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
최태섭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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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가급적 선입견 없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평점이 낮은 페미니즘 도서는 읽기 전부터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법이다. 차라리 평점이 아에 2~3점대로 확 낮으면 또 모르겠는데 애매하게 6점대에 있어서 굉장히 편향적인 논리력으로 중무장한 책이 아닐까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책의 서문이 너무나 술술 읽히고 또 독특한 맛이 있어 뒷내용도 궁금해서 마저 읽어내려갔다.

 이 책의 주된 논지 두 가지를 살펴보자면 남자들끼리도 의견을 합치시키지 못하는 개판 5분 전의 팀워크, 남자들의 가부장적 사고는 기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에 대해 얘기할 때 상당히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고 후자에 대해선 사뭇 동정적인 어투로 논리를 풀어냈는데 어느 쪽으로든 남성 입장에서 썩 달갑게 들릴 어투는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 정말로 달갑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단지 어투 때문만이 아니라 내용이 대부분 정곡을 찌르는 것들이기 때문이리라 본다. 아마 애매한 평점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치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곡을 찔렸다고 점수로 보복하다니.

 

 저자가 전개는 논리의 밀도며 사전 조사, 인용의 출처 등은 상당히 묵직했다. 조선시대부터 살펴본 한국 남자들의 우울한 자화상, 출처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의 근원을 이렇게까지 역사적으로 훑어보리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저자 스스로 인식한 문제에 대해 제법 전문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어 그 노력이 가상했다. 일부 작위적인 해석도 없지않았던 것 같지만 이만하면 인정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정확히는 2010년대를 배경으로 둔 작가의 통찰에는 날카로운 구석이 부족했다. 메갈리아에 왜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분노했는지에 관해선 제법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저자는 해석만 했을 뿐 결정적으로 본인의 생각은 명확히 털어놓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책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의견 합치를 보이지 못하는 남자들 못지않게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다양한 젠더 이슈에 관해 의견 합치를 하지 못하고 판도라의 상자인 양 경원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명확하게 이건 좋고 나쁘다고 말해버리면 후폭풍이 상당할 테니 저자는 최대한 세련되고 안전하게 남성 독자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결말을 맺었는데, 개인적으로 끝에 가서 소극적인 태도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말만 그럴싸하지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분위기는 2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내 시점에선 비웃음거리라기 보단 지극히 당연한 모습으로 여겨졌다. 결국 페미니스트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정답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 그저 끊임없이 논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하단 것을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때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철학이 아닌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선 페미니즘이 미래로 이끄는 계단일지언정 미래 그 자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열거하고 그 이유들이 매우 그럴싸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었는데 그 행위마저 대의로 정당화하려고 들면 페미니즘이든 뭐든그 철학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한국, 남자> 역시 요즘의 내게 있어 은근히 편향된 구석이 없잖은 책이었다. 2년 전에 출간된 남성 저자의 페미니즘 도서마저 편향적으로 읽히다니 유감스럽다. 역시 공동 저자가 참여한 책만이 답인가. 정말로 가능하다면 서로 반대되는 성향의 저자끼리 대담을 하는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책이 엄청 두꺼워지겠지만 그만큼 독자로서 유익한 내용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끝에 가선 아쉬웠지만, 작가가 본인의 계획과 포부에 맞게 한국 남성의 기원을 훑어 자신의 논리, 한국 남성의 편향된 가치관은 상당 부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된 것이란 주장을 제법 자세하게 전개시킨 점 때문에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책이다. 현대에 이르러선 인터넷 문화와 접목돼 더욱 지능적이고 적나라해진 여성 혐오의 양상을 세밀하게 분석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대부분 팩트에 근거했으리란 신뢰감을 들게 한 것도 괄목할 만한 부분이다. 젠더 이슈에 관해 정보량과 공부한 시간으로 따지면 이 작가하고 견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은 짧은 분량에도 글이 밀도 있으며 가독성도 좋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읽은 페미니즘 도서들 중엔 논리는 뛰어나지만 막판엔 감성에 호소하는 등 저자의 필력이 불안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책의 경우 후반에 급발진한 감이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인 필력이 출중해 이 작가가 쓴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페미니즘 도서도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까지 들게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약간의 아쉬운 점은 차치할 만큼 흡입력 있는 필력을 선보인 만큼 저자가 쓴 다른 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특권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역)차별로 인식하곤 한다. 오로지 내 눈앞의 풍경만이 진실이다. 그 속에서 남자들은 자기 연민과 정당성을 주조해낸다. 이 남자들은 기만자들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자 하는 것을 믿고 있는 이들이다. - 16p




동등한 주체이자 인간이자 동료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성별화되고, 육화되고, 이념화되고, 비하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남자들에게 가르쳐왔다. 남자들은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존해줄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이상한 성인식을 치러왔고,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서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들이다. -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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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 그리핀, 위기일발 미스터리랜드 3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김미령 옮김, 모토 히데야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9.1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진 노리즈키 린타로가 비교적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쓴 추리소설. 이 작품이 속한 '미스터리랜드' 시리즈는 분명 일본 메이저 출판사 고단샤에서 저연령층의 독자를 위한 추리소설을 펴내고 싶다는 취지에서 창설된 시리즈일 텐데,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 특유의 논리적인 전개 때문에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음에도 기존 작풍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일단 표면적으로 괴도의 유쾌한 활극을 내세우는 작품이지만, 타란티노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 그의 영화가 액션 영화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연극 같은 연출에 당황하는 것처럼 이 작품도 정작 괴도의 활극보다 정적인 추리에 더 눈길이 가서 이럴 거면 작정하고 성인 독자를 대상의 추리소설로 쓰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표지의 귀여운 일러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 생기겠으나 이야기의 수위 자체는 제법 높은 편이다. 선정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서로를 속이는 것에 혈안이 되다시피 한 요원들의 민낯과 가상의 국가 보코논의 근대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작가의 여느 작품 못지않게 인간의 악의를 가감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일러스트는 귀여워서 심히 괴리감이 들었는데... 특히 작중에서 미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묘하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는 것에선 오싹함까지 전해졌다.


 그나마 구색을 갖추는 차원에서 전형적인 의적 캐릭터인 그리핀과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정한 흑막의 목적이 꽤나 유치한 데가 있다는 것에서 한 편의 동화 같은 느낌을 연출하긴 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유치하게 느껴졌던 동시에 그 인물의 일그러진 심리가 오싹함을 자극하기도 해 -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까... - 전반적으로 어둡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괴도 그리핀이란 캐릭터가 논리력이 우수한 것에 비해 괴도다운 신비로운 능력이 전무해 위기 상황에서 은근 허당처럼 당하고 마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도 작가 나름대로 클리셰를 비튼 결과인 것 같아 이쯤 되면 정말로 저연령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집필한 작품인 것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아니면 내가 저연령층 독자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거고 작가는 제대로 겨냥해서 썼던 걸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도 초반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서사와 밑밥 투척 때문에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중반부터는 액션도 많이 나오고 논리적인 추리 장면이 촘촘하게 전개돼서 탄력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도감 있는 전개는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썼기에 작가가 신경썼던 부분 같은데, 의외로 빠른 전개가 주인공의 추리 장면하고 밸런스가 나쁘지 않아 작가에게 있어 '미스터리랜드' 시리즈에 참여한 게 필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간 대놓고 길고 느릿하고 무거운 작품을 쓴다는 이미지를 탈피할 만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겉면과 달리 성인 취향의 요소가 물씬 들어간 작품이 탄생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도 잘 추구했다고 생각됐다. 그런 의미에서 대상 독자가 애매하다는 건 단점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뭐, 이렇게 후기를 쓰는 나부터가 성인 독자이니 그게 단점으로 느껴질 리가 없지.


 작가의 작품이 신간이 출간되지 않아서 옛날에 읽은 작품을 찾아 읽고 있는 실정인데, <요리코를 위해> 개정판도 좋지만 신간 소식도 들렸으면 좋겠다. 과작인 것치고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어 애가 타는데... 작가의 최신작도 좋지만 데뷔작을 비롯한 옛날 작품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항상 거론되는 작품들의 내용이 지금으로선 제일 궁금하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 나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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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8.7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젊은 청춘인 주인공 철수의 신세를 고장이 잦은 가전제품으로 대치시킨 소설이다. 흡사 매뉴얼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데 철수의 인생과 미래를 성실하게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변호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독특하면서 알기 쉬운 비유로 가득찬 한 편의 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은 5년 전에 군대를 갓 전역한 내게 있어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읽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읽으니 전에는 감탄하며 읽었던 부분들이 지금은 식상하고 공허하게 다가왔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좀 별로라서, 5년 전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옅어진 상태라 이 작품이 별 감흥이 없게 읽힌 것 같다.

 매뉴얼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문체와 개성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일단 처음 읽었을 땐 신선했던 특징이 두 번째 접할 때는 딱 중언부언 그 이상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적인 묘사긴 했지만 다시 읽을 때도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철수의 오작동에 대한 변호를 위해 '세탁기한테 왜 탈수가 안 되냐고 따지는 격'이라는 식의 변호가 번번이 들어가 금방 지겨워졌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과 비슷하게 이 작품의 주인공 철수도 대다수의 독자들의 공감을 살 만한 행보를 보이긴 하지만 그 공감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자기 일'로 동일시하게끔 만들어주는 서사는 부실한 편이라 그 점이 아쉬웠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작품이 시처럼 읽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아쉬움 때문인 듯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있을지언정 물이 흐르는 듯한 서사가 부족했다. 이러니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겹고 어떻고를 떠나 매뉴얼에 빙자해 철수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저의는 높이 살 만했다. 모든 사람한테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느라 사람들의 다양한 가능성이 미처 발현되지 못한다는 작가의 웅변은 무척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 개인을 연령대에 따라 이때는 이래야 하고, 요때는 요래야 하고, 저때는 저래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단 걸 떠올리면 철수를 가전제품에 비유한 건 너무나 적절했다. 너무나 보편적인 이름을 가진 철수가 그 이름에 걸맞는 보편성을 갖추긴커녕 오히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자 부모를 비롯한 누나, 선생, 그녀들, 군대 조교와 회사 면접관들이 한숨을 쉬면서 철수를 오작동 투성이의 물건 취급하는 묘사는 적절하면 적절했지 결코 과한 비유가 아니었다.

 소설은 철수가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일단락 짓고 누군가 이 사용 설명서를 토대로 자신을 올바로 사용해주길 고대하다가, 문득 그 설명서를 자신이 제일 먼저 읽어야 함을 깨닫는다는, 다소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얼렁뚱땅 결말이 맺어진다. 조금 넘겨 짚자면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따뜻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얼렁뚱땅 결말이 지어졌다는 불만이 모조리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결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비록 소설이란 게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긴 하나 후반부에 '주의하기' 파트에서 철수가 누가 어떻게 바라봐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오작동을 일으켰던 장면을 상기해보면 - 예를 들면 느닷없이 컵을 바닥에 던지는 장면 - 단순히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완성해서 그걸 자신부터 먼저 읽기로 하자는 깨닫는다고 결말이 맺어진다는 것은 너무 막연하게 희망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이 작품이 10년 전에 집필된 소설이고 그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청춘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더 비관적이게 됐는지 가늠해보면 위와 같은 희망적인 결말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와 닿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철수와 같은 나이대에 이른 내 입장에선 사뭇 비관적으로 여겨진다. 내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쓴맛을 많이 맛보며 살아온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작성한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는 것이 고작 자기 위안에 불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르진 않다.

 분명 청춘의 우울함을 가감없이 묘파한 날카로운 작품임에도, 결말이 상대적으로 무른 편이라서 도리어 공허함만 커졌다. 어쩌면 다른 무엇도 아닌 청춘과 취업을 중심 소재로 다룬 만큼 유독 희망적인 결말에 반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문체나 묘사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과 상관없이 결말에 이르러선 보편적인 허무함이 남을 수 있다고 하면 말이 너무 심한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내 시점에선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고 막막함이 드리워진 터라 이 작품이 이전처럼 마냥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는 작품의 문체가 식상하게 읽힌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씁쓸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384388731

 이 포스팅은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쓴 것이다. 두 글의 온도차가 너무 다르다...

사용 설명서가 완성되어 갈수록 철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읽고서도 엄마와 아버지, 누나가 철수를 선택했을까. 그녀들이나 친구들, 또 면접관들은 어땠을까. 이걸 읽고도 철수를 사용할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사용 설명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철수를 선택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철수는, 과연 철수는, 철수를 선택했을까. - 147p




주의 사항은 점점 늘어 갔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읽지 않았고 제품의 오작동도 더욱 잦아졌다. 사용 설명서는 좀 더 많은 주의 사항으로 몸을 불릴 테지만, 사용자는 그럴수록 읽는 게 더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으니까. 사실 그게 그거니까. 그리고 그게 그거 아닌 제품이 시중에 유통될 리도 없으니까. - 202p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란 것을.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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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9.5







 찬호께이가 내 안에서 신뢰해 마지않는 작가로 부상된지 오래지만 이 작품은 분량이 너무 많아 쉽게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설정도 그리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했고 홍콩의 현재를 그리고자 이 작품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말도 좀 부담스럽기 짝이 없어 - 여담이지만 작가의 대표작 <13.67>은 홍콩의 과거를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읽기 직전까지 꽤나 망설였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압도적인 깊이와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특히 후반부 360페이지를 한 번에 쉬지 않고 읽어보긴 정말 오랜만이라 내 스스로가 뿌듯하기까지 했다. 작가가 긴 분량을 낭비 없이 알차게 써준 덕분에 독자로서 탄력이 붙지 않고 베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을 얘기할 때 무면허 탐정이자 천재 해커인 아녜라는 캐릭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인상은 무례함의 화신이라 그야말로 최악이었지만, 그 무례함에 걸맞는 전지전능한 해킹 실력과 추리력, 심지어 사교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며 매사 속이 시원한 언행을 보여 갈수록 매료당했던 캐릭터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와 일드 <리갈하이>의 코미카도가 연상됐다. 해킹 실력과 반사회성은 리스베트를, 언변과 위악적인 모습은 코미카도를 특히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리스베트가 사교성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비해 아녜는 필요에 따라 사교력을 발휘할 줄 안다는 것과, 코미카도가 변호사 업무를 제외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물인 반면 아녜는 다재다능하다는 것이다. 아녜는 두 캐릭터의 장점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특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남발하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규칙을 정한 모습, 그리고 정말로 위악적인 캐릭터인지 그냥 악한인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 사람을 죽이는 것은 흉기가 아닌 악의라는 작가의 주장에 제대로 적합한 인물이라 아녜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망내인>은 미친 가독성과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무분별하게 지면을 차지하는 구절이 없었으며 치밀한 복선과 구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스토리 텔링에 있어선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모두 아녜라는 캐릭터에 가려져 간과하게 된 단점들이었는데, 일단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의 정체가 비교적 뻔한 편이었던 것과 - 작가의 작품을 다섯 번째 접하다 보니 이젠 작가가 이런 트릭을 애용한다는 게 예상이 됐다. - 작중에선 이미 죽은 존재인 아이의 동생 샤오원의 학창 시절이나 내면 묘사가 부족한 감이 있던 것, 그밖에도 후반부에 사건 전개가 신파적이었다는 점, 엄연히 치뤄야 할 죄가 있는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던 것 등 은근히 걸리는 요소가 많았다.

 동생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아이의 모습과 인터넷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지만 정말로 나쁜 건 그 인터넷을 흉기로 다루는 인간이란 점을 짚어낸 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 후반부에 너무 급하게 써내려간 느낌이 적잖아 나중에는 작가에게 집필 시간과 지면을 더 할애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작품한테 이런 아쉬움이 들긴 쉽지 않다. 이런 아쉬움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이후로 거의 처음 느낀 건데, 그나마 찬호께이의 문체가 가독성이 좋아 빨리 읽혔고 또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라 허무함이 덜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위에서 내가 지적한 요소들에 대해 누군가가 그래봤자 트집이 아니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이만한 분량의 이야기를 오류 없이 끝마친 작가는 정말 존경해 마땅하니까. 기존 기획에 비해 이야기가 끝도 없이 길어진 것치고 작가가 끈기 있게 매달려 결말을 낸 건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다만 주인공의 매력 못지않게 작가가 사건 전개와 여러 캐릭터의 사연에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던 만큼 조금만 더 균형감이 있는 이야기를 선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 이런 욕심에 가까운 아쉬움을 자꾸 토로하는 걸 보니 내가 이 작품에 어지간히 몰입했던 모양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13.67>이 분량은 엇비슷하지만 연작소설집이 아닌 장편소설이란 점에서 무게감이 남달랐다. 그냥 장편소설도 아니라 그것도 정말 제대로 된 사회파 장편 추리소설이라서 숱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난 직후에 느껴지는 경이로움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작가가 쓴 <풍선인간>의 수록작들처럼 짧고 굵은 단편도 소름 돋는 법이지만 역시 길면 길수록 방향이 흔들리기 쉬운 장편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700페이지 넘게 호흡을 이어온 장편 쪽에 개인적으로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작가 본인은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인용했다는 해킹의 원리도 딱 필요한 부분만 전문적으로 잘 기술해 읽는 맛을 더했고 생각보다 결말도 깔끔해 도리어 전에 없이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결말이 깔끔한 한편으로 얼마든지 후속작이 나올 만한 여지도 남겨졌는데, 작가도 후속작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줬음 좋겠다. 그런데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는 적대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탐정의 의뢰 성공 여부보다 의뢰인이 탐정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취해 언제 몰락할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운 요소였지만 후속작에선 탐정이 본격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어야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질 듯하다. 뭐,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김칫국 마시고 있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긴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망내인> 역시 지극히 홍콩스런 특징이 물씬 드러난 작품이었다. 이 흔치 않은 특성이 너무 매력적이라 작가의 후속작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부디 홍콩스런 특징만은 건재하길 바랄 뿐인데, 요새 홍콩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예전 같지 않아 작가의 집필 활동이 못내 걱정이 된다. 본래 유명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독서 인구가 적은 홍콩에서 찬호께이처럼 재능 있는 추리소설가가 나오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13.67>로 처음 접하고 이렇게 <망내인>까지 접하니 이 작가가 정말 국보급이란 생각까지 든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 중 아직 두 권이나 못 읽었다는 게 그저 위로가 될 따름이다.

인간은 자기가 이기적인 동물이란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우리는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겉으로 아주 약간의 악의도 용납하지 못하지만, 여유를 잃으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죠. 그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인간은 핑계를 잘 대거든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용기도 없으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 편안해지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위선이죠. - 6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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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르시에 2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4







 우리가 아는 고흐의 삶은 모두 거짓이며 고흐의 삶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을 선보이는 만화다. 예전에 읽었을 땐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는데 지금 읽으니까 작가 나름대로 고흐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이런 스토리를 짜지 않았나 싶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고흐의 팬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 건 똑같지만... 고흐의 삶을 통째로 각색한 점을 말고도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꽤 있어 가볍게 읽기엔 괜찮았다. 애당초 이 만화의 황당한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나만 손해지.

 일단 당시 미술에 대한 아주 고리타분한 사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주목한 건 좋았다. 고흐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화풍 때문에 당대에는 외면을 받은 예술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고흐가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권위주의에 찌든 미술계의 폐단을 그린 건 대단히 흥미로웠다. 막판에 이 악의 무리나 다름없던 미술계가 일처리를 허술하게 하는 게 납득이 좀 안 갔지만 이 즈음에는 고흐 형제의 우애에 더 초점이 가서 아주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기껏 초장에서부터 미술계의 패단을 강조한 것에 비해 결말은 영 따로 노는 느낌이 없잖았다. 오히려 그런 묘사대로라면 원래 고흐의 삶을 그대로 그리는 게 더 맞는 듯한데...... 너무나 초라하게 죽은 형 고흐가 '불꽃의 화가'로 기억되게끔 그의 삶을 통째로 각색하고자 하는 동생 고흐의 모습은 너무 급작스러웠다. 이 작품에는 미술계의 선민의식을 깨부수는 화상과 화가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선택받은 재능의 소유자인 형 고흐가 재능을 받지 못한 동생 고흐의 설계대로 진정한 천재 화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냈는데 이 중에 첫 번째 요소가 너무 흐지부지된 것 같아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천재 화상 동생 고흐의 활약으로 그림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즐기는 것이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무척 짜릿했던 것에 비해 형 고흐와 엮여서 천재성이니 어쩌니 언급하는 부분은 식상하고 황당한 장면도 연속으로 나와 전체적으로 균형이 좀 안 맞는 느낌도 받았다. 이 만화가 분량이 몇 권 더 있었다면 이야기도 더 방대해지고 따로 노는 감이 있던 두 이야기도 잘 맞물려 황당함이 덜했을 텐데 단편으로 너무 급하게 매듭이 지어져 그 부분이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 천재성 운운하는 부분은 아까 말했듯 식상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성공적으로 형의 재능을 개화시킨 동생 고흐의 캐릭터성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생 고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략을 가진 선구자적인 캐릭터이자 고흐라는 유명인의 숨은 조력자라는 두 개의 개성을 녹여낸 게 재밌었다. 너무 판타지스런 능력의 소유자긴 했지만, 일종의 스릴러의 분위기도 띄는 작품의 특성상 이만한 능력치의 주인공이 나와줘야 전개가 가능하니 그의 활약이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작가로서 애정이 퍽 갔을 만한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작품의 분량이 한 권이라도 더 있었다면 더욱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뤄질 리 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였기에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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