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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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전편이 대단히 완결성이 있으면서 후속작에 대한 여지를 주면서 끝났기 때문에 이번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클라라 죽이기>의 장점이라면 전편의 세계관이 보다 확장된 것이고 단점이라면 몇몇 작품을 예습하지 않으면 해당 설정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앨리스 죽이기>가 원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지 않아도 즐길 수 있던 반면 <클라라 죽이기>는 전편은 물론이고 모티브가 된 E.T.A 호프만의 원작을 접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완전히 별세계 이야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내용 자체도 초월적이기 그지없어서 여러모로 진입 장벽이 높은 등 작가가 커다란 핸디캡을 안길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내 경우엔 전편은 읽었으나 원작인 호프만의 <호두까지 인형>이나 <모래 사나이>를 읽지 않아서 작중 세계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았다. 때문에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서 재해석을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는데 <앨리스 죽이기>를 읽을 때 이상한 나라를 어떻게 재현했는가 보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호프만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작가가 이런 고구마 줄기 독서를 유도했다면 꽤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습이 안 되면 이해가 힘들다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작품이긴 하나 원작을 읽은 뒤에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자체적인 완성도가 제법이라서 어떻게 보면 핸디캡을 뛰어넘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이상한 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 일명 호프만 세계에서 눈을 뜬 빌은 전과 다름없이 멍청하게 사방팔방 돌아다니다 그 세계의 주민과 만나면서 시리즈 세계관엔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이 제시된다. 빌과 우연히 만난 주민은 현실의 자신과 지구의 아바타라 사이의 연관 관계에 주목한 인물들이기에 그들은 지구에서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와 재회를 기약한다. 그렇게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와 만나게 된 글라라와 드로셀마이어는 그에게 사건 조사를 의뢰한다. 자신들 말고 다른 세계와 아바타라의 관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 특성을 이용해 글라라를 살해하려는 것 같단 얘기였다.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완전 범죄를 도모하는 미지의 범인을 밝혀달라는, 사뭇 정석적으로 보인 이 의뢰는 꽤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길 전개시킨다. 한계가 있을 것 같은 설정 안에서 잘도 그만한 변주와 미스터리, 심지어 반전까지 도모하니 원;;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 빌 혼자인 터라 전편에 비하면 이상함이 많이 줄어든 작품이었다. 내게 꽤나 생소한 호프만 세계의 주민들도 보통내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말은 통하고 일정 수준의 논리가 있으니 전편에서 부족했던 추리소설적인 측면이나 쾌감이 많이 부각됐다. 그리고 지구와는 다른 호프만 우주만의 껄끄러운 가치관도 적잖은 존재감을 안겨줬다. 느닷없이 사람을 조립하고 분리하고, 실험하고... <앨리스 죽이기>가 무심한 잔혹함이, <클라라 죽이기>는 무심한 서늘함이 인상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은 이상했지만 그 이상함이 현실의 사이코패스완 결이 달랐는데 호프만 세계의 주민들은 현실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에 결함이 있는 인물들이 많아 그들의 천연덕스런 잔혹함이 무척 서늘하게 비춰졌다. 그래서 외적인 수위는 낮은 반면 내적인 수위는 오히려 전편보다 더했다.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지만 도마뱀 빌만 등장하고 소재만 공유하며 완전 별개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 굉장히 모험적인 시도였는데 이번에도 개성적인 설정과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상한 나라와의 작별이 크게 아쉽지 않았다. 또한 작풍에도 일관성이 있어 같은 시리즈란 게 한눈에 보이는 것도 읽는 입장에서 재밌었다. 시리즈 3편도 필시 빌만 그대로고 세계는 또다시 바뀔 테니 그게 불안할 법도 한데 딱히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또 다음 편을 읽고 싶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다음 작품인 <도로시 죽이기>는 일본과 동시 출간된 걸로 알고 있는데 2편까지 읽는 지금에 와서 보니까 참 고맙고도 당연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재밌으면 동시 출간인가 싶었는데 이젠 납득이 된다. 단순히 시리즈를 넘어 이른바 '코바야시 월드'가 본격적으로 궁금해지는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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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3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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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완결로 가기 전의 마지막 단편집이다. 단편집을 접한 게 얼마 전인데 또 단편집이라 김샜지만 이제 이 다음부턴 진짜로 결말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다는 뜻이기도 해 조금은 탄력적으로 읽혔다.

 로렌스와 호로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이전과 별다를 바 없었으나 마지막 중편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양치기 소녀 노라가 등장하는데 특이하게도 화자가 노라가 아닌 그녀와 동행하는 양치기 견 에네크다. 동물 화자는 활용에 따라서는 상당히 유치해질 수 있어서 - 일단 동물이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게 말이 안 되니까. 따라서 그 화자의 행동엔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될 수밖에 없으니까. - 걱정은 좀 됐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에서는 본모습이 동물인 등장인물이 제법 등장했던 터라 기대되기도 했다. 그냥 동물과 본모습이 동물인 신은 엄연히 다른 존재지만 동물이 인간과 독립된 존재임을 은근히 내비친 세계관인 지라 아예 동물 화자가 나온다는 게 궁금했던 것 같다. 뭐, 다 읽고나니 그렇게 기대하고 궁금해할 만한 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노라가 등장하는 시리즈 2권이 역대급으로 재밌는 에피소드였는데 아무래도 주인공 일행과 전혀 다른 매력이 대비 효과를 가져와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에피소드가 재밌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노라의 캐릭터성이 로렌스와 호로 사이에 껴서 색다른 긴장감을, 미묘한 삼간관계를 형성했던 것도 크게 한몫했다. 아쉽게도 그녀가 양치기인 터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래저래 한 번만 보기 아까웠던 역할이자 캐릭터를 콜이라는 비슷한 캐릭터로 대체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렇기에 노라의 완성도가 너무 커 상대적으로 콜의 입지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노라의 세상물정에 약한 점이나 에네크의 충직한 모습과 더불어 인간 세상에 대해 개이기에 단순하지만 통찰력이 있던 묘사가 책에 수록된 중편에 잘 드러났는데 개인적으로 이야기는 약한 편이었지만 이 둘의 여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다음 14권을 보니까 이전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일부 다시 얼굴을 비추던데 그 책을 읽을 때도 이만한 반가움이 느껴지면 좋겠다. 아마 노라의 이야기는 이번이 마지막일 텐데 전체적으로 이 세계관의 이야기가 끝을 향하는 것 같아 약간 시원섭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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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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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3






 스포일러 : 16% (마지막 문단)


 전편을 읽은 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캐릭터와 설정만 겹치는 정도니 감상에 지장은 없었다. '사신 치바' 시리즈는 치바라는 사신의 시선으로 인간의 생과 사, 그리고 운명을 관찰하기에 읽는 입장에서도 열광스럽지 않고 초연하게 되지만 자꾸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희한한 작풍을 선보인다. 이런 작풍에서 언뜻 히어로 영화 <데드풀>이 떠올랐는데 사건의 주역이 어울리지 않게 시종 엉뚱함을 유지하거나 자신이 제3자임을 강조하려는 언동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데드풀은 주인공임에도 제4의 벽을 넘는 기행을 일삼는 게 웃겼던 것이고 치바는 엄연히 제3자이고 본인도 그걸 잘 아는데 자꾸 주인공네한테 얼쩡거리는 게 웃긴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사카 코타로의 장기들이 빠짐없이 녹아든 작품은 오랜만에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지루한 전개 빼고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많이 보여 읽으면서 점점 반가워졌던 작품이다. 암울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나사 빠진 행동을 보이고 농담이나 따먹는 인물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금 상황을 상기시키는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 - 작가의 데뷔작 <오듀본의 기도>에 나온 시로야마가 연상됐다. - 의 존재감, 지치지도 않고 집착하듯 강조되는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명언... 뭐, 퍼즐식 구성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상 이사카 코타로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또 한 편 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책 뒷표지에 적힌 것처럼 <골든슬럼버>에 비할 만한 치밀한 플롯인지는 모르겠다. 나름 치밀했지만 지루함이 분명 있었기에. 치바가 작가가 만든 최강의 캐릭터란 것엔 이견이 없지만.


 각종 창작물에 나온 사신 중 치바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라고 하면 만화 <데스노트>의 류크가 떠오르는데 다른 사신에 비해 인간사에 관심이 있고 일도 부지런히 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냉정해서 인간에게 깊이 공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무척 닮았다. 얼핏 애매모호해 보이는 이러한 존재감은 평소엔 유머러스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넘볼 수 없는 서늘함을 풍기는데 처음엔 이런 방관하는 태도가 뭐지 싶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진행이나 감동, 카타르시스를 묘사함에 있어서 대단히 뛰어난 설정이란 생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알 듯하면서도 결국 예측을 벗어나는 언동은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꼬이게 하거나 아니면 허무하게 해결해버리는데 작중에서 치바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해당 인간을 죽기 전 7일 동안 관찰하는 것뿐이기에 - 어차피 '가'로 보고해 해당 인간이 죽게 할 거지만 - 그가 범하는 돌발 행동이 등장인물이나 독자에게 그야말로 상당한 희로애락을 안겨준다.

 치바가 담당하는 인간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 죽을 것이고 그 인간은 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라서 결말이 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쉽게 결말에 이르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지루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는데, 여담이지만 작중에서 파스칼의 <팡세>와 와타나베 가즈오의 말이 - 에도 시대의 산킨교대와;; - 많이 인용돼서 지겨웠지만 결국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궁금증과 두려움인 죽음과 그 이전의 삶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데 작품에서 하도 많이 언급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독자는 물론이고 작가도 본인의 작품을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규정하지만 본작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나누는 얘기들만 보면 여느 인문학 도서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인가, 죽은 그 이후가 무서운 것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무서운 것인가' 를 고민해보기도 좋았고 때론 '죽지 않아도 그 이상의 고통이 존재한다면 그건 무엇이고 그렇다면 죽음이 정말로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솔직히 보편적인 주제긴 했지만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게끔 최적의 상황과 설정이 마련됐기에 이 정도 수준까지 주제의식이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약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주인공을 괴롭힌 범인의 최후가 정말이지 죽음의 좋은 점을 역설한 나머지 -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은 덤이다. 아니, 끔찍한 건가? - 후회없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던 것과, 자식을 두고 먼저 영면에 든 주인공의 아버지가 놀이공원에서 유령의 집에 먼저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발칙하고 유쾌한 시선은 작가의 개성과 직결돼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계속 찾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여름에 열렸던 작가 초청회가 기억나는데 그런 자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토록 짧게 대면한 게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p.s 이 시리즈는 매번 원제와 출간 제목이 다르다. 이 작품도 원제가 <사신의 부력>인데 부력이란 단어의 뜻이 바로 와 닿지도 않거니와 눈에 띄지도 않아서 바꾼 게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7일'로 바꾼 건 좀 구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부력이 작품 이해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단어라 제목에서 빼버린 건 역시 아쉽다.

가정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더 근원적인 후회, 즉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 105p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는 핑계를 생각해내는 것과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다. - 231p




살벌한 시대에 살벌한 걸 표현하는 건 재미도 없고 아무렇지 않아. 어차피 만들 거면 그 반대가 차라리 낫지.

(중략)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이 쓰면 걸작이 되죠. 하지만 대부분 흉내만 낸 것들이에요. 기왕 흉내를 낼 거면 검은 바탕에 검은색 말고 다른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낫죠. - 291~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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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는 여자
최상희 지음 / 푸른향기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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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내 버킷 리스트 중에 오헨로 순례길 완주가 있는데 아예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라서 과연 버킷 리스트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을 돌면서 자연스레 섬도 한 바퀴 도는 그 순례길은 원래 코보 대사라는 승려가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며 수행했던 발자취로 1,2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셀 수 없는 사람이 각자의 염원을 담고 오르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도 부친과의 이별로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것이었데 꼭 그 정도의 영적 목표가 없는 내가 쉽게 입에 담을 만한 목표이긴 한 걸까? 그저 재미로, 걷는 걸 좋아한다며 여행 삼아 도전하기엔 고행도 보통 고행이 아닌 듯해서.

 책은 작가가 최초로 결원 - 88개소 사찰을 전부 도는 것. - 을 하던 중에 겪은 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와 부록, 질의응답, 그리고 숙박업소 소개로 이뤄져있다. 오헨로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이 전부 일어에 능통할 리도 없으니 아무래도 어디서 자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일 텐데 그 심정을 잘 아는지 작가가 매우 실용적인 정보를 수록해줬다. 각 숙소의 위치나 종류, 인상, 가격, 식사가 맛있었던 여부, 기타의 조건 등 비경험자 입장에서 혹할 만한 자료라서 작가의 세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2010년에 최초로 결원한 이후로 지금까지 6번을 더 했고 - 책의 출간일이 2년 전이니까 6번보다 많아졌을 것이다. 또 번외 결원까지 합하면... 모르긴 몰라도 장난 아니게 걸었다는 얘기다. - 순례길에 처음 오르는 사람을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외국인 최초로 하게 됐고 그 외에도 시코쿠의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순례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가히 8년 전의 결원으로 인생이 바뀐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어제 아는 형과 대화하면서 여행이 단순히 견문을 넓히는 것 이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가 잠깐 오갔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말에 아주 부합하는 주인공이 바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 작가의 경우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례길에 오르거나 책을 쓴 건 아니지만 순례길에 오르기 전, 아버지와의 이별 말고도 가게도 잘 안 되는 등 인생이 순탄히 풀리지 않은 걸 떠올리면 이 오헨로 순례길이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이자, 신의 한 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름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반신반의했던 작가도 설마 본인의 인생이 이렇게 바뀌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글 서두에 내가 이 순례길에 오르는 걸 버킷 리스트라고 말해도 되는지 걱정했던 건 너무나도 앞서 간 걱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순례길에 오르는 게 무슨 대단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의지가 동반되는 고생스런 길일 뿐이다. 각자가 무엇을 바라든 그 기나긴 걸음 속에서 대답을 해주는 건 길이나 걸음이 아닌 발을 움직이는 나 자신일 것이다. 걷고 있다 보면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그대로일 지는 직접 걷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변화나 도전하는 차원에서, 마음 속 깊이 무언가를 염원하기 위해서, 때론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친절을 경험하면서 - '오셋다이'를 가리키는데 시코쿠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보면 음식값을 내주거나 집에서 재워주는 등의 대가 없는 친절을 베푼다고 한다. - 깨달음을 얻는 등 그 여정이 주는 효과는 쉽게 정의내리거나 넘겨짚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괜한 고민을 했던 스스로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만약 진지하게 순례길에 오르려고 한다면 동기 부여나 정보 탐색 등의 이유로 이 책을 자주 찾아볼 듯하다. 8년 전엔 관련 책이 없어서 당황한 기억이 있었기에 이제 예비 순례자를 위해 직접 이 책을 썼을 터인 이 저자가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인생이 변화할 수 있다니, 무척이나 부럽고 탐이 나기도 했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185854072

 이건 관련 책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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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즈 콘서트 시공 청소년 문학 18
조단 소넨블릭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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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꽤나 유쾌하게 시작하고 있지만 이 작품도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 아무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 마을을 질주하다 남의 집 정원에 들어가 겨우 잔디 도깨비 인형을 박살내버린 주인공의 처지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는 엄연히 범죄다. 고작 도깨비 인형을 박살냈을 뿐이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그냥 넘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판사는 주인공에게 사회 봉사 100시간을 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주인공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변화를 겪는데 자기 죄를 인정할 뿐더러 새로운 삶의 지표를 얻기에 이른다. 갱생이란 단어를 담기에 시종 가벼운 분위기가 일관되긴 하지만 그 진실됨과 설득력에 있어서 이래저래 성숙한 작품이라 하고 싶다.

 작가의 전작은 직전에 읽은 어떤 작품 때문에 형제애가 크게 와 닿지 않은 반면에 이 작품은 최근 소년의 갱생에 대한 이야길 접하고 난 다음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감동적으로 읽혔다. 거의 10면 만에 읽어서 문체나 여러 부분에서 처음 읽을 때만큼의 신선함은 없었지만 - 심지어 반전은 뻔했고 - 100시간 봉사를 하는 주인공 알렉스와 그런 알렉스가 요양원에서 담당하게 된 괴짜 할아버지 솔로몬과의 유대 및 캐미가 워낙 찰져서 심심치 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이라고 하면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개인적으로 전작에서의 드럼이란 요소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했단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에선 재즈 기타가 수단 그 이상의 소재라서 인상적이었다. 괴짜 할아버지 솔로몬도 왕년에 주름 잡던 재즈 기타리스트였고 이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둘이 가까워졌고 알게 모르게 알렉스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게 되는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전작 이상으로 탄탄하게 읽혔다. 뭐, 연주를 통해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무려 10년도 더 전에 읽은 작품을 읽는 게 솔직히 걱정되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는 게 단순히 그 작품 하나만 읽는다기 보단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나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과거에 재밌게 읽은 작품을 지금은 시큰둥하게 읽히는 게 어쩔 수 없는 동시에 또 씁쓸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두 번 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위에서 말한 점말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옛날에 읽은 책을 또 읽는 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언젠가 너도 진짜로 사과할 때는 중간에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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