥엔 3~40년을 갇힌 죄수들도 있는데 <모스크바의 신사>의 로스토프도 그들에 비견할 만했다. 연금형에 처한 백작은 이제 이전과 같은 법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됐으나 내면의 풍부한 지성과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적 명성까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메트로폴 호텔은 실제로 모스크바에 있는 호텔로 그 유명한 크렘린 궁전과 볼쇼이 극장이 지근거리에 있는 그야말로 러시아 심장부에 자릴 잡은 호텔이다. 처음에 백작은 연금형에 따라 기존에 머물던 스위트룸에서도 쫓겨나지만 그의 품격에 반한 호텔 직원이나 그의 명성을 알아본 투숙객과의 인연 덕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급 호텔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인사로서 활약하게 된다.


 작중 시대상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소련인데 이 시기는 '차일드 44' 3부작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의 칼바람이 불던 - 혁명의 성공을 증명한답시고 자국민이고 뭐고 다 감시하고 여차하면 죄다 쓸어버렸던 - 바로 그 시기에 해당한다. 전개에 따라 이 호텔에도 시대의 그늘이 드리우는데, 그래도 소련이 귀빈을 대접하기 위한 이미지 관리용 호텔이라 그런지 '구시대의 유물'인 로스토프가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기엔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중간에 충격적인 일들도 있었고 실의에 빠진 백작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으나 몇몇 사람들과 상황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답도 없어 보이는 호텔에서의 나날을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이후엔 새로운 손님과의 중요한 인연, 그리고 중립 지대처럼 소련 사회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절묘하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덕에 가끔은 백작의 처지가 벌인지 횡재인지 헷갈릴 정도로 로스토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곧잘 지켜나가곤 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탈출을 결심하게끔 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백작의 내면 세계의 풍부함 덕인지 실제로 이야기의 배경이 백작의 처지처럼 호텔을 벗어나지 않음에도 독자로서 특별히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읽히지가 않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육신의 자유를 넘나들기도 한다더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부당하게 갇혀 지낸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고작 사회적 거리두기도 버거워 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즘에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는 척만 하지 실질적으로 외출 횟수는 줄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마스크를 비롯해 위생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만, 로스토프의 처지를 떠올리면 외출 없이도 충분히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함에도 그를 노력하기라도 했는지 싶어 저도 모르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로스토프의 처지와 지금 시국을 무작정 동일시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으나 '모스크바의 신사'로서 내적 깊이의 중요함을 역설한 로스토프의 모습에서 배울 점은 많다고 본다. 딱히 요즘 시국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전까진 신사라든가 양반이 갖추는 교양의 요소들을 은근히 폄훼하곤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선 때론 당장에 삶의 기본적인 욕구와 직결되지 않아 보여도 문학, 미식, 음악 등을 아우르는 예술적 소양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걸 곱씹게 됐다. 분량이 방대한 덕인 걸까. 어떤 작품의 주제의식은 가끔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긴 분량에 걸쳐 주제의식을 전개하다 보니 주입이 아닌 내 안에 착실히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방대한 분량의 순기능을 하나 깨닫게 됐다.

 분량에 대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야기를 펼쳐나감에 있어 적절하기만 하다면 그 분량에 짧고 길다는 잣대는 무의미한 듯하다. 1,000쪽이 넘어도 이야길 하다 만 것 같으면 짧은 것이고 20쪽에 못 미쳐도 지루하면 그 이야기는 분량이 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스크바의 신사>의 분량은 적절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오히려 그 방대하면서 장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나중에 다시 정독하리라고 기약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작품을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새롭고 의미있고 시의적절하게 읽히리란 생각에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


 이 작품을 다 읽고서 바로 책장에 있던 '차일드 44' 3부작 마지막 작품 <에이전트 6>를 꺼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스크바의 신사> 마지막 장면의 시기와 그 작품의 도입부의 시기가 거의 비슷했다. 이렇게 연속으로 같은 시대 배경의 작품을 접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 로스토프와 레오가 작중에서 묘사만 안 됐다 뿐이지 한 번 정도는 마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돼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 다 저자가 러시아인이 아닌 영미권 작가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고증도 충족시키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운데, 한편으론 소련을 배경으로 둔 현대의 러시아 소설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견문이 좁아 아직 접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러시아 문학이 소련을 기준으로 씨가 말라 아직 그런 소설이 안 나온 건지...

 작중 로스토프의 교양 수준에서 엿볼 수 있듯 예전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문호가 러시아에도 많았는데 현재 러시아는 소설이고 영화고 예술 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괜한 오지랖 같긴 해도 러시아 문화에 무지한 나도 바로 떠오르는 현대 러시아 소설이나 영화가 딱히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소련이 끼친 영향이 크긴 큰가 보다. 이 영향력은 정말 무지막지한데, 나 역시 미국 작가가 쓴 이 러시아 배경의 이 소설이 괜히 힘들게 읽히진 않을지 걱정했을 정도였으니 정말 말 다했다. 결과적으론 기존 러시아 배경의 이야기가 주는 편견을 배신하는 밝고 보편적인 이야기였는데,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분들에겐 일단은 부담없이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대로 원래부터 러시아에 관심이 많았다면 러시아 고전 문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독성과 낮은 진입 장벽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지 마시길. 아, 어쩌면 선입견을 갖고 접근해야 더 반전 매력이 크게 느껴질는지 모르겠군.



 p.s 이 작품이 케네스 브래너 제작, 주연인 TV 드라마화 예정이라던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명색이 러시아가 배경인데 배우들이 전부 영어를 쓰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갑자기 배경을 영국이나 미국으로 각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자막 읽기 싫어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진짜 걱정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609p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 7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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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7.6







  오랜만에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를 읽었다. 이번엔 단편집이며 살인을 다루지 않는 일상 미스터리물이라 장편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각각의 단편들의 중심 화자가 전부 다르고 이야기의 시점이 장편들 사이에 있는 경우가 많아 시리즈의 팬이라면 잔재미가 많을 책이었다. 나 역시 이 시리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었지만, 최근에 접한 <도서관의 살인>을 무려 3년 전에 읽은 터라 애석하게도 이런 잔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전편의 내용이 잊혀지지 않았을 때 읽는 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이 제일 재밌었고 다른 수록작은 그냥저냥이었다. 사실 표제작의 동기도 약간 납득이 안 갔지만 이 시리즈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아무리 이해가 안 가더라도 그것이 답'이라는 추리소설의 진리를 추구하므로 딱히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살인>의 동기만큼 이해불가였던 건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그 작품의 내용마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니, 정말 3년이란 시간이 생각보다 길긴 긴가 보다. 그 작품을 읽을 당시엔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는데.


 시리즈의 주인공 우라조메에게 내제된 탐정으로서의 DNA를 다채롭게 엿볼 수 있었던 건 재밌었다. 여동생이 활약하는 에피소드는 왜 그런지 잘 읽히지 않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격 단편은 흥미롭게 읽었다. 이 시리즈의 순서는 <체육관의 살인>, <수족관의 살인>, 요번 단편집과 <도서관의 살인>으로 현재 1부가 끝나고 2부는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2부에선 우라조메의 배경이 이야기에 잘 녹아든다면 꽤 재밌는 그림이 그려질 듯하다. 아울러 이전 작품들이 어쨌든 우라조메의 원맨쇼에 가까웠다면 2부에선 좀 더 다양한 유형의 탐정이나 혹은 적대자가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본래는 라이트 노벨을 지향했던 작가라 그런지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니 그 재능을 십분 살릴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아오사키 유고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불굴의 논리이며, 이는 추리소설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재능이다. 난 아직도 <체육관의 살인>에서 받은 감동을 잊지 않았다. 비록 <도서관의 살인>이나 요번 단편집이 그때 느낀 감동에 비하면 덜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음 작품이 여전히 기대된다. 듣자하니 이 시리즈말고도 다른 오리지널 작품으로도 랭킹에 꼽히는 등 성과가 제법이라는데 그 작품들도 궁금하다. 이 단편집 이후로 지금 3년이 넘게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는 얘길 못 들었는데 언제가 되더라도 하루 빨리 접할 수 있길 바란다. 시리즈 최신작이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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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스타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3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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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더블 스타>는 하인라인의 출세작이자 휴고상 수상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저번에 읽은 <여름으로 가는 문> 못지않게 유쾌한 심상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리도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곱절이나 떨어졌을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배우다. 정확히는 퇴물 배우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신감은 그 이상이라서 주변의 실소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래도 정치하는 인간들이 찾아가 의뢰를 맡길 정도면 정말 연기력은 탁월한 모양이다. 소설 속 묘사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만... 아무튼 작중 전개 대부분이 지구 밖에서 이뤄지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배우로서의 장인 정신을 어필하는 부분 등은 작품에 적잖은 리얼리티를 부여하곤 했다. 그러니 다행이었지.

 개인적으로 옛날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성과 화성인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56년도에 출간됐는데 마찬가지로 그 당시 SF 감성과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 감성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성이 언급되는 순간 어떤 작품이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이 작품은 화성을 넘어서 우주적 차원의 정치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데, 화성만큼이나 정치에도 취약한 나로선 아무래도 난관이 예상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위에서 말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매력이나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언뜻 SF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배우라는 직업은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됐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주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치인으로 분해야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대역이란 처지가 마뜩찮으면서도 실력을 행사한다. 주인공은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정치적 식견으론 자기가 연기해야 하는 정치인의 성향도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면서 전에 없던 내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옛날에 영화 <광해>가 개봉했을 때 비슷한 플롯의 작품이 많다며 왜 1,000만 관객이 동원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설마 비슷한 플롯이 50년대 미국 SF 소설에도 나왔을 줄은 몰랐다. 그 영화의 플롯을 떠올리면 난해하다 싶은 이 작품의 전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소설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코드가 안 맞아서 그런지 디테일하게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그건 아쉬웠지만 비슷한 작품이나 요즘 이슈를 대입하며 읽으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광해>야 그렇다 쳐도, 선거 시즌에 이 작품의 내용을 곱씹으니까 나름 울림이 있었다.


 전에는 좌우가,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이 잘 안 갔는데 요즘 들어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반대측의 견제 없는 독주는 제한 없는 문제를 낳는다는 걸 요즘 유럽이 잘 보여주고 있잖은가. 통제 없는 진보나 개방 정책이 낳은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라든가 혹은 집단 면역 시도를 보면서 그간 유럽 국가들을 선진국으로 여긴 내 가치관에 혼란을 많이 느꼈다.

 그런 면에서 요번주 투표 결과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지 않은가 싶다. 더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균형이 있으니 혹시 모를 고름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몇 년 사이에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영 시원찮은 일이 많이 발생한 걸 보고 역시 정치는 이미지 관리가 대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 쉽게 말하면 결국 그놈이 그놈 - 나름 납득할 수 있는 결과기도 했고. 


 그렇다 보니 <더블 스타>의 주인공 로렌조가 보인 내적 변화에 동의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성향은 단순히 좌우로 이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는 대체로 아군 아니면 적군이란 식으로 서로 편 가르며 흘러온 것 같다. 의외로 내가 질색해 마지않는 놈이 괜찮은 언동을 보일 때도 있고 평소에 흠모하던 사람이 되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 것처럼 입체적이지 않은 사람이란 없는 것 같은데 이를 하인라인은 가상의 우주 정치극으로 하여금 괜찮게 은유해냈다. 로렌조가 자신의 배역인 실제 인물에 동화하다시피 한 게 단순히 배우로서 직업 정신이 발휘됐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나는 작가가 그 이상을 표현했다고 본다.

 하인라인의 성향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만큼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하던데 그 성향은 일생 동안 쓴 수많은 작품에 녹아든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경직됐다면 더 경직됐을 50년대에 저 정도로 입체적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하인라인에게 있어 SF는 참으로 탁월한 장르가 아니었을까. 집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하인라인 선집이 몇 권 더 있는데 그 책들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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